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매 마고에서 시작된 한민족(47)
여자가 단군인 시절 "마고성"
지난해 여름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사태로 여성가족부가 생겨난 이후 여성가족부 폐지의 소리가 최고조로 올랐었던거 같다. 그럼에도 정책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여성이 차지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시절이 돌아온 영향도 있겠지만, 뿌리 깊게 박힌 성리학이 뽑히고 있다는 증거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모든 상황에는 인과가 있듯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런 시절에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여성들이 보이는 다소 우려스러운 행보들은 걱정스러움을 자아내게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과 남성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조화의 관계
모계사회의 전통은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의 중국 소수민족인 모수족(모쒀족)이나, 중국 리장고성의 나시족, 인도의 소수민족인 카시족,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티벳 유목민 록파족, 남미의 모치카문명,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존의 여전사를 모티브로한 영화 원더우먼과 같은 경우는 모계 사회로서 마고가 단군이였던 마고성시대의 전통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추정 할 수 있다.
여기서 세상 돌아가는 근원적 개념인 천지자연적 원리에 입각하여 음양의 역할 대비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음과 양을 말하자면 보통 여자와 남자, 안과 밖, 땅과 하늘이 대표적인 대비가 될 것이다.
좀 더 세분화해서 비유하자면 움직임이 큰가 적은가, 즉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또한 들어갔는가 나와있는가는 우리들 생식기 구조가 그리되어 있고, 인간 세상의 존재 유무를 가르는 중요한 개념이 또한 이 개념이다.
그리고 음양으로 나뉘어 이 세상에 주어진 아주 중요한 본분은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말도 있듯이 남자는 생성시키는 역할이라면, 여자는 기르는 역할이다.
이는 세상적 모든 요인에 적용된다. 남자는 창조력, 여자는 교화력, 그 남녀가 어우러져 발생되는 치화력으로 세상에 발휘하여 탄생되는 것이 가정이다.
마고성의 경우 역시 이와같은 이치 이다. 천지자연의 창조력이 발동하여 생명의 탄생이 있은 이후 마고성은 교화의 울타리가 되어준 시대이고, 씨의 출현으로 더이상 담아 놓을 수 없이 팽창된 개념이 되다보니 마고성 출성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뚫고 생성시켜야 하는 남성의 역할이 우선되어야 하는 환경에 직면하다보니, 부도지에 언급된 내용과 같이 황궁씨에서 이어진 행보가 유인씨, 한인씨, 한웅씨, 한검씨로 이뤄진 국가의 형태로 흘러오면서 이씨 조선시대에 이르러 그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 것이 우리 민족의 장구한 음양의 맥이 되는 것이다.
음과 양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이 천지자연의 원리에 입각하여 도래한 이치는 음양조화의 세상으로 도래한 것이다.
지금 여성의 인권이 상승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여성의 시대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간 억눌려있던 여성의 본질을 일깨워 남과 녀가 또는 녀와 남이 나란히 이 세상에 치화하는 세상으로 흐르기 위한 여성들의 기지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번글의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유전적 개념으로 봐도 남자의 씨는 구분이 되어야 유전적 결함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의 좋은 예는 유럽 왕가들의 근친혼으로 일어난 유전적 결함이 그 증거라고 하겠다. 이러한 근친혼의 예는 고려나 신라 왕족에도 있어왔던 폐단이긴 했지만, 그러한 부분을 막기 위해서 아버지의 성씨(姓氏)로 구분을 하고 같은 성씨는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여 지켜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불평등"적인 전통이라는 대립적 시각 보다는 성씨가 남자를 통해서 내려온 것도 이러한 유전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여자 단군은 왜 없어요?
단군47위를 그려내고 세상에 공유를 하고 보니 이 후 20여녀간 들어온 많은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 중 나를 한동안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말이, 이번 글의 주제와도 같은 "여자 단군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이다.
위의 성씨 경우를 보아도 알수 있듯이 시대적, 환경적 요인으로 보아도 번성하려면 남성의 역할이 우선되어야 효율적이었기에 마고성 이후의 여성이 단군이었던 시대는 점차적으로 그 맥을 잃어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개념으로 나의 예를 들어보면,
내가 이와같은 그림들은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남편이 끌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천지자연의 원리에 순응하여 이뤄낸 우리이기에 이 또한 우리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왜 이런 외로운 삶을 택했을까"라는 생각을 한번씩 해보지만, 그러한 생각을 세상적 이치에 입각하여 견주어 본다면, 여자로서 길러내야 하는 나의 본질적 역할을 그림으로서 표현하였다는 것이고, 그 역할을 남편이 뚫어주고 그릴 수 있는 씨앗을 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름 주어진 팔자대로 잘 살아온 것이다.
나도 남편도...
나 역시 아들이 장성하여 장가를 갈 나이가 되다보니 어서 결혼해서 손자 손녀를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군으로서 마고성을 이끌었고, 4개 씨족(황궁씨, 백소씨, 청궁씨, 흑소씨 )이 마고성 출성 이 후 자손을 점지해 주는 삼신할미로서의 역할, 그것과 같은 섬리가 아닌가 한다.
최근에 붉어지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여성의 입지가 아직은 완전히 선양되지 못한 부분도 적잖이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정부 조직이 편향되게 편성되어 좌지우지 될 개념은 아닌것이다. 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방식이 아니라, 되려 같은 것을 바라봐야 하는 조화로운 대상이어야 하는 남자와 여자 간의 관계가 대립과 경쟁의 대상이 되는 악영향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낳게한 가장 큰 요인은 유교의 성리학이 성행했던 이씨조선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 한 예로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들어보고자 한다.
칠거지악의 내용은 대부분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와 함께 내려오는 인간366사(참전계경 參佺戒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단군시대 때에 홍익하는 삶을 위해 가르침으로 내려온 인간366사의 이치와 이씨조선에서의 칠거지악으로 여자를 옥죄는 내용의 이치와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보면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죽는다는 내용을 비교해 보자.
인간366사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 남편을 잃은 슬픔에 아내가 따라 죽을 정도로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개념인가 하면, 칠거지악에서는 의례히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죽어야 한다는 제도적 강요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듯 남성적인 것에 여성이 강요되어서도 안될 것이지만, 여성적인 것에 남성이 강요되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남과 녀는 조화로워야 그 사이에서 창조라는 제3의 무언가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잘난 그 어떠한 절대적인 존재가 뒤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가 없는 천지자연이 돌아가는 대세적 이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가 대립하면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을뿐더러 시간이 흘러감으로 인한 서로의 소멸만 있을 뿐이다.
여자가 단군인 시절인 마고성에서는 여자가 단군이었야 될 환경적 적절성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남성의 주도하에 유지되었어야 할 환경적 적절성이 있어왔기에 그렇게 역사되어 인류가 흘러왔다.
그렇게 흘러 온 시대적 상황이 이제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로 흘러가야 할 시대적 환경에 접어들면서 대립의 양상이 되는것 또한 자연적인 순리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대립은 조화의 맛을 높히기 위해 가미하는 조미료 정도이고, 빠른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대세를 따른다는 것은 대립되어서는 그 흐름을 따를 수가 없다. 그것은 그 대세의 흐름에는 모두가 해당되기 때문에 조화로서 대세를 따라가야 순리적인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립과 상관하여 거듭되는 말이지만, 자유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는 방종(放縱)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십여년 사이 여성시대라 해서 일부 여성들에게서 이러한 방종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곤 한다. 따라서 여성성이 다른 존재에 대한 권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유도 상대가 있어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여 누리는 자유가 곧 방종이 되는 것이며, 같이 누릴 수 있는 더 큰 자유를 재물로 삼는 것이며, 이는 자유에 대한 갈망만 더 커지는 결과만 낳게되는 것이다.
끝으로 배달전서(倍達全書)의 태고사(太古史)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으로 글을 맺음한다.
하느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 신장과 선관들아 뭇별들 중에서 오직 땅은 밝고 어둠이 알맞고 차고 더움이 고르니 낳고 기르기에 알맞은 곳이라. 너희들은 가서 서로 협력하여 하늘의 공적을 잘 밝힐지어다. 물건이란 낳음이 없는 것도 있고 낳음이 있는 것도 있으니 낳음이 없는 낳음이 없는 것은 불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낳음이 있는 것은 능히 불어나다가 마침내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니 오직 낳음이 없는 것에 의탁하여 낳음이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니라.
양 홀로 낳지 못하고 음 홀로 변화하지 못하며 기울게 맞서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양과 음이 서로 같이 어울려야만 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니라. 참으로 낳아서 변화하지 못하면 이룰수가 없으니, 암컷과 수컷이 짝함으로써 알을 낳아 번식하여 서로 이어져서 멸망하지 않게 할지어다.”
하시니 모든 신장과 선관들은 명을 받들어 각각 자기 직분을 맡아하되 차고 덥고 마르고 젖고 하기를 때맞게 하여 음과 양이 고르니 기고 날고 변화하여 헤엄치고 심는 온갖 물건이 지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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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 배달문화원 성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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