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에는 또 다른 쿠데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베냐민 지파에서 일어났습니다. 사울의 가문이 속한 지파입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1 그 즈음에 불량배 한 사람이 그 곳에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세바였다. 그는 비그리의 아들로서, 베냐민 사람이었다. 그는 나팔을 불면서, 이렇게 외쳤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얻을 몫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이새의 아들에게서 물려받을 유산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아, 모두들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자!"
2 이 말을 들은 온 이스라엘 사람은 다윗을 버리고,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라갔다. 그러나 유다 사람은 요단강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기들의 왕을 따랐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반역은 사울이 속했던 베냐민 지파가 주동이 돼서 일어났는데, 본문의 기자는 그 주동자를 불량배라고 적었습니다. 쿠데타이기는 하지만 반대 세력의 지도자를 불량배라고 지목했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잃고 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이 분열될 조짐이 이렇게 다윗의 통치 후반기에서부터 불거지고 있었습니다. 압살롬 사건의 후유증은 죄 없는 후궁들에게도 미쳤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3 다윗은 예루살렘의 왕궁으로 돌아온 뒤에, 예전에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 둔 후궁 열 명을 붙잡아서, 방에 가두고, 감시병을 두었다. 왕이 그들에게 먹을 것만 주고, 더 이상 그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죽을 때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냈다.
죄는 압살롬이 지었고 다윗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데 벌은 후궁들이 받고 말았습니다. 인간세상이 그렇습니다. 죄는 힘 있는 사람들이 짓고 피해는 소시민들이 당합니다. 이미 압살롬과 관계를 맺은 후궁들을 다윗이 다시 전처럼 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풀어주던가, 아니면 궁궐 안에서라도 여생을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조치해주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궁핍하지 않도록 아낌없이 지원도 해주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죽을 때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게 했다니 이런 사람을 어찌 성군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기자는 이런 일을 기록해놓고도 가해자들에 대한 비판도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드러내지 않는 게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삼천 년 전의 사람에게 오늘날과 같은 인권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다만 이런 기록을 아무 의식 없이 그저 성경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이유로, 다윗의 비겁한 처사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못하거나 아무런 인식도 하지 못하는 목사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딱할 뿐입니다.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며 바로 잡아야 할 일입니다. 저와 교우님들이 이 작업을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베냐민 지파에서 일으킨 쿠데타 이야기로 돌아와서, 왕은 반란군을 토벌할 임무를 이번에는 요압이 아니라 다른 장수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이 지휘권을 맡긴 장수를 죽이고 자기가 군대를 통솔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러 갑니다. 반란군 지도자인 세바가 아벨이라는 성읍에서 방어진을 구축하자 요압은 총공격을 준비합니다. 또 다시 대규모 내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과 담판을 벌여 시간을 벌고 주민들을 설득해서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넘겨주어 사태를 해결합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위기 때마다 평범한 여인이 등장해서 사태를 해결하는 경우가 꽤 많이 나옵니다. 성서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데, 여성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비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여성의 능력과 활약상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본문의 기자가 의도하는 것이 과연 그런 것인지 의심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적의 장군이 여인에게 암살당하는 장면을 그리는 성서기자의 의도는 여성의 인권적인 측면을 부각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장이 하찮은 여인에게 당했다는 점을 부각시켜 패배자를 모독하는 데 있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20장 말미에는 다윗의 관리들의 목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압은 다시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사관과 서기관에 대한 기록도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감역관이라는 직책이 들어가 있습니다. 강제노동에 동원된 사람들을 현장에서 감독하는 관리입니다. 8장에도 관리들의 목록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감역관이라는 직책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서 건축 사업을 벌였다는 증거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솔로몬 시대가 되면 건축 사업은 더욱 활발해지고 강제노역으로 힘없는 백성들이 몸살을 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