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淸)나라 제7대 황제(재위 1796~1820). 즉위후에도 태상황제가 된 건륭제가 실질적으로 통치하였고 태상황제의 사망 후에야 친정을 폈다. 백련교의 난을 평정하였으나 천리교의 난, 회족(回族) ·먀오족[苗族] 등의 반란으로 청나라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름은 영염(
永琰)이었으나 후에 옹염(
顒琰)으로 고쳤다. 묘호(
廟號)는 인종(
仁宗). 건륭제(
乾隆帝)의 열다섯째 아들이다. 건륭제 생존 중인 1796년 선양(
禪讓)을 받아 즉위하였으나 태상황제(
太上皇帝)가 된 건륭제가 실질적으로 통치하였고, 1799년 태상황제의 사망으로 친정(
親政)을 폈다. 친정 즉시 권세를 부리던 건륭제의 총신(
寵臣) 화신(
和珅 )을 자살하게 하고 후베이[
湖北] ·쓰촨[
四川] ·산시[
陝西] 지방을 소란하게 하던
백련교(
白蓮敎)의 난에 직접 대처하였다.
1802년경 난이 평정되었으나, 광둥[
廣東] ·푸젠[
福建] ·저장[
浙江] 등 남동해안에서 채견(
蔡牽)을 중심으로 한 난이 일어났고, 1813년 천리교(
天理敎)의 난이 일어났으며, 그 중 1부대가 북경의 궁성에 난입하였다. 또 회족(
回族) ·
먀오족[
苗族] 등의 반란이 일어났고, 한편 외국세력도
아편을 들여오는 등 중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경제의 치세는 청나라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전환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