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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4일 영국 런던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 대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평가전에서 이동국이 선취골을 성공시킨 후 박지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2010.3.4 (연합뉴스) |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의 혜성과 같은 등장. 모두가 그의 무대가 될 거라 믿었던 2002 한일월드컵의 최종 엔트리 탈락. 4년 뒤, 자신의 힘으로 일궈 낸 월드컵 본선 무대를 불과 2개월 남겨두고 당한 무릎 부상. 잉글랜드에서의 씻을 수 없는 실패. 하지만 2009년 다시 시작된 서른살의 잔치, 그리고 살아 있는 K리그 스트라이커의 전설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이동국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담은 자전에세이 <역경이라 쓰고 경력이라 읽는다(가제, 출판사 나비의 활주로)>가 2월 말 출간됩니다.
네이버스포츠는 이동국 자전에세이의 출간에 맞춰 주요 내용을 3편에 걸쳐 미리 소개하고 댓글 이벤트를 실시합니다. 각 편마다 최고의 댓글을 올려주신 분을 5명 선정해 이동국 친필 싸인이 들어간 자전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2편에서는 이동국 선수의 역대 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골과 그 이유를 댓글을 남겨주세요. <역경이라 쓰고 경력이라 읽는다>는 2월 15일 교보문고 단독 예약 판매를 시작합니다. 2월 26일 정식 출간돼 전국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당일 네이버스포츠를 통해 댓글 이벤트 결과도 발표됩니다.
2편. 박지성, 너는 천재야 임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한창 준비하던 때였다. 올림픽대표팀에 처음 보는 선수 한 명이 왔다. 체구도 작고, 얼굴에는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아직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선수. 다른 선수들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다. 허정무 감독님이 연습 경기에 곧바로 투입시켰다. 특별한 장점이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개인 기량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실수가 참 적었다. 작은 패스 미스조차 없었고, 패스를 준 뒤 계속 공간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쟤는 정말 많이 뛰네’. 그게 지금은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 된 박지성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지성이의 등장은 좀 특별했다. (고)종수 형이나 (이)천수처럼 뭔가 특출 난 걸 지닌 천재형 선수여서가 아니었다. 전국대회에서 돋보인 것도 아니고 각급 대표팀을 거친 것도 아닌, 우리가 잘 모르던 평범한 선수가 올림픽 대표팀에 오자 선수들끼리 수군거렸다. 허정무 감독님과 지성이의 은사인 명지대의 박희태 감독님이 바둑을 두다 뽑았다는 기사가 나오자 더 수군거렸다. 지성이 본인도 원체 말수가 적다 보니 동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지금은 측면 공격수로 맹활약 중이지만 당시 올림픽대표팀에서의 지성이는 주로 윙백 포지션을 소화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윙백에 자원이 없어서 테스트를 진행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지성이의 존재가 불쑥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성실한 선수다’라는 이미지였다. 자기 역할에서 그렇게 튀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딱 해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 성실함이 일반적인 성실함이 아니었다. 늘 묵묵히 자기 임무를 소화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당시 나도 나이 상으로는 올림픽대표팀 내에서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지성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김)남일이 형과 함께 세 명이 자주 어울려 다녔다. 가끔 나누는 대화에서 지성이가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내면 속에 갖고 있는 생각이 굉장히 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지성이의 플레이에는 본격적으로 힘이 붙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 남 몰래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듭하고 있단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홀로 해외생활을 하면서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이겨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해진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모두 폭발시켰다. 느슨한 마음으로 월드컵을 준비하다가 그 무대에 가지 못한 나와 달리 지성이는 월드컵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인생에 오는 중요한 기회를 정말 잘 살린 것이다.
사람은 불시에 기회가 온다.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그게 기회인지도 모르고 흘려 보낸다. 지성이는 성실하기 때문에 늘 준비가 돼 있었고 기회를 잡았다. 스포트라이트 자체만 놓고 보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묵묵히 자기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더 큰 기회를 차례차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유럽에 진출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타이밍을 정말 잘 잡으면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지성이는 그 타이밍마다 기대에 부응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남 몰래 열심히 노력해서 그걸 자기 걸로 만들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어를, 유럽에 나가서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걸 보면 적응력도 대단하다. 그 모든 게 성실한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 성실함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끝 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은 분명 비범한 재능이다. 그런 성실함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순 없다.
![]() 2009년 9월 4일 호주와 평가전을 하루 앞둔 4일 한국 축구국가대표 박지성과 이동국이 파주 NFC에서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때 나는 왜 박지성이란 선수가 계속 성공하는지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답은 내 자신에게 있었다. 나는 지성이가 갖고 있던, 기회를 맞이했을 때의 절박함이 부족했다. 그 또래에서 가장 잘 풀린 케이스였으니까 거기까지만 하고 ‘이젠 적당히 해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있었다. 경기에서 잘할 때와 못할 때의 기복이 확연히 티가 났다. 아주 잘하거나, 아니면 아주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평균이 없었다. 지성이는 그 반대의 경우다. 언제 어떻게 투입되든 자기 몫을 해냈다. 그런 모습은 지도자에게 신뢰를 준다. 팀을 위한다면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선수, 그게 박지성이었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 차이는 작으면서도 꽤 큰 문제였다.
지성이는 자기는 절대 천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지성이야말로 천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같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성실함이라는 재능의 극한을 보여준 선수. 성실성도 재능임을 증명한 이가 바로 박지성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세계 최고의 클럽에서 아시아 선수가 7년을 버티는 것은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해 내지 못한 일이다. 한 차례 월드컵이 끝나고 다음 월드컵이 시작될 때면 박지성은 늘 새로운 선수, 더 큰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그걸 만드는 건 성실과 노력이었다. 그 하나를 끝없이 연마하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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