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남편은 처음부터 명희를 찾아가려고 했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네 번의 거짓을 말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은호의 첫 물음에 진실을 말했더라면, 그랬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감추고 싶은 거짓을 드러내 순백의 옷을 입히려는 시도, 그것은 거짓보다도 가증스러운 사기극이다.
남자는 아내보다 먼저 도착한 이삿짐들 속에서 아내의 검은색 비밀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은 이전보다 더 배가 튀어나와 있었다. 아내의 비밀 용량이 늘어난 것일까. 남자는 <007> 시리즈의 한 장면처럼 클립을 펴서 열쇠구멍에 넣어보지만 숀 코너리의 성공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리고 열리지 않는 가방과 나란히 벽에 등을 기댄 채 아내의 비밀을 상상한다. 남자가 읽고 있던 자신의 습작을 낚아채며 화를 내던 아내, 그리고 사라져버린 아내의 노트들, 그것이라면 더 이상 비밀은 아니지, 아내는 남자에게 화를 내고도 촌평을 부탁했었다. 이미 남자의 비평까지 감수한 그것들을 감추는, 아내는 바보는 아닐 것이다. 결혼 전 아내의 앨범 속에서 발견했던 남자친구의 사진, 남자는 아내가 될 여자에게 말했다. <옛날 남자의 사진은 정리하는 게 예의라는 것쯤은 알겠지? 난 이미 다 정리했어>. 여자는 당당하게 남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기꺼이 무례한 자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여자가 들고 온 앨범 속에는 남자친구의 사진들이 사라져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는 사라진 사진들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일까.
남자는 아내의 비밀가방을 그가 얼굴을 알지 못하는, 그저 <늑대>라든가 <보헤미안>과 같은 이름으로만 알려진 불특정다수에게 공개했다. 불특정다수, 곧 온 세상이 다 알게 된 아내의 비밀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았다. 처음부터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의 가방은 재수생의 뒷주머니에 찔러 넣어진 머리빗처럼 유치하고 촌스럽고 시시하고 껄렁한,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재수생은 자신이 좋아하던 여학생,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짝으로부터 받았던 하찮은 메모조차 버리지 않고 들고 다녔다. 중요한 것은 비밀이라는 과일의 맛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과 그것을 나누어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비밀가방>으로 인해 자신이 아내의 전존재를 통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불쾌함, <모든 것>을 향한 허황된 욕망, 남자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아내는 <비밀가방>을 통해 남편의 전횡적인 영향력 아래 있기를 거부했고 남편의 <권위>에 상처를 입혔다. 남자는 자신이 받은 자존심의 상처가 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아니 자신이 결코 상처받은 일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내의 비밀을 폭로했다. 그는 아내의 비밀을 어린 계집아이가 되는대로 쑤셔 넣은 소꿉가방 속의 장난감으로 취급했다. 가방 속에는 플라스틱 흙삽과 인어공주의 비늘옷과 엄마에게서 받아낸 밀가루 반죽이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런 두서도 없이 엉클어져 있을 것이다, 그 하찮은 비밀들을 나는 더 이상 비밀로 부르지 않겠다, 너의 비밀은 나에게 폭로해도 좋을 하찮음이다, 나는 너의 검은 가방을 비밀로 부르기를 거부한다......
은호는 모니터를 통해 섬세하고 기지에 넘치는 한 남자를 살펴본다. 남자가 자신의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은 남자의 얼굴을 은폐하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모자의 챙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은호는 남자가 아내를 미워하기를 진즉에 그만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아내를 사랑했던 적이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아내를 낯선 자로 부르며 자신을 이미 오래 전에 아내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었다. 섬세하고 총명하고 진지했던 한 남자는 아내의 비밀 이전에 자신의 삶, 그 우울과 무료함과 건조함의 비밀을 먼저 폭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혹시나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그 가방 열어보지 않고 무덤에 함께 넣어줄까 생각합니다.
.
살아있는 아내의 비밀을 까발린 남자가 죽은 아내를 위해서 비밀에게 예우를 갖추려한다는 것은 은호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남자가 총명하다는 것은 은호의 오판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는 결심은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새기는 되바라진 결심일 뿐이다. 비밀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사라져간다. 죽음은 모든 자에게 모든 것의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추억도 비밀도 잠시 그림자를 드리우다가 사라져갈 것이다.
은호는 아내의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아내의 비밀은 그에게 고통조차 주지 못하는 하찮음이 아니었던가. 은호는 남편에게 거짓 대신 오히려 비밀이 존재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명희라는 여자가 남편에게 있어서 비밀의 영역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은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중략>..............
많은 것들이 예상을 빗겨서 멀고 낯선 곳에 가 닿아 있었다. 명희의 곁에는 은호의 남자선배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지도 않았고 명희를 방문한 것은 은호와 남편이 아니라 은호의 아이들과 남편이었다. 은호가 얼마나 명희를 보고 싶어 했는가를 남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은호는 남편이 얼마나 명희를 보고 싶어 했는가를 알지 못했다.
남편이 돌아왔다.
- 술 같이 먹자.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아내의 옆에 술병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도 남편은 예사롭게 말했다. 남편의 가벼운 반응은 오히려 은호의 예민해진 신경을 더 몰아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 1년을 어울려 다니던 당신들한테 당신들만의 추억이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 걸 내 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어떻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니야.
- 명희 보고 싶다던 건 너였잖아.
- 그래, 언니를 보고 싶어 한 건 나였어. 그런데 당신이 보고 왔지.
- 아이들 데리고 갔는데 뭐가 문제야?
날카롭게 날이 선 은호의 신경은 <아이들>을 입에 올린 남편의 무신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이 면죄부라도 돼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럼 당신 아이들을 이용한 거야? 나도 남자친구랑 나만의 추억이 있어. 그럼 나도 애들 데리고 남자친구 만나러 갈까? 당신이 처음 애들 데리고 언니 만나러 갔던 거, 나 데리고 예고도 없이 언니네 가게로 향했던 거, 그 두 번이면 추억은 충분히 되새긴 거 아닌가? 내가 애들 데리고 계속 남자친구 만나러 다닌다면 당신 기분 어떨 것 같애? 언니의 결혼이 불행하다고 해서 당신이 그걸 위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야. 위로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아내를 둔 남자가 지속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역할이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랑 결혼해서 불행한 거, 그건 언니가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언니 몫의 고통이야. 당신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냐구? 그건 당신이 아내에 대한 예의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야. 당신은.... 거짓말을 했어. 처음부터 언니에게 가려고 했으면서도 그걸 고의적으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내가 물었을 때조차, 네 번씩이나 대답하지 않은 건 완벽한 거짓말이나 다름없어.
남편이 명희를 찾아 간 것은 그의 연민이 시킨 일이었을 것이다. 사랑에 실패하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서 불행한 여자후배, 그것도 가까이 지내던 여자후배에게 느끼는 연민, 그것은 흔해빠진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 위해 세상에 널려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은호는 곧 남편으로 하여금 연민을 들고 명희를 찾아가게 한 것이 남편 안에 자라나는 무료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단지 명희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료함을 위로하기 위해 명희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후자가 훨씬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였다는 것이 은호의 가슴을 무거운 돌처럼 내리눌렀다. 아내의 비밀가방을 폭로한 남자의 권태, 그 남자의 비밀과 남편의 비밀, 모든 남자들이 품고 사는 권태라는 이름의 비밀을 발견한 은호는 순진하게도, 어리석게도 당황하고 있었다.
남편도 무료하다는 걸, 그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15년이 지나도록 닳아지지 않는 감동으로 지니고 사는 특이체질은 아니라는 걸 은호는 왜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은호는 자신이 남편에게 화를 냈던 이유, 남편의 거짓에 화를 낸 것이라는 말과 생각 속에서 자신의 거짓을 발견한다. 그것은 처음엔 진실의 모습으로 태어났고 진실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은호는 지금 남편의 거짓이 아니라 <권태>라는 남편의 <비밀>을 발견하고 그것을 못견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내의 비밀을 견디지 못한 남자, 은호는 그 남자를 찾아가 사과하고 싶어졌다. 당신의 행동을 비웃어서 미안해요, 당신이 아내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내의 비밀을 못견뎌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은호는 곧 자신에게 더 커다란 웃음이, 남자와 자신을 위한 두 배의 웃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역시 우스워, 여전히 당신은, 그리고 나는 웃기는 족속들이야. 비밀도, 거짓도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당신은 비밀을 견디지 못해서, 그것을 폭로함으로써 그것을 견뎌냈어, 결국 아무 것도 견뎌내지 못하는 우린 이렇게 야비하게 삶을 견뎌내고 있는 거야......
은호는 남편을 향한 자신의 사랑, 흔들리지 않고 닳아지지 않던 자신의 사랑에서 지금에서야 둥글고 거대한 함몰지대를 발견한다. 남편의 거짓을 통해 은호는 자신의 거짓을 발견한다. 은호는 크게 웃고 싶었다. 그러나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은호는 자신이 울고 싶어 한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눈물과 웃음에 관한 사소한 진실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은호가 그저 <사랑>이라고 말했을 때 그 사랑은 진실이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닳아지지 않는 사랑>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두 번의 후회를 두려워했던 은호의 자기최면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정 깊은 오누이 같던 친구를 연인이라는 옳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 그것이 이유일 거라고 은호는 생각했었다. 남편이 자신에게 불러일으켰던 감정들, 혈관을 흐르는 피가 정해진 속도를 위반한 채 질주해나가는 아득함, 그 견디기 어려운 압력을 은호의 약한 심장이 기꺼이 받아들이던 것을 바라보던 경이로움, 그것들은 오누이 같은 연인이 느끼게 해준 안락함을 일순간에 들러 엎었다. 은호는 더 이상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호는 자신이 참된 사랑이라고 믿게 된 것을 선택했다.
은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한 사람의 고통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의 고통이 되었다. 그 고통을 바라보던 은호 역시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세 사람의 고통이 되었다. 은호의 고통을 알게 된 남편, 은호의 새로운 연인, 진정한 연인도 고통 받았다. 중간고사가 끝난 토요일, 흐린 하늘 아래서 우산을 챙겨든 은호는 문과대 건물을 나서는 종수와 맞닥뜨렸다. 그녀는 입대한 남자친구에게 면회를 간다고 말했다. 은호 역시 연인으로 불리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서는 중이었다. 문정은 은호를 막아섰다. 그리고 은호의 우유부단함을 질책했다. 은호는 차가운 대리석 벽에 등을 기대서서 울었다. 우유부단한 은호는 그 질책과 충고를 울면서 받아들였고 뒷날 그것에 대해 문정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문저잉 복학한 은호의 친구를 교정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말했다. 그날 은호를 막아섰던 너를 많이 원망했었어.... 문정은 그의 원망을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이제 은호는 교정을 떠났고 문정에게 그 이야기들은 더 이상 설명과 변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오래된 이야기로 느껴졌던 것이다. 아니면 문정의 침묵은 그의 고통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느낄 수는 없었던, 완전한 타자의 침묵이었는지도 모른다.
은호는 세 사람을 고통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했고 문정을 끊임없이 걱정스럽게 하면서 이루어갔던 자신의 새로운 사랑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그것이 은호로 하여금 결혼의 사소한 위기와 커다란 위기들을 흔들림 없이 넘어설 수 있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방치돼 있었다고 느끼면서도, 사랑에 어떤 기쁨이 따랐었는지를 까맣게 잊은 지경이 되었을 때에도 남편에 대한 은호의 사랑에는 일말의 의심도,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은호는 미련할 지경으로 자신의 사랑을 믿었다. 은호 자신에게도 , 문정에게도 그것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늘 은호의 안에 저항을 꿈꿀 수조차 없는 패잔병처럼 앉아 있었다. 은호는 자신의 사랑을 성실과 책임이라는 뜨거운 열을 통해 흠집나지 않는 강철로 제련시켰던 것이다.
거짓과 진실은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은호는 남편의 거짓과 자신의 거짓을 찬양하고 싶어졌다. 거짓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 은호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사랑 속에 불순물처럼 존재하던 모호함을 이해했다. 15년 동안이나 맹목으로 존재하던 사랑은 도전받았다. 은호는 도전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은호가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도전을 거부했다면 오래지 않아 은호는 사랑 안에 퍼져가고 있는 모호함의 도전에 서서히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은호는 그 도전을 받아들였고 그것과 정당하게 싸웠다. 그리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은호가 세 돈짜리 순금반지를 잃어버렸을 때, 결혼반지였던 그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은호는 별다른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다. 은호에게는 남편과의 언약을 되새기게 해주는 또다른 반지들이 있었으므로. 투명하고 작은 큐빅을 박아 넣은 14K 금반지, 은호는 이젠 손가락에 맞지도 않는 그 반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충분해.>
자신의 강철 같은 사랑에 흠집을 냈던 모호함의 정체, 그것이 드러났다고 해서 나는 은호의 사랑이 무가치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은호는 생애 첫 도전을 받았던 자신의 사랑, 패자로 돌아온 자신의 사랑을 따뜻하게 맞아들였다. 그리고 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와 같았던 자신의 사랑이 명예로운 흉터를 간직한 청년으로 자라났다는 걸 알았다. 이제 사랑은 은호를 떠나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후략>
재미있게 읽으셨는지요? 사실 별 재미는 없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지금보다 더 바빠지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이미 모든 기대를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 속의 여자처럼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고,
의지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곤혹스러운 감정으로서의 사랑과
그 사랑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배다른 자식같은 불편한 감정들---
채워지지 않는 기대, 지칠줄 모르는 소모전을 벌이는 원망과 용서,
그런 감정들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누이의 감정과 같았던 그것 또한 왜 사랑이 아니었겠습니까.
그 감정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던,(아니 이미 상처는 씻겨지고
어쩌면 까맣게 잊혀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으로 믿었던 그 <감정>도
오래전에 사라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변해가고
곤충의 허물벗기와도 같이
저는 그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소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누이의 사랑을 단숨에 제압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등극했던 그 사랑이
이제 허물을 벗고 앉아있습니다.
그것을 뭐라고 불러주면 좋겠습니까.
이름을 지어 부를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그것은 또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터이니까요.
남편의 늦은 귀가,
그것이 일로 인한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혹 그것이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의한 것일지라도
일언반구 바가지를 긁지 않게 된 것도 꽤 오래 된 일인 것 같습니다.
절대 바가지를 긁지 않는 아내,
평화의 전령이 따로 없었지요.
한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도, 뭔가를 안다고 착각했던 저도 평화로왔습니다.
아이들을 재울 준비까지 다 마치고나면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남편의 인기척이 들립니다.
그러면 저는 남편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현관으로 나갑니다.
그러다가 한 번 두 번 그 예의갖추기를 빼먹기도 하고
예의를 갖추되 마음이 담기지 않은 건성이 될 때도 늘어갑니다.
바보가 아닌 남편도 곧 그것을 눈치챕니다.
그러나 침묵을 금이라고 믿는 남편은 그 금덩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도 속으로 이렇게 뇌까립니다.
나도 금 좋아하는데.....
평화에 소리없이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뭔가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뭔가가 잘 못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아녜스 자매님께서 올리신 그림들을 보고는
저는 오래전의 기억, 제 머릿속에 판화처럼 새겨진 여섯 살의 여름을 생각했었지요.
세 달 가까이 엄마와 떨어져 있던 그 여름이 지나고
고갯길을 넘어 한 여자와 남자가 나타났을 때,
할머니집의 대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저는
미친듯이 언덕을 향해 내달려갔습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분간할 수조차 없는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가 저를 그렇게 내달리게 했습니다.
두 사람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여자의 옷차림을 분간할만한 거리가 되었을 때
저는 급정거를 하는 차처럼 멈춰섰습니다.
여자의 옷차림이 낯설었습니다.
저는 굳어버린 것처럼 서있었고 두 사람은 계속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처음보다 더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의 얼굴이 분간이 되었고
그것이 새 옷을 입은 엄마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엄마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왜 뛰어오다 멈췄어?
응, 아빠가 새엄마 데리고 오는 줄 알았어.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셨습니다.
이목구비가 분간이 안되었어도 아빠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리에서
곁에 서있던 엄마는 무척 낯이 설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엄마의 새 옷 때문이었고
오랫만의 시댁 나들이에 엄마가 적지않은 변신을 시도했었던 탓이라고 짐작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 <새엄마>라는 엉뚱한 생각이 엉뚱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었지요.
그 여름을 나면서 제가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고
얼마나 불안했었는지,
엄마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이 들었었는지,
엄마는 그것을 아셨을까요.
단지 엄마의 새옷 때문이 아니라
어린 저를 데리러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엄마를 잃은 것같은 상실감이,
그것 때문에 입은 상처가,
아빠 곁에 있는 낯선 차림의 여자를
새엄마로 생각하게 했던 것입니다.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었을 때 전해오던 엄마의 냄새,
엄마의 존재는 그 모든 것을 일순간에 보상해주었습니다.
새옷의 낯설음, 낯선 촉감, 냄새, 그런 것들이 엄마의 냄새를 덮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고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시는 시골집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철들 때까지 단 한 번도 시골집에 가질 않았습니다.
제가 다시 시골집을 찾은 것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제 발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스무 살이 되어서였습니다.
어디든 원하는 곳이면 제 발로 찾아다닐 수 있게 된 저는 그러나
제 잘난 줄로만 알고서
어머니를 떠나 쏘다녔습니다.
고지식하고 게으른 탓에 학교와 집밖에 모르고 살았지만,
긴긴 방학 내내 단 하루도 바깥 출입을 안하고 방구들을 지고 살았지만
마음은 어머니를 떠나 헤매다녔지요.
물론 그것은 제 탓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소소한 이야기들을 즐기거나 들어주시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오빠와 남동생, 무뚝뚝한 어머니 틈에서
어린 시절의 저는 꽤 외로움을 탔었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어머니 못지않게 무뚝뚝한 제가 어느날 용기를 내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들려드리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엄마, 있잖아, 오늘 학교에서......
얘기는 정말 거기서 단 한 마디도 더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제 얘기를 끊으셨던 겁니다.
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니?
그 일로 사실 저는 적지않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일 이후로 어머니와 대화를 해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왜 그때 어머니가 딸의 첫 마디부터 막아서셨는지,
그리고 왜 그 말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단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 일은 실제로 어머니와 제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방학 때도 하루를 나다니지 않던 저는
대학에 입학한 후 방학을 맞게 되자 단 하루를 집에 붙어있지 않고 학교로 나가버렸습니다.
직장생활을 1년도 채 못하고 스물 다섯에 결혼을 했는데
그 이유를 전적으로 저는 어머니 탓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섬세했던 아버지를 무뚝뚝한 분으로 만들었던 것도,
저를 외롭게 만들었던 것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던 무심한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저는 모든 걸 어머니 탓으로 돌렸었습니다.
그리고는 <제발로> 찾아갈 수 있는 시댁 후보지가 생기자마자
섭섭해마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외면하고 곧장 결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서른도 한참 넘긴 어느날
왜 그렇게 오래도록 시골집에 있는 저를 데리러오지 않았는지,
왜 제 이야기를 들어주려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집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30여 년 전 서울에서 충청도의 시골집을 가려면 아홉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촌에게 저를 데리고 오라고 분명히 부탁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저로 하여금 정상을 참작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아홉 시간을 힘들어했기 때문에
나는 90일을 힘들어했었는데.....
그리고 제 얘기를 끊었던 그 사소한 일은 물론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넌 별 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결혼을 한 후 어진이가 태어나고
어진이가 어렸을 적에는 대학병원 옆에서 사느라,
어진이가 좀 자라서는 까리따스 어린이집 옆으로 이사해 붙어사느라
저는 친정 가까이서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하신 후 이제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으시는 두 분이
제가 가르쳐드리는 지름길로 승용차를 가지고 와주시기를 그렇게 소망했건만
어머니는 굳이 걸어서 전철역까지 가셨고
굳이 전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셔서
굳이 딸을 멀리 사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집에 도착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어째 이렇게 늘 멀리 사니?
어진이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입가에 음식을 흘리거나 하면
저는 그것을 휴지나 수건으로 닦아내지 않고
얼른 달려들어
어미사자가 새끼를 씻기듯이 핧아주었습니다.
그걸 보곤 기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럼 전 그런 분들에게 씩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동물적 유대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래요.
어머니와의 동물적 유대기가 지나자
저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했을 뿐 아니라
어머니를 미워하고 무시했고 소외시켰습니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어머니의 허벅지, 어머니의 냄새,
어머니와의 동물적 일체감을 고스란히 되새기게 해 준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회한이 몰려왔습니다.
무엇이 어머니와 나를 갈라놓았을까.
내 아이를 낳기 전에는 다른 누구와도 공유한 적이 없는 일체감 속에 있었던 유일한 존재,
아니 실제로 하나였던 어머니와 딸을 이간질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다름아닌 저 자신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저는 지금까지의 제 삶을,
신앙생활을 시작한 이후조차 다 싸잡아 넣어
한 장의 그림을 찢듯이 찢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소위 <자아>는 것이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가장 못난 인간들이 그렇게 하듯이, 가장 작은 그릇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저는 잘나빠진 저를 담기 위해 어머니를 몰아냈던 것입니다.
어머니를 몰아낸 자가 다른 무엇인들 몰아내지 못했겠습니까.
잘난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저 자신이 상처받기 싫어서,
저는 남편도 제 마음 속에서 몰아냈습니다.
의도적인 무관심은 결국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
저는 너무나 쉽게 남편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제 안에는 저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질 않았습니다.
결코 용서하고 싶지도, 사랑하고 싶지도 않은 <자신>이
용서받고 사랑받으며 성체를 모시고 앉아 있었습니다.
성체를 모신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월례회에서 아무런 사전 언지도 없이 묵상실의 운영자로 지목되었을 때
저는 제가 <조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닌지 겁이 덜컥 났더랬습니다.
나는 조폭이 아니니까
조용히 찾아가서, 예절바르게 거절해야지,
그러나 혼자서 애쓰시는 요셉 형제님을 뵈자
차마 거절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데요.
결국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소심함이
소심한 제게 어울리지 않는 이 일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되었지요.
재미있는 일이지요.
처음에 저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 그 이후로도 힘들었던 것은
저 자신이 노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을 올리고 나면
삼사일은 챙피해서 끙끙 앓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출증을 앓고 있는 세대에, 아니 즐기고 있는 세대에서
이깟 노출에 무슨 <선정>이 드러날 수 있겠는가.
물론 자포자기란 <나쁜짓>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제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리베 자매님 말씀처럼
계속 쪽팔리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제가 힘들었던 진짜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노출 때문이 아니라
노출되는 나 자신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버리기 싫고 다치기 싫고 판단받기 싫은 자신이
여러 사람 앞에 노출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위험하고 손해나는 일이었으니까요.
누가 시비를 걸어올지, 자신들 마음대로 나를 판단할지
알 게 뭐겠습니까.
여러분께 평화를 말했던 것,
그게 다 사기였습니다.
맨 앞에서 읽으신 재미없는 이야기는
어머니의 영전에 바치기 위해
그동안 끄적거려 놓았던 글들을 정리한 것 중 일부입니다.
글이란 어차피 독자를 전제로 씌어지는 것인데
적국에 무전을 치는 스파이처럼
왜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소리죽여 자판을 두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단한 뭔가로 잘 만들어서 <짠>하고 보여 주려던 허영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사기쳤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주님을 불편하고 좁은 구석자리에 몰아놓고 제가 떠들었던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저는 노출을 감행합니다.
노출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품위와 격조에 어긋난다는 신념을 버립니다.
정승판서의 후예로 태어나 불렀던 노래가 결국은 각설이 타령인데
정승판서의 자제도 아닌 제가,
남편을 몰아낸 제가,
어머니를 몰아낸 제가,
구약시대였다면 사형받을 죄를 저지른 제가
감출 게 뭐가 있어서, 지킬 게 뭐가 있어서
이제까지 그렇게 불안해 했던 것일까요.
제 안에 평화가 없었던 것,
그것은 너무나 당연히 주님을 제 가운데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평화이신 그분이, 평화를 주신 그분이 제 가운데 있었다면
당연히 저는 평화로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주님을 우리 가운데로 모시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이유,
나를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버리고 싶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아니면 그토록이나 사랑하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어떤 인간인지조차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혐오덩어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인지를 똑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끔찍한 괴물, 혐오덩어리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저는 주님이 창조하신 자신을 도무지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제게 죄가 됩니다.
지난 주 내내 저는 저의 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긴 고백을 합니다.
이제는 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께 용서를 구하기는 너무나 늦었기 때문에
아직 제 곁에 있는 남편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단 한 마디,
일부러 당신한테 무심했던 거 미안해요.
모든 <현실적인> 기대를 다 버린 저이지만
아직 <환상>을 버리지는 못한 저는
남편이 모든 것을 이해했으리라고,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환상에 젖어봅니다.
묵상실에 처음 글을 올리면서 제가 소망했던 것,
그것은 감동을 드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훈같은 것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저는 <실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게다가 신앙을 가졌다고 선언한 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하게 해드리는 것,
그것이 감동이나 교훈같은 것들과 정 반대되는 것일지라도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
그것이 제 소망이었습니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글을 올리며 <뜻하는 바>,
실감을 드리고 싶지만
언제나 그 뜻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압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노출이,
제가 느끼는 자신에 대한 구역질이
뜻하지 않게라도 여러분께 실감나는 이야기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저를 직접 만나실 때
정말 구역질나는 인간이라는 눈으로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그 눈빛에 이제는 주눅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역시 구역질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구역질나는 인간들입니다.
주님은 우아하고 고상한 저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역질로 쏟아진 그 냄새나는 토사물 위로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남의 집에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저는 주님의 손에 들린 선물이 무엇인지 압니다.
이 예의바른 손님의 손에 들린 선물,
그것은 저와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던,
바로 그 <평화>입니다.
|
첫댓글 자매님의 진솔함에 敬意를 표합니다.누구나 자기의 恥部를 감추려고 하는데 자매님은 恥部라면 恥部고 아니라면 아닌 그러한 내면의 모습을 묵상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철의 장막에 감춰 놓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자매님! 우리 몸속에는 두개의 自我가 있데요. 하나는 참 自我, 또 하나는 거짓 自我래요. 우리는 두개의 自我중에 거짓 自我에 휘둘려서 산데요. 끔직한 괴물, 혐오덩어리를 발견하셨으니 그 속에 감추어진 참 自我는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매님! 영적으로 부~자되세요. 남으면 저에게도 쬐끔만....^*^
klaraaa에 솔직하고 담백한 글은 아마도 주님이 특별히 주신 달란트가 아닐런지......... 늘 에너지를 얻고가는디 고맙다는 인사하나 제대로 하질 못했네... 담에 션한 보리음료 한잔 쏘면 되겠지!!111
klaraaa!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 곳에 상처나 어두움을 갖고 있지요. 그 어두움을 빛이 투과 하지 못하게 꽁꽁 싸매고 있으면 고인 물이 썩듯이 치유할 수 없는 병으로 남지만 끌어 내 놓을때 빛을 받아서 어두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내좋을때 성령의 선물을 받은 것이예요. 용기의 선물
참자아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아녜스자매님, 엘리자매님, 용기의 선물은 성령께서 뿐만 아니라 두 분 자매님께도 받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잠시간 들러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모이세 형제님, 성무일도 대신 해드린 거 고마워하지 마세요. 아직은 우리 모두에게 성무일도가 기도가 아니라 의무같네요.ㅎㅎㅎ
살다보니 ..침묵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말없는 그에게서 무덤같은 무관심만을 엿볼 수 있을 뿐이지요..그의 눈속에 있는 나를 보세요...사랑과 연민과 이해의 모습으로..그를 향한 나를 보는 만큼 그도 나를 똑같은 빛으로 비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것이지요..글라라의 깨달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깨달음으로 인해 평화를 얻었음을 ......부럽습니다...ㅎㅎㅎ
우아우아 글라라 난 계속 쪽팔려도 좋으니까 이런글을 이렇게 가슴이 알~싸 하게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 근데 난 글라라의 그 구역질인가 뭔가 하는 그 얼굴에서 그말에서 난 계속 평화를 느끼는데 이거 어쩌냐 고백하나 하는데 너만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거 있지 뭔가 반항하는거같으면서도 합류해보려는 그참된 노력11
리베 언니,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제게서 평화를 보았다면, 지금 칵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요. 주님이 잠시 다녀가셨나봐요. 언제나 들락날락 하시니까,ㅎㅎㅎ.그리고 언니에겐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으론 부족해서 가게까지 열게 한 그 손맛이 있잖아요.
소심한 글라라, 맞춤법 틀린 것, 내용 고칠 것 있으면 자정이 되길 기다렸다가 3분 전 쯤 수정을 했었죠.<new>라는 글자보고 남들이 새삼 다시 들여다볼까 부끄러워서요. 소심한데다가 완전 바보라고 생각해요. 용감하게 좀 고쳤습니다. 혹시라도 남편이 볼까봐서...
여린 모습속에 감춰진 투사같은 강인함이 어디서왔는지 궁금했는데.... 내가 있어서 언제나 힘들지요. 나를 버리고 나면 참 쉬운데, 내게도 그게 늘 힘들답니다. 열어보이기 힘든 많은 것들을 늘 나누는 일이 쉽지 않은데, 정말 아름답고 고마워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제 삶의 화두였어요. 투사.., 저한텐 친근한 단어이자 싫어하는 단어인데, 잘 읽어내셨네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그 기질이 싫었지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던 엄마가 주위에 적을 만들던 것을 본 저는 누구와도 싸우거나 경쟁하려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제 자신과 싸우는 습성이 생겼죠. 그게
의지력을 키우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어진이 때문에 남보다 고달프다면 많이 고달팠던 생활, 그걸 웃으며 버텨나갈 수 있었던 건 생각해보면 그렇게 싫어하던 어머니의 유산 덕이었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도 그걸 알았었는데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질 않았어요. 언젠가 꼭 어머니께 그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렇더군요. 늘.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후회하는 순간이 꼭 오더라구요. 아마도 아시지 않았을까요?
무더운 여름날 주취에서 깨어나 습관 처럼 들려 처음 이 글을 봅니다 . 단원들이 그리고 저 또한 글라라의 글에 감동해왔지만 ... 아마츄어 연극 연출을 마감하면서 나이먹고 그때 단원들 다시 모여 대학로에서 연극 한편 올리자며 학교를 졸업 했습니다. 나에게 그때의 정열이 되새김 되는 날 저는 이 단편을 떠올리리다
사도 요한 형제님, 단편 아니고 장편인디요. 누구에게나 상처와 흉터가 있듯이 꿈을 품어보지 않았던 가슴도 없겠지요. 꿈이 좌절된 사람은 냉소적으로 변하기 쉬운데, 형제님께서 늘 열정적이고 유쾌하셨던 것, 아직도 가슴에 꿈을 품고 계셔서였군요. 연극표 초대권 말고 꼭 돈내고 사서 보러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