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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5대 교리와 복음의 일치》(1편)
고은교회 횡부일목사
<칼빈은 주께서 경륜을 따라하시는 교회개혁의 도구였다>
누구나 다 아는 중세 종교개혁자 칼빈은 주께서 그의 계획의 때를 따라 실행해 가시는 그분의 거룩한 교회 개혁의 역사에 도구 되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종교 개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 그분의 교회된 모습으로 거룩해지고 새롭게 되어져 가는 역사에 쓰임 받은 일군된 그릇인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주님의 교회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개혁을 한다면 그건 주의 교회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들이 교회 이름을 빌려 저들이 원하고 좋은 대로 바꾸고 변화시켜 가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보면 개혁을 말하는 개혁주의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졌던 중세 때에 비하면 개혁주의자라는 사람들은 수천 배 아니 수만 배 이상이 될 것입니다.
너도나도 개혁파, 개혁주의, 개혁교회를 한다고들 하지만 어디 교회들이 성경적인 교회된 모습으로 실제 개혁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진정한 교회개혁은 주께서만이 하십니다.
물론 가칭교회가 아닌 그분의 언약교회만입니다.
그분이 교회 구원을 계획하시고 계시 언약하신 복음대로 교회를 복음으로 불러 구별하여 세우시고 또한 그 복음의 능력으로 그 복음에 합당한 교회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개혁은 복음의 역사에 있는 것입니다.
<칼빈은 복음의 사역자>
우리가 기독교 안에서 주의 사역자들로 흔히 구별하기를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 등으로 구분 짓는데 그러다 보니 각자가 다른 것 같고 하는 일이나 입장이나 주 역할에 차이가 있는 것 같이 달리 구분하지만 모두가 주께서 부르시고 주께서 쓰시는 도구이며 복음의 일군들입니다. 그리고 모두 교회구원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복음의 동역자 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도 복음의 일군으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성경에 있는 복음으로의 교회구원의 원리를 성령의 깨우침과 능력의 역사로 증거 하여 세운 것입니다.
복음에 있는 주의교회와 복음으로 실현되고 복음의믕력으로 거룩해지는 그 은혜의 역사를 증거 하므로 교회개혁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속에 복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의 압축이고 중심이 되는 5대교리는 복음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서 성경의 전부가 되고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언약과 복음의 능력의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의 역사로 하시는 교회구원의 원리와 역사를 증거한 것이 칼빈의 5대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는 ? 전적 타락, ? 무조건적 선택, ? 제한적 속죄, ? 불가항력적 은혜, ? 성도의 견인입니다.
이것은 칼빈이 이렇게 요약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중세 때 칼빈의 신학에 반대되는 알미니안주로 인해 당시 개혁파 교회들이 화란의 도르트에서 총회를 열고 (1618-1619) 오직 은혜의 구원을 하나님 주권적인 입장에서 세운 그의 신학 전판에서 이 다섯가지 교리를 중심으로 채택하여 만장일치로 결정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 칼빈의 5대교리입니다.
이것도 성령의 간섭의 역사를 통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개혁신앙을 하는 개혁파교회들의 신앙의 교리들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원주의가 판치고 신앙은 짬뽕되고 이름만 개혁주의자들인 인본적 개혁주의자들이 판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바른 구원의 신앙의 원리를 알고 굳게 세워가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서 성경에 나타나있는 교회구원의 원리와 실제역사를 바르게 세운 칼빈의 5대 교리를, 특히 장로교회들은 신앙의 교리로 가르치고 신앙하게 해야합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 말씀으로 된 것으로 성경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작정과 계획이 있고 또한 그 작정을 계시로 알리고 구원을 언약대로 구원을 역사적으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의"이고 복음의 역사인데 바로 이것을 성령의 계시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교회 구원의 원리와 역사를 그대로 정리하며 세운것이 그의 신학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신학과 신앙교리는 그 사람의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성령의 도구된자로서 교회구원의 원리와 그역사적 구원을 말하는 복음의 진리로 증거하여 교리로 세운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 중 전적타락과 복음의 일치>
전적인 타락이라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납득을 잘 못하며 의구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서로 규례를 지키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통 세상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반박함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들도 이 말을 이해 못 하고 거부하며 그렇게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교리가 필요하고 이런 교리가 증거하는 말씀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우리 자신들을 제대로 조명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죄의 권세 아래 속하여 죄의 본성인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가 됨에 있습니다.
창세기 6:3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씀하심에 있습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라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그저 육체의 소욕만 가지고 사는 존재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점을 증거 하기를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곧 지금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1-3)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죄와 허물의 징벌로 죽게 되었고 그 형벌 중에 하나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죽어가는 삶을 사는 자가 된것입니다.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증거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로마서3:9-18절에 보면 죄 아래 인생들이 어떻게 전적으로 타락되어 있는지 잘 말씀해 주는데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보다 더 죄로 인해 저주받은 인생의 전적 타락의 상태를 잘 말씀해 주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죄인입니다.
그 죄의 증거는 그 죄로 인한 형벌로 죽는 것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었고 죽어갑니다. 죄가 죽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증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이라는 것은 아담 때문에 그 후손 모두가 죄인으로 낙인찍힌 원죄뿐만 아니라 죄인된 사람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을 낳고 그래서 죄의 본성으로 자범죄를 쌓아 영원한 형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모든 인생들에게는 누구도 의인이 없고 다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된 인간들끼리 의로움을 말하고 선한 사람을 논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이미 교도소에 형을 받는 사람들끼리 너는좀 의롭고 저 사람은 좀 선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것 입니다.
무엇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죄를 벗어 의롭게 될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선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전적 타락교리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죄인된 인간상태를 찾아 증거하여 세운 말씀교리입니다.
....계속...
※※ 내용이 많아서 몆편으로 나누어 이어 2편을 올립니다.
《칼빈의 5대교리와 복음의 일치》(2편)
무조건 선택과 복음의 일치>
칼빈은 구원의 원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가 그 분이 이미 작정하심(예정)에 있었음을 성경에서 찾아 증거하기를 그것은 무조건적 선택임을 밝혔습니다.
복음이 그렇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구원의 소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비밀로 이미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9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 때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함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작정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으로 미리 정해진 바이고 그것이 그대로 언약되고 선포된 것이 복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역사가 미리 선택하심으로 되어짐을 분명히 말씀 해 주시는데 그 선택은 우리가 생기기 이전이니까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로마서 9:8-13절을 보면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에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그가 나기 전에 더 앞선, 그러니까 야곱이 구원받을 백성으로서 그 어떤 자세나 조건이나 상태를 가질 수 없는 그 전에 하나님은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주권적 일입니다.
바울사도는 선택으로 된 구원의 원리에 대해 에베소서에서도 잘 증거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3-6)고 말씀하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미 예정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함을 입음에 대해 바울은 "모든 일을 그 마음에 원하는 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1)라고 증거했습니다.
때문에 로마서 8:30에 보면 "이라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잔치 비유에서 임금의 말을 통해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자들에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하며 사환들에게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며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4)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5:18-19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택자(예정)의 교리는 성경에서 구원의 원리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맡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4-5)고
증거했는데,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에 하나님께서 교회로 택하신 자들이 있었음과 그래서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그 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고 그 능력의 역사를 따라 믿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서게 된 것임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구원의 역사인데 이 점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3-14)
그러니까 교회로 이미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있고 그 택자가 교회로 거룩히 구별되는 역사는 성령께서 하시되 그의 종 된 자로 증거되는 복음으로서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영광된 교회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시에 그렇게 쓰임받은 것 처럼 칼빈도 중세당시에 그렇게 복음의
사역자로 쓰임받은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와 내용의 원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은 그 분이 이미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바를 계시로서 알려주심이 언약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 구원이고 그 교회는 만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이미 예정 된 것입니다. (딤후 1:9, 엡 1:4-5) 그러니까 칼빈은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로서 선택의 은혜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 복음의 진리임을 확증하여 그대로 증거한 것이 선택의 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언약교회는 아무리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등이
저들의 세상인양 주도하고 세력을
키우며 권세를 부려도 복음은
진리로 살아서 그능력의 역사로
그어떤 상태속에서도 교회구원과
거룩한 모습으로서 교회개혁을
주님의 주권의 역사로 성취되어 감을 칼빈은 원리로 세움에 쓰임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종교개혁자가 아니요 복음으로 교회개혁이 이루어짐에 증인된 자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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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 속죄와 복음의 일치>
제한적 속죄라는 칼빈의 교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구원의 원리를 안다면 당연히 이 교리에 동의하고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의 교리를 동의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자들도 많은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구원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구원의 말씀인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복음 혹은 최초의 복음이라고 하는 창세기 3: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의 언약으로 잘 증거 되고 있음을 봅니다.
창세기 3:15를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여자와 원수가 되는 "너"는 하와를 미혹한 뱀을 말하며 그 뱀은 마귀요 사단(계 20:2)을 말합니다. 여기서 뱀의 머리를 밟을 여자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을 위해 그계통으로 오신 메시야를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3:8를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심에 보듯이 그리스도가 오심은 마귀로부터 여자와 여자의 후손을 구원해내기 위하심입니다. 그 역할은 오히려 마귀가 발 뒤꿈치를 상하게 함인데 그것이 바로 대속의 죽으심인 고난과 십자가입니다.
이 최초의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 구원의 언약으로서 오실 메시야가 여자의 후손(언약의 후손)으로 오시어 그 여자의 후손을 위해 대속의 사역을 하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여자의 후손을 위해 언약의 씨로 오실 메시야는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1를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 할 자 이심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오셨고 자기 백성을 위해 대속의 사역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은 곧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셔서 거룩히 구별시킨 자기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제한시키신 자기 백성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세상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니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6-9)고 하신 예수님의 기도 말씀에도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오심이 아니요 세상중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즉 십자가 피로 사시사 그의 것 즉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사도행전13:4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말씀은 바울이 당시 이방의 땅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증거할때 이방인들 가운데서
영생(구원)을 주기로 작정된 자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들만이 복음을 들음으로 다 믿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제한적 속죄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그의 것으로 미리
택하심바된 자들 곧 교회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가 복음의 능력으로 그대로. 이루어짐을 칼빈은 증거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카톨릭은 이런 복음이 없고 진리는 왜곡되어 비진리로 이용하며 교황중심의 인본적인
가칭교회로 그본색을 들어내던
중에서 하나님은 역시 언약된
그분의 교회된 자들을 진리의 복음증거자들을 통해 교회구원을
거룩히 개혁해내신 것입니다.
칼빈은 그때의 교회구원과 세속교회인 캐톨릭으로부터 거룩히 구별되는 교회개혁의 역사를 위해 구원의 원리로서의
복음을 복음의 비밀로, 복음의 언약으로, 그리고 복음의 능력의
역사로서 성취를 그대로 순리와
이치대로 세워 증거한 자로
쓰임받은 것입니다.
제3편~칼빈의5대교리와
복음의 일치....
<제한적 속죄와 복음의 일치>
제한적 속죄라는 칼빈의 교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구원의 원리를 안다면 당연히 이 교리에 동의하고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의 교리를 동의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자들도 많은데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구원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구원의 말씀인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복음 혹은 최초의 복음이라고 하는 창세기 3: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의 언약으로 잘 증거 되고 있음을 봅니다.
창세기 3:15를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여자와 원수가 되는 "너"는 하와를 미혹한 뱀을 말하며 그 뱀은 마귀요 사단(계 20:2)을 말합니다. 여기서 뱀의 머리를 밟을 여자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을 위해 그계통으로 오신 메시야를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3:8를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심에 보듯이 그리스도가 오심은 마귀로부터 여자와 여자의 후손을 구원해내기 위하심입니다. 그 역할은 오히려 마귀가 발 뒤꿈치를 상하게 함인데 그것이 바로 대속의 죽으심인 고난과 십자가입니다.
이 최초의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 구원의 언약으로서 오실 메시야가 여자의 후손(언약의 후손)으로 오시어 그 여자의 후손을 위해 대속의 사역을 하실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여자의 후손을 위해 언약의 씨로 오실 메시야는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1를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 할 자 이심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오셨고 자기 백성을 위해 대속의 사역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백성은 곧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셔서 거룩히 구별시킨 자기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제한시키신 자기 백성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세상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니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 17:6-9)고 하신 예수님의 기도 말씀에도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오심이 아니요 세상중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즉 십자가 피로 사시사 그의 것 즉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사도행전13:4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이말씀은 바울이 당시 이방의 땅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증거할때 이방인들 가운데서
영생(구원)을 주기로 작정된 자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들만이 복음을 들음으로 다 믿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제한적 속죄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그의 것으로 미리
택하심바된 자들 곧 교회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가 복음의 능력으로 그대로. 이루어짐을 칼빈은 증거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카톨릭은 이런 복음이 없고 진리는 왜곡되어 비진리로 이용하며 교황중심의 인본적인
가칭교회로 그본색을 들어내던
중에서 하나님은 역시 언약된
그분의 교회된 자들을 진리의 복음증거자들을 통해 교회구원을
거룩히 개혁해내신 것입니다.
칼빈은 그때의 교회구원과 세속교회인 캐톨릭으로부터 거룩히 구별되는 교회개혁의 역사를 위해 구원의 원리로서의
복음을 복음의 비밀로, 복음의 언약으로, 그리고 복음의 능력의
역사로서 성취를 그대로 순리와
이치대로 세워 증거한 자로
쓰임받은 것입니다.
4편: 칼빈의 5대교리와 복음의 일치....
<불가항력적 은혜와 복음의 일치>
칼빈은 구원의 한 원리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그 분의 작정과 성취의 역사로서
인간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택하신자에게 주권적으로 이루워짐을 복음을 통해 깨닫고 증거한 것입니다.
로마서 8:30절을 보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에 있음을 말씀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는 알미니안주의자들처럼 인간의 의도에따라 믿음과 구원이 가부되는 선택사항에 달려 있지 않음을 증거하는 것이 칼빈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인 것입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구원이 인간이 생겨서 의도하기를 상상도 할수없던 만세전에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1:9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점에 대해 잘 증거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서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면의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세게 하려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 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것이 없느냐"고 (롬 9:8-16, 20-21) 증거함에 보면 잘 말씀되고 있듯이 하나님은 야곱을 이미 태중에서 택하시고 미리 그 어미에게 말씀하심 같이 택하심을 따라 부르시는데 그것을 인간이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나 하고 난 이후, 욕심대로 안 되면 애굽으로 수 차례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은혜의 능력으로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언약된 구원을 원하지 않습니다.구원해 놓으시고 구원을
살아가는 길에 갔다 놓아도 싫다고 돌아가려는게 죄아래있는
인생들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언약된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고 작정하사고 언약하신 자들을
그들이 원치않고 도망가려하고 또한 여러가지로 문제있고 연약해도 하나님 능력의 열심으로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을
원치도 원할 수도 없는 우리를
토기장이 같은 주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역사하신 것을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과 복음의 일치>
칼빈이 증거하는 성도의 견인은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끝까지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과 또한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보전하시고 또한 성화되도록 양육해 가심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원리로써 복음이 바로 그것을 증거합니다.
칼빈은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경의 역사에 힘입어 그 복음을 깨닫고 증거해 세운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구원의 언약을 따라 앞서 구원을 입고 구원에 이른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가 그것을 분명히 증거하여 줍니다.
예를들어 야곱은 하나님께서 이미 무조건적으로 선택 받은자요 (말 1:2-3) 또한 불가항력적 은혜로 인도받은 자입니다.
그런 야곱이 망명길을 갈 때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1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하신 바 언약의 후손과 언약의 땅에 대한 일이 다 성취가 될 때 까지 그를 지키시며 그리로 돌아오게 하며 그렇게 이루어 주신다는 이 말씀 속에 바로 성도의 견인 교리가 들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이 말년에 요셉에게 증거하기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창 48:15-16)라고 했는데 야곱은 원래 간교한 자로서의 이름처럼 육체의 소욕에 거하던 자가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 백성으로 합당한 언약의 조상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시고 성도로 합당하게 성숙시키신 것입니다.
디도서 2:11-12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말씀하심에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은 계속적으로 구원에 합당한 모습과 삶을 살게 우리를 하나님께서 양육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서 8:29~30절의 원리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우리가
아들의 형상 즉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로 서가며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을 나타내는 거룩한 교회를 이루도록함에 미리정하신 목적이 계심처럼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결국 영화롭게
반드시하심이 성도의 견인인 것입니다.
다윗도 증거하기를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고 함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성도의 견인으로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부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와 "너희 속에 착한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빌 1:6)
또한 "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13~14)고
말씀함에도 성도의 견인은 확실히 복음으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고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가 없다면 그어떤 성도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가
없으며 또한 거룩한 교회모습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과 삶으로 자라 갈 수 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 온전한 구원을 언약하시고 선포하시는 복음의
능력안에서의 교회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구원의 말씀책입니다. 이성경의 전체 내용은 교회구원의 원리로의 말씀과 교회모습을 이루며 구원을 살아가는 거룩한 모습과 삶의 규례로 되어있습니다.
칼빈의 5대교리는 주로 성경에
나와있는 교회구원의 원리로서의
복음의 진리를 찾아 성령의 역사로서 체계있게 증거하여
세운 것입니다.
한 성령안에서 역사적으로 증거되고 고백되어온 복음의 합당한 교리적 신앙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의 합당한 교회로 서갈 것이며 계속적으로 진리된 교회모습으로
개혁되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마다 칼빈처럼 쓰임받는 복음의 사역자들이 곳곳에서 교회구원을 위한 도구로서 이런 교리를 바탕으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옮긴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