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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John P. Foley 대주교는 멜 깁슨의 곧 개봉될 영화인 그리스도의 수난은 역사적인 분기점은 아닐 것으로 보고 교황의 언급은 자기로선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죄를 묵상하게 하는 영화라고 하였다.
대주교는 또한 성추문의 위기에 대한 바티칸의 반응을 옹호하였고 언론들이 사회적 부에 영합하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메쥬고례로 알려진 유고슬라비아의 유명한 발현장소에 대해선 교회의 공식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12월 우르반 대학교에서, 바티칸의 사회적 통신을 위한 교황청 평의회 의장인 폴리 대주교는 그 영화는 "하느님과 심오한 체험"으로 이끌 수 있다고 했으며 개봉될 영화인 그리스도의 수난이 영화사에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인가를 묻자 대주교는 "아닙니다. 그 영화는 좋은 영화입니다. 저도 보았지만 그 영화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아름다운 묵상입니다만 그것을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분기점으로 보지는 않습니다."라고 했다.
"저는 그 영화가 매우 감동적이고 그 영화를 보면서 '난 내 죄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받게 하신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으며 모든 사람들도 그 영화를 보고 그렇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황께서 그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대주교는 "교황께서 보시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알지만 그 내용에 대해선 저는 모릅니다"라고 했다.
신비주의의 점증하는 쟁점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질문에서 대주교는 교회는 아직도 메쥬고례와 1981년 이후 성모님께서 발현하시고 있다는 주장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현지 주교는 그 발현이 진실되지 않다고 말해왔습니다. 교황청은 주교들에게 그곳으로 순례자들을 이끌고 가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만 부인하는 결정은 없었습니다. 물론 메쥬고례로부터 나온 어떤 열매들은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발현 혹은 발현이라 주장하는 것이 진실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주교는 덧붙이기를 신앙교리성이 "현재조사 중인 것에 언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순례자들을 주교들이 이끌고 가선 안된다고 했기 때문에 인준이 있었다고 여러분들이 말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대주교는 말하며 공식적인 순례는 불가능하지만 비공식적인 것은 가능하다는 바티칸의 결정을 언급하였다.
부인하는 결정이 있었느냐고 재차 질문하지 대주교는 "없다."고 했으며 "20세기에는 파티마, 보랭, 반노와 베네주엘라의 베타니아를 포함한 발현들이 인준된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두 번이나 부인되었지만 마침내 받아들여진 "모든 민족들의 여인"으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이른바 발현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자신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Spirit Daily)
- 작성한 날; 2004년 1월 30일
스투더(Studer) 신부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마태 16, 3).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다. "너희는 그 모든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징조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렇다면 오늘날 그 징조란 무엇인가? 엄청난 산림 화재를 일으킨 2003년의 대재앙적 가뭄, 끔찍했던 흥수, 두 개의 고층 건물이 파괴되었던 2001년 9월 11일의 뉴욕 참사, 지진, 새롭게 등장하는 불치의 질병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자연적인 현상에서만 찾는다.
정말 중요한 원인, 바로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시대의 징조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에 두 가지 재앙이 일어났다. 탑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고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 그것이다(루가 13, 1-4 참조).
예수님께서 몸소 가르치셨다. "그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두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루가 13, 2-3 참조).
이 말씀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재앙에도 해당된다. 하느님께서는 재앙으로 인간을 징벌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죽음의 잠에서 흔들어 깨우시려는 것이다. 이는 불타고 있는 집 안에서 잠이 들어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잠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깨우기 위해 심하게 흔드셔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버림받을 사람은 이것도 별로 효과가 없다.
"너희는 짖지 못하는 개들이다."
예언자 이사야는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외친다. "너희들은 짖지도 못하는 개들이다"(이사 56, 10 참조).
사람들은 교회를 보면서 짖지 못하는 개들만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왜 그럴까? 예언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소명이므로 사람들이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너무나 힘든 나머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다. 반면에 거짓 예언자들은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간다. 너희는 너희의 삶을 바꿀 필요가 없다."라는 입에 발린 소리만 했기 때문에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교회 지도자들은 거짓 예언자처럼 자신들의 안정을 누리기 위해 인간적인 두려움과 비겁함으로 입을 다물고 큰 고난의 시기들을 눈감아버린다.
그러나 인류의 삶이 대재앙으로 위협받을 때 그들은 주목하고 대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회심을 권하는 설교는 언제나 희망으로 열려있으며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께 회심하면 불행을 피할 수 있다.
회심의 세 가지 유형
첫 번째, 신앙이 없는 자나 대죄 중에 있는 죄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회심
두 번째,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주 최소한의 믿음에 만족하는 사람의 회심.
세 번째, 열심한 신앙인들의 회심.
그 중에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 미지근한 자, 이름뿐인 신자들을 말한다. 이들이 구원받으려면 통회와 회심이 필요하다.
묵시록의 심판관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묵시 3, 16).
하느님께서는 성서에서 이런 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너희 때문에 내 이름이 더럽혀졌다!" 이들은 아주 잘못된 하느님 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신자들과 교회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이슬람교에서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도 신자들이 모두 복음 말씀에 따라 산다면 더 이상 이슬람교도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마호멧 시대에 아리아니즘이나 그 밖의 다른 이단들 때문에 그리스도 신자들이 갈라졌고 초대 교회의 열심한 신앙을 잃어버렸다.'
이 이름뿐인 신자들은 낙태와 이혼, 동정애자간의 결혼, 남색, 포르노 등 모든 죄악과 악덕을 가진 "거짓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서너 살짜리 어린 아이가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자연을 거스르는 잘못이 될 것이다.
미지근한 신자는 바로 이런 미성숙한 상태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에 해당되는 열심한 신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성덕을 더 많이 쌓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성숙은 평생 계속 된다. 누구도 "이제는 충분하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성덕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루는 예술 작품 같은 것이다. 예술가는 사라지고 말 현세의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명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자신의 일에 매달린다.
아담과 하와의 유산
왜 사람들은 하느님께 향하고 하느님을 흠숭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그렇게 힘들어 하는가? 그 근본 원인은 아담과 하와의 비극적 유산에 있다. 그들은 하느님과 갈은 존재가 되려는 악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서 그들 스스로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들은 하느님께 순종할 때에만 자녀로서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아버지의 품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결코 굴욕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처음으로 그렇게 그들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의 자만이 승리를 구가하며 하느님을 피했다.
그들은 완전히 홀로 서자 곧 배고픔과 비참함을 느꼈다. 그들은 세상을 파괴하고 자기 자신을 파괴했다. 이것은 오늘날 아주 쉽게 확인된다. 학생이 존경심을 가지고 훌륭한 스승의 수업을 들으면, 그는 곧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참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스승이 없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어리석은 자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애써서 하느님께 회심하려고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시며 귀한 분이신지를 결코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시편의 저자는 말한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또한 사람들은 자선의 허물 때문에 하느님께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개인적이고 내적이며 친밀한 관계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물이 가득 찬 병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병이 우리처럼 지성과 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그 병에 매우 값비싼 포도주를 넣으려 할 때, 그 가엾은 병은 물 외에 다른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값비싼 포도주를 온 힘을 다해 밀어낼 것이다.
그 병은 자신의 잘못으로 귀한 포도주를 얻지 못한다. 현대인의 태도가 바로 이러하다. 현대인은 사라져갈 값싼 만족이라는 물 속에 뛰어든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값비싼 포도주를 놓쳐버린다.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세속적이고 육적인 쾌락에 자기를 바치면서 하느님과의 친교인 귀한 포도주는 놓치고 있다.
제 삼천년기는 고층 건물 두 개가 불타는 뉴욕 테러로 불행한 시작을 했다. 그 건물들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벽두에 불타는 기념물이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너희가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멸망할 것이다."
사람들은 짐승보다 더 어리석다. 짐승들은 위험이 시작되면 그것을 직감하고 곧 피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주어진 구원을 거절한다. 그것은 자만심 때문에 "하느님께로 회심하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 스위스 SKS, 2003, 11윌호에서
(기사 출처; 마리아 123호)
- 작성한 날; 2004년 2월 21일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영화 제작자인 멜 깁슨이 우연히 다락에서 굴러 떨어진, 예수님의 수난을 기록한 책 「그리스도의 수난」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책은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1774-1824) 수녀가 예수님의 은총을 통해 1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환시로 보았던 것을 엠머리히 수녀가 죽은 후 작가인 클레멘트 브렌타노가 출판한 것이었다.
환시의 내용은 세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수난」(1833년)외에,「성모 마리아의 삶」(1852년),「그리스도의 삶」(1858~1880년)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원제는 「The Dolorous passion of our Lord Jesus Christ" 이다. (영문으로 된 책의 내용은 THE DOLOROUS PASSION OF OUR LORD JESUS CHRIST 에서 볼 수 있다)
(다음 글은 Venerable Anne Catherine Emmerich 에 있는 가경자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에 관한 내용이다.)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는, 신비의 환시를 통해 과거, 현재와 미래를 보는 그녀의 재능은 역사상 그런 재능을 가진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것이라고, 주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1774년 9월 8일 독일의 베스트파리아의 프람스케(Flamske) 지방에서 태어난 그녀는 둘멘(Dulmen )에서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녀가 되었다. 그녀의 생의 마지막 12년 동안 그녀는 일절 음식은 들지 않았으며 대신에 성체와 물만 마셨다.
1802년부터 세상을 뜰 때까지 그녀는 가시관 성흔을 지녔으며 1812년부턴 가슴 위에 나타난 십자가 성흔과 창에 의해 생긴 성흔을 포함한 오상을 지녔다.
안네 카테린 엠머리히는 마음을 읽는 재능을 소유하였으며 우리들 대부분이 단지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가톨릭 교리를 실제로 생생하고 자세하게 눈으로 보았다.
천사, 악마, 연옥, 주님과 성모님의 생애,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실존과 상사의 은총 등의 교리문답의 기본적 진리는 마치 물질적인 세계처럼 그녀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녀의 계시는 감춰진 초자연적인 세계를 생생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이런 계시들 중 가장 두드러진 일부이다.
당시의 작가인 클레멘트 브렌타노(Clement Brentano)는 그녀를 방문하여 떠나지 않고 그녀의 남은 생애 동안 그녀가 본 환시를 글로 옮겼으며 출판을 준비하였다.
많은 경험과 학식을 갖춘 그는 "내가 보았던 신심, 평화와 순결을 표현하는 예술과 삶은 그녀와 비교해보면 보잘 것 없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 작성한 날; 2004년 4월 8일
2004.5.24
시드니 해변에 동정 마리아를 뚜렷하게 닮은 것으로 여겨지는 울타리 기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퀸즈랜드에 종교적인 현상이 생겼다.
주말에는 성혈과 향유를 흘리는 성상을 보기 위해 Inala의 브리스베인 외곽에 자리한 가톨릭 교회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였다.
어제는 자원봉사자들이 등록하여 각각 손으로 쓴 "안전" 표시를 옷깃에 달고 군중들을 안내하였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 공동체 교회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사건을 설명하였다.
이젠 전시용 유리 상자에 격리된, 성혈과 향유를 흘리는 성상의 모습을 담느라 디지털 카메라와 비디오촬영기들이 서로 부딪히고 법석을 떨었다.
"진짜같아요. 하지만 가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방문객인 Mark Power씨는 말했다.
"믿고 싶지만 교회의 발표를 기다릴 것입니다."
신비현상은 마르코 성당의 사제관에 둔 십자고상과 성모상으로부터 장미향유가 흘러내린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미사 중에 제단 위의 십자고상과 성모상으로부터 성혈이 흘러내린 지난 금요일부터 사건은 실제 확대되었다.
토요일 저녁에 신자들은 교회 앞에 있는 성상의 손에 쥐어진 십자고상에서 성혈이 흘렀다고 말했다.
Joseph Liem 신부는 말하기를 교회가 조사할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다.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리엠 신부는 말했다.
어제 교회로 몰려든 사람들은 들뜨면서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교회가 승인하여야 하므로 그것이 기적이라고 당장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기적으로 보여집니다."라고 Joseph Vu는 말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근원이 기적이든 아니든 눈물흘리는 성모상은 축복이었다.
"이것의 결과가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목적을 다 이룬 것이겠지요."라고 Mark Power는 말했다.
"설령 진실된 것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그 현상은 좋은 쪽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지난 해 초에는 해변가 울타리 기둥에 동정 마리아의 발현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은 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시드니의 Coogee해변에 몰려들었었다.
(기사 출처; News.com.au)
- 작성한 날; 2004년 5월 24일
에스페란짜는 1928년 11월 22일에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원하였으며 성모님께 딸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마리아는 바랑카스에서, 음악과 관련된 세실리아 성인의 축일에 태어났다.
그녀의 탄생은 어머니가 보트로 여행 중에 일어났으며 보다 나은 의료기관을 찾아 한 항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출산은 매우 고통스러웠으며 어머니는 임신 중에 성모상 앞에서 자주 기도를 바쳤고 만약 여자애를 낳는다면 마리아와 에스페란짜로 지을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마리아 희망'이 태어났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자주 사제와 수녀의 옷을 입힌 인형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오린코 강에서 손에 장미를 들고 미소짓는 부인을 보았다.
그것은 소화 데레사 성인의 발현으로 알려졌으며 그 이후 장미향이 마리아 주변을 맴돌았다. 테레사 성인이 든 장미는 매우 아름답고 눈부신 것으로 어린 마리아에게 던져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즉시 그 장미는 하느님으로부터 온 징표라고 선언했다.
그 현상은 믿는 이들에게 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였지만 나중에 에스페란짜 주변에서, 장미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포함한 설명하기 힘든 다른 현상들을 목격하였다.
그런 현상은 마리아 주변에 주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에스페란짜는, 갈멜의 성모님 축일인 1937년 7월 16일에 첫 영성체를 하였으며 어린 마리아는 심한 생리학적 고난에 부딪히게 된다.
12살이 되어 마리아는 급성 폐렴에 걸려 담당 의사는 3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기도 후에 마리아는 눈을 뜨게 되었으며 복되신 동정녀를 보았다. 마리아에 따르면 성모님은 베네주엘라의 발현지인 마르가리타 계곡의 성모님으로 나타나셨으며 먹어야 할 약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1947년엔 심각한 질병으로 여러 달 동안 마비가 왔지만 주님의 환시를 보고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내가 알기로는 세상 사람들이 믿기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마리아는 말했는데 당시 병원을 뒤흔든 놀랄만한 지진이 있을 때 순간적인 치유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v
병약한 시기에 다른 시련들도 있었는데 다른 시련 중엔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다시 치유가 되었다.
1954년 8월 22일엔 카라카스를 방문 중에 마리아는 기적이 일어날 장소에 대한 꿈을 꾸었는데 거기엔 이상한 푸른 나비가 있었다. 이곳은 지금은 카라카스 부근의 베타니아로 알려진 발현지가 되었다.
성모님은 마리아에게 "나를 도와 세상을 구하자"고 말씀하셨으며 그래서 마리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여정은 특별한 임무 중이라고 마리아가 말한 미국에서 끝났다.
마리아의 그런 마지막 행동 중의 하나가 뉴욕을 방문하고 맨하탄 가운데에 있는 성 패트릭 성당 부근에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기사 출처; Spirit daily)
- 작성한 날; 2004년 8월 8일
2004년 10월23일, 그간 176년 동안 강한 지진이 없어 '지진 공백지역'으로 알려진 일본 서북부 니이가타(新潟)현에서 리히터 규모 7에 가까운 강진이 발생, 일본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예년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거의 2주마다 내습한 10개가 넘는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기진맥진한 일본 열도를 강타한 강력한 지진은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지진이 엄습한 니가타현은 성모님께서 성상을 통해 101번의 눈물을 흘리셨던 아키타 발현성지가 속한 교구이기도 하다.
아키타 발현 이후 이토 주교의 발현 인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믿음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토 주교의 사임 후 시간이 흐르면서 성상은 경당에서 내몰리고 발현 목격자인 사사가와 수녀마저 아키타의 유자와다이에서 도쿄로 옮겨야 하는 등의 드러나지 않는 탄압을 통해 발현의 중요성이 퇴색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연관되어 성모님께선 두 번에 걸쳐 곱비 신부님을 통해 아키타 발현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대다수 자녀들의 완고함과 천상 '엄마'가 당부하는 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하셨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러 지진의 안전지대라 알려진 그 니이가타 현에서 강진이 일어난 것이다. 개통 후 40년간 무사고 운전을 자랑하던 신간센의 10 미터 폭의 좁은 철로 구간을 따라 그 지진이 강타하여 완전복구까지 수개월이 걸릴 정도의 파괴로 일본의 자존심을 불과 몇 초만에 구겨버렸다.
연이은 태풍과 그에 따른 홍수, 지진 피해 등이 일본과 니이가타 교구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리가보단 곱비 신부님을 통해 아키타 발현의 의미를 강조하신 지 11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것이 하늘에서 주는 경고의 메시지라면 니이가타 현과 일본에만 국한될 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바야흐로 인류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경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볼 때가 되었나보다.
그래서 1993년 9월 15일, 일본에서 곱비 신부님을 통해주셨던 성모님의 메시지(# 501)를 새겨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마리아 사제운동'에 참여하는 일본의 내 소중한 아들들인 너희가 기도하고 형제애를 나누며 이곳 '다락방'에 모여 있음을 보면서, 나의 크나큰 고통 속에서도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다.
내 크나큰 고통의 원인은 이 가련한 내 자녀들 모두가 아직 이교적 암흑 속에 잠겨 있어서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데 있다. 이 큰 나라 국민 거의 모두가 홀로 '구세주'이시며 '구원자'가 되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서 아직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이교도들에 대해서도 '엄마'이다. 그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마음을 쓰며 또 그것을 열망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 안에 생명과 선의 씨앗들이 자라도록 하고, 주님께서 각 사람의 존재 깊숙한 곳에 새겨 주신 '법'을 지키도록 도와 주며, 정신이 진리를 갈망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내 아들 예수님을 만나도록 부드럽게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온전히, 전적으로 '복음'에 애착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티없는 내 성심'의 특별한 사업이 될 것이다.
내 크나큰 고통의 원인은 '교회'가 세상 어디서나 대환난의 비통함과 피의 '게쎄마니'를 겪고 있다는 데 있다. 내 작은 아들인 네가 여기, 일본에서도 보았듯이, 신앙 상실과 갈수록 증가하는 오류의 광범위하고 간교한 확산 때문에 교회가 매우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교황과 그의 보편적 교도권을 거스르는 논쟁과 대립이 교회 일치를 손상하고 있고, 죄와 독성 행위들이 교회의 거룩함을 흐리게 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기능이) 마비되어, 복음화를 위한 추진력이 심히 약화된 것이다.
내 크나큰 고통의 원인은 너희 마음의 완고함과 이 '천상 엄마'가 당부하는 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무능력에 있다. 얼마나 여러 번 너희에게 말했던가! 그러나 너희는 도무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엄마로서 중개하고 있다는 특별한 징표도 주었건만 너희는 믿으려들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나를 그들 삶의 '엄마'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나라에서 나는 너희에게 특별한 표를 주었다: 그것은 내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선 '비탄의 성모'로 나를 나타낸 성상의 눈에서 100회 이상 흘러내린 대량의 눈물이다. 그리고 너희가 처해 있는 심각한 위험을 경고하려고 세 번에 걸쳐 메시지를 주었다.(*[아끼다의 성모마리아] 참조)
이제 대환난의 때가 왔음을 너희에게 알리거니와, 내가 예고한 그 모든 일이 앞으로 몇 해 동안 다 일어날 것이다. 바야흐로 배교(사태)와 교회 내의 극심한 분열이 일어나려 하고 있고, 내가 이곳에서 예고한 대징벌이 이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인류 대부분이 멸망하고, 어디든지 황폐와 죽음과 파괴가 있으리니,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조그만 아들인 너를 한 번 더 이리로 데려오고 싶었다. 징벌의 때가 왔으니 보호와 구원을 받으려면 모두가 내 티없는 성심의 안전한 피난처로 하루 속히 들어와야 한다고, 네가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의 집으로 돌아와 다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너희 '천상 엄마'의 최종적 부름인 이 나의 메시지를 전하여라. 이 '엄마'가 너희 모두를 불러 자신의 망토 아래 모으고 있는 까닭은, 이 마지막 시대의 고통스러운 환난을 치르는 동안 너희를 위로하며 지켜 주려는 것이다."
운영자 작성
- 작성한 날; 2004년 10월 31일
첫댓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놀랍네요. 나중에 다시한번 읽어보야겠습니다. 엠머리히 가경자께서는 몇달전 시복되셨다죠. 자주 좋은 글 부탁드리며 감사올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