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각장애인의 사진에 대한 이론적 근거: 검증과 종합
1. 먼저 구분해야 할 개념
‘시각장애인의 사진’은 하나의 고정된 장르가 아니다. 전맹 사진가, 저시력 사진가, 선천적 시각장애인, 후천적 시각장애인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진을 만든다. 촬영 목적도 자기표현, 기록, 공간 탐색, 사회적 소통, 예술적 실험 등으로 다양하다.
또한 모든 이론이 시각장애인의 사진을 직접 설명한 것은 아니다. 더글러스 맥컬러의 연구와 국내 사진교육 연구는 시각장애인의 사진을 직접 다루지만,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이나 플루서의 사진이론은 이를 해석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간접적 근거이다. 이 둘을 구별해야 이론을 과장하지 않을 수 있다.
2. 사진은 눈으로 보는 행위와 완전히 같지 않다
사진은 사람이 본 장면을 그대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사진가는 촬영 대상, 위치, 거리, 시간, 방향, 촬영 방식 등을 결정하고, 카메라는 렌즈와 센서를 통해 빛을 기록한다. 따라서 사진 제작에는 눈뿐 아니라 생각, 몸의 움직임, 기억, 카메라의 자동 기능, 우연 등이 함께 작용한다.
빌렘 플루서는 카메라를 일정한 가능성과 한계를 가진 ‘장치’로 설명한다. 사진가의 역할은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카메라 장치가 가진 가능성을 탐색하고 선택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시각장애 사진가가 자동초점, 음성 안내, 촉각 표시, 연속촬영 등을 이용하면서도 충분히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다만 플루서가 시각장애인의 사진을 직접 연구한 것은 아니므로 이는 응용 해석이다.
(출처: Vilém Flusser, 『Towards a Philosophy of Photography』)
https://ajourneythatwasnt.org/wp-content/uploads/2022/01/w04_selection-from-towards-a-philosophy-of-photography_flusser-1983.pdf
3. 지각은 시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에 따르면 지각은 눈이나 뇌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다. 사람은 몸을 움직이고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세계를 경험한다. 공간은 단순히 ‘보이는 화면’이 아니라 걷기, 만지기, 소리 듣기, 거리 판단하기를 통해 구성된다.
따라서 시각장애 사진가는 발소리의 방향, 목소리의 거리, 바람, 냄새, 햇빛의 온기, 사물의 촉감, 기억된 동선 등을 이용해 촬영 위치와 방향을 정할 수 있다. 사진은 촬영자가 눈으로 확인한 장면만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 공간을 카메라를 통해 기록한 결과가 된다. 메를로퐁티 역시 시각장애 사진을 직접 논한 것은 아니지만, 다감각적 사진 제작을 설명하는 중요한 철학적 근거가 된다.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Maurice Merleau-Pont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merleau-ponty/
(출처: Komarine Romdenh-Romluc, 「Habit and Attention」)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4110438/
4. 공간 표상과 내적 이미지는 서로 다르게 형성된다
시각장애인에게 이미지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이미지는 반드시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영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공간의 방향, 물체의 크기와 형태, 움직임, 거리, 배열에 관한 정신적 표상도 이미지 구성에 포함된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은 과거의 시각 기억을 촬영에 이용할 수 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촉각, 청각, 움직임과 언어를 통해 공간적 표상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시각장애인이 동일한 ‘마음속 영상’을 가진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표현은 비유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경험의 차이를 감추는 낭만적인 설명이 될 위험이 있다.
(출처: Frontiers in Psychology, 「Visual and Spatial Representation in Congenitally Blind People」)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psychology/articles/10.3389/fpsyg.2013.00240/full
(출처: Scientific Reports, 「The Dream Experience of Congenitally Blind People」)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10347682/
5. 교차감각과 감각대체 기술
뇌는 한 감각에만 고정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시각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촉각이나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 후두엽을 포함한 뇌 영역이 참여하기도 한다. 이를 ‘교차감각 가소성’이라고 한다.
감각대체 기술은 카메라가 얻은 정보를 소리나 진동으로 변환한다. 예를 들어 물체의 높이를 음의 높낮이로, 밝기를 음량으로 바꾸어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구도나 물체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소리로 완전히 본다’거나 ‘시각장애인은 모두 청각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설명하면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 효과는 장애 발생 시기, 훈련, 환경, 개인차에 따라 달라진다. 감각대체는 시력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을 통해 공간 정보를 해석하는 학습 과정이다.
(출처: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Sensory Substitution」)
https://neuro.caltech.edu/research/sensory-substitution/
(출처: Árni Kristjánsson 외, 「Designing Sensory-Substitution Devices」)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5044782/
(출처: Annual Review of Vision Science, 「Cross-Modal Plasticity in Blindness」)
https://www.annualreviews.org/doi/10.1146/annurev-neuro-111020-104222
6. 더글러스 맥컬러의 시각장애 사진 분류
큐레이터 더글러스 맥컬러는 시각장애 사진가의 작업을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첫째는 ‘내면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사진가는 기억, 상상, 감정, 꿈, 개념을 먼저 만든 뒤 모델과 조명, 장시간 노출 등을 이용해 이를 사진으로 구현한다.
둘째는 ‘비망막적 사진’이다. 사진가는 소리, 촉감, 냄새, 대화와 우연을 따라 촬영한다. 카메라는 촬영자가 미리 확인하지 못한 장면까지 기록한다. 이 과정은 사진이 원래부터 촬영자의 시각적 통제를 넘어서는 매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셋째는 ‘보기 위해 촬영하기’이다. 저시력 사진가는 확대, 자동초점, 고해상도 화면을 이용해 육안으로 보기 어려운 대상을 사진으로 확인한다. 이때 카메라는 작품 제작 도구이면서 시각 보조기기가 된다.
맥컬러는 시각장애인의 사진이 강한 개념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시각장애인의 사진이 반드시 개념사진이라는 뜻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전시 작품을 분석한 큐레이터의 해석적 틀이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과학적 법칙은 아니다.
(출처: Douglas McCulloh, 「Blind Photographers: Vision, Accessibility, and Empowerment in the Museum」)
https://dsq-sds.org/article/id/136/
(출처: UCR ARTS, 「Sight Unseen: International Photography by Blind Artists」)
https://ucrarts.ucr.edu/exhibitions/sight-unseen/
7. 협업과 분산된 저자성
일부 시각장애 사진가는 보조자에게 빛의 상태나 주변 상황을 질문한다. 인화, 색상 조정, 작품 설치 과정에서도 다른 사람과 협업할 수 있다. 그렇다고 창작 주체가 자동으로 보조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저자는 단순히 셔터를 누른 사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작품의 발상, 대상 선택, 촬영 지시, 반복 촬영, 사진 선택, 제목, 배열, 전시 방법을 누가 결정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시각장애 사진가가 전체 과정을 지시하고 최종 결과를 선택한다면 협업은 저자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수단이 된다. 다만 보조자의 기여가 큰 경우에는 그 역할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윤리적으로 필요하다.
(출처: Seeing With Photography Collective, 「Seeing With Photography Collective」)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7514517.2019.1641288
8. 장애미학과 ‘다르게 보기’
장애미학은 장애를 단순한 결핍이나 치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토빈 시버스는 장애가 아름다움, 완전성, 정상성에 관한 기존 기준을 흔들고 새로운 미적 형식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블라인드 비주얼리티’는 시각장애인의 감각과 경험이 기존의 시각 중심 문화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시각을 부정하는 이론이 아니다. 오히려 누가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되는지, 무엇이 정상적인 구도와 초점으로 평가되는지를 질문한다.
흐림, 기울어진 화면, 잘린 인물, 예상하지 못한 중심, 과도한 빛과 어둠은 기술적 실패일 수도 있지만 작품의 경험과 의도 안에서는 새로운 미적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결과물이 자동으로 예술적 가치를 얻는 것은 아니다. 장애는 미학적 가능성을 열어 주는 조건이지 작품성을 보증하는 표시는 아니다.
(출처: Tobin Siebers, 『Disability Aesthetics』)
https://press.umich.edu/Books/D/Disability-Aesthetics2
(출처: Mary Bunch, 「Blind Visuality in Bruce Horak’s Through a Tired Eye」)
https://journals.library.brocku.ca/index.php/SSJ/article/view/2456
9. 한국 연구에서 확인되는 의미
국내 연구에서도 시각장애인의 사진은 자기표현과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분석된다. 시각장애학교 사진수업에 관한 연구에서는 사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가르치고 볼 수 없는 사람이 배우는’ 일방적인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 사진을 통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감각과 언어를 조정하는 중간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저시력 사진가가 촬영한 작품에 관한 연구 역시 사진이 단순한 재활훈련을 넘어 개인의 감정, 관심, 경험을 표현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는 사진의 의미가 선명한 재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촬영자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 있음을 뒷받침한다.
(출처: 김미남, 「시각장애학교 사진수업 참여경험에 관한 자문화기술지」)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0704
(출처: 한상일·신수진·양종훈, 「시각장애인의 자기 표현 수단으로서 사진」)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317131
10. 사회적 모델과 문화적 권리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어려움의 원인을 개인의 손상에만 두지 않는다. 접근할 수 없는 카메라 인터페이스, 음성 안내의 부족, 만질 수 없는 전시, 시각장애인은 사진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장애를 확대한다고 본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30조는 장애인이 자신의 창조적·예술적 잠재력을 개발하고 활용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작품의 예술성을 판정하는 미학이론은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의 사진 활동이 단순한 치료나 체험 행사가 아니라 정당한 문화 생산 활동이라는 제도적 근거가 된다.
(출처: Sara Goering, 「Rethinking Disability: The Social Model of Disability and Chronic Disease」)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4596173/
(출처: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Article 30」)
https://www.un.org/development/desa/disabilities/convention-on-the-rights-of-persons-with-disabilities/article-30-participation-in-cultural-life-recreation-leisure-and-sport.html
11. 종합 결론
시각장애인의 사진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찍는가’라는 신기함으로 설명할 대상이 아니다. 그 이론적 근거는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사진은 눈의 복사가 아니라 생각, 몸, 감각, 기억, 카메라, 환경이 함께 만드는 기술적 이미지이다. 시각장애인은 청각·촉각·신체 움직임·공간 기억을 통해 촬영 대상을 파악하고, 카메라의 자동 기능이나 감각대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 필요하면 다른 사람과 협업하지만 작품의 개념과 선택을 지휘함으로써 창작 주체가 된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의 사진이 보여주는 핵심은 ‘시각 없이도 기적처럼 본다’는 것이 아니다. 사진에서 본다는 행위가 원래부터 눈에만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진은 대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행위인 동시에 관계를 맺고, 기억하고, 방향을 선택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이다.
다만 시각장애라는 조건만으로 작품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작품은 촬영 의도, 감각적 방법, 형식적 완성도, 사진 선택과 배열, 전달되는 의미, 협업의 윤리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각장애인의 사진은 기존 사진의 예외가 아니라 사진이 무엇이며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하는 중요한 예술적 실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