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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다컴 완정님의 글을 스크랩해 왔습니다.
수필가님이 밥따로 물따로 음양식사법을 1년간 수련하면서 쓰신 글이 3편인데 저처럼 수다스럽게 많이 쓰지도 않으면서 재미있습니다. 세 편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즐감하시기 바라며 정다운 음악들을 배경음악으로 넣었습니다.
(글출처 : 사랑다컴 http://www.sahram.com/zeroboard/zboard.php?id=chungpung)
밥따로 물따로 小考
얼마 전에 촌장, 검주와 더불어 여의도 모 빠에서 한잔 하면서(굳이 이런 걸 ....) 한 얘기이지만 그간 25년 가까이 함께 생활하면서 촌장께 빚진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거 같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백팔 배, 조식 폐지, 냉온탕에서 오늘의 주제인 밥따로 물따로(이하 밥물)까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럿이다. 어찌보면 품 안에서 일방적으로 정신적 수유를 한 듯한 세월이다. 차제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그저 올바로 전수받아 성실하게 뿌리내린 후 할 수 있다면 여러 지인들에게 전파하는 것만이 빚의 반이나마 갚는 길이라 다짐해 본다.
밥물을 한지 4개월여가 지났다. 벌써. 그 동안 금연하듯 그렇게 철저하게 지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요즘 들어 느슨해진 감이다. 익히 예상했듯 술이 관건이었다. 점심의 경우 회사 식당에서 간단히 때우면 밥물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나 밖에 나가 판벌여놓고 먹을 때가 문제였다. 특히 한 잔 한 다음날 타는 듯한 목마름에 맥주 혹은 막걸리 한잔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등반 전 막걸리도 그렇고, 저녁 때 풀타임 술 약속 있는 날은 밥물은 남의 일이 돼 버린다. 이 글을 계기로 초심으로 돌아가자. 마음 다잡고....
짧은 기간이지만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몸에 일어난 게 사실이다. 우선 소화불량, 속 더부룩함이 없어졌다. 식후 개운한 느낌도 예전에 없던 것이다. 소화력이 부쩍 신장된 모양이다. 아웃풋(용변) 측면에서도 횟수, 색, 양 모든 면에서 고르다. 몰록 빠져나가는 듯한 거예去濊의 느낌이 좋고 잔변감도 없다.
식성 혹은 식습관의 일정한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당최 씹을 건덕지가 없는 음식은 자연 멀리하게 된다. 가령 면류나 탕류, 죽 등은 당기지 않는다. 그 좋아하던 라면 먹어본지가 두어 달은 된 것 같다. 대신 딱딱한 음식이 끌린다. 고기를 비롯해 깍두기 비빔밥 등등. 밥물로 치아가 제일 바빠졌고 턱 운동도 전의 배가 넘는 듯싶다. 들이씹고 내씹고 하다 보니 밥 먹는 시간이 늘어나, 식사 파트너가 효율적인 식사를 중시하는 후다닥 족속이라면 은근히 신경쓰이기도 한다. 저작이 길다보니 식사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도 전에 없던 현상이다. 또, 간식은 원래 하지 않지만 밥물 이후로 더욱 철저해져 물먹는 시간에 과일 한 두알 먹는 것 말고는 가외로 먹는 '사이 음식'은 일체 없다.
밥물의 컨셉은 지극히 단순 간명하다. 밥과 물을 섞어 먹지 않고 따로 먹되 이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이상문 선생이 쓴 책(‘밥따로 물따로’, 정신세계사)에 의하면, 고체식인 밥은 양기가 승한 양의 시간(낮, 자정∼정오)에 주로 먹고 음으로 간주되는 물은 음의 시간(밤, 정오∼자정)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한자어 액체에서 액液은 물?과 밤夜을 합한 글자임을 상기하자).
낮 시간에는 가급적 물마시기를 자제하기를 권고하는데 이는 음양 중에서 양력, 즉 왕성한 활동으로서 내부 분비력, 특히 소화력을 극대화시키려는 선택이다. 한 낮은 양의 힘이 절정에 이르는 시간이라 위장을 비롯한 내부 기관의 활동도 최고조에 이르는데 거기에 찬물 부어 기죽을 일 없다는 것이다. 평소 인간의 식습관이 시도 때도 없이, 습관적으로 위장에 물을 부어댐으로써 위속의 염산을 희석시키고 이는 상당한 소화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 생래의 자연치유력의 상실을 의미하고 밥물을 통해 이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음양적 고려 이외에도 밥물은 우리가 음식이라 뭉뚱그려 말하는 마실 거리(음)과 먹을거리(식)을 엄격히 구분하기를 요구한다. 물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물에 밥탄 듯, 밥에 물탄 듯....이런 애매모호한 음식 자시기가 어떠신가들. 내 경우는 여~엉 아니다. 비온 날 진창길을 첨벙거리는 기분이랄까. 거기에 비하면 밥물은 그렇게 개운할 수 없다. 비 갠 뒤 마른 땅을 상큼하게 내딛는 기분이다. 또한 밥물하다 보면 먹을 때와 굶을 때가 확실히 갈린다. 따라서 일체의 주전부리를 경계하게 된다. 이는 인체 기관에 주기적인 휴지休止를 줘 신진대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이 모두는 식 생활에서의 절도節度 나아가 삶 전반에의 절도를 의미하기에 더욱 긍정적이다.
저작咀嚼 효과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물기 없는 된밥(음식)은 먹을수록 필사적으로 씹을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침의 분비가 왕성해져 입안 소화가 철저해진다. 위장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결국 완벽한 소화가 이뤄지고 음식물은 100% 가까이 양분으로 전환된다. 불로 말하면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것이다. 밥물하는 사람이 눈 똥은 개도 피한다는 속설이 있다. 도무지 건질 게 없는 완벽한 폐기물이라 걔가 외면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 선생이 자신의 배설물을 걔한테 먹여가며 터득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 선생이 당신의 몸을 도구로 수십 년간 임상실험을 한 다른 하나가 바로 기식氣食이다. 밥물의 실천 수단으로서의 기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밥물 이론에 의하면 끼니를 걸렀다고 해서 안 먹는 게 아니다. 좀 다른 것(氣)을 먹었을 뿐이다. 고체식(밥)이나 액체식(국)을 하면 우주의 사대四大를 간접 섭취하지만 기식을 하면 이를 직접 몸 안에 들여보낸다고 보는 게 밥물의 입장이다.
따라서 밥물 도사들은 한결같이 기식도사들이기도 하다. 밥물이 본 궤도에 들면 대부분 1일 1식은 기본이다(책에는 이십대의 몸과 마음으로 일일일식하며 농삿일하는 아흔 살 노인의 일상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개중에는 2일 1식, 3일 1식도 흔하고 제법 연륜이 있는 사람은 1주일 1식 밥 굶기를 밥 먹듯 한다. 한 달 1식, 심지어는 두어 달에 한 끼 먹는 준신선도 있다. 참 꿈같은 얘기다. 1일 삼식이 지상 목표요, 어쩌다 하루 한 끼만 건너뛰어도 엄청난 상실감에 탈진해버리는 수많은 먹보 중생들에겐 말이다.
(밥물하다 보니 한 가지 숙제랄까, 언젠가 꼭 해야 할 듯한 게 있다. 지금의 점심 저녁 두 끼를 저녁 한 끼로 줄이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두어 차례 시도해 봤는데 저녁 무렵의 시장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인관계도 어려움이다. 회사 생활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조직생활에 필수적인 점심 약속을 어떻게 깡그리 내친단 말인가. 하지만......이런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일일식은, 정확히는 한 끼 고체식과 두 끼의 기식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성공적인 밥물을 위해서.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꼭 이뤄 내리라.)
이렇듯....밥물의 덕목이 끝 간 데 없고 우리의 건강 지킴이로 그만이다라고 나는 주장하는 듯한 데 이쯤에서 한번 자문해보자. 진짜 그런가? 밥물이야말로 지고지선이요, 만병통치요, 현대인의 필수품인가? 선뜻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런 반론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건 전통의 한?양방처럼 검증되지 않은 거 아닌가?’ 내지 ‘만일 이 모두가 사실이라면 왜 입때까지 그토록 안 알려졌나?’ 혹은 ‘다양한 사례만 있지-그것도 실패 사례는 쏙 빼 버린 성공담만-과학적 근거가 없지 않은가?’ 모두 냉철히 새겨봐야 할, 일리 있는 지적들이다. 우선 엄격한 의료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밥물의 치유 영역은 형편없이 줄어들 것은 뻔하다. 버젓한 의술로 인정받기 위해 이론적, 학문적 체계화가 급선무이고 이 면에서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거기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므로 밥물이 100% 긍정적 효과를 낸다고 단언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밥물 같은 민간요법은 처방에 대한 당사자의 믿음이 절대적인데 그런 믿음을 누구에게서나 기대하기도 어려운 난점도 있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나는 밥물을 다른 이에게 책임 있게 권할 수는 없다(다 와서 꼬리 내리는 것 같아 찜찜하네).
물론 그렇다고 나의 밥물에 대한 믿음은 약화되지 않는다. 다 양보해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밥물이 무슨 약물 처방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식습관을 바꾸자는 것뿐인데 설사 잘못되더라도 효과를 못 볼 뿐 심각한 부작용은 없을 거라는 것. 신선은 못 되도 건강은 챙길 수 있을 거라는 것. 아니 잘 하면 신선 비스므레한 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신선이라! 사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음양식사법을 통해 성취하려는 경지는 실로 고고함을 알게 된다. 그것은 7년간의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수행을 통해 몸을 완전한 영장체질로 탈바꿈시켜 수명을 100세에서 1000세를 한 단위로 하는 불로장생을 이룸이다. 우화등선의 성취요 영생불멸의 길로 나아감이다. 대우주같이 영원토록 장수하자는 것인데 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믿음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목숨을 건 생체실험을 한 과정을 보면 자못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이 선생이 수일간의 단식 끝에 이른 다음 결론은 밥물의 궁극 목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고 보면 우주 어느 것도 내 것 아닌 게 없다. 반대로 나 역시 내 것이 아니며 결국은 우주의 일원일 뿐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그렇게 서로 교감하고 합치된다. 서로가 서로의 분신이자 또 전체가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형상에만 갇혀 보이지 않는 원대한 관계와 소통에 무심했고 또 무지했다. 통일의 관점이 아니라 분리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세계는 하나다. 인간도 만물도 우주도 하나다. 전체로서의 하나다.”
실로 가슴 벅찬 대목 아닌가. 이런 경지라면 밥물은 단순히 의료 섭생의 차원를 떠나 하나의 종교로 이해돼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밥물의 자세도 좀 더 경건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내가 믿는 궁극적 실재-그것이 부처든 하느님이든, 알라든, 도든, 칠성이든, 삼신할머니든, 조왕신이든, 그 무엇이든-에 일배 올리는 심정으로 밥물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일일식의 有感
6월 22일 부로 일종식(일일일식) 시작한지 꼭 반년이 됐네요. 작년 세밑에 겁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할 때 ‘한 육 개월 정도만 참으면 그런대로 자리 잡겠지’ 했는데 바로 그 육 개월이 지난 겁니다.
점심 거르고 하루 한 끼만 먹기로 했다고 하니 직장 선배가 단박에 묻더군요. 돈 얼마나 모았냐고. 허긴 일종식 반년에 빠진 건 몸무게요 실해진 건 지갑이니 그런 얘기 나올 만도 하군요. 점심 안 먹고, 그러다 보니 낮술도 멀어지고(지금은 아예 단주했지만), 또 주전부리도 멀리하다 보니 돈 쓸 일 없죠. 본의 아니게 밥물 짠돌이계에 입문하다보니 지갑이 하루가 다르게 두툼해져 가는 겁니다. 또 압니까. 혹자의 억측대로 내년 쯤 오피스텔 하나쯤 너끈히 계약할지. 허기사, 그리 한들 뭐합니까. 하루 밥 한 끼 먹는 주제에.....
처음 일종식을 시작한 건 밥물을 보다 확실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결행한 측면이 큽니다. 직장에서 점심.. 보통 밖에서 먹지요. 십중팔구는 혁대 끄르고 꺼~~억, 반주까지 곁들여 걸판지게 한단 말입니다. 밥물 망치기 딱 좋죠.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뻔한 수에 걸려 밥물 엉망으로 만들다 보니 양단간에 결정을 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무 베듯 잘라 버렸죠.
반년 동안의 하루 한 끼 식사. 거 참 할 만 합니다. 하루 종일 일이든 공부든 운동이든 하고픈 거 맘대로 하면서 말이죠. 저녁 무렵까지 통으로 빈 시간은 공으로 얻지요. 시장기 느낄 틈이 어디 있나요. 일 삼매 공부 삼매에 스르르 저녁, 밥 먹을 시간인데... 사실 때 돼서 먹지만 저녁 생각도 별로 없어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니까요. 때우듯 저녁 먹고 가볍게 산책하다보면 두 시간은 후~울쩍....물 마실 시간. 도대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말이고요. 실은.......
하루 종일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고, 축 쳐져 일의 능률은 안 오르고 밥 때 안 됐나, 연방 시계 들여다보다가 예닐곱 시 저녁 종 울리기가 무섭게 옳다구나, 금줄 풀렸구나, 밥상으로 돌진하기가 굶주린 이리가 따로 없고요. 복수하듯 하루 종일 못 먹은 거 벌충하자니 포식에 폭식이 다반사, 거기다 물 시간이면 냉수에 커피에 사이다에 온갖 마실 거리 너 본지 오래다, 부어라 마셔라. 그 뿐인가요. 물 시간을 위해 아껴놨던 사과 참외 토마토 등등.....마구 식도를 맹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실이 이렇습니다.
한심한 거죠. 이럴 거면 뭐 할라고 밥물하냐, 되물을 만도 하니. 허긴, 이 세상 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남들은 삼시 세끼 챙겨 먹는 데 뭐 잘났다고 일종식이야, 일종식이... 지가 무슨 간디라도 되나? 다석이라도 되나?
한 끼 먹으면 우선 식구들과 먹는 일이 불편해집니다. 나 하나 때문에 식구들끼리 밥 먹는 모임이 저녁 위주로 바뀌어야한다든지, 차례처럼 어쩔 수 없이 낮 상이 차려져야 할 경우 미리 양해 구하고 밖에 나가 하릴 없이 얼쩡거린다든지......이런 거야 뭐 집안일이니 상호간에 이해하고 넘어간다 치죠.
직장인으로 점심을 거르겠다는 건 조직 생활을 안 하겠다는 겁니다. 봐줘서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줘도 그는 심대한 핸디캡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죠. 굳이 말 안 해도 잘 아실 겁니다. 제 경우, 이제 많이 뻔뻔해져서 따 당하는 것도 그리 섭섭하지 않고 외려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아무리 철면피래도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할 바를 못한다는 데 대한 회한이랄까, 미안한 심정이 왜 없겠습니까. 혹시 내가 조직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하는 데 대한 반성이 어찌 없을 수 있냐 말입니다. 만일 밥물 내지 일종식으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면 직장에서의 불편은 가장 확실하게 차변에 기재돼야 할 겁니다.
차변 거리가 또 하나 있군요. 체중 감소. 밥물인이면 이건 누구나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근데 체중에 다소 ‘거품’이 껴 살 빠지는 게 전혀 섭섭하지 않은 부류들이야 밥물로 인한 체중 감소가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으로 더없이 고마울 테니 말할 나위도 없겠죠. 문제는 바라지 않던 체중감소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저 같은 부류입니다. 글쎄 72킬로에서 빠지기 시작한 게 어~어 하는 사이에 6개월 만에 57킬로까지 수직 하락하지 않았겠어요. 어디까지 빠질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거......그거 안 당해본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런닝구를 벗으면 거의 형해화한 갈비는 기타치고(?) 싶은 마음을 솟구치게 하고, 달갑잖게도 웨이스트가 개미허리로 수렴해간다든지 잘 입던 바지를 모조리 헐렁바지로 만드는 거 참 우울하지요. 거기에 깊이 주름 팬, 주인 잃은 얼굴은 보는 사람마다 병색을 의심케 합니다.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가니 참 환장할 노릇이지요. 밥물인들은 다들 경험 있으리라고 봅니다.
바닥을 모르고 빠지는 몸무게를 보고 있자면 은근히 부아도 나고, 꼭 이 짓을 해야 하나, 점심 다시 시작해? 하는 자포자기의 마음이 불쑥 솟기도 하고....뭐, 그렇습니다. 허나 어쩌나요? 여섯 달씩이나 해온 거 깨기는 싫고...... 뭐, 할 수 있나요? 호랑이 등 탄 심정으로 계속 가는 수밖에요. 기왕에 하는 거 제대로 하고 빨리 밥물 체질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하루 이틀 굶어도 별로 시장기 못 느낀다는지, 물 없이 한 사날 지내도 전혀 물이 궁금하지 않는.....이를테면 먹고 마시는 데서 좀 자유스러워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욕심 줄이는 것. 내 먹을거리에서 술이 빠지고, 고기가 빠져 식단이 단출해졌듯 내 생활 전반도 하나하나 정리되어 꼭 필요한 것만 단단하고 실답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 지금으로선 꿈같은 얘기죠. 허나 어디 한 술 밥에 배부르기 바라겠습니다. 꾸준히 밀고 나가면 언젠간 이룰 수 있겠죠. 어찌 보면 밥물의 진짜 목표는 바로 이건 지도 모르겠습니다.
밥물 1년
밥따로 물따로 음양식(이하 밥물)을 시작한지가 1년이 넘어가는군요. 이 낯선 섭생법을 촌장님으로부터 소개받아, 그야말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밥과 물을 떼어 놓으려 진력하던 1년이었습니다. 점심 후 2시간, 저녁 후 2시간..시간을 재어가며 물때를 맞추려고 마른 침을 연신 삼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갈증에 시달리기는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시간 재기도 귀찮고 물은 적게 마실수록 좋다고 해 낮엔 안 마시고 해 떨어진 다음에만 마십니다).
되돌아 보매, 되로 되 듯 정확히 그리고 가열차게 실천하지는 못했으나 부실한 대로, 그리고 약간의 굴곡이 있는 대로 그런대로 명맥은 이어온 밥물 음양식이라 자평하고 싶습니다.(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한 50점 줄 수 있으려나?) 밥물을 열공해 가며 범생이처럼 조심스레 한 끼 한 끼 건너던 첫 삼 개월. 과감히 1일1식에 도전했던 육 개월, 그리고 조석식으로의 전환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 정립을 꿈꾸던 마지막 삼 개월! 밥물도 진화하는 것인지 하다 보니 버전업을 하게 되는군요.
사람 몸 가지고 실험하자니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역시 체중. 하루 한 끼 들어간 지 불과 여섯 달 만에 건장하던 72kg가 55kg로 반등 한 번 없이 미끄러지듯 빠지니 정말 눈알 튀어나오더군요. 이건 필시 밥물 때문이 아닐 거야..그거 말고 어디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난 걸 거야, 확신(?)하고 망연하던 기억. 미라처럼 말라가던 몸뚱이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던 그 황당함이란..
일일일식에 대한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으나 몸 상태가 워낙 쑥대머리 귀신 형용인데다, 주변의 타박 내지는 읍소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에까지 이르니 이 섭생법이 과연 평생을 지속할 만한가, 드디어 회의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홍영선의 석식 폐지론을 만난 게 그 무렵이었습니다. 이론에 따르면 해질 무렵엔 장기臟器가 한 낮의 수고로 지쳐있기 때문에 소화력이 가장 떨어지는 시간으로 먹을거리로 부담을 가중시켜 심신을 지치게 하고 노폐물을 쌓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노폐물 축적이 만병의 근원이니 건강 지키려면 여하히 노폐물 안 쌓이게 할 건지 그걸 먼저 해결해야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서 저녁은 ‘가장 미운 놈에게 줘 버리고’ 상쾌한 밤을 맞으라고 주장하죠. 일리가 있더군요. 그래서 일식 아낌없이 버리고 조중식 이식을 채택하기로 한 겁니다.
이식二食과 더불어 이 기간 중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고기를 떠나기로 한 겁니다.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겁니다. 아침은 현미 비빔밥과 현미 찹쌀떡, 점심은 통밀식빵에 볶은 팔곡..홍영선의 곡식 식단을 따르다보니 자연 육 고기는 관심권에서 멀어지더군요. 그 때가 마침 고기 끊기를 섭생의 제1조건으로 삼던 정봉스님의 가르침에 꽂혀있을 때라 과감히 한 마음 내기로 했습니다. 지금껏 고기를 멀리한 지 서너 달 지났는데 별로 고기 생각 안 납니다. 잘한 결정 같아요. 이건 타협 없이 쭈~욱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채식, 육식에 대해선 이 글 읽는 여러분도 할 말 많으실 거도 저도 어느 정도 보탤 건 있습니다. 언제 토론 기회가 있길 바라고...)
건강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습니다. 신통방통하게 나아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퇴보하지도 않았습니다. 평소의 무탈함을 무난히 이어왔다고 말하면 될라나? 밥물 처음 시작했을 땐 몸 건강이 당면 관심사였는데 일 년쯤 지내다보니 마음 건강이나 생활 건강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더군요. 무엇보다 생활의 변화가 큽니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대체하다보니 직장 동료들과 어울릴 기회가 줄어드는 게 사실이고, 저녁마저 폐지하니 퇴근 후 한 잔이 원천 봉쇄되고.. 물론 점심이든 저녁이든 예외는 인정하는 터라, 점심 자리에 채식의 여지가 있으면 슬쩍 끼기도 하고, 저녁 술자리 과일 싸들고 가서 맥주빨 세우기도 하지만 주 생활패턴이 모임에는 소극적인 ‘고립형’을 바뀌는 건 어쩔 수 없군요(이거 건강한 건가요, 글쎄...)
특히 저녁은 단지 세끼 중 한 끼가 아니더군요. 거기엔 먹는 일보다 더 큰 ‘더불어 하는 일’이 묻어 있음을 알았습니다(영어 company 어원은 빵panis을 함께com하는 사이라죠). 그래서 특히 사라진 저녁에 대한 빈자리가 큽니다. 물론 이건 제가 자초한 바고 또 어느 정도 즐기기도(?) 하는 바지만요.
잃어버린 고기, 빼앗긴 저녁이 아쉽다는 생각이 언뜻언뜻 들기도 합니다. 그 때마다 ‘넌 할 만큼 충분히 했잖아!’라고 위로하지요. 정말 할 거 못할 거 많이많이 했죠. 지금 당장 끊어도 억울하지 않은 정도로요. 니 마이 무따 아이가, 입니다. 대신, 번잡한 곁가지 과감히 쳐버리고 단순하게 살자는 단순간명한 삶을 생각해 봅니다. 간소하고 단출하고 담백한 맛..그게 조촐한 식사의 맛이자 멋이고 이즈음 제 삶의 지향점이기도 하니까요.
변화, 변화로 말하면 식습관의 변화는 거의 필연적인 거 같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일단 고기 빠지죠. 거기다 물이 흥건한 국, 탕, 찌개 종류가 모두 빠지죠. 남는 것 밥, 떡, 식빵, 누룽지, 볶은 곡식, 이따금 면 밖에 없어요. 이 위주로 자연스레 식단이 재편되겠죠. 하루 두 끼 중 주식인 아침 메뉴는 현미콩밥에 나물 두어 가지랑 청국장 두부 건더기 넣고 썩썩 비벼 김치 곁들여 먹는 내식대로 비빔밥. 아침 메뉴는 넉 달째 고정. 점심은 현미 찹쌀떡에 통밀식빵 댓조각, 볶은 곡식 한 움큼이 주중週中 권장식..하지만 주말에는 먹고 싶은 것(이래봐야 면 종류지만)으로 살짝 외도하기도 합니다.
이래 보니 뭔가 하려는 의지가 보이고 제법 성취가 있는 듯싶기도 하지만, 제 밥물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부실 투성입니다. 한 마디로 군기가 빠진 거죠. 문제는 저녁인데.. 빠질 수 없는 술자리에서 과일 안주 싸 가지고 가 맥주와 더불어 분위기 맞추는 건 애교로 봐준다 치고.. 아 글쎄 저녁 안 먹기로 했으면 깨끗이 건너뛰어야지, 혈당치가 떨어진다는 핑계로 꼭 커피 한두 잔으로 당분을 공급하는 건 뭐고, 그것도 모자라 계절 과일을 소쿠리 채 작살내는 건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이래저래 제 밥물 50점을 넘기 어렵습니다. 가열찬 연단으로 내년 이맘때는 부디 60점을 넘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