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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 >
여기,
영리한 각본과 정치(精緻)하게 설정된 미장센이
각축전을 벌이는 추리극 < 나이브스 아웃 > 이
있습니다.
낡은 타자기 하나로 출발했지만, 이후 30개국
언어로 8천만부가 팔린, 모두에게 각광받던
작가 할란 트롬비가 있었죠.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선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그 글로 엄청난 부와 최고의 명예를 함께
얻었습니다.
인품 또한 훌륭했지요.
가족들의 사업을 돕는 것은 물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죠.
그것도 하필 자신의 85회 생일 다음 날 아침에
말입니다.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모였던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제 9명의 가족들은 아홉 개의 '칼들
(Knives)'이 되어 서로를 '겨누기(Out)'
시작합니다.
호러 영화를 연상킬 정도로 적요(寂寥)하고도
왠지 음산한 기운이 흐르는,
고풍스러운 적갈색 벽돌 저택 앞으로 검은 개
두 마리가 낙엽을 밟으며 내달리지요.
연대 불명의 실내장식을 둘러보던 카메라는,
' 나의 집(my house), 나의 규칙(my rule),
나의 커피(my coffee)' 의 붉은색 글씨가
새겨진 머그컵을 암유(暗喩)적으로 조명하며,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의 시작을 알립니다.
추리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충직한
후계자를 자처하는 라이언 존슨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종종 진짜보다 더 정품 같은
뉘앙스를 풍기죠.
추리 장르 팬들에게 즐거운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오랫만에 오락영화의 모범(Best Practice) 으로
자리합니다.
“쉽지 않았어...이 빌어먹을 재산!”
영화 초반부, 베스트 셀러 소설가 할란 트롬비는
뇌까리죠.
자택에서 가족들 모두를 초대해 자신의 생일
축하연을 연 할란은,
이튿날 아침 가정부 프랜에 의해 서재에서
경동맥이 베어진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의 죽음은 보이는 대로 과연 자살일까요?
가장인 할란에게 나름대로의 다양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자녀들은, 모두가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죠.
할란이 죽기 전 모여 있었던 가족의 알리바이에
대해서 경찰 엘리엇과 와그너는 '일 대 일' 로
묻고 또 묻습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견제들...
그렇게,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은
의도치 않은 용의선(The suspect) 상에 오르며,
초상화와 벽난로, 앤티크로 화려하게 치장된
고딕풍 저택에 갇힌 가족과 고용인들,
그리고, 유머와 패션 센스를 갖춘 자아도취적
언변능숙형의 주인공 탐정을 아우르며,,
숨가쁘게 조명해갑니다.
먼저 가족들로는,
부동산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 중인 맏딸
린다 드리스데일(제이미 리 커티스 분) 과
맏사위로, 아내의 회사 경영을 돕는
리처드 드리스데일(돈 존슨 분),
이들 부부의 영악한 아들로, 한땐 할아버지
할란의 사랑을 받았으나 현재는 망나니로
완전히 찍힌 랜섬 드리스데일(크리스 에반스 분),
이어 할란의 작품을 내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막내 아들 월트 트롬비(마이클 섀넌 분)와
도나 트롬비(리키 린섬 분) 부부,
그들의 아들인 10대 극우 악플러 제이콥 트롬비
(제이든 마르텔 분),
다음으론 15년 전 죽은 둘째 아들의 아내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조니 트롬비
(토니 콜레트 분)와,
마르타와 친구처럼 지내는, 조니의 딸 멕 트롬비
(캐서린 랭퍼드 분),
또한 할란의 어머니로, 나이와 인지능력을
가늠하기 힘든 트롬비 노부인(케이 칼란 분)이
있습니다.
아울러 가족처럼(?) 여겨지며, 저택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고용인으론,
할란에게 신뢰받는, 히스패닉계 출신의 젊은
간병인인 마르타 카브레라(아나 데 아르마스 분),
트롬비가의 가정부로 시신을 최초 발견한 프랜
(에디 패터슨 분)...
여기에,
익명의 의뢰를 받고 할란 트롬비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테네시주 출신 유명 탐정
브누아 블랑(대니얼 크레이그 분) 이 등장하지요.
기막히게도, 라이언 존슨은 < 나이브스 아웃 > 에
정곡을 찌르는 '신의 한수' 를 둡니다.
바로 마르타의 등장이죠.
그녀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하면 구토를 하는 캐릭터입니다.
가히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에 다름아니죠.
블랑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충실한(?)
조역자로서 마르타는,
숨겨둔 진실을 영화 초반부터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감독은 영리하게도 극의 중심에 마르타를
자리케 하고,
대신, 블랑은 마지막에 진실을 밝히는 탐정의
역할에만 집중케 하지요.
'마르타, 그녀' 의 입장에서 사건을 주시해 가도록
만들면서, 신선하고 짜릿한 긴장감을 고조시켜
주는 것입니다.
마르타는 빼어난 오목 실력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저는 아름다운 패턴을 승리보다 우선하니까요”
라고 대답하지요.
블랑은 그 선한 마르타에게 자못 철학적인
화두를 건넵니다.
"옳고 그름의 경계에 존재하는 진실 그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찾은 진실을 어떻게 활용하는냐가 진정 중요한
것이죠."
뉴요커 잡지에 실릴 정도로, 시대의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 라 부를 수 있는 브누아 블랑,
그는 사뭇 오만한 탐정으로 비춰질 수 있음에도
어떤 사건이든 100%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당당하게 펴보이죠.
" 저는 살인으로 의심이 갑니다.
가족 모두에게 살해 동기가 있어요."
" 여러분들 모두에게서 구린 범죄 냄새가 납니다.
어느 용의자도 지우지 않았구요."
"이건은 아직 전부 풀리지 않은,
복잡다기한 거미줄에요.
갈피를 잡을 수 없이 꼬인 사건이라 해결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아무런 편견 없이 사실들을 관찰한 후 포물선의
경로를 밝혀내고 종착점으로 유유히 가보면
진실이 내 발 앞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매력적인 스타일과 억양의 블랑은
숱한 알리바이 속에서 빛나는 명탐정다운
추리를 이끌어내며,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넘어선,
다니엘 크레이그의 인생 캐릭터로 자리매김
하지요.
해당 대사와 함께 언급되는 ‘중력의 무지개'...
토마스 핀천의 역작이자 타임지 선정 100대
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을,
존슨 감독은 브누아 블랑의 입을 통해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보다 더 클래시컬한 살인 미스터리 극의
세팅이 또 있을까요.
흠잡을 데 없는 외면적 장치와 그 아래 꼼꼼히
설계된 내러티브가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근래 드문, 물샐 틈 없는
복원' 인 게지요.
해서,
고전 추리물의 완벽에 가까운 복고풍 미스터리로
미국 속을 통렬하게 드러낸, 예리한 진실의 서사
< 나이브스 아웃 > 은,
앨러리 퀸이나 존 딕슨 카, S.S.반 다인과 같은
20세기 정통파 추리작가 황금 계보의 향기를
품어내며,
인물들과 그 속마음을 비춰주는 동시에,
기라성같은 출연 배우들 면면을 보는 맛 또한
덤으로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첨예한 지적 유희보다는, 추리 서사를
이정표대로 이끄는 노련한 스토리텔링의 기량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죠.
으스스한 수집품으로 정교하게 채워진 저택은
할란의 머릿 속을 고스란히 반영한 공간으로,
화려한 앙상블 캐스트에 걸맞은 무대로
자리합니다.
특히 각양각색의 무수한 단도를 거대한 동심원
모양으로 부착한 장식물은,
가족이 한 사람씩 심문받는 숏 뒤쪽에서 섬뜩한
후광을 그리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투시화(透視畵) 역할을
절묘하게 해내지요.
영화 후반, 탐정 블랑은 할란 트롬비 사건을
'가운데가 빈 도너츠' 에 비유합니다.
" '천 개의 칼' 을 본 후에야 비로소 '명검'(名劍)을
알게 된다 ” 했습니다만...
거실에 동심원 형태로 걸려있는 '천개의 칼'
(Thousand Knives : 할란의 추리소설
제목이기도 함) 장식의 독특한 전체 형상은,
식구들이 한 사람씩 탐문을 받는 싱글 숏에서
용의자의 얼굴을 둘러싸는 아우라 노릇을 할 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도넛처럼 가운데가 텅 빈' ,
사건의 실체적 양상까지 드러나게 해줍니다.
< 나이브스 아웃 > 은 애거사 크리스티를 향한
오마주의 헌정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지요.
그녀가 주로 다뤘던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은 물론,
긴장감을 유발하는 대사와 미스터리한 유머의
코미디적 설정,
그리고, 극적인 미장센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입니다.
즉, 존슨의 < 나이브스 아웃 > 은 크리스티의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과 유사한 프레임을
갖는데요,
한 공간에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죽게 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인물이 등장해
사연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은 과거의
추리영화에 담겨있는 고전적 소재들이 화면
곳곳에 녹아들어 있지요.
정통적인 추리 장르의 상징인 대저택이라는
공간부터 집안의 분위기와 그 소품들은,
마치 현시대가 아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심지어 정치적인 이야기도 깊숙이 담겨있다는
점도 닮았지요.
하지만 < 나이브스 아웃 > 은 뜻밖에도 극 초반
부터 관객들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공개합니다.
이에 관객들은,
이를 모르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범인을 제대로
알아가는지,
탐정 역시 이 범인을 과연 찾아낼 수 있는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영화에 몰입하게 되죠.
관객들의 시선을 범인의 시각에 맞추는
교묘하고도 현명한 술수인 것입니다.
개연성도 훌륭하지요.
해서, < 나이브스 아웃 > 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끝맺음됩니다.
심지어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세밀한 설정도 뒤늦게 발견되기도 하죠.
초상화 속 그림의 변화라던가, 핏자국의 정체,
캐릭터들의 중의적인 대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중에 봐서야 "이게 이걸 뜻하는 거였구나!"라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죠.
< 나이브스 아웃 > 시나리오를 10년 동안이나
집필했다는 라이언 존스는,
현재 미국 사회의 정치적 묘사에 대해서도
데드라인 수위를 아주 아슬하게 드나듭니다.
백인우월주의에 찌든 캐릭터부터,
외국인 노동자, 페미니스트,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급진 우파까지 실로 다양하지요.
현악4중주를 비롯한 네이선 존슨의 회색빛
OST는 반전을 거듭하는 화면 속 변환점을
오묘하게 감싸주고 있습니다만...
절로 탄복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배경 음악은
뜻밖에도,
베르디의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중 1막
피날레 신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를 떠올리며 부르는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E'strano, Ah, forse lui)' 였지요.
이 카바티나는 블랑이 100세가 넘어보이는(?)
트롬비 여사에게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초가 될
진술을 정중하게 간청하는 시퀀스에서 흐릅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요..."
트롬비 여사는 윗트넘치면서도 젠틀한 탐정
블랑에게 '아, 누구였던가' 인지를 과연 얘기해
줄런지요?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엔딩 신...
2층 테라스로 올라간 '마르타, 그녀' 는,
드라마 오프닝 시퀀스와 수미상관하게,
'나의 집, 나의 규칙, 나의 커피' 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할란의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놀란 눈초리로 마당에 서있는 트롬비의 가족들을
적법한 유산 상속자다운, 담담함고도 의연한
눈길로 내려다 보지요.
1. < 나이브스 아웃 - Kinves Out > 예고편
- https://youtu.be/KJF6vs5SuUs
- https://youtu.be/oBOhrTbhrys
- https://youtu.be/_WOGe1vtKF4
인간은 타인을 지키기 위해 큰 희생을 감수하기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해치기도 합니다.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속 위선과 이기심으로
뭉친 트롬비 가문은 후자에 속하는 것일런지요.
85회 생일 잔칫날이라는게 할란으로선,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웠던 맏사위 리처드,
딸 학자금을 이유 삼아 지원금을 이중으로
뜯어냈던 둘째 며느리 조니,
소설 판권을 넷플릭스에 팔자며 독립 의지를
잃은 막내아들,
그리고, 철없이 방탕한 손자 랜섬 등,
기생충 자녀들을 향한 최후통첩 디데이였습니다.
트롬비의 모든 가족들은 거짓을 내세우고 있지요.
할란을 향한 살해 동기를 숨기고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기 위해 피를 나눈 가족을 궁지에
모는 장면은,
인간이 지닌 가식과 추악함을 적나라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랜섬은 가족들을 향해 통렬히 경멸하듯 내뱉죠.
“X이나 처먹어요.
처드시고, 처드시고,
잊지 말고 꼭 처드시고,
모두들 다 같이 처드세요!”
< 나이브스 아웃 > 은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 및 반이민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내고 있지요.
모든 등장인물은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그룹들을
상징합니다.
남미 출신의 간병인 마르타는 이민자 집단을,
반 이민 정책에 찬성하는 트롬비 가문은
백인 우월주의 멤버들을 각각 의미하지요.
트롬비 가문 사람들은 마르타를 가족으로
대했지만 호의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습니다.
할란이 남긴 유언으로 마르타가 전 재산을
상속받는 상황이 오자 그들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지요.
마르타에게 상속 포기를 강요한 것입니다.
미국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게지요.
트롬비 가문은 비양심적인 행동까지 저지르며
유산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마르타가 상속자가 된 상황이 옳지
않다며 비난하고,
마르타의 어머니가 불법 체류자임을 들먹이며
협박까지 일삼습니다.
일부 미국인 노동자들이 ‘이민자들이 자국민
일자리를 뺐는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이
자연스레 연상됩니다만,
그들에게 마르타는 타인이 가진 재산을 아무
노력 없이 탐하는 좀비성 도둑에 불과한 게지요.
그렇게,
감독 라이언 존슨은 < 나이브스 아웃 > 속
트롬비 가족과 마르타의 관계를 통해,
미국 사회의 풍속화를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교양 있는 시민임을 자부하는 선민의식의
트롬비 가문 사람들...
그들은 마르타가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입 모아 말하지만,
정작 마르타의 고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에콰도르, 파라과이, 또는 브라질이라고 각자
엇갈리게 확신하는 실정이죠.
지식인을 자처하는 월트 또한 마르타를
보호해주겠다고 공언하지만,
유언장 내용이 밝혀져 마르타의 지위가 달라지자
태도가 돌변합니다.
요컨대 이 집에서 마르타는 동등해지기 전까지만
환대받는 게지요.
할란 트롬비의 자식들은 저마다 바닥부터 시작해
어렵사리 성공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진술하지만,
실상은 아버지에게 출발을 빚졌고 현재 생활비도
의지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그나마 부동산 사업가로 자립한 맏딸 린다도
할란의 돈 100만달러를 종잣돈 삼아 창업했다고
극 중의 다른 인물이 증언하지요.
“이 저택은 선조들이 살아온 우리 집이야!”
라는 린다의 외침에 블랑은 야무지게
바로잡습니다.
“이 집은 댁의 아버지가 1988년에 파키스탄
사업가한테서 매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반 이민 정책이 가진 모순을 날카롭게
조롱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지요.
영화 피날레,
사람이 절박해지면 칼을 뽑아들기 마련이지만,
할아버지 할란의 말마따나 거짓 칼과 진짜 칼을
구분 못하는, '거짓된' 삶의 주역 랜섬,
바로 그가 거짓 칼로 '진실된' 마르타의 가슴을
헛되이 찌르는 패러독스의 은유적 시퀀스...
감독, 각본, 제작까지 맡았던 라이언 존슨은
트럼프 시대를 허용했던 미국 국민들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여,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은 제목 그대로
미국사회를 향한 칼을 분연히 뽑아들은,
더욱 의미깊은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2. 베르디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중 1막
비올레타의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
('E'strano!', 'Ah, forse lui')
-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 게오르그 솔티 지휘 로열오페라
https://youtu.be/LdHs3On27pA
3. 네이선 존슨(Nathan Johnson) 의 OST
감독 라이언 존슨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정통 추리물을 연상시키는,
비교적 빠른 템포의 스토리 전개, 편집과 함께
장르적 규범과 재미를 극한으로 추구하고 있죠.
존슨 특유의 치밀하게 계산된 각본의 힘이
관객을 오롯이 끌고가는 것으로,
덕분에 < 나이브스 아웃 > 은 진실을 향해가는
여정을 통해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해줍니다.
존슨은 말그대로 '누가 저질렀는지' 를 밝히는
미스터리 찾기, 일명 '후더닛'('whodunnit') 을
< 나이브스 아웃 > 의 전체 틀로 삼되,
'비밀의 진실', 그 절반을 아예 초반에 밝히고,
대신 결론까지 이르는 경로를 작은 단위의
서스펜스로 채우는 전략을 택했지요.
사립탐정인 블랑은 조사과정 중에 슬쩍 끼어들어
그들의 개인사를 꺼내도록 유도하는데,
그 결과 트롬비 패밀리는 겉으로만 화목하지
속은 철저하게 곪아 있었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장르를 독특하게 비트는데 능한 라이언 존스의
< 나이브스 아웃 >...
영화는 애거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황금기
추리소설의 장르 문법과 클리셰를 충실하게
소화해내고 있는데요.
반전을 위한 비틀기가 애초에 필수적 덕목인
마스터리 장르적 특성 때문일 것으로,
장르의 일상적 장치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음에도,
그것들은 모퉁이마다 예기치 못한 돌파구를
이끌어냅니다.
한데, < 나이브스 아웃 > 이 끝내 찾아내는 것은
진범을 넘어,
할란 트롬비의 죽음에 내포된, 진실된 목적과
의미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피살자인 할란 트롬비 본인이 본 사건의
일부 플롯을 짠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나이브스 아웃 > 의 진정한 타이틀 롤은,
극 중에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힘없는 아웃사이더인 마르타이죠.
마이너리티임에도 마르타의 절제된 총명함과
인격적 품위는 칭찬받을 만한 미덕을 넘어
최상의 무기로 작동합니다.
불법 이민자 어머니를 둔 마르타는 세대차와
직분을 넘어,
지혜롭지만 외로운 '노인, 할란' 의 고민을 나눈
친구였지요.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구토를 하는 증세를 지닌
마르타는,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에게 마치 추리극의
정석처럼, 용의자의 일원이자 조수가 됩니다.
누군가가 매일 주사하는 약과 모르핀 병 라벨을
고의적으로 바꿔놓아도,
성실하고 책임있는 간병인 마르타는 숙련된
감각으로 맞는 약물을 고르죠.
더욱이 영화 후반,
그녀는 미국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죽어가는 '타인, 프랜' 부터 구하는
도리를 우선합니다.
예기치 못한,
이 모든 '마르타, 그녀' 의 자발적인 헌신의
선택은 상대가 악랄하게 놓은 덫의 의표를
통쾌하게 찌르지요.
3-1. Knives Out! (String Quartet in G Minor)
https://youtu.be/TuImJ7X9LW4
3-2. The Dumbest Car Chase of All Time
https://youtu.be/I6H996sw3Hs
3-3. Blanc's Tale, Pt. I
https://youtu.be/BpsY4hj89ug
3-4. Knives Out!, Pt. II (The Will)
https://youtu.be/STPZLLNNG7s
3-5. Foul Play
https://youtu.be/xs7Mv62Aj8k
- 李 忠 植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1.20 12:40
첫댓글 영화 소개 흥미롭습니다. 보러 가야겠습니다.
글을 안읽고 가셔야 되는데 ㅎ
감사합니다~~
저도 영화보러 가야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불편한 진실'의 시대극 < 심판 - In the
fade > 에서 주인공 카티아의 승용차는
원래 '벤츠'였습니다만,
네오 나치의 폭탄 테러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후엔 '현대차(아반테)'로 바뀝니다.
'진실' 을 찾는 추리극 <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 > 에서도,
주인공 마르타의 승용차는 '현대기아차'로,
스크린 속을 자못 씽씽 질주하지요.
영화 <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 > 예고편
https://youtu.be/oBOhrTbhrys
PLAY
베르디의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1막
비올레타의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E'strano! ,
Ah, fors'e lui)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 게오르그 솔티 지휘 로열오페라
https://youtu.be/LdHs3On27pA
PLAY
< 형사 콜롬보 > 스타일의 도서(倒敍)
추리적(Inverted detective) 인,
‘어떻게 잡는가(Howcatchem)’ 의
프레임에 비해,
관객으로 하여금 '누가 범인인가
(Whodunit)' 를 추적, 추리케하는
방식의 < 나이브스 아웃 >...
전통적인 추리극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뉴트로(Newtro : New + Retro)' 적
바리아시옹이라 할까요.
그렇게 ,
< 나이브스 아웃 > 은 진부한 클리셰
(Cliche)를 피해가는 영리한 레트로
Retro)로 풀어집니다.
영화의 전체적 맥락을 한마디로
짚어내는 명대사...
화면이 94분 50초 지날 즈음,
명탐정 블랑은 혼자말로 되뇌이지요.
"시작부터 이상한 사건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