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4화>
햇살네 삼남매
"여보, 자기도 없는데 햇살이가 새끼 낳으면 어떡하나?"
아내는 그게 걱정이었다. 이 녀석이 임신한 지 벌써 넉 달 째. 배는 뒤룩뒤룩 불러서 걷는 것도 뒤뚱뒤뚱 아주 힘들어 보였다.
'몇 마리나 들었을까?'
그게 궁금하기도 했다. 가끔씩 구석을 찾아 발로 긁어 보는 것이 새끼를 낳을 때가 되긴 된 것 같다.
"거 예정일 되면 동물병원에 가야 되는 것 아닌가?"
아내가 대책이 없어 걱정을 하는데 나는 더더욱 대책이 없을 수 밖에. 그래서 햇살이가 다니던 병원에 알아보기로 했다.
생후 45일 되었다는 녀석을 처음 데려올 때는 눈을 간신히 뜨고 내 손바닥 위에 앉아 겨우 몸을 가눌 정도였었는데 우리 집 딸 노릇을 한 지 벌써 4년 반이 이 지났다. 착하기는 참 착한 공주인데 먹을 것에는 기를 쓰고 덤벼 드는 놈이었다. 이 녀석이 발정기만 되면 낑낑거리면서 시집을 가고 싶어하는데 녀석을 고생시킬까 봐 여태 시집 보내지 않았다. 이 녀석 성격이 워낙 착하고 예쁘게 생겨서 2세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포천에 있다는 어느 농장으로 시집가기 전 아내가 햇살이를 예쁘게 단장시켰다. 목욕도 하고 미용실에도 다녀 왔다. 리본도 이마에 예쁘게 달고 햇살이는 시집을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성공했단다.
내일은 격주 휴무 토요일. 금요일 저녁에 새마을 열차로 수원에 갔다. 산타페를 끌고 오르내리는 것도 이제 이골이 났다. 한 때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수원-부산간을 세시간 반에 주파하기도 했는데 운전하는 것이 역시 피곤했다. 새마을 열차로 수원 도착하면 아내가 마중을 와 있었으니까.
"여보, 안 피곤해?"
"아니, 마누라 보러 오는데 뭐가 피곤해?"
"핏!"
여기는 우리 집. 집에 오면 역시 몸과 마음, 모두가 안정이 된다.
'그래, 집이 내 뿌리야, 뿌리.'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같이 한 잔 했다. 지난 주는 내가 부산에 머물렀기 때문에 2주 만에 남편과 같이 있으니 아내의 표정은 그냥 행복해 보였다,
"어, 시원하다!"
그런데, 아까부터 햇살이가 좀 이상했다. 임신을 한 뒤로는 제 몸을 많이 아껴서 내가 부산에서 와도 그전처럼 크게 호들갑을 떨면서 반가워하는 게 줄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는데 뭔가가 좀 달랐다. 계속 끙끙대면서 코를 바닥에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무언가를 찾아 다녔다. 그러더니 안방 장롱과 벽 사이의 사방 50센티 정도 되는 공간에 들어가서 구석을 발로 계속 후벼 팠다.
"어머, 여보. 쟤 지금 새끼 낳을라 저런다. 어떡하나?"
발로 계속 구석을 후벼 파는 것은 땅을 파고 자기가 새끼를 낳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 지금 몇 시냐? 아이구, 벌써 열 두 시가 다 되었잖아. 거 햇살이 다니던 병원 연락처 있나?"
"아이구, 여보. 지금 몇 신데 그 사람들이 전화한다고 오나. 여보, 쟤 어떻게 좀 해 줘야 돼."
아내는 작은 포대기를 찾아 구석에 깔아 주었다. 햇살이는 그 포대기 위에 앉아 혀를 길게 빼고 헉헉거린다.
"어휴, 이 녀석이 무척 힘든 모양이구나. 이를 어쩌지?"
그러면서도 아내는 비상 응급처치 준비를 했다. 물을 뜨겁게 끊여서 가위를 소독하고 옆에다 대기시켜 놓았다. 녀석은 제 꽁무니를 핥으면서 헉헉대면서 무척 힘들어 한다.
"아유, 이 녀석아. 너무 힘들구나. 어떻게 해 줄까?"
나는 햇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와중에서도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내 손을 핥아 주었다. 햇살이가 더 끙끙댔다.
"어머, 여보. 새끼 낳는다.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옆에서 소리쳤다.
"아니, 벌써? 어디?"
햇살이 꽁무니에서 앙증스런 두 발이 보였다.
"아니, 개들은 발부터 먼저 나오나?"
이게 신의 축복인가 자연의 조화인가? 또 하나의 새 생명이 탄생하는구나! 정말 신비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햇살이가 힘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거 봐. 너 힘들까 봐 너 시집 안 보내려 했었잖아!"
"꾸웅, 꾸웅, 꾸우웅!"
햇살이가 힘을 주는지 '꾸웅 꾸웅' 소리를 냈다. 조금씩 천천히 새끼가 몸을 드러냈다. 아내가 햇살이의 배를 살살 문질러 주었다. 햇살이가 아주 힘들어 했다.
"아이구, 이 녀석아!"
"아욱!"
"아, 나왔다!"
햇살이가 짧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아내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손바닥 길이보다 좀 작은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수컷이었다.
"와, 드디어 낳았네! 야, 햇살아, 수고했어!"
내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찼다. 햇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햇살이도 한숨을 돌리는 것 같았다. 머리를 새끼 쪽으로 돌리고 새끼를 핥았다.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그 사이 아내는 새끼의 탯줄을 아까 소독한 가위로 잘라 주었다.
"여보, 또 낳을 거야. 가만 있어 봐. 얘 좀 어떻게 해 줘야 하는데?"
새끼의 몸이 푹 젖어 있었다. 여름이었지만 아내는 새끼의 젖은 몸을 드라이기로 말려 주었다.
"얘가 첫 번째 나왔지? '무녀리'가 힘들어. 이제 다음부터는 좀 쉬울 거야. 나온 순서 표시를 해 둬야 구분할 수 있어."
아내는 사인펜을 가져다가 첫 번째 녀석의 꼬리에다 줄을 하나 그어 표시를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햇살이가 다시 끙끙댔다. 아, 두 번째 녀석이 또 두 발을 먼저 내밀었다.
"으와, 발이 참 작다!"
내 손톱 정도의 크기였다. 이번에는 나오는 속도가 처음보다는 조금 빨랐다. 허리까지 나오고 어깨, 머리와 앞발이 아직 안 나왔다. 햇살이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것 같았다.
'좀 도와 주었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는 순간 아내가 새끼의 뒷다리와 엉덩이 부분을 잡고 살짝 당겼다.
"아욱!"
순간 햇살이가 짧은 비명을 질렀으나 둘째 녀석이 곧바로 빠져 나왔다.
"와하하. 당신 그렇게 해도 돼?"
햇살이가 둘째 녀석을 핥아 주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아, 이 놈도 수놈이야."
아내가 확인하고 꼬리에다 두 줄을 그었다. 둘째 놈이고 같은 수놈이니까 구별이 필요했다. 어느 새 햇살이가 둘째 녀석의 탯줄을 스스로 끊었다.
"아, 여보. 얘가 탯줄을 지가 끊었어. 내가 안 해 줘도 됐었나 봐."
아내는 열심히 드라이기로 두 놈을 말려 주었다. 두 녀석은 햇살이 배 밑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고 햇살이는 연신 두 놈을 계속 핥아 주고 있었다.
"여보, 아직 두 마리는 더 있는 것 같애."
아내가 햇살이의 배를 만져 보고는 말했다.
"그래? 많이 좀 낳아 봐라."
나는 햇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냥 햇살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햇살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그 사이 새벽 세 시가 넘어갔다. 무척 졸렸다. 이 녀석 빨리 좀 안 낳을 건가?
햇살이 옆에서 깜빡 졸았다. 그 사이 꿈을 꾸었는데 이 녀석이 전부 네 마리를 낳았다.
"어, 여보! 햇살이가 또 낳았어."
"으음?"
아내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 떠 보니 이 녀석이 언제 낳았는지 세 번째 새끼를 낳고 나서 핥아 주고 있었다. 아내도 세 번째 놈이 나오는 것을 못 보았다. 탯줄 끊는 거도 지 혼자 해냈다.
"아니, 몇 시야? 지 혼자 낳았네?"
시간은 네 시가 넘어 있었다. 세 번째 놈은 암컷이었다. 이 놈은 꼬리에 구분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여보, 또 한 마리는?"
나는 잠깐 존 사이에 꿈에서 본 네 마리를 현실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세 마리지 뭔 네 마리야?"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아내가 햇살이 배를 만져 보더니 이제 다 낳은 것 같다고 했다. 날이 밝도록 한참을 더 기다렸으나 햇살이는 더 낳지 않고 일어서서 제 새끼들을 핥고 있었다.
"여보, 이제 다 낳았어."
"애걔. 세 마리 밖에 안 돼?"
아내는 작은 방에다가 새 포대기를 깔고 철사로 된 강아지용 칸막이를 치고 햇살이와 새끼들을 옮겼다. 너무 밝지 않도록 큰 수건으로 지붕도 만들어 주었다. 아내가 그 놈들 이름을 지어 주었다.
"요 놈들 이름을 지어야지. 하나, 둘, 셋, 세 마리니까 하나는 '하늘이,' 둘은 '두리,' 셋은 '샛별'이다."
그래서 그 놈들은 하늘이, 두리, 샛별이가 되었다. 아내가 그 세 놈을 교대로 들어 안고는 마치 아기를 어르듯이 살살 흔들면서 말했다.
"아, 자기 참 잘 왔어. 얘들 낳을 때 자기가 없었으면 내 혼자서 어떡할 뻔 했나? 아찔해!"
"아니, 내가 뭐 한 게 있어야지?"
"그래도 옆에 있다는 게 어딘데? 얼마나 든든한데?"
'아, 이 세상의 아내들은 남편이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어도 옆에만 있어도 힘이 되는 모양이다! 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그 세 놈을 내려다 보다가 나는 초등학교 때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강아지 삼남매 이야기가 생각났다.
메리는 어제 새끼를 세 마리 낳았다. 주인님과 마나님, 철이 도련님까지 무척 좋아하셨다. 첫째는 딸, 둘째, 셋째는 아들이었는데 주인님이 딸은 '해피,' 아들은 각각 '쫑'과 '베스'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다.
메리가 철이 도련님네 집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도련님뿐만 아니라 주인님과 마나님도 메리를 마치 딸처럼 대해 주어 메리는 비록 개 신분이지만 이 집의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해피 삼남매도 주인님과 마나님, 도련님이 잘 보살펴 주어서 무럭무럭 잘 자랐다. 세 놈은 엄마 젖을 먼저 먹겠다고 서로 싸우다가도 금방 같이 이 방 저 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방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기가 일쑤였지만 주인님 세 식구는 그래도 삼남매를 무척 사랑해 주셨다.
어느 날, 주인집에 고급 승용차가 한 대 와서 섰다. 메리가 내다보니 주인님의 누나인 철이 고모님이 오셨다.
"아, 이 놈들이구나. 아유, 다들 참 예쁘네."
메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왜 왔는지 금방 짐작이 갔다. 철이 고모님과 주인님, 마나님이 한동안 대화를 나누신 후 방에서 나오셨다.
"이 놈이에요. 이름은 해피구요."
마나님이 해피를 가리키며 고모님에게 말했다.
'아, 제발!'
메리는 컹컹 짖으며 제발 데려가지 말라고 매달렸으나 주인님이 메리를 들어 올렸고 해피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고모님 팔에 안겨서 다시 승용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메리는 무척 슬펐다. 다시는 해피를 못 볼 것 같았다. 사라진 승용차 뒤로 한참을 짖으며 울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에는 마나님의 남동생, 철이 외삼촌이 오더니 쫑을 데려갔다.
'아, 주인님! 제발 베스만은!'
메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베스의 꽁무니를 핥아 주며 빌었다. 다행히 주인님은 베스는 다른 데로 보내지 않고 메리와 함께 있게 해 주었다. 메리와 베스는 그전처럼 주인님 식구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살았다. 세월이 지나자 해피와 쫑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나님이 아침부터 음식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셨다. 오늘이 주인님 생신이라 했다.
"손님맞이 준비를 하시는구나. 베스야, 우리도 오늘은 특식을 좀 먹겠구나."
점심 때가 가까워지자 승용차 한 대가 왔다. 철이 고모님 차였다. 철이 고모님 부부와 함께 해피도 왔다. 해피는 고모님 품에 안겨 들어왔다.
"오, 해피야!"
"어? 누나!"
메리와 베스가 놀라고 반가워서 동시에 소리쳤다. 메리는 고모님께로 달려가 매달려서 점프를 했고 베스는 고모님 발 주위를 맴돌았다. 해피가 내려다 보았다.
"해피야. 오랜만이지? 자, 너희들끼리 놀아라!"
고모님이 해피를 메리 앞에 내려 놓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아∼. 난 또 누구라고. 엄마하고 베스잖아."
"해피야!"
"누나!"
메리와 베스는 오랜만에 보는 딸과 누나를 부르며 해피에게 달려들었다. 해피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엄마, 잠깐만! 얘, 베스야. 이러지 마!"
"너 왜 그러니?"
"엄마. 내 머리 다 헝클어진단 말이에요. 그리고, 베스야, 너는 얼굴이 그게 뭐니? 주인님이 씻겨 주지도 않든?"
해피가 오른 발로 자기 앞가슴을 톡톡 털며 말했다. 베스와 메리가 받았다.
"내가 뭐 어때서?"
"해피야, 너 왜 그러니?"
"우리 사모님은요. 나를 얼마나 이뻐하시는데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씻겨 주시고 빗겨 주시는데 이 털이 헝클어지고 더러워져 봐요. 얼마나 실망하신다구요."
"그래서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거니?"
"아니에요, 깨끗하면 괜찮아요. 엄마, 쟤 좀 씻겨 주세요. 엄마도 머리에 빗질 좀 하시구요."
"아니, 뭐라구? 얘가 변했네?"
"그게 아니구요, 엄마! 우리 개들도 좀 환경이 좋은 집에서 살아야 개 대접을 받는다구요. 우리 사모님은요, 목사 부인이라서 교회 사람들이 다들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세요? 우리 집에는요. 없는 게 없어요."
"아, 네 주인이 목사니? 너 완전히 공주가 다 됐구나!"
메리와 베스한테서 약간 떨어져 앉아서 해피가 엄마와 얘기하는 동안 베스는 엄마 옆에서 멀거니 누나를 보고 있었다. 베스의 기억으로는 어릴 때 베스를 핥아 주고 아껴 주던 누나였었는데 왜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빵빠∼앙!"
밖에서 또 차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철이 외삼촌이 쫑을 데리고 들어왔다.
"쫑, 너도 왔구나!"
"형!"
메리와 베스는 쫑을 보고 쫓아갔으나 해피는 앉은 채로 고개만 돌렸다. 쫑은 메리와 베스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온통 거실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다 확인을 하고 나서 행운목 화분에다 한 발을 들고 '찍' 오줌을 갈겼다.
"얘, 쫑! 너 뭐하는 거니?"
해피가 기겁을 해서 말했다. 쫑이 돌아다 보았다.
"아아∼. 해피 누나구나. 이건 우리 개들의 본능이야, 본능! 왜 그래."
쫑은 대꾸를 마치자 메리와 베스를 보는 둥 마는 둥 소파 푹신한 자리에 엎드렸다.
"아니, 저 녀석 버릇 좀 봐. 꼴은 또 저게 뭐야."
해피가 말을 계속 하려 했으나 메리가 말렸다. 메리가 쫑에게 다가갔다.
"얘, 쫑. 그 동안 어떻게 지냈니? 보고 싶지 않았어?"
"뭐, 그냥 그렇게 지냈지요, 뭐. 다른 개들 다 그렇게 살아요."
쫑은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엄마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얘, 철이 외삼촌은 뭐하시든?"
"몰라요. 뭐 새벽장사 하는 것 같은데 낮에는 계속 자다가 밤이면 나가요. 새벽에 보면 이불 보따리 같은 걸 들고 들어 와요. 나는 밤낮으로 놀 친구도 없어서 나가서 놀다가 들어와요."
"밥은 어떡하고?"
"저녁에 나갈 때 잔뜩 주고 가요. 내가 끼니를 조절해 먹어야지요."
종은 더 이상 대꾸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 쫗 형을 보고 베스는 형한테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자, 너희들도 이거 하나씩 먹어라."
마나님이 부엌에서 커다란 갈비 뼈다귀 네 개를 가져다 주셨다. 모두들 번개같이 일어나서 주위로 모여들었다. 해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앗, 엄마! 얘들아, 잠깐만! 우리 하나님한테 기도하고 먹어야지?"
"뭐? 기도?"
메리와 베스는 깜짝 놀랐다. 모두들 주춤하고 있는 사이 소파에 있던 쫑이 번개같이 달려 내려와 그중 제일 큰 놈을 골라 물고는 잽싸게 사라졌다.
"아니, 저게. 배운 것 하고는!"
해피가 혀를 끌끌 찼다.
"자, 엄마, 베스야. 우리 눈감고 기도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옛날 주인님 생신을 맞아 우리 식구들도 한 자리에 모이게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인님께서도 오래오래 사시도록 축복을 내려 주시고 저희들도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축복을 내려 주소서. 이 모든 말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메리와 베스는 가만히 있었다. 해피가 눈을 떠서 두 사람을 보더니 다시 눈을 감고 기도 마무리를 했다.
"아멘!"
베스가 먼저 갈비뼈 하나에 손을 댔다.
"안 돼. 기다려, 베스야. 엄마 먼저 드셔야지."
해피는 베스를 제지하고 메리에게 먼저 하나를 고르게 하였다. 다음으로 해피가 하나를 집자 남는 것이 베스 것이었다. 먹을 때는 말이 없이 모두들 열심히 조금 붙어 있는 갈비를 뜯었다.
"그런데 누나. 개들도 하나님이 있어? 하나님은 사람들한테만 있잖아!"
다 먹고 나자 베스가 해피에게 물었다. 해피가 한심하다는 듯이 베스를 보았다.
"얘, 베스야.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란다. 하늘도 만드시고 땅도 만드시고 이 세상에 빛을 주는 태양도 만드시고 이 세상 모든 동물과 식물도 만드시고 사람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란다. 그러니까 우리 개들도 당연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거고 사람의 하나님은 곧 우리 개들의 하나님도 되는 거란다."
해피가 일장 설교를 하는 동안 베스가 낑낑대며 주위를 맴돌았다. 해피가 말했다.
"아, 엄마. 베스가 오줌 마려운 모양이야. 어디 깡통 없어, 깡통?"
"깡통은 무슨 깡통! 그냥 말뚝 하나만 박아 놓으면 되지."
어느 틈에 왔는지 쫑이 제 갈비뼈를 다 뜯고 입맛을 다시면서 돌아와 앉았다.
"아니, 쟤가 도대체!"
그 사이 메리는 베스를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 왔다. 쫑이 계속 얘기했다.
"나도 저 쪽에서 다 들었는데, 도대체 우리가 개야 사람이야? 우리는 개란 말이야 사람이 될 수 없어. 사람들이 우리를 이뻐하다가도 싫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알아? 그냥 길에다 내다 버려. 우리는 개니까 우리 먹이도 우리가 찾을 줄 알아야 돼. 사람들이 안 주면 어떻게 할 거야?"
해피가 쫑을 흘겨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나님을 믿는 공주 체면에 욕도 못하고 때리지도 못하지만 몹시 분한 것 같았다. 쫑은 해피를 보지도 않고 엎드려서 태연하게 한 마디 더 보탰다.
"우리는 우리 본능대로 살아야 혀. 우리는 견생을 살아야 하는 거야, 견생!"
메리와 삼남매의 분위기가 이상해질 즈음, 방문이 열리면서 주인님과 손님들이 나왔다.
"해피야, 잘 놀았니?"
고모님이 부르자 해피는 얼른 쪼르르 달려가서 자기 사모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공주처럼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외삼촌이 차의 시동을 걸자 쫑은 잽싸게 뒷좌석에 올라 앉았다.
"해피야, 쫑아! 잘 가!"
"누나, 형! 안녕, 잘 가!"
메리와 베스는 해피, 쫑을 배웅했다. 손님들이 가고 나니 집은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낮에 특식을 배불리 먹은 탓인지 베스는 메리 앞에 엎드려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메리도 엎드려서 앞발에다가 머리를 얹고 베스를 바라보았다. 참 평화스러워 보였다. 메리는 오늘 낮에 만났던 해피와 쫑을 하나씩 머리에 떠올렸다. 다시 베스를 보았다.
"어쩌면! 내가 낳은 자식들인데. 어쩌면 그렇게도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늘이, 두리, 샛별! 햇살네 삼남매가 태어난 지 한 달 가량 지난 후! 하늘이는 작은 처남네로, 두리는 영구네로, 샛별이는 처형네로 각각 시집 갔다. 두리는 새 보금자리로 가서 이름이 '샛별'로 바뀌었다.
메리가 그랬던 것처럼, 삼남매가 각각 시집을 갈 때 햇살이도 무척 짖었다. 창 밖으로 승용차들이 오갈 때마다 짖어댔다. 하루 종일!
('03. 08)
첫댓글 유수는 몬하는게 없구나~ㅎㅎ.산파까지.ㅋ...잘 읽었다.
ㅋ 산파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