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의 거장 바흐는 다작작곡가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인데요, 작곡한 곡수도 많지만 자식도 많습니다. 무려 20명의 자녀를 두었으니까 참으로 유능한 사람임은 틀림없습니다. 한 고등학교 음악시험 문제에 '바흐는 주로 어디에 머물렀나요?'라는 질문이 주관식으로 나왔고 바흐가 주로 활동했던 국가를 적는 것이 정답의 취지였는데요, 바흐가 많은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에 너무 집착한 한 학생의 답안, '침대'
그만큼의 자녀를 두기위해서는 주로 침대에서 있을 수 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한 학생의 발칙한 발상의 답안은 아직도 인터넷에서 배꼽잡게하는 내용인데요, 침대하면 우리 준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준이의 침대사랑은 준이의 집에서의 행태를 충분히 짐작케 할 것 입니다.
영흥도 집에 막상 이사하고나니 1층 살림집의 좁은 규모때문에 동선이 어찌나 작아졌는지 행동하는데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1층 살림집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아파트 평수로 치면 30평대가 넘는, 작은 식구살기에 그다지 불편함이 없는 넓이인데 문제는 전주인의 펜션욕심으로 인해 살림집 1/3을 뚝 자르고 두껍게 벽을 쳐서 따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만들어 별개의 펜션방 공간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뚝 잘려져나간 공간을 빼고 나머지 2/3공간에는 그다지 넓지않은 방 두개와 거실, 부엌 등 옹기종기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랫동안 기숙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각자 아이들 방을 만들어주고 방에 맞춰 침대들이 있던터라 막상 영흥도에 오니 배치가 큰 문제였습니다.
많은 짐들이 쏟아져들어오는 와중이라 하는 수 없이 동일한 태균과 준이 슈퍼싱글 침대 두 개를 안방으로 밀어넣고, 작은 아이들이 쓰던 철제 이층침대를 준이방에 넣었는데... 이런 배치는 저에게 집에서의 공간을 완전히 앗아갔습니다. 영흥도집에만 오면 쏜살같이 안방을 점령해버리는 준이...
이렇게 안방을 빼앗기고 태균이와 저는 거실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했는데, 아무리 준이에게 이층침대방이 준이방이라고 이야기해주고 거기로 가라고 소리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준이의 침대사랑은 카페에 자주 올려놓았던 것처럼 유별나기도 해서 집에서 보면 밥먹을 때 외에는 많은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곤 하는데요... 더우기 이층침대는 어찌나 무겁고 단단한지 저의 힘으로는 아예 움직일 엄두도 낼 수가 없고, 분해와 조립의 과정은 태균아빠 재주상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기에 그저 손놓고 상황을 괴로워만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번에 영흥도 집에 과거 발달학교건물에서 철거해온 폴딩도어 설치작업을 하면 방에 배치된 가구들의 재배치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이층침대는 분해해서 2층에 남아 돌아가는 방으로 올려버리고 준이침대를 안방에서 작은 방으로 옮겨주었는데요, 이 재배치작업의 성과는 정말 성공입니다. 이제 준이는 안방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자기방 침대에 가서 너무 잘 지냅니다.
좁은 안방에 다른 가구도 있는데 침대 두 개를 놓고 지나다닐 수도 없던 상황에서 이제 안방에서 안방다운 활동을 할 수 있을정도로 편해졌고 무엇보다 태균이가 자기공간을 확보하니 아주 좋아합니다. 드러내놓고 화나거나 못마땅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심 너무 불편했던 상황들이 정리되니 평일 영흥도집을 찾게되는 우리 세 명에게 작은 평화가 주어진 듯 합니다.
이번에 준이의 침대사건을 계기로 다시 우리 아이들의 감각문제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길에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을 때 사람과 동물이 받는 트라우마가 확연히 차이난다고 합니다. 사람은 향후에 차를 무서워하게 되고 동물은 교통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 장소를 무서워하게 된다고 합니디.
준이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완전 오산이었습니다. 준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공간이 아니라 자기가 쓰던 침대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