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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소갈머리
단오에서 하지로 이어지는 음력 오뉴월이면 평소에 그다지 입줄에 오르내리지 않던 생선 중에 밴댕이가 제철 만난다. 고작 김장용젓갈에나 쓰이는 줄 알았던 밴댕이가 제대로 몸값을 평가받으며 대접받는 황금기다. 그동안 밴댕이는 인천과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안에서 많이 잡혔지만 요즈음은 인근해역의 어종이 고갈되면서 그다지 잡히지 않으므로 남해 지방의 신안 인근바다나 충무 앞바다에서 잡아 냉동하여 운반하는 것이다. 생태계의 환경이나 먹이사슬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세월 따라 물고기가 서식하는 곳도 바뀐다. 물고기도 한 곳에 오래 살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삶의 텃밭을 옮겨 다니는 셈이다. 영원한 것은 없음을 뒷받침한다. 청어과의 밴댕이는 15센티미터 정도로 전어와 비슷하며 등은 청흑색이고 옆구리와 배는 은백색이다. 특히 칼슘과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포함되어 골다공증 등 성인병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니 현대인이 좋아할 만하다. 강화 석모도로 등산을 갔다 맛보는 밴댕이는 입맛을 돋았다. 목을 살짝 물고 입으로 훑으면 신기할 만큼 뼈만 빗처럼 앙상하게 남는다. 입성 좋은 사람은 뼈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억세지 않아 고소하다고 한다. 수족관에 살아있는 싱싱한 횟감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냉동된 밴댕이를 초고추장에 양배추와 깻잎을 섞어 빨갛게 버무린 무침이나 구이도 좋고 바글바글 끓인 찌개조림이 입맛에 당기면서 제법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기껏 맛있게 잘 먹고 돌아서서 소갈머리가 어떠니 하며 밴댕이 흉을 마구 보면, 좀은 머쓱해진다. 본래 밴댕이는 다른 생선에 비해 창자가 거의 없는데다 성질마저 느긋하지 못해 파르르 하니 참을성이 없다. 활달하던 밴댕이는 그물에 갇히고 끌어올리는 순간 제풀에 분을 못 이겨 금세 숨을 거둔다고 한다. 곧바로 얼음에 채우는 등 냉동처리를 함으로 살아있는 밴댕이를 맛보기는 현장에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이런 밴댕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밴댕이 소갈머리 없다.”고 한다. 또는 “밴댕이 콧구멍 같다.”고 한다. 보기보다 아주 속이 좁으며 얕은 마음씀씀이거나 소견이 몹시 용렬하면서 아주 답답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앞뒤가 콱 막히다시피 하여 오죽이나 답답하면 그럴까 싶다. 소갈머리는 마음이나 마음속에 가진 생각을 속되게 이르는 속마음을 뜻한다. 이해심이 부족하니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잘 삐져 대범하지를 못할 것이다. 요즘은 살아가기 팍팍하여 마음이 다급해져 간다. 속에 있는 것을 시원하게 꺼내놓고 싶어도 너무 개인주의로 흘러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양보나 배려보다 욕심만 앞장을 선다. 하지만 풍문으로라도 소갈머리 운운하는 말을 듣는다면 좋아할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다. 대뜸 ‘내가 어때서’라고 반문을 하면서 그냥 객기라도 부려, 그 사람 참 통이 아주 크고 활달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을 것이다. “오뉴월 밴댕이가 뛴다.”고 한다. 평소 보잘것없어 보이다 제철 만나 몸값이 껑충 뛴다. 어찌 밴댕이뿐이랴. 사람도 때를 만나면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음을 빗대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밴댕이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수자원이 고갈되는데 밴댕이라고 잘 잡힐 리가 없다. 밴댕이와 관련된 이야기만 스쳐갈 뿐이다. 이처럼 자연의 먹거리 하나도 갈수록 야박해진다. 세상사 아이러니하게 겉은 부유해지지만 속은 빈곤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소갈머리 없는 밴댕이라고 한다. 비단 물고기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닐 터다. 사회에도 밴댕이가 있다. 오히려 그만도 못한 부류를 간과할 수 없어 몇 번이고 곱씹어가면서 끝내는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