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병마용 갱 의 규모와 출토 유물에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서안은 기원전 주나라 궁전 유적부터 진 아방궁(항우가 불태워 3개월이나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치의 표본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궁전), 한나라 장안성, 수당 장안성,
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명. 청 시대의 장안성 성벽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특히 수당시절 서역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실크로드의 최종 목적지 이며 동시에
출발지 이었던 곳으로 당시의 로마보다 3배 많은 인구와 규모를 자랑 할 정도로
화려하게 번성한 도시 이다.
그래서 그런지 북경보다 더 유럽이나, 미국 등 서양사람 들이 더 많이 관광을
온다고 가이드 가 이야기 한다.
제대로 서안 주위의 관광지를 보려면 일주일 도 부족하다고 하면서.............
17일 오늘은 진시황릉, 병마용갱 과 화청지 가 있는 동쪽으로 가 보기로 하고
호텔에서 연계하는 1일 관광투어를 (교통비 와 가이드 비 39원) 따라 갔다.
승합차를 탔는데 8명의 관광객중 7명이 샤먼에서 관광 온 일행이고 나만
별도 인원이다. 자기들 끼리 남방 복건성 방언으로 떠드니 더욱 외톨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도 내가 외국인이라고 친절하게 대한다. 약 30여km를 달려 임동시 려산 및에
있는 화청지(양귀비를 위해 당 현종이 온천수가 나오는 곳에 지어준 궁전) 를
구경하러 갔는데 그 곳은 입장도 하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 카를 타라고
하니 무슨 속셈인가 하고 궁금했지만 그냥 떠밀려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오는 도중 각자 개별 부담이라던 화청궁, 진시황릉, 병마용 입장료를 290원씩
가이드가 걷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세 곳만의 입장료가 아닌 진시황릉 모형관,
등 우리가 원하지 아니한 곳의 입장료 까지 포함되어 받은 것이다.
서안에서 시내버스도 있으므로 개별로 간다면 불필요한 곳 가지 않고 입장료도
절약 할 수 있으니 참고 하시길.....
하지만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새로운 곳을 구경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 기회 이니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려산 중턱에 내려 아래를 내려 보니 화청궁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이드 설명이 지금의 새로 만들어진 화청궁은 원래 화청궁의 10분지 1정도 규모로
작게 만들어진 것으로 굳이 들어가 볼 필요는 없다고 한다.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피서 중 7월7일 칠석날밤 같이 하늘의 별
을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너 와 내 가 아침, 저녁 밤, 낮 을 가리지 않고 같이 있어
정이 매우 깊구나....“ 하며 땅에 둘이 무릎 꿇고 하늘에 부부의 연이 세세영영(世世永永)
가기를 빌며 나무를 심어 기념하기로 하고 조각수(皂角樹)를 심었는데
바로 그 나무가 나중에 밑둥치가 나란히 올라와 현종이 “双皂角”라는 휘호를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바로 그 나무라고 하며 그 앞에서 사진 찍으면 부부나 애인 사이에
정이 더 깊어진다고 즉석 사진사들이 권하고 있었다.
많은 남녀가 그 곳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조금 더 내려오니 1936년 국민당 장개석이 항일투쟁을 위하여 공산당 과 1차 국공합작을
위한 회담을 하러 서안에 왔으나 속셈은 공산당 과 의 합작을 원하지 않아 회담을 자꾸
미루고 끌자 12월 12일 동북의 군벌 장학량이 군대를 동원 장개석을 체포 구금한
“서안 사변”이 있었는데 당시 내복바람으로 피해서 숨어 있었다는 은신처 에 정자가
세워져 “병간정(兵諫亭)”이라 불리고 있었다. 원래는 착장정(捉蔣亭:장개석을 체포한 곳)
이라 했으나 대만 과 관계를 고려하여 개명하였다고 한다.
이후 옥 판매소, 섬서성 특산물 판매소에 들린 후 한나라 유방 과 초나라 항우가 만나 연회
를 한 장소를 들렸다.
허술하게 세트를 만들어 놓고 입장료 받는 데 이 곳 에서 둘이 만나 연회를 하였다는
것을 새긴 돌판 을 발견한 후 세트를 만들어 입장객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이 만남이 전기가 되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던 한나라 유방이
살아남아 나중에 초나라 항우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만약 항우가 이때 유방을 잡아 죽였다면? 지금의 漢字, 漢族 이라는 실질적으로
중국을 칭하는 漢이라는 말 들이 楚字, 楚族이라고 楚가 되었을까?
“홍문일연 천추전기(鴻門一宴 千秋轉機)”라고 새겨진 표시판이 가슴에 닿는다.
우리의 인생에도 한번 의 선택으로 운명이 바뀌어 지는 것을 ......역사가 바뀌었으니..
이후 진시황 묘를 추측하여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곳을 들르다. 단체관광의 폐해로
시간낭비인 것을 알면서 후회해본다. 중국인들의 상술을 더욱 느끼면서....
진시황릉 은 아직 발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곳이다.
현대의 과학으로는 아직 발굴하였을 때 원형상태로 보존키 어려워 미루고 있는
상태로 , 주위에서부터 당시 인부들 순장시킨 것, 차마갱 ,文人俑들을 현재 발굴하고
잇는 상태였다.
커다란 야산 같은 능의 규모가 대단하다. 주위를 전동차를 타고 돌면 족히 10여분
걸리는 것 같다.
병마용 갱을 마지막으로 구경, 가장 먼저 발견된 1전시관에 입장하자 그 규모에
압도당하다. 마치 내가 수많은 병사들의 열병을 받고 있는 듯 느낌이 든다.
한쪽에선 계속 발굴요원들에 의한 조심스런 조사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2~4 전시관을 거치면서 앞으로도 수십 년 이상 계속 발굴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박물관에 전시된 채색이 되어 있는 말로 표현이 어려운, 정말 아름답고
배율이 잘 된 마차 가 전시되어 있다.
서안으로 돌아와 덕발장교자관(德發長餃子館)이라는 고루 옆 서안 특색 음식점에 들러
속 고명이 새우속살로 만들어진 만두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다.
그래 , 여행 다닐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니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