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나 특공대는 있습니다. 한국의 특수부대도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데요. 특히 이번에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정말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보여줬던 대단한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대한민국 해군함이 1년에 한번씩 세계 순항훈련을 하는데, 유럽으로 가기 전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에 정박해 약 1주일을 머물다 갑니다. 이때 이틀씩 주어지는 자유시간에 해군들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투어를 하는데 제가 3년 동안 매번 이 해군 팀 가이드를 했었습니다. 2009년에 최영함의 청해 부대를 가이드 하는 행운(?)이 있었는데,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이 분들이 이번에 정말 잘 싸워주셔서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이집트 대 테러특공대원들>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집트의 특수부대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GlobalFirePower에 따르면, 이집트는 현재 군사력으로는 세계 17정도 됩니다. 한국은 12위를 기록했네요.
그런데 1위부터 16까지의 국가들 중, 이스라엘(11위)을 제외하고는 아프리카,중동 지역의 그 어느 나라도 끼어 있지 않습니다. 그 얘기는 17위를 차지한 이집트가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최고의 군사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무바라크 대통령 재위 당시 미국과 실리 외교를 추구하면서 엄청난 원조를 받았었는데 이때 국방력이 급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이집트가 걸어 온 길은 남다릅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군사 강국으로 거듭났던 겁니다. 특히 오래 전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공포의 이집트 특공대의 얘기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1981년 암살당하기 직전의 사다트 대통령(우)과 무바라크 부통령(좌)>
1970년 나세르 대통령의 뒤를 이은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시절입니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그는 상당히 친미주의 성향을 가졌었는데 주변 아랍국가들과 상의 없이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는 바람에 이집트가 아랍연맹에서 강제 탈퇴되고 급기야는 1981년 이에 불만을 품은 극진 이슬람주의 장교들에게 군대 사열 중 암살당했습니다. 그 덕에 옆에 있던 살아 남은 무바라크가 부통령의 자리에서 대통령이 된 것이죠.
<1978년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와 평화 협정을 맺은 사다트 대통령(좌)>
<10월 전쟁 기념 군사열 중 암살당하는 사다트 대통령,37발의 총상을 입고 즉사>
때는 1977년, 사다트 대통령은 불안한 중동 아프리카 정세와 시시각각 발생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으로부터 이집트를 보호하고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의 준비단계에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정예요원으로 구성된 이집트 대 테러부대를 창설하게 됩니다. 부대 창설 후 불과 1년 뒤, 이 대 테러특공부대는 실전에 투입되게 됩니다.
지중해에 있는 사이프러스 섬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전선 소속의 테러리스트들이 사이프러스 에어소속의 민항기를 납치해 공항에서 승객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짐과 동시에 사다트는 79명의 대 테러특공부대를 사이프러스로 급파했습니다. 이미 사이프러스 특공대원들이 테러리스트들과 대치하고 있었으나 협상의 진전이 없자, 이집트 특공대의 지휘관은 사이프러스 측에 사전 통보 없이 45명의 정예 요원을 활주로로 침투시켰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이집트 특공대의 위용에 놀란 사이프러스 측은 테러리스트로 오인하고 즉각 사격을 실시했고 이에 맞서 이집트 특공대원들도 용맹하게 응사했습니다. 이 난리통에 테러리스트들은 인질을 전원 사살했고 결국 이집트와 사이프러스 사이의 치열한 총격전 끝에 15명의 이집트 특공대원들이 사망했습니다. 사이프러스 측의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테러리스트들을 전원 사살 또는 체포했지만 18명의 인질 또한 전원 사망했습니다.
<사이프러스 작전 당시 사망한 이집트 특공대원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이 사건이 터진 뒤 사다트는 유럽의 유명한 훈련 교관을 초빙해 좀 더 체계화 된 훈련과 아낌없는 예산으로 대 테러특공부대를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이름도 Task Force 777로 바꿨습니다. 이 777부대는 절치부심하여 무바라크가 정권을 잡은 1981년 이후에도 이집트 최고의 정예 특공대원으로 거듭나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5년 11월 24일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이륙하여 이집트 카이로로 향하던 이집트 에어 보잉 737이 3명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중 납치되어 지중해의 말타섬에 비상 착륙한 것입니다. 승객 92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운 이집트 에어를 구출하라는 777 부대의 출격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리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당시 이집트 상황에서 자신을 리비아 리더를 위해 일한다고 밝힌 테러리스트 대장 아부 니달은 납치한 비행기를 리비아로 데려 가기 위해 말타 정부측에 비행기 연료를 채워 넣을 것을 종용했고 이를 들어주지 않자 10분마다 인질을 한 명씩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여성부터 머리에 총상을 입히고 비행기 밖으로 던졌습니다.
총 5명의 인질이 이런 식으로 죽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집트의 777부대는 공격을 개시하게 됩니다.
그들의 작전은 비행기 기체에 폭탄으로 구멍을 뚫고 테러리스트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재빨리 그들을 진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폭탄을 사용해 기체에 구멍을 내긴 했지만 이 폭탄의 양이 너무 많아 결국 인질 수십 명이 사망했으며 기체 내부는 누구도 분간하기 힘든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777 부대는 즉각적인 투입을 머뭇거리고 약 1분이 넘는 시간을 지체하게 됩니다. 곧이어 기체 내부 진입 후에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사살해 버렸습니다.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뚫린 문으로 겨우 비행기에서 탈출한 인질들이 몇 있었으나 깜깜한 밤에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오인한 활주로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777부대 저격수들의 총에 모두 사망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을 포함해 인질로 잡혀 있던 민간인들까지 총 60명이 사살되고 나머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진상 조사가 있기 전까지 테러리스트 전원을 사살했다고 자국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성공한 작전인 양 선전을 했습니다.
이 후로는 그 어떤 테러리스트도 777부대가 있는 이집트의 항공기를 납치하지 않았습니다.
<폭탄으로 인해 화염에 휩싸인 이집트 에어 보잉737>
<작전 종료 후 생존자 구출>
오늘날 세계 17위의 군사 강국이 되기까지 이집트가 겪은 시행착오 중 대표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이집트 특공대 Task Force777 입니다.
777부대는 이 사건 후 해체되었다가 후에 다시 전 무바라크 대통령에 의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Delta Force나 Navy Seal 등의 최정예 특공대들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현재는 카이로 남부에서 주둔 중이며 최신 무기와 장비로 무장하고 세계적 수준의 특공부대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현재 이집트 대 테러특공대원들>
<금번 이집트 민주화 사태 당시 오천년의 이집트 유물을 사수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급파된 이집트 대 테러특공대원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제발 박물관에서만은 인질극이 벌어지는 일이 없기를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첫댓글 정말 말 그대로 무서운(?) 특수임무 부대군요.. ㅎㄷㄷㄷ 그나저나 방탄복 반갑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