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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
가족 화소수필의 유형
유한근
발표되고 있는 작가의 많은 수필 중 일상사에서 가족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수필들이 적지 않다. 작가들이 일상적인 삶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 그리고 그 일들이 정서적으로 강한 충격이나 전율을 줄 수 있는 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필은 일상적인 경험의 문학이라는 창작문법(?)을 실현하기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족을 모티프로 한 수필의 문제점은 문학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과 삶의 본체와 본질을 드러내는 데 저해요소인 가족 자랑, 행복자랑 일변도의 일상성 때문에 문학성 결여의 혐의를 의심받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은 가족 모티프 수필은 회피한다.
그런데 가족을 모티프로 한 수필만큼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글감도 없지 않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공감의 화소는 가족 이야기이다. 이에 따라 이달에 발표된 가족 화소 수필을 살펴보려 한다. 수록된 순서로 보면, 서정의 <늦어버린 안녕>, 신서영의 <바람은 멈추지 않고>, 장미숙의 <바람이 불었다>, 장혜경의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딸에게>, 장길성의 <어머니의 가계부>, 이동실의 <아름다운 효〉, 윤종석의 <어버이날의 단상> 등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가족 수필의 창작 유형을 살펴보려 한다. 이 유형 탐색은 이달에 발표된 작품에 한함을 전제하면서.
구어체 수필인 서정의 수필 <늦어버린 안녕>부터 먼저 읽자. 이 수필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마 여름방학이었지. 그러구러 마흔해를 더 먹어온 거네. 그런데도 어쩌다가 희미하게 그때 생각이 나./아버지는 살던 고향을 떠나 내가 태어난 곳으로 왔다고 해. 어떻게 타향살이가 되었는지 누군가 내게 말을 해주면 좋을까 아닐까. 아버지는 잘 일구며 살고 싶어서 억척스레 일을 했다고 하더라. 일을 만들기도 했나 봐. 당근, 우엉을 키우다가 성에 안 찼는지 삼 재배를 하다가는 잎담배 농사를 시작했어. 담뱃굴을 짓기 위해 늙은 감나무를 베어내고, 변소도 옮겨서 지었지. 조합에서 빚을 얻어 와 신문지에 둘둘 마는 것도 본 듯해."라고 시작한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삼과 잎담배 농사로 뿌리를 내리려 했던 아버지의 힘든 삶의 이야기를 10세의 작가의 눈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돌아가신 여름 한낮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머리와 몸과 옷에는 담뱃진이 타서 진득진득했어. 여름 한낮이라 상쾌하지 않은 끈끈이였지./ 엄마가 수소문하여 처방을 받아왔어. 그게 잠시 이웃 마을로 가서 사는 거였어. 한 마을 뜬 곳으로 가게 되었지. 담뱃잎 말고도 자잘한 농사가 있어서 엄마와 큰동생은 해가 떨어져야 돌아왔어. 그 틈은 내가 아버지를 지키는 셈이었지. 그때 아버지는 나더러 배 위에 올라가서 밟으라고 했어. 열 살 먹은 나는 무서웠지. 이불에서는 약 냄새가 났어. 어떤 땐 방망이를 가져와서 때리라고도 했어. 이제 보면 통증이 와서 그렇게 하면 무마될까 그러지 않았을까싶어 한날, 이튿날 부산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자고 엄마와 약속을 했는데……… 그만 아버지는 새벽을 가르고 말았어."라고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상여가 들어왔어. 여섯 살 막냇동생은 "저게 뭐냐?"고 엄마에게 물으며 자지러졌지. 그때 나는 상여는 보기만 해도 두려웠지만, 눈물이 별로 나지 않았어."라고 어른스럽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 이르러 작가는 상여꾼 소리를 인용하고, “산에 도착해서는 예식을 하다가 큰동생에게 흙을 세 번 뿌리라고 하더라. 아홉 살짜리 무른 손이 덮어주는 부드러운 흙이 관 위에 목화솜으로 내려앉았어. 아버지가 타고 온 상여는 다 사그라지지 않아 숯이 되다만 그대로 두고 나는 사람들을 따라 산을 내려왔지."라고 아버지를 저세상으로 보내드리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표현한다..
이렇듯 부친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말하기와 보여주기를 섞어 객관적으로 전언하는 수필을 본 적이 없다. 구어체 문장의 경우에는 격정적인 말하기가 십상인데도 불구하고 감각적이며 차분히 전언하는 문체가 더욱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런 맥락에서 아버지와 언니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최운숙의 <민어>는 민어 철의 민어가 수필창작의 계기가 된다. 한 낯선 남자와 언니 부부와 목포 민어 골목 횟집에 앉아 민어회를 감각적으로 먹는다. 그러면서 그 낯선 남자의 정체와 언니를 떠올린다. "한 점 집어 든 민어살점이 기름장으로 미끄덩 눕는 순간 오래전 그 남자가 떠오른다. 갓난아이를 강보에 싸안고 왔던 건장한 체격에 까맣게 그은 얼굴의 남자와 스물셋에 숨을 거둔 언니를 떠올린다.
나보다 열한 살이나 위인 언니는 스무 살에 섬을 떠났다. 아홉살 아이에게는 어른으로 보였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살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덩치만 큰 아이 아니던가. 그 나이에 홀로 육지라는 망망대로 나간 언니는 어떻게 살았을까. 살금살금 뺄을 기는 짱뚱어를 보다가 불현듯 언니를 떠올린 적 있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곧바로 후회했다. 앞으로 언니를 생각할 때면 지느러미를 접고 낮게 웅크린 모습 대신 햇살을 받으며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민어를 생각하기로 했다. 그 뒤로 가끔 언니가 보내 준 선물 꾸러미를 열면 민어의 은빛 비늘들이 쏟아져 나왔다. 섬에선 구할 수 없는 그림책과 레이스가 달린 치마를 고르며 언니도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부산에서 전보 한 통이 왔다. 아버지는 아득한 수평선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넘어갔다가 가방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언니가 쓰던 물건 몇 가지와 일기장, 그리고 갓난아이의 배냇저고리가 들어 있었다. 꿈을 찾아 뭍으로 간 자식의 차가운 손, 가슴에 품고 비벼도 돌아오지 않는 온기. 아버지는 언니를 섬으로 돌아오는 바다에 보내고 왔다. 아이를 낳고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한 채 언니는 숨을 거둔 것이다. 그때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 최운의 <민어> 중에서
위의 인용문은 섬을 떠난 언니에 대한 그리움의 표상을 민어로 인식한다는 이야기와 스물셋에 이 세상을 떠난 언니의 유골을 언니가 돌아오는 바닷길에 뿌리고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 언니와 마음의 이별을 떼어놓았던 둘째 언니의 이야기.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언니의 죽음을 민어의 부레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 주목된다. "언니가 아이를 낳다가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랫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의 부레를 부풀게 하고 터지게 했을까. 왜 아무도 그녀의 숨통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나는 나를 벌해야 했다. 민어를 떠올리며 언니를 생각했던 것을 후회했다. 은빛 비늘로 유영하며 물살을 가르는 민어처럼 도시를 활보하는 언니를 상상했던 것을 살던 곳을 떠나 물 밖으로 나오면 금세 숨통이 부풀어버리고 마는 민어 곁에 언니를 끌어다 둔 것을 후회했다. 한때 앞에 앉은 남자를 원망도 하며 가여운 언니를 오래 그리워했다."가 그것이다. 언니의 죽음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형상화의 도구가 '민어'라는 점이 이 수필을 주목하게 한다.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오는 것으로 오랜동안 지속적으로 표상됐던 민어를 언니 죽음의 표상으로 창조해 놓은 작가의 솜씨에 경의를 표한다.
신서영의 <바람은 멈추지 않고도 특별하게 주목받는 수필이다. 이 수필의 서두는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설치예술품 묘사부터 시작된다. "코끼리가 수레를 끌고 간다. 뜻밖이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TV와 나팔이 달린 축음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생경하면서도 정겹다. 브라운관에선 제각각 낯설지 않은 영상들이 방영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고조된 분위기를 돋운다. 코끼리 등에 앉은 돌부처가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어디 먼 길을 떠나는지 아디다스 로고가 찍힌 양산까지 쓰고 묵언수행중이다."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키워드는 백남준과 묵언수행이다. 전자는 아들 이야기를 하기 위한 포석이고, 후자는 불교 108번뇌
와 윤회를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백남준과 아들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연결된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 배경이 좋은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면 신문물을 접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고, 때맞춰 훌륭한 스승을 만나 전위예술의 토대를 마련했을 것이다. 누구든 성공의 밑바탕에는 어떤 행동을 하든지 자식을 지지하고 믿고 기다려준 부모가 있었기에 세계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예술가들은 부모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 아들 녀석도 어릴 때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 궁금한 것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저지레는 끝도 없었고, "왜, 왜, 왜,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내 대답은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대화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끝을 맺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책상 서랍에는 조립하다 그만둔 로봇이나 장난감이 수두룩하게 쌓여있었고, 그이가 일본 출장에서 사 온 팬히터에 수평을 유지하는 추가 없어졌을 때도 아이를 닦달하고 혼내기만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버님이 정성을 쏟아 화분에 키운 딸기가 발갛게 익어 탐스러울 때였다. 냉장고에 딸기를 한 바구니 사놓고 따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느 날, 딸기 끝에 개미가 까맣게 붙어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딸기가 줄기에 달린 채로 반쯤 베어 먹었던 것이다. 그때도 어린 아들의 맘을 읽을 줄 몰랐다. 그 맛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미술계에 큰 업적을 남긴 그를 보면서 새삼 떠오르는 애틋한 기억이다.
- - 신서영의 <바람은 멈추지 않고>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아들의 호기심과 딸기 이야기, 그 이상을 하지는 않지만 불교 이야기를 통해서 자식에 대한 모성을 토로한다.
“이 불상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도 저마다 다를 터이다. 가장 한국적이고 순수한 어떤 모성을 보는 듯해 가슴이 먹먹했다. 어쩌면 화면 속의 부처가 작가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와 <TV 부처>라고 하는 주제도 참신하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묘한 감정과 묵직한 울림을 주어 쉽게 자리를 뜨지도 못했다."라는 토로가 그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불교에 대한 이야기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동안 백팔배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새벽 불교방송에서 낭랑하게 흐르는 백팔참회문을 들으며 오체투지의 자세로 리듬을 맞췄다. 하지만 원망과 미운 감정들과 잡념들이 들어차는 바람에 참회문은 들리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변명 같지만, 번뇌는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내 마음속 바닥짐 같은 거였다고나 할까. ・・・ 그는 비디오 아트 창시자이기 이전에 음악과 철학, 과학, 전위예술을 전공했으며 깊이로 상상력과 영감을 얻고, 이와 소통하면서 그만의 시각화된 예술을 선보였던 것이리라. 미래를 미리 보았고 미래에서 온 사람 백남준!! 그는 한 시대를 예언하고 앞서간 진정한 예술가였다. (…) 순간, 전시장 입구의 설치작품에 다시 눈길이 간다. 수레를 끄는 코끼리 잔등에 부처님은 사라지고 청년 백남준이 얼핏 보이는 듯하다. 이 세찬 바람이 부는 날, 그는 수레를 끌고 어디를 가시려나”로 번뇌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 백남준의 설치미술품에서 "수레를 끄는 코끼리 잔등에 부처님을 떠올리는 작가의 마음이 이 수필을 하나의 가족 이야기 수필이 아닌 좀더 문학적으로 형상화 작품으로 올려놓는다.
장미숙의 수필 <바람이 불었다>는 다분히 감성적이다. 그것은 아마도그(남편)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서정 때문일 것이다. "서서히 바람이 일어났다.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가지들이 몰려왔다 몰려갔다. 도드라진 가지 하나가 창문 쪽을 향해 있었다. 끝에 타원형의 이파리가 달렸는데 다른 잎과 달랐다. 유독 크고 무늬가 선명했다. 아직 초록에 이르지 못한 연둣빛이었다. 잎맥이 빗금처럼 새겨진 게 또렷했다. 잎자루 끝에 매달려서 대롱거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흔들리는 이파리를 가까이 보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서두 부분)가 그것이다.
그리고 정작 아들 이야기를 시작한 부분은 "아들이 내게 결혼 의사를 밝힌 게 며칠 전이었다. 그동안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해 보였다. 아들의 상대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내심기다리고 있었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더 마음이 달떴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게 뭐 그리 대수랴만 결국 내 마음은 한 사람에게로 가닿았다. "부터이다. 그러나 그 아들의 아버지인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수필에서의 '그는 아들의 생부이다. "그가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지 35년이 지났다.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싸하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체온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주검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을 이기지 못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육체였다. 영원히 감겨버린 눈, 다시는 숨이 나오지 않을 입, 세상의 냄새를 맡지 못할 코, 그의 얼굴은 돌덩이처럼 차가웠다. 따뜻했던 팔은 기능을 잃어버리고 뻣뻣했다. 숨을 놓아버린 지 하루가 지났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아들은 큰아버지에게 맡겨졌고 그 큰아버지를 아버지로 생각하고 크게 된다. 그런 아들은 반듯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했다.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신뢰가 담겨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나의 의사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모든 걸 그들에게 맡겼다. 두 사람의 선택을 믿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게 된다.
결혼 날짜를 말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전해주던 날, 종일 그를 생각했다. 짧은 기간을 함께했지만, 그는 내게 자신이 살지 못한 삶까지 맡기고 떠났다. 감당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혼미한 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눈을 뜨면 그의 모습을 찾아 헤매고 눈을 감으면 심연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일 년 동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누워지냈다. 눈자위는 시커멓게 변하고 볼은 꺼지고 피부는 거칠어졌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는 할머니 손에서 순수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다.
달동네 꼭대기에 있던 낡은 집, 바람이 문짝을 물어뜯고 허름한 담벼락에 부서지던 달빛을 기억한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이십여분 올라야 당도하던 가난한 동네였다. 바람에 겨우 버티던 집에서 아이는 할머니와 살았다. 아이를 보고 온 날은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한 사람은 점점 현실의 삶에서 멀어졌다.
-장미의 <바람이 불었다>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작가는 아들을 생각할 때 아들의 죽은 생부인 '그'를 떠올리고 혼절하게 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아들을 그곳을 떠올린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신열을 앓았다. 아들이 커갈수록 더했다. 그는 언제나 내게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 막 삶의 물이 오르기 시작하던 서른한 살, 연두에서 초록으로 가던 시기였다. 젊음이 가장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영원히 가지를 놓아 버렸다./늘 비슷한 꿈을 꾸곤 했다. 그의 형체가 아닌 전혀 다른 형상 속에서 그를 느끼는 것이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을 타던 나뭇잎도 그랬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 인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려 있던, 유독도드라진 잎이었다. 이젠 안심하라고 손이라도 흔들어 줄 걸, 깨고 난
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꿈은 지나고 나면 더 생생해진다. 한참동안 커다란 이파리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라는 결말의 감각적인 문장에서 그의 죽음을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표상하고, 그것을 "거실에 떨어진 잎을 주워 화분의 흙을 파고 묻는다. 그 사이 어둠이 걷히고 멀리 산등성이가 여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라고 마무리하면서 어쩌면 슬프고 애닯픈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표현하면서 죽음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장혜경의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딸에게>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딸에게 보내는 서간체 수필이다. 이 수필의 서두 부분은 서간체 수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쌍둥이조차 세대 차이가 난다는데 하물며 너와 나 사이 삼십 년의 간극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말이다. 나는 가끔 세대 차이라는 말을 곱씹는다."라는 서두 문장에서 보듯이 '너'라는 대명사를 쓰고 있지만 문체나 톤이 서간체는 아니다.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일 거야. 네가 살고 있는 그 지점을 이미지나왔지만, 내가 봤던 것과 네가 보는 것이 다른 것도 그 차이의 일부분일테고 살아온 경험으로 만들어진 안경 때문에 같은 길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라며 한 세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사회를 발을 디딘 딸을 걱정하는 마음부터 보여준다.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기분이에요."라는 푸념을 작가는 딸의 "얼굴에서 피로와 긴장을 먼저 찾곤 하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고 자신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과 자부심이 교차되기로 한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에요. 최소한 제 마음은 흡족했으면 해요."라는 말을 할 때는 "결과와 상관없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게 되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딸을 "더이상 어린아이로 바라볼 수 없음을 인식하다. 그리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그런 빛을 발견하고, 붙잡고, 다시 걸어 나가는 일이 아닐까. 나는 네가 그런 빛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로 말해 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딸에게 편지를 보낸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딸아.
그러니 너는 사랑하며 살아라. 어떤 자리에서든 따뜻한 눈빛으로 길을 열어주고,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점 하나를 발견하려 애쓰며, 무엇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가 흔들리고 제도가 불완전하다 해도 그 작은 사랑의 씨앗이 너를 지탱하고 세상을 바꾸어 나갈 것을 믿으렴.
이제 나는 멀리서 지켜보겠지만 너의 길 위에 그 사랑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힘든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너의 웃음이 네세대의 등불이 되고 네가 걸었던 길이 언젠가 또 다른 이의 길잡이가 되기를 네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래도 살아볼 만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그렇게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 이 세상 모든 사랑을 담아… 엄마가 - 장혜경의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딸에게> 결말 부분
위의 인용문처럼 작가는 이 수필의 결말 부분에서 딸에게 손편지를 쓰듯이 보낸다. 너 자신을 사랑하고, 그 작은 사랑으로 너를 지탱하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라고. 그리고 너의 웃음이 등불이 되고 등대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편지를 보낸다.
장길성의 어머니의 가계부>는 어머님의 기일에 아내와 기제사료의 일을 논의하다가 어머님의 애잔한 모습이 떠올리고 유품 중 "화장대에 딸린 문갑의 서랍의 깊숙한 안쪽에서 어머님이 쓰셨던 서너권의 가계부가 발견하고 그것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서술한다.
어머니의 그 가계부는 "자식들이 쓰다 남긴 공책에서 나머지 쓸 만한 용지를 모아 흑표지에 철끈으로 묶고, 용지의 앞뒷면에는 볼펜으로 줄을 그어 제일 윗줄에 날짜를 적는 난, 내용을 적는 난, 수입, 지출, 합계를 적는 난을 만드셨다. 가장 기초적인 수입, 지출만의 가계부였다. 그러나 그 가계부는 금전출납부만이 아닌 어머니의 일기장이었음 알게 된다.
어머니의 가계부는 수입과 지출의 기록을 남기시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계부의 몇 줄을 할애하여 어머니 당신과 부친의 이야기, 자식들의 이야기, 주위의 이야기들을 한두 줄로 짧게 기록하시기도 하였다. 어느 구간에서는 자식에게서 비롯된 우心을 눈물을 감추면서 적은 흔적이 역력한 기록도 엿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계부는 어머니의 일기장이기도 한 셈이다. 가계부가 노출되면 가족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 당신의 속마음은 절절하게 적어놓으시지 않은 것 같다.
서울 변두리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을 때, 우연한 기회에 통계국 직원이 주민의 생활에 관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가계부를 적고 계시면 이를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단순히 수입과 지출만을 적은 것이라 통계자료로서 소용은 없을 것이라 하셨는데, 통계국 직원은 가계부에서 일정한 기간의 수입과 지출의 항목을 자기들 나름으로 분류하여 자료로 활용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한 모양이었다. 통계국 직원은 어머니의 가계부를 검토하면서 한 달의 수입, 한 달의 주 · 부식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발췌하여 통계자료로 사용한다고 설득하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내키지는 않았으나 당신의 가계부가 국가의 통계자료 일부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에 가계부를 내어주셨다.
-장길성의 <어머니의 가계부>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작가 어머니의 가계부는 "어머니 당신과 부친의 이야기, 자식들의 이야기, 주위의 이야기들을 한두 줄로 짧게 기"한, 그리고 "자식에게서 비롯된 우환을 눈물을 감추면서 적은 흔적이 역력한 기록도 엿볼 수 있는 "어머니의 일기장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자료를 "국가의 통계자료 일부로 사용될 수 있는 자료로 내어주었다는 미담도 소중하지만 그 가계부를 자식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다. 작가는 이 수필의 결말 부분에서 이렇게 술회한다, "어머님을 잘 모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면서 찾아냈던 어머님의 가계부를 소각하기로 하고 미루어놓았다가 호기심에 몇 권의 가계부를 넘겨보았다. 어머님은 당신의 생애 모든 것을 가계부에 담았던 것 같다. 첫 권의 가계부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찾았다. "큰애 첫 월급 얼마, 금반지 서돈 아내는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끼고 계시던 이 서 돈짜리 금반지를 유품으로 수습했다. 중간의 가계부에서는 어머니의 눈물자국이 선명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셋째 죽어서 묻고 왔다"(결말 부분)에서 마지막 기록인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애통함이 묻어나고 있고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셋째 죽어서 묻고 왔다"이라는 단문이 큰 감동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한 가족의 생활이 기록된 가계부에 그 죽음이 명료하게 그려졌다는 점이 더욱 애통하게 한다.
노인 공경의 효심을 그린 수필은 이동실의 <아름다운 효〉와 윤종석의 <어버이날 단상>이다. 전자는 남해 여행에서 만난 마을 회관에서 만난 동네 어른들에게 효의 의미를 환기하게 되는 수필이고, 후자는 살아계실 때의 어버이날과 돌아가신 뒤의 어버이날의 그리움을 환기하는 수필이다. 효에 관한 모티프의 수필은 테마가 분명한 만큼 그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노정된다. 테마는 특정되어 있지만, 테마에 대한 사유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필 미학이 찾아지게 된다.
이동실의 <아름다운 효〉는 "남편의 고향 친구 아홉 명이 부부 여행을 떠났다. 지난해는 제주도에서 추억을 쌓았는데 올해는 남해로 갔다. 친구 경조네 처가다."로 마치 기행 수필을 쓰는 것처럼 독자를 설레게서두를 시작한다. "언덕 위에 자리한 집 뜰로 들어서니 푸른 바다가훤히 펼쳐진다. 마당에는 수백 년 된 아름드리 포구 나무 두 그루가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처럼 나란히 서서 집을 지키고 있다. 푸르른 잎들은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며 살랑살랑 바람을 실어 나른다. 겨울이면 큰 둥치로 차가운 바람을 막아 낼 것이다. 멸치잡이 배가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들어오는 날은 고요한 부둣가 방파제가 온 동네 사람들의 함성으로 들썩거릴 바닷가 작은 마을 '송정리'이다"에서처럼 여행지의 풍경을 그려 보여주기도 하지만 일행의 화두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경치 좋은 곳에 어머니 집을 지은 사연이 이번의 화두가 되었다."가 그것이다. 그리고 노인 천만시대 시대의 효의 의미를 새기기도 한다. "논어에 효에 관한 이런 구절이 있다. '효라는 것은 부모를 물질적으로 봉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개나 말조차도 모두 먹여 살리기는 하는 것이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짐승과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라고 했다"고 부모 공양의 당위성을 환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분명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겠는가. 할머니의 넓은 품 안에서 인간의 도리를 배우고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과 자기 책임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댁에서는 격대교육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복을 짓고, 복을 쓰고, 다시 복을 지어가며 살아갈 자녀들의 효심이 느껴져 온다.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른들과 놀다가 노을과 함께 지팡이를 짚고 뜰을 들어서는 팔순의 중턱을 넘어선 노모가 편안해 보이신다.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를 보니 아름다운 효도에서 얻어진 넉넉함과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홀로 남은 시어머니께 논어에 있는 말처럼 공경하리라 마음먹어 본다.
- 이동실의 <아름다운 효> 결말부분
핵가족 도회지 생활에 찌들어있는 현대인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들이 같이 살았던 과거의 농촌 삶을 마을 회관의 동네 어른들을 통해 환기하고 있는 '아름다운 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윤종석의 <어버이날의 단상>은 해마다 맞이하는 어버이날의 설렘과 아쉬움을 진솔하게 서술한 수필로 부모님의 마음을 유추해보는 감동의 수필이다. 작가는 이 수필 중간에서 "어버이날을 맞이할 때마다 아쉬움이 샘솟는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돈 봉투는 고사하고 카네이션도 제대로 달아드린 적이 없다. 얼마나 자식을 기다렸을까? 행여나 올해는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허탈했을 것이다. 적은 월급 타령만 하면서 변변하게 모시지 못한 그때가 가슴 아프다"고 회고하면 구체적으로 어느 해 그 날을 떠올린다.
어느 해 어버이날에 고향의 집에 갔을 때다. 부모님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이 꽂혀있다. 아침에 포항에 사는 막내 여동생이 달아드린 것이다. 지척에 살면서도 무심하게 지낸 부끄러운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가슴에 달려있던 그 꽃이 시들어 마른 뒤에도 대청마루 기둥에 오래도록 걸려 있었다. 자식이 준 그 꽃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나보다. 그다음해부터는 꼭 내가 달아드려야겠다는 다짐도 지키지 못했다.
부모님 돌아가신 지 10년이 훨씬 지났다. 자식이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빠듯한 살림에 힘겹게 뒷바라지하느라 뼈가 부서지는 고통도 감내했으리라. 과연 당신의 바람만큼 살아왔는지 가늠해 본다. 가끔 적은 용돈이 든 봉투를 드릴 적마다 내 생활비에 보태라고 손사래 치며 웃으시던 모습이 보인다.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이 그립다
- 윤종석의 <어버이날 단상> 결말 부분
어버이날 받은 카네이션이 시들고 마른 뒤에도 대청마루 기둥에 걸어놓는 부모님의 마음을 보답할 수 없는 자식의 마음, 그 마음은 카네이션의 부모님의 은혜 보답을 표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든 자식들의 마음은 작가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부모님을 여읜 자식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나 모든 자식의 마음은 동일할 것이기 때문에 가족 모티프의 수필은 그 서사가 평범해도 비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유한근
동아일보 신춘 평론 등단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인간과문학> 주간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외평론집 《문학의 모방과 모반》, 《현대불교문학의 이해》, 《한국수필비평>, 《원 소스 멀티 - 유스, 문학이야기> 등 다수명상언어: 별과 사막》. 동화집 《무지개는 내 친구》 등 저서 논문 다수수상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대상, 여산문학상 대상, 동국문학상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