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좀처럼 가시질 않습니다.
모두들 춥다고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 때 우리는 입가에 미소를 짓습니다.
일도 많이 정리가 되어가고...
이제 비로소 우리 부부에게는 맘 편히 캠핑에 전념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독일 유학간 큰딸에게도 양해를 구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지금 쉬어야 한다고...
당연히 승락입니다.^^
어딜보나 둘의 입장이 바뀌었음이 분명합니다.
딸은 나 혼자 힘드니 와서 보살펴 달라고 하고
부모는 흔쾌히 그러마 해야합니다.
말배우랴 입학 시험 준비하랴 밥 해먹으랴 많이 힘들텐데도
엄마 아빠 캠핑가서 푹 쉬고
여름에 오라고.
지금오면 오히려 부담이랍니다.
그걸 믿기로 했습니다.
곧장 장수 방화동으로 달립니다.
가는 내내 언덕 여기저기 소복히 쌓인 눈이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수학여행때도 이렇게 설레이진 않았을 겁니다.
익산 장수간 빠른 길이 뚫렸는데도 남원쪽으로 난 국도를 아직까지 고집하며
사람들 걷는 거, 집, 논, 밭등 주변 구경을 합니다.
'감자 4개와 양파 2개, 김, 김치'
책, 옷가지를 제외한 우리가 가져간 준비물의 전부입니다.
가다가 흔히 보이는 수퍼마켓이 우리집 창고입니다.^^
아무데나 들러서 필요한 것을 사면 되니 부담없이 길을 떠납니다.
부지런히 간다 노력했는데도 도착하니 밤입니다.
오래전에 넣어 둔 가솔린랜턴의 연료가 휘발되어 없어졌는지 등이 켜지질 않아
헤드랜턴의 불빛을 이용해 집을 짓고 늦지않게 잠자리에 듭니다.
방화동의 아침 해가 산을 넘어 옵니다.
부지런한자만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제가 늦잠 자는 사이 언제 나갔다 왔는지 남편이 이런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편은 종종 좋은 카메라 갖은 이들을 눈여겨 보곤 하는데 우리에겐 필요치 않다며
핸드폰이나 디카를 이용해 이런 훌룡한 사진을 찍곤 합니다.
제 눈엔 예술가의 작품같습니다.^^
방화동의 아침은 항상 새의 울음이 있습니다.
처음 '캠핑'이란 걸 하던 날 아침,
남편은 저 새소리를 들으며 저희 부부의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 나 울적했었다 합니다.
그 과정을 이겨냈으니 이렇게 그때를 회상하며 웃을 수도 있고...
지금은 이 새울음 소리가 세상속 젖은 마음을 정화합니다.
한참 후 나타난 오스빈, 잠옷 바람으로 빼꼼히 문 열다 화들짝 놀라 얼굴을 숨깁니다.
꿩이 숨을때면 드러난 몸은 생각 못하고 머리만 숨긴다던데 제가 꼭 꿩같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캠핑중이던 건너편의 이웃입니다.
광주에서 오셨는지 사투리를 쓰는데 저희 부부가 나고 자란 고향의 말이라 정겨웠습니다.
겨울 캠핑때는 아무도 없이 우리만 있으면 좀 무섭고 외로운데 몇 팀이 주변에 있으니
그냥 옆에 자리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든든하고 마음이 놓입니다.
새벽에 도착해 집을 지은 이웃도 있었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어린 아이들 재우느라 집만 먼저 지으셨나 봅니다.
아침에 혼자 묵묵히 리빙쉘과 터널을 랜드브리지에 연결하시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속깊은 면모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캠핑장 이웃 구경도 했으니 목욕탕도 가고 떨어진 가스도 충전할 겸 남원 나들이를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늘 그냥 지나치던 광한루에 들어가 산책을 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고목입니다.
워낙 오래된 고목인데 지팡이로 세워주고 치료도 정성껏 해 잘 보살피고 있더군요.
춘향이가 정말 이런 그네를 탔을까 하며 신기한 마음에 딸이 그네에 오름니다만
긴 그네 특유의 출렁거림이 무서워 이내 내려오고 맙니다.
그보다는 옆에 있던 당나귀한테 관심이 더 많습니다.
그렇잖아도 승마장에 가자고 조르고 있던 중인데 마침 나귀를 만났으니 기대하던 말은 아니지만
이나마도 반가운가 봅니다.
주무르고 쓰다듬고 먼지나는 엉덩이를 툭툭 때려주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는 것도 모자라
광한루를 한 바퀴 다 돌고나서 나귀보러 한번 또 갔습니다.
이런 옛집 툇마루에 앉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어릴적 할머니댁에 가면 반짝반짝 윤나던 넓직한 툇마루에 할머니의 따뜻함과 정갈함이 묻어있는 것 같아
괜히 손으로 쓰다듬어 보곤했습니다.
이길을 걸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답니다.
전 딸과 함께 걸었으니 우리딸 사춘기는 문제없습니다.
부부 사이 대신 모녀 사이가 좋아져 사춘기를 사이좋고 아름답게 보낼겁니다.^^
어릴때 딸의 손을 쥐면 조그맣고 부드럽던 게 내손 안에 꼭 쥐어졌었는데
언제 컸는지 엄마 손보다 훨씬 큰손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제 딸이 사춘기 접어드는 터라 마음 단단히 먹고 있던 중에 오작교를 걸었으니 잘 되었습니다.^^
남원의 추어탕을 안 먹고 갈 수 없어서 현지인들에게 맛집으로 인정받은 현식당을 찾습니다.
아빠가 사진기만 들이대면 어김없이 움직여버리는 둘째딸,
아빠가 집에가서 사진을 삭제할 거라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캠핑장 집에 도착해 남편이 드러눕습니다.
주변 소리에 밤새 잠을 자다깨다 한데다 산책이 길어 좀 힘에 부쳤나 봅니다.
남편은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40대 후반임에도 의사의 친절한 권고를 무시합니다.
그리곤 맛있는 거 먹는 걸 너무 좋아합니다.
딸과 합세해 과일에 우유로도 모자라 호떡까지 모두 먹고 맙니다.
캠핑은 다른 여가 활동과는 달리 운동량은 적고 먹는 게 많아 흠입니다.
소식하고 많이 움직이는 게 좋다는 건 다 아는데...
빨리 날씨가 풀려서 주변 등산이라도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트레일러의 탱크 지나는 듯 큰 히터 소리도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보다는 히터의 따뜻함에 길들여지는 시간이 빨랐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독서하는 게 문제되지 않을만큼은 되었습니다.
오히려 주변의 소음이 히터 소리에 가려지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트레일러와 함께 한 세번째 캠핑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첫번째는 시끄러운 히터 소음과 씨름하다가 결국 식구들에게 짜증내는 악몽의 캠핑이었고
두번째는 캠핑을 하다말고 그냥 집에 가자고 할 만큼 할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한 어이없는 캠핑이었고
세 번째에 비로소 트레일러 구입 후 처음으로 '재미있는 캠핑'이었다고 얘기할만한 여행을 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사는 법도 익혔고
정리의 해법도 알아냈고
내가 좋아하는 독서도 무리없이 할 수 있었고
요리도 기름 튀는 것만 아니면 좁은 주방 공간이지만 자신있고...
남편도 이제 트레일러의 주차, 해체, 결합을 척척하는 걸 보니
건강상의 이유로 캠핑을 접을까 고민도 했는데
그렇게 하지않고 트레일러와 함께 '캠핑 제 2막' 열기를 잘 했다 생각됩니다.
아직도 텐트의 낭만이 그리워 이웃의 텐트를 망연히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만족합니다.
행복해 보이던 여러 이웃분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첫댓글 오랜만에 오스빈님의 글을 보니 반갑네요,,, 건강하시죠? 트레일러도 넘 멋있읍니다.
반갑습니다. 요새도 다니시는지요. 통 뵐 기회가 없네요. 건강하세요~~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시간 보내셨네요...즐감합니다.
캠핑 제2막~~~너무 반가운 말씀입니다..덕분에 거시기 자~알쓰고있습니다...울 동네 아파트는 지하도 높아서 마냥 들랑달랑합니다.....^^
이사 잘 가셨네요. 지하 주차장까지 높아 캠핑을 돕는군요.^^다행입니다.
오토캠핑계에 의사 권고 무시하시는 분들 천지입니다... 저부터.... ^^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푸근한 굴뚝같은 글, ^^건강하세요.
다시 찾은 여유와 행복이 오래 지속되길 빕니다. 잘 보았습니다.
여유가 느껴지는 후기... 즐감하고 갑니다...
행복한 후기 잘 보고 갑니다...^^
후기 잘보고 갑니다 항상 행복한 캠핑하세요....
가족 모두 편안하고 여유로워보이네요. 행복함이 묻어나 미소가 절로 지어지네요. 참 보기좋아요. ^^
이제야 후기를 보는 맛(?)도 상당합니다^^........반갑게 후기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