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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스하라지역대학 원문보기 글쓴이: 윤재군
ぼくが浪人していた時、ベトナム平和連合「べ平連」の小田実が、小説家の開高
健を予備校に連れて講演させました。「輝ける闇」というベトナム従軍記を上梓し
た直後の小説家は目をギラギラさせていました。「今日は戦場の話はしない。釣の
話をさせてくれ」と、釣り竿かついで世界を行脚した話を延々と語りましたが、釣
の背後に血の臭いがしました。
以来、開高健の小説は大概読みましたが、おびただしい文字をいくら追っても、
戦争に追われた人間が地べたを這うばかりで、政治の色は完璧に脱色されているの
でした。人間の不幸を描く小説家が、不幸の背後にある政治を描かないのは、おか
しな話だと今でも思っています。人間を描いて、構造を描かないのは、小説家の領
域を守ったのか、たんに思考の幅が狭かったのか、今でも謎です。
とはいえそこに描かれた生々しい人間の姿は、開高健の筆でなければ描けない見
事なもので、今また読み返しています。(韓国語に翻訳されているのであれば、ほ
んの少しでよいですから、ぜひご覧ください。当節の小説家がバカに見えます)氏
は既に喉頭ガンで物故しましたが、あの小説家を北朝鮮の農村に置いたら、紙の上
にいかなる文字が踊るのであろうかと空想することがあります。
ぼくが大学に入った年、火炎瓶を禁じる法律が通りました。その法律が発効する
直前、大学の近くで紛争があり、機動隊と向き合った学生が、タクシーをひっくり
返し、火炎瓶を投げて燃しました。機動隊は、大砲をもつ装甲車を前にジュラルミ
ンの楯で壁を作り、学生は舗石を剥がして楯の列に投石しました。灰色の大砲が、
怒りにかられて火を吹いたらどうなるのだろうと思っていると、驚いたことに大砲
の先っぽから出たのは、砲弾ではなく、水なのでした。消防車みたいな装甲車を見
て肩すかしを食らった自分には、学生運動が馴れ合いの劇場のように思われてなり
ませんでした。街角に出没する運動家は、紋切り型の運動用語を駆使しながら、し
かし決して自分の言葉で事の本質を語ることはなく、それを傍観する自分は、こい
つら本気だろうかと訝しく思いました。とはいえ学生は、それなりのリスクを負っ
ていたようです。
機動隊に捕まり、カメラの目が届かないジュラルミンの陰に連れ込まれて殴られ
る学生を目撃したこともあります。角張った文字の立て看板がならび、マルクスと
か革命とかいった文字が踊る大学では、よく授業が休講になり、ノンポリの自分は
争いがあるたびに見物に出かけました。反体制を標榜する学生グループが割れ、あ
ちらのグループとこちらのグループで争いを繰り返していました。革マル(革命マ
ルクス)と民青(民主青年同盟)が、火炎瓶を投げあったこともあります。放られ
たビール瓶がアスファルトに触れると小さな面積を火が包みます。屋上から見てい
るとわずかな炎が上がっただけでしたが、翌日の新聞で、ガラスの破片を目に受け
た学生が失明したという記事を見ました。同じ学生がなぜ争わねばならなかったの
か、いまだに理由は知りません。その闘争には、視力を賭けるほどの目的があった
のだろうか。あったとすれば失明も納得できるが、なかったとすれば学生は、その
後の人生をどう生きたのだろうかと自問自答しました。
ベトナム戦争に端を発する日本の学生運動は、コレアの運動とは違うように思わ
れます。間接的に戦争に加担する日本人が、ベトナム戦争に反対するのは、理念と
してわかっても、自分には背後の構造が見えなかったのです。なぜ成田闘争が展開
されたのか。なぜ浅間山荘事件が起こったのか。なぜ日本の若者が「よど号」で北
朝鮮に飛ばねばならなかったのか、メディアは背後の骨格を描きません。そんなこ
とは自明の理だというわけです。 しかし 自明の理って何だとぼくは問いたいので
す。
彼らは何に反対していたのか。争うべき具体的な記憶と思想をもっていたのか。
たんなるお祭り騒ぎではなかったか? だって彼ら就職した途端にころりと態度を
変えるのであるし、ぼくを成田闘争にむけてオルグしようとした 同級の 女子学生
は、反対の理由を語らなかったし、ぼくはといえば彼女がもう 少し 美人だったら
「ハイと答えて」ゲバ棒かかえ、武闘が導く高揚感の中で恋を愉しめたかもしれな
いという下心もあったわけで、要するに、見たこともないベトナムの人々や、知ら
ない成田の農民のために人間は本当に闘えるのだろうかという疑念が残りました。
彼らの行為は、明確な記憶から怒りを覚え、背後の構造を読み切った上で、思想を
結実させたとは思われないところがあります。よくわからない思想のもとで、知ら
ない人のために人間は本当に闘えるのでしょうか? 結局、米ソ冷戦の狭間にあっ
て、アメリカに与する側とソ連を故郷とする側が、学生を踊らせていたのではなか
ったか。それを当局は適当に遊ばせていたのではなかったかと、様々な思念が去来
します。
7)「北朝鮮指導部に対する攻撃はすぐ北朝鮮人民に対する攻撃になるのです」
指導部と人民を北朝鮮という大きな括りで捉える言霊(ことだま)の問題もあろうかと思います。西洋の言
語哲学は、森羅万象を切り取る道具として言葉を持ち出し、複雑怪奇な論理を導きますが、日本では言霊とい
う一言で言語活動のすべてを言い切ります。
言語は現実をいかようにも切り分けます。イラクとアメリカ、中東と西洋、イスラムと十字軍……といった
分け方もできます。アメリカは敵対する複数国を「悪の枢軸」と括って個人も国家も一緒くたにしました。中
東の上に乗っかるアメリカをイメージするとき、アメリカという言葉は広すぎて、ワシントンという集合で括
るべきこともあります。「指導部」「人民」といった様々な言霊にやられて、普通に生きている人間は迷惑で
す。
8)「北朝鮮は最近刻苦の努力で最悪の食糧難から脱しているような姿です」
その状況証拠がありましたら、ぜひ教えてください。食えるとすれば北朝鮮は「絶対的貧困」から「相対的
貧困」にシフトしたことになります。すると北においても次なるテーマは幸福とは何かという心の問題に入り
ます。北が食料難から脱したかどうかは非常に重要なテーマです。
9)「農民たちは集団農場で注水入院を得て少しの耕作権を持った自分の農地で副収入を得ているし」
それが事実であるとすれば、北朝鮮は1980年代初期の中国に似た状況にあります。非常に興味深い状況
です。忘れもしません。ぼくが初めて中国に入ったのは1980年のことでした。当時は北京直行便などなく
て、個人旅行は香港から珠江を遡って広州に入る他ありませんでした。道に迷い、バスを乗り間違えて、おか
げで沢山な見聞をしながら、日本円で600円もするドミトリーを渡り歩いて北京駅に着きました。さて、駅
で見かけたパンフレットの表紙には、なんと鄧小平が、ゴルフクラブを握っているではありませんか! ゴル
フは資本主義の象徴です。社会主義国のトップが「黒い猫でも白い猫でもネズミを捕る猫は良い猫だ」という
南方講和を行った頃の話です。「一国二制度」は本当かもしれないと思いました。
長城行きのバスに乗り、土産物屋を冷やかしました。立派な建物の売り子が社会主義的にやる気がないのに
反し、路傍の物売りは気合が入っていました。「副収入」として商売が認められたからでしょう。もともと中
国人は商の民であり、売って稼いで金持ちになれるのであれば何でもやるのが中国人です。稼いでよい人と稼
いではいけない人の目が、これほど違うものかと驚いたことを覚えています。 鄧小平がギヤチェンジして以
来、中国経済が爆発的に伸びたことは申し上げるまでもありません。
いよいよ追い詰められた北朝鮮が、中国に倣って「一国二制度」に踏み切るかどうか。「少しの耕作権」が、
「黒い猫と白い猫」を同居させる布石であるのかどうか知りたいところです。金剛山観光や開城の工業団地
で、資本主義を受け入れる仕掛けが本当に動いているとすれば、スリリングな歴史が作られているわけです。
10)「彼らの生で国家の関与する部分が多い結果自分と国家を一致させる考えはもしかしたら自然でもあり
ます」
日本やアメリカから見た北朝鮮がどうであれ、「自分と国家を一致させる考え」は個人にとって幸福な状態
であるのかもしれません。日本の右翼が、国家identityに個人identityを重ねて幸福に包まれるのであれば、
北の貧しい人々が同じ幸福を得たからといって矛盾はないからです。豊かな国で斜に構えた知識人が忘れてし
まった幸福かもしれません。
11)「ふらふらしている南の一部の様子とは違い、労働で鍛えられた元気な人たちでした。
貧しさというのが人格を説明でき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
その通りだと思います。北の貧しさは、外部から見た貧しさであって、誇りをもつ人格は、
外部世界の価値基準とは別のものだからです。「絶対的貧困」を脱した者にとって次なるテー
マは人格です。「労働で鍛えられた元気な人たち」にぜひ自分も会いたいと思いました。満ち
足りてふらふらしている人間の顔なんて絵になりませんものね。
12)「北朝鮮はだいぶ前からエネルギ問題を経験したし、その結果として山は荒廃になるし
かなかったです」
DMZから見た北の風景がエネルギー問題の結果であったことを確認できました。余談なが
ら、開き直った原発推進派に「原発を否定したら禿げ山になる。それでよいのか?」と凄まれ
たことがあります。「あんたねえ。ここは日本でっせ。そんな単純な理屈は通りませんがな」
と言いたいことがよくありました。正気の議論は難しいものです。
12)「彼らが幸せだったら幸せなのです」
ずっしり心に残る言葉です。年間3万人の自殺を放置した日本の国民が軽々しく触れるべき
問題ではないと思いました。「絶対的貧困」を超えたら次は心の問題です。
060725助村
제가 재수를 하고 있을 때, 베트남 평화연합「베평련」의 오다미노루가 소설가인 가이코타
케시를 학원으로 데리고 와서 강의를 하게 했습니다.「빛나는 어둠」이라는 종군기를 출판
한 직후의 소설가 눈은 날카롭게 번득이고 있었습니다.「오늘은 전쟁터 이야기는 하지 않겠
다. 대신 낚시 이야기를 해주지」라며 낚싯대를 메고 세계를 주유했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이어갔습니다만, 그 이야기 뒤에서는 피 냄새가 났습니다.
그 이후, 가이코타케시가 쓴 소설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문자를 아무리 더
듬어 봐도 전쟁에 쫓긴 인간이 땅바닥을 기는 이야기가 계속될 뿐, 정치색은 완벽하게 탈색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을 묘사하는 소설가가 불행 뒤에 존재하는 정치를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묘사하면서 그 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소설가의 영역을 지킨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
고의 폭이 좁았던 것인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생생한 인간의 모습은 가이코타케시가 아니면 결코 묘사
할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인지라 지금 재차 읽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있으
면 극히 일부라도 좋으니까 꼭 읽어 보십시오. 요즘 소설가는 바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는 이미 후두암으로 사망했습니다만, 만약 그 소설가를 북한 농촌으로 보내면 종이 위에 어
떤 문자가 춤을 출지 상상을 하곤 합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화염병투척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 법률이 발효되기
직전, 대학교 근처에서 시위가 있었는데 기동대와 대치한 학생들이 택시를 뒤집고 화염병을
던져 불태웠습니다. 대포가 장착된 장갑차를 앞세운 기동대는 알루미늄방패로 벽을 만들었
고, 학생들은 보도블록을 깨트려 기동대를 향해 던졌습니다. 당시, 저 대포가 분노에 사로
잡혀 불을 뿜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놀랍게도 대포에서 발사된 것
은 포탄이 아니라 바로 물이었습니다. 소방차 같은 장갑차를 보고 헛물을 켜게 된 나에게는
학생운동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였습니다. 길모퉁이에 출몰하는 운동가는 틀에 박힌 운
동용어를 외치면서도 결코 자신의 입으로 사건의 본질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그 장면
을 지켜보던 나는‘이 녀석들 진심으로 저러는 것일까?’하는 수상쩍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
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동대에게 붙잡혀 카메라 렌즈가 따라가지 못하는 알루미늄 방패 뒤로 끌려가 얻어맞는
학생을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구내 여기저기에 대자보가 나붙고 마르크스나 혁명 등과 같
은 문자가 난무하는 대학교에서는 휴강이 잦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던 나는 시위가 있을 때
마다 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반체제를 표방하는 학생단체들이 서로 갈라져서 분쟁을 되풀
이 하고 있었습니다. 혁명마르크스파와 민주청년동맹이 서로 화염병을 투척했던 적도 있습
니다. 투척된 맥주병이 아스팔트 위에 작은 불기둥을 만듭니다. 옥상에서 보고 있노라면 자
그마한 불꽃이 피어올랐을 뿐인데 다음날 신문에서는 유리 파편에 눈을 맞은 학생이 실명했
다는 기사가 실립니다. 같은 학생들이 왜 서로 싸워야 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
다. 그 투쟁에 시력을 걸어야 했을 만큼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일까? 목적이 있었다면 실
명인들 납득 못할 것도 없지만, 만약 아무런 목적도 없었다면 실명을 한 학생은 그 후의 인
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자문자답을 했습니다.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촉발된 일본의 학생운동은 코리아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습니
다. 간접적으로 전쟁에 가담하고 있던 일본인이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념적으로
는 이해할 수 있어도, 나로서는 그 배후의 구조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나리타 투쟁
이 전개되었는가? 왜 아사마산장사건은 발생했는가? 왜 일본 젊은이들은「요도號」를 타고
북한으로 넘어가야 했는가? 일본 언론은 그 사건들의 배후 골격을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굳
이 말하지 않아도 그런 일은 자명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명한 이치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저는 묻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반대하고 있었는가? 싸워야할 구체적인 기억과 사상을 갖고 있었는가? 단순
한 축제적 소동은 아니었는가? 하지만 그들은 취직을 하는 순간 맥없이 태도를 바꾸었고,
나를 나리타 투쟁의 주동자로 끌어들이려 했던 여학생은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를 끝내
말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조금만 더 미인이었다면「OK라는 대답」과 함께 각목을 들
고 무력투쟁이 주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 사랑을 즐겼을지도 모른다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요컨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베트남 사람들이나, 전혀 모르는 나리타 농민들을 위해 인간
은 정말로 싸울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남았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명확한 기억으
로부터 분노를 느끼고, 배후구조를 완전히 꿰뚫어본 연후에 결실을 맺은 사상이라고는 여겨
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막연한 사상을 바탕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인간은 정
말로 싸울 수 있는 것일까요? 결국, 미소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미국편을 드는 쪽과 소련
을 고향으로 하는 쪽이 학생들을 조종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것을 당국은 적당히 컨트롤하
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칩니다.
7)「북한 지도부에 대한 공격은 바로 북한 인민에 대한 공격이 되는 것입니다」
지도부와 인민을 북한이라는 큰 묶음으로 파악하는 고토다마(언령신앙)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서양의 언어철학은 삼라만상을 잘라내는 도구로 언어를 끌어내어 복잡괴기한 논
리를 이끌어냅니다만, 일본에서는 고토다마라는 한 마디로 모든 언어활동을 잘라 말합니다.
언어는 현실을 어떤 식으로든 분리를 합니다. 이라크와 아메리카, 중동과 서양, 이슬람과
십자군.......등과 같이 나눌 수도 있습니다. 아메리카는 적대하는 몇 몇 국가를 「악의
축」으로 구분을 짓고 개인 역시 국가와 동일하게 취급했습니다. 중동을 장악한 아메리카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아메리카라는 말은 너무나 광범위해서 워싱턴이라는 집합으로 묶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지도부」「인민」과 같은 다양한 고토다마에 당해야 하고, 평범하게 사
는 인간으로서는 귀찮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8)「북한은 최근 각고의 노력으로 최악의 식량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상황에 대한 증거가 있으시다면 꼭 알려주십시오. 먹고살 수 있다면 북한은「절대
적 빈곤」에서「상대적 빈곤」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 북한에서도 다음 테마는 행복이
란 무엇인가라는 정신적 문제로 넘어갑니다. 북한이 식량난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한 여부는
대단히 중요한 테마입니다.
9)「농민들은 집단농장에서 주 수입원을 얻고 약간의 경작권을 얻은 자신의 농지에서 부수
입을 얻고 있으며」
이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1980년대 초의 중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것입니다. 대
단히 흥미진진한 상황입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중국에 들어간 것은 1980
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베이징으로 가는 직항편이 없었던 터라 개인 여행은 홍콩에서
주강을 거슬러 올라가 광저우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을 잃기도 하고 버스를 잘 못
타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견문도 많이 넓히면서 일본 돈으로 600엔이나 하는 공동숙소를 거
쳐 걸어서 베이징 역에 도착했습니다. 한편, 역에서 발견한 여행안내 팸플릿 표지에는 놀랍
게도 등소평이 골프채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골프는 자본주의의 상징입니다. 사
회주의국가의 일인자가「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는 좋은 고양이다」라
는 南方講和를 실시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1국가2체제」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했습니다.
만리장성行 버스 안에서 기념품가게를 눈요기만 했습니다. 번듯하게 지은 건물의 기념품가
게 판매원은 사회주의적 타성에 젖어 의욕이 없어 보이는데 반해, 길가의 행상들은 무척 적
극적이었습니다.「부수입」으로서의 상행위가 인정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원래 중국인은 뛰
어난 장사꾼 체질인데다 팔아서 돈이 되고 부자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민족이
바로 중국인입니다. 돈을 벌어도 되는 사람과 벌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눈빛이 이처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등소평이 경제체제를 혁신한 이후 중국경제
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실은 굳이 말씀드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궁지에 몰린 북한이 중국을 모방해「1국가2체제」를 단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약간의
경작권」이「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동거시킬 포석인지에 대한 여부가 알고 싶은 부
분입니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업단지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장치가 정말로 작동하고
있다면 아슬아슬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10)「그들의 삶에서 국가가 관여하는 부분이 많은 결과 자신과 국가를 일치시키는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일본이나 아메리카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든,「자신과 국가를 일치시키는 생각」은 개인
으로서 행복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일본의 좌익이 국가identity에 개인identity
를 덧씌워 행복으로 포장하는 것이라면, 가난한 북한 사람들이 자신과 국가를 일치시켜 행
복을 얻었다고 해도 모순은 없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운 나라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지식인들이 잊어버린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11)「건들거리는 남한의 일부 모습과 달리 노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
이 인격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북한의 가난은 외부에서 본 가난함일 뿐이고, 긍지를 지닌
인격이란 외부세계의 가치 기준과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난 자의
다음 테마는 인격입니다.「노동으로 단련된 건강한 사람들」을 저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만족에 겨워 건들거리는 인간의 얼굴 따위는 어울리지 않겠지요.
12)「북한은 오래전부터 에너지문제를 겪었고 그 결과 산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바라본 북한의 풍경이 에너지문제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
니다. 여담입니다만, 원자력발전추진派로부터「원자력발전을 부정하면 민둥산이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가?」라며 위협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자네 말이야. 여긴 일본이라네.
그렇게 단순한 억지이론은 통하지 않는다니까」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정
신으로 논의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12)「그들이 행복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 말입니다. 연간 3만 명에 이르는 자살자를 방치한 일본 국민이 경솔
하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절대적 빈곤」을 넘어서면 다음은 마음의 문
제입니다
060725 스케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