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중국여행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기자여우위에
난뤄구샹(왼쪽 위, 가운데), 허우진시(왼쪽 아래), 먼당후두이(오른쪽)
또 다른 먼당후두이를 보여 주겠다고 한다. 따라 간 곳은 바로 허우씨의 집이었다. 먼당은 아래에 있는 돌로서 마치 북처럼 생긴 석고(石鼓)이고 후두이는 문틀에 대는 나무다. 특히 후두이는 원형이면 문관을 나타내고 방형이면 무관을 나타내며 크기와 개수에 따라 품계를 나타낸다. 1품에서 5품 벼슬은 6개, 6품과 7품 벼슬은 4개이며 나머지는 2개다.
허우씨 집 문은 아까 본 문과 먼당후두이의 문양이 달랐다. 바로 무관과 문관 벼슬을 한 사람의 차이라고 하는데 허우씨 집은 문관이 살던 집이며 8품 이하 벼슬을 하던 사람이 살던 집인 것이다.
이번에는 전통가옥인 쓰허위엔이 어떤 구조로 된 것인지 또 묻는다. 대문으로 들어가 3면 모두가 방이고 사각형 구조가 아니냐고 했더니 힐끗 쳐다보며 웃는다. 아니라는 뜻인데 중국문화 좀 안다고 우쭐한 것이 창피했다. 그러고 보니 말로만 하고 쓰허위엔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오른쪽 왼쪽 왔다 갔다 하며 좁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갔다. 하나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독립적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한옥처럼 삼면이 방이고 장방형으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한가운데에도 집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방을 러우팡(樓房)이라 하고 각 방위 별로 둥팡(東房), 시팡(西房), 난팡(南房), 베이팡(北房)으로 부릅니다. 방향마다 집값도 다르다.
허우씨 집은 서쪽 방향을 보고 있는 시팡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지 않은 공간에 2칸 방과 거실, 부엌이 있다. 강아지가 마구 짖는데 귀염둥이란 뜻으로 과이과이(乖乖)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아들은 집에 없었는데 아들 친구, 여자 친구가 있다. 아마도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며느리일 듯싶다.
허우씨는 개혁개방 이후 사회의 발전이 이뤄졌지만 이곳에는 아직 일반 서민들의 '펑마오(風貌)'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갈수록 이런 서민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으니 허우씨 집에 초대된 것이 자주 생길 일은 아니다.
허우씨는 비둘기 날리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옥상에 비둘기를 키운다. 베이징 사람 특유의 얼화를 섞어 '허핑더걸(和平的鴿兒)' 보러 가자며 방긋 웃는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쓰허위엔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명청 시대에는 부자 마을로 고관대작들이 살았으며 청나라 말기에는 북양군벌의 터전이었으며 국민당 총재이던 장제스도 살았던 곳이다. 허우씨 말처럼 베이징이 발달하면서 신흥부자들은 도시 중심에서 벗어나 아파트나 별장에서 살고 이제는 일반 서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 전통의 향기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10) 무료사우나 호수에 노을이 지다
베이징 구궁(故宮) 서쪽 편에는 호수가 있다. 아래쪽부터 난하이(南海), 중하이(中海), 베이하이(北海)가 있고 도로를 건너 쳰하이(前海)와 허우하이(後海), 그리고 가장 북쪽에 시하이(西海)가 있다.
허우하이로 가는 길에 옌다이세제(煙袋斜街)가 있다. 세제는 경사진 길이고 옌다이는 담뱃대이니 원래 무슨 동네였던지 짐작이 간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유럽풍 음식점도 많고 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많다.
이 길거리에는 시장바닥처럼 토속적인 먹거리와 민속 공연 등 볼거리가 많다. 하늘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종이우산으로 살포시 햇살을 가린 아가씨들이 거리에 나타났다.
그냥 친구들이랑 놀러 나온 것뿐이라는데 놀러 나온 모습치고는 꽤 꽃 단장이다. 더운 날씨에 기나긴 옷을 걸쳤는데도 얇디 얇아 바람은 잘 통하지 싶다.
옌다이세제를 빠져 나와서 조금 가면 인딩챠오(銀錠橋)가 나온다. 이 다리 아래 물 위로 배가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하천 다리와 비슷하다. 쳰하이와 허우하이를 가르는 다리다. 다리 아래로 물이 흐르니 끊어진 것은 아니고 두 호수는 하나인 셈이다.
첸하이 호반 길에는 고급식당이 줄지어 있고 야외 탁자가 놓여 있다. 자리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니 맑고 평화롭다. 연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배를 타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간혹 헤엄 치는 사람도 보인다.
거리를 마냥 여유롭게 걷기에도 좋다. 이곳은 밤이 되면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붐빈다. 호수를 바라보며 연인들이나 회사동료들과 회식도 하는데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밤거리로 유명하다.
다시 쳰하이를 거쳐 허우하이 호반을 따라 산책을 했다. 호수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배가 쏜 살처럼 지나가고 버드나무 흐드러지고 바람까지 물 향기를 담아오는 듯 호반의 낭만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도 있고 삼륜차가 유혹도 한다.
호반 놀이터에서 농구도 하고 탁구도 치는 모습이 정겹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웃통을 벗었다. 아예 호수 속으로 들어가 수영하는 사람들도 많다. 푹푹 찌는 베이징 여름에 웃통 입고 있는 게 미덕이라고 아무리 소리쳐 본들 소용없다.
허우하이 야경(왼쪽), 옌다이세제(오른쪽 위), '무료 사우나'(오른쪽 가운데), 시하이(오른쪽 아래)
언젠가 물 한 병을 사면서 ‘정말 덥다’고 했더니 가게 주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몐페이더쌍나(免費的桑那)’라는 말 듣고 한참 웃었다. ‘공짜 사우나’라는 말이니 정말 베이징 여름을 이처럼 더 멋지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호수에서 수영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경찰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또 어쩌면 중국이라 할 수 있다.
허우하이 호반을 돌아 건너편으로 갔다. 어느덧 서편 하늘로 불그스레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호수에 떠 다니는 놀잇배에도 어스름이 일기 시작한다.
호수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데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에 물오리들이 바글바글하다. 길에서 던져주는 모이를 먹으려고 바삐 날개 짓을 하고 물밑에서 다리를 총총거리며 다가오는 오리들이 귀엽다. 긴 목과 동그란 머리, 주둥이가 모두 수면에 비친 모습이 마치 문고리와 비슷하다.
물풀이 자란 곳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물풀들이 물결 따라 조금씩 살짝 움직이고 있다. 호수 속을 보고 있는데 작고 둥근 원 하나가 비쳐서 하늘을 쳐다보니 둥근 달이 떠올랐다. 달의 자태가 물줄기를 따라 하얗게 호수를 달구고 있다.
밤이 되자 거리는 조명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허우하이 서쪽 길을 들어서니 육각 가로등이 호수를 따라 밝게 빛나고 있다. 가로등 밑으로 낭만적인 가로수 길을 따라 사람들 모두 하늘 높이 솟은 둥근 달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
길을 따라 술집들이 조명을 밝히고 바깥으로 테이블을 내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집 홍디(紅邸)는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조명 간판을 만들어 오가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하철을 타려고 시하이로 가는데 길 한복판에 특이한 조명이 반사되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고 있으며 자전거와 차량도 지나친다. 맞은 편 술집에서 빛을 쏘아 만든 가게 이름이었다. 호객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이겠지만 아주 독특한 발상이다.
시하이는 다른 호수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고 한적하다. 사람들이 호반에 일렬로 늘어앉아 낚시를 하고 있다. 한밤에 즐기는 오락이고 소일거리일 듯싶습니다. 건너편 구러우(鼓樓)에서 비친 조명이 호수에 잠겨 있다.
올림픽 노래인 베이징환잉닌(北京歡迎您) 뮤직비디오를 보면 베이징에 있는 명소가 총 출동하고 가수들도 대거 참여했다. 우리나라 가수 장나라도 참여했는데 바로 구러우에 올라서 노래를 부른다.
베이징에 가면 가끔 허우하이를 둘러보는데 갈 때마다 새롭다. 호수가 있기도 하고 관광객들도 많지만 서민들의 놀이터이자 쉼터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종일 돌아다니느라 다리가 아프지만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11) 매미 원숭이와 뽀뽀하는 조롱박, 춤 추는 마스코트
베이징 톈탄 공원 부근 광밍루(光明路)에 징청바이궁팡(京城百工坊)이라는 민속공예백화점이 있다. 민간예술가나 공예가들이 가게를 열어 작품들을 파는 곳dl다. 공예품을 직접 제작하는 곳이 있어서 재미가 쏠쏠하다.
빨간 문 위에 조롱박 하나가 대롱대롱 걸려 있다. 조롱박을 이용한 공예인데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 넣는 뤄화(烙畫)인 탕후루(燙葫蘆)입니다. 쉬칭(續清) 아주머니는 조롱박에 뜨거운 인두질을 보여주느라 땀을 뻘뻘 흘린다. 한국 사람들에게 공예기술을 보여주려는 마음이 정다운 이웃집 아주머니 같다.
작은 공간의 가게에 뽀뽀하는 모습, 담배 피는 모습, 꽃병처럼 오목하고 볼록한 모양새를 절묘하게 이용한 모습, 마오쩌둥 등 유명 인물들 얼굴까지 즐비하다.
종이오리기 공예인 졘즈(剪紙)도 있고 병 안쪽에 그림을 그리는 비옌후(鼻煙壺)도 있다. 매듭인 중궈제(中國結), 얼굴만 만들어 작대기에 꽂는 점토공예인 샤오몐런(小面人), 작대기 없이 만드는 토우인 니런(泥人), 동물 털로 뜬 자수인 마오슈(毛繡) 등 다양한 공예와 만날 수 있다.
두루 둘러보다가 아주 독특한 공예와 만났다. 매미의 허물로 만든 마오허우(毛猴)는 청나라 말기 남경인당(南慶仁堂)이라는 약방에서 처음 만들었다. 중의(中醫)의 약재로 쓰던 것으로 동물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털 난 원숭이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팔다리와 머리는 주로 허물을 벗은 매미(蟬蛻)를 이용하고 몸체는 가을에 피는 자목련(辛夷) 꽃 봉우리, 표면은 동물이나 식물의 솜털(絨毛)을 사용해 만든다. 아주머니 두 분이 껍질을 벗고 변태를 한 매미를 꺼내 보여 준다.
유리병 속에 들어선 매미 공예품들을 하나하나 보니 참 신기한 것이 많다. 전통생활을 표현하는 것이 많은데 혼례 장면도 있고 생일잔치 장면이나 가마 끄는 장면, 길거리 먹거리를 먹는 장면, 가무를 즐기는 장면도 흥미롭다. 탁구, 철봉, 역도하는 장면도 신기하다. 원숭이가 된 매미가 볼수록 정겨운 캐릭터로 살아 있는 듯하다.
바이궁팡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면 전통공예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 탕후루와 마오허우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재미난 공예인 쭝런(鬃人)를 알게 됐다. 인터넷을 뒤져서 쭝런 보유자의 주소를 찾았다. 스차하이(什刹海) 근처 둥관팡(東官坊) 후퉁으로 달려갔다. 무턱대고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공예대사 칭호에 어울리는 바이다청(白大成)선생은 물 한 잔을 내어 주며 반갑게 맞아 준다.
탕후루(왼쪽 위), 마오허우(왼쪽 가운데), 쭝런 올림픽마스코트(왼쪽 아래), 바이다청 선생(오른쪽)
쭝런의 복장은 대부분 경극의 그것과 비슷하다며 먼저 말문을 연다. 쭝런은 점토로 머리와 받침대를 만들고 수숫대나 참깨대로 몸통을 만든 후 종이나 비단으로 옷을 입혀 만드는 것이다.
거실이자 작업실에는 경극박물관을 방불하듯 사방에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백사전의 주인공들이 전시돼 있다. 유비, 관우, 장비는 금방 알아봤는데 그 사이에 연한 분홍색 옷을 입고 선 장수가 낯설어 보인다. 할아버지가 ‘뤼부’라고 하는데 한참 생각해 보니 여포였다. 조조도 있는지 물으니 위쪽 구석에 있다고 한다.
서유기의 손오공을 쟁반 위에 올리고 나무작대기로 쟁반을 두드리니 빙빙 돌기 시작한다. 두드리는 소리는 경극에서 전통 악기 반주 소리와 비슷하다. 나무 작대기를 들고 두드려 봤다. 정말 신기하게도 손오공이 몸을 곧추세운 채 돌아가는 것이 참 말을 잘 듣는다. 쟁반에서 춤을 춘다는 뜻으로 쓴 반중희(盤中戱) 붓글씨가 벽에 걸려 있다.
쭝런이 언제부터 민간에서 생겼는지 물었다. 청나라 말기에 와서 지금의 민간예술이 대부분 시작된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경극이 건륭제 시대 생겼는데 왜 청나라 말기에 생겼냐고 묻자 경극도 건륭제 때에 역사에 나타나긴 했지만 도광제 시대에 이르러 비로서 본격적인 경극이 나타났다고 한다.
바이선생은 1939년 생으로 만주족이다. 민간예술은 대체로 가전되는데 젊은 시절 병을 앓게 되면서 자신의 취미인 그림과 서예를 즐기다가 우연히 배우게 된 것이다. 쭝런은 2007년 6월, 베이징 시의 무형(非物質) 문화 유산으로 지정됐고 바이 선생만이 유일한 쭝런 보유자다.
쭝런은 다른 민간예술가와 달리 외부에 작업실이나 예술품을 파는 가게가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생계를 위해 문화거리마다 가게를 두는데 비해 특별한 주문이 있을 경우를 빼고는 상품처럼 만들지 않는다.
경극 인물들 사이로 올림픽 마스코트인 푸와(福娃)가 있다. 중국 매체가 기획해 만들었는데 2마리는 언론매체가 빌려갔고 3마리가 나란히 서 있다. 베이베이, 잉잉, 니니가 뱅그르르 돌고 고개도 살랑살랑 흔들며 펼치는 공연은 앙증맞고 단조롭다. 그렇지만 단순해 보이는 이 율동이야말로 치열하게 예술혼을 담은 선생의 보물일 것이다.
참으로 달콤한 중국 민간예술을 맛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1시간 30여분 동안 칠순의 예술가와 독대를 하면서 우리네 할아버지로부터 옛 이야기를 듣는 듯 포근했다. 문밖까지 배웅하며 그윽한 눈매로 손을 잡아 주는 마음도 잊어지지 않는다.
어디에 묵느냐 묻고 골목을 빠져 나가는 길까지 알려 주는 배려에 너무나 감사했다. 무턱대고 연락 없이 찾아가느라 선물도 마련하지 못했는지라 다음에 꼭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최종명(중국문화전문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