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법무하이(法無遐邇)
법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사람은 예와 지금이 있지마는 법은 멀고 가까움이 없는 것이며 사람은 어리석음 지혜로움이 있지마는 도는 성함과 쇠함이 없는 것이니,
비록 부처님 재세시에 살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며, 설령 말세를 만났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봉행한다면 무슨 해로움이 있으리요.
人有古今 法無遐邇 人有愚智 道無盛衰 인유고금 법무하이 인유우지 도무성쇠
雖在佛時 不順佛敎則何益 縱値末世 奉行佛敎則何傷. 수재불시 불순불교즉하익 종치말세 봉행불교즉하상」
☞ 법무하이(法無遐邇)
法 법 법. 진리. 인식현상. 無 없을 무. 遐 멀 하. 邇 가까울 이.
출처 :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
《야운비구 자경문》의 이 구절은 시대와 사람의 차이는 있어도 불법의 진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한결같다 는 뜻을 아주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1. 이 글의 요지와 해설
이 글의 핵심은 한마디로 하면 "불법의 가치는 시대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유고금(人有古今)이란 '사람에게는 고금(古今)이 있다'는 말입니다. 고금(古今)이란 '예와 지금'이지요. 즉 '사람에게는 옛사람이다 지금 사람이다'라는 구별이 있지만이라는 뜻입니다.
법무하이(法無遐邇)란 '법에는 하이(遐邇)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이(遐邇)란 '원근(遠近)'과 같은 뜻으로, '멀고 가까움'을 말합니다. 법(法) 즉 진리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무상(無常)하여 예와 지금이 같지 않지만 법은 부동(不動)이라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말씀입니다.
옛날부터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시가 많은데 그중에 초당(初唐)의 시인(詩人) 유정지(劉廷芝)라는 사람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年年歲歲花相似(연년세세화상사) 歲歲年年人不同(세세연년인부동)
"해마다 피는 꽃은 그대로인데 해마다 보는 사람 같지 않구나."
시인은 해마다 피는 꽃을 바라보면서 하염없는 무상함에 젖어 있습니다. 해마다 꽃은 피건만 인걸은 간 데가 없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도 보듯이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옛사람 지금 사람 달라도 봄이 되면 꽃은 다투어 피어납니다. 봄이 되면 꽃이 피는 이 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아득히 먼 옛사람과 가까운 지금 사람이 각기 다르지만 진리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는 것입 니다. 아득히 먼 옛날의 진리와 가까운 지금의 진리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약 다르다면 진리이겠습니 까? 정녕 그렇지 않습니까?
세월이 흘러 여러 가지 가치관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의 근본자리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여여부동(如如不動) 하기 때문입니다.
인유우지(人有愚智)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다'는 말이고, 도무성쇠(道無盛衰)란 '도는 성함과 쇠퇴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습니다. 똑똑하여 총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둔하여 멍청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에게는 우지(愚智)의 기복이 있지만 부처님 진리는 성하고 쇠함이 없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이 500년이고 상법(像法)이 1000년이요, 말법(末法)이 10000년이라는 것은 한낱 시절인연에 불과한 것이지 마음의 근본자리를 밝히는 진리당체는 부동의 자리이기 때문에 성하고 쇠함이 없는 것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이 없다느니 말세이니 따위의 핑계로 도 닦기를 주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수재불시(雖在佛時). 수(雖)는 '비록 수'이고, 재(在)는 살고 있다는 뜻이고, 불시(佛時)는 부처님 재세시(在 世時)를 말합니다. '비록 부처님께서 계시던 시절에 살았더라도'라는 뜻입니다.
불순불교즉하익(不順佛敎則何益). 불순(不順)은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고, 즉(則)은 '~이면 ~'라는 뜻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는 말입니다.
종치말세(縱値末世)에서 종(縱)은 '늘어질 종, 세로 종' 등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가령, 설령'의 뜻으로 쓰였 습니다. 치(値)는 '만날 치'입니다. '값 치'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이 뜻을 새겨 보면 '설령 말세를 만날지 라도'라는 뜻입니다.
봉행불교즉하상(奉行佛敎則何傷)에서 상(傷)은 '다칠 상, 해칠 상'입니다. 해로움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를 새겨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한다면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라는 뜻입니다.
비록 부처님의 계시는 그 시절에 태어나 부처님을 만났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무 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부처님 곁에 있다고 저절로 공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오늘의 사자성어 ― 法無遐邇(법무하이)
법무하이(法無遐邇) "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여기서 하(遐)는 '멀다', 이(邇)는 '가깝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법무하이(法無遐邇)는 단순히 "법이 어디에나 있다"는 공간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 법의 진리는 시간과 공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 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부처님께서 2,500여 년 전에 계셨다고 해서 우리가 부처님에게 서 반드시 먼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부처님 당시 인도에 사셨다고 해서 부처님 법에 반드시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마음으로 법을 받아들이고 행하면 지금도 법과 가까운 것이고, 아무리 불법을 많이 들어도 행하지 않으면 법과 멀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이렇게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불부재원 행법즉근(佛不在遠 行法卽近) "부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니, 법을 행하면 곧 가까워진다."
3. '말세(末世)'라는 말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이 "종치말세(縱値末世 — 설령 말세를 만났다 할지라도)"입니다.
"말세에 태어났으니 수행하기 어렵다."라고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야운 비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수행의 장애가 될 수는 있어도 수행의 가능성을 없애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이 있었고, '설령 말세를 만날지라도 계율을 지키고 자비를 실천하며 마음을 닦는다면 법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시대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입니다.
4. 법무하이(法無遐邇)와 정심정행(正心正行)
이 가르침을 실제 수행으로 옮기면 아주 간단합니다. 법은 멀고 가까움이 없으니 지금 여기서 정심정행 한다면 법은 가까운 것이고, 정심정행 하지 않으면 법은 십만 팔천 리로 먼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무하이(法無遐邇)는 결국 거창한 데 있지 않고 지금 이 한 생각, 이 한마음, 이 한 행동에서 드러나는 법 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이 부처님 시대인가 말세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탐심을 알아차리고 한 걸음 물러서면 법에 가까워지고, 성냄을 알아차리고 자비로 돌이키면 법에 가까워지고, 말 한마디를 내놓기 전에 살피면 법에 가까워지고,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를 헤아리면 법에 가까워집니다.
반대로 불법을 아무리 많이 알고 경전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탐 · 진 · 치에 끌려가고 입과 몸으로 업을 짓 는다면 법은 십만 팔천 리 멀어지는 것이겠지요.
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법문을 읽는 바로 그 마음에도 있고, 한마디 말을 내놓기 전에 살피는 그 마음에도 있고, 화를 내지 않고 한 번 참는 그 순간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은 가까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가까이 있는 법을 우리가 스스로 멀리하지 않는 것이 중 요합니다.
🌿 법은 멀리 있음 아니라 행하면 가깝고,
도는 달리 있지 않아 마음 지킴 도일지니
말세에 산다 하여도 법 받들어 행할 바라네.
탐심을 알아차려 한 걸음 물러서고,
성냄을 알아차려 자비로 돌이켜서
언제나 나를 살피면 법에 사는 사람이라네.
결국 법무하이(法無遐邇)는 "불법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씀을 넘어, "법을 실천하는 그 자리에서 법과 내 가 가까워진다"는 매우 실천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늘 한마음을 지키며 법의 즐거움이 가득한 맑고 향기로 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