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이야기/ 전 성훈
7월 장마철을 맞이하니 습도가 높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무더워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건강에 대하여 평소보다 많이 관심을 쏟는다. 어떻게 하면 올여름 무더위를 잘 넘기고 가을을 맞이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여름을 보내는 비결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집을 떠나 시원한 곳으로 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다. 열흘 이상 장기간 일터를 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장기휴가는 쉽게 낼 수 도 없다.
어디든 갈 수 없다면 좋아하는 음식으로 떨어진 체력을 보완하면 어떨까? 보양식 음식을 먹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도 들어가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여름철 보양식은 개인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40대 이상 성인들의 경우 보양식을 몇 가지로 손꼽아 볼 수 있다. 역시 삼계탕이 가장 많이 사랑받을 것 같다. 그 외에 장어탕이나 장어구이, 오리백숙, 추어탕, 염소탕 그리고 보신탕을 들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조선시대 권세가의 보양식인 값비싼 민어탕을 먹기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양식은 뭐니 뭐니 해도 보신탕이다. 보신탕을 먹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논외로 하고 여하튼 보신탕을 무척 좋아한다. 어린 시절 보신탕을 먹었던 기억은 그다지 없다. 군대에 가서 본격적으로 보신탕에 입문했다고 볼 수 있다. 군대에서는 속된 말로 ‘된장 바른다.’는 말로 보신탕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한 장면, 보신탕을 먹으며 던져주는 개뼈다귀를 맛있게 음식점 바닥에서 갉아먹고 있던 커다란 개의 모습이 떠오른다.
40년도 더 오래된 이야기이다. 제대를 한 1977년 그해 여름, 동기생과 둘이서 목포에 사는 선배를 찾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한 여름 낮, 선배는 우리를 보신탕집으로 데려갔다. 그 집에서 먹었던 보신탕 코스요리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보신탕 잘 한다는 집을 많이 찾아다녔지만 목포에서 먹었던 정식을 구경하지 못했다. 주변의 보신탕 매니아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누구하나 그런 코스요리를 알지도 못하고 먹어보았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다.
눈을 감고 흘러간 옛 기억을 불러본다. 맨 먼저 식탁에 오르는 것은 하얀 접시에 조금 담아 올린 소담스런 갈비다. LA갈비보다는 살이 적게 붙었지만 갈비 길이가 적당하여 뜯어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실 가는 데 바늘 가듯이’ 입맛을 달궈줄 목포의 명물 보해소주도 곁들인다.
갈비가 바닥이 드러날 즈음 오르는 두 번째 요리는 도마이다. 부엌에서 쓰는 도마처럼 생긴 적당한 크기의 나무도마 한쪽 모서리에는 깨소금이 올려있고 푹 삶은 고기를 가운데 보기 좋게 꾸며놓는다. 이때부터 보신탕을 제대로 맛보는 순간이다. 취향에 따라 깨소금을 많이 묻히거나 적게 묻혀서 입으로 쏘옥 넣고 한번쯤은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다. 정말로 보신탕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맛과 분위기를 느낄 줄 알기 때문이다.
도마가 거의 다 떨어질 때면 수육이 들어온다. 도가니 수육이나 설렁탕 수육처럼 푹 고은 고기가 식탁에 오른다. 수육 옆에는 푹 익은 대파나 깻잎 아니면 미나리가 조신하게 자리를 잡는다. 고추를 좋아하면 강된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보신탕에는 마늘이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식탁에 내놓는 경우가 드물다. 마늘 대신 생강이 오른다. 수육을 먹고 나면 무침이 나온다. 무침은 생선회무침을 연상하면 적당하다. 어느 정도 포만감에 이르러 구수한 국물이 생각날 때 쯤 마지막으로 탕이 식탁에 얼굴을 내민다. 이때쯤이면 시간도 거의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지나고 술도 상당히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 이른다. 술꾼의 주량에 따라서 술을 더 마시거나 아니면 술이 술을 마시거나 술이 사람을 마시는 연극 무대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결혼하고 매제들과 또는 처가식구들과 자주 보신탕을 먹었다. 어느 해에는 경동시장에서 개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탕을 끓여 토요일 저녁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 끼니때마다 먹었다.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여 인천으로 출장 갔다가 그곳에서 점심때 또 보신탕을 먹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손가락 꼽을 정도로 보신탕 애호가로 소문이 났었다. 그 시절 자주 찾았던 음식점을 떠올리면, 을지로 삼각동 재령집, 자하문 싸리집, 삼선교 정주집, 광나루 버드나무집, 장위동 과부집, 우이동 계곡, 행주나루터 그리고 수락골 등이 생각난다.
‘본창골’이라는 보신탕 음식점을 했던 친구가 있다. 10년 가까이 두 달에 한 번씩 이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적게는 4-5명, 많게는 10명이 모였다. 모임에 참석한 누구하나 보신탕을 마다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집에는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귀한 냉동 발바닥과 ‘신’이라 부르는 거시기가 있었다. 소금에 찍어 먹을 때 졸깃졸깃하고 쫀득쫀득한 맛이 아주 고소하였다. 친구가 더 이상 음식점을 하지 않아서 참으로 유감천만이다.
보신탕을 좋아한다니까 강아지를 길러보았는지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하니 강아지를 기르면서 어떻게 보신탕을 먹을 수 있냐고 하면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강아지 키우는 일과 보신탕 좋아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보신탕은 그저 음식의 하나일 뿐이며 강아지를 기르는 것은 인간과 동물이 교감을 나누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결이 아주 고운 흰털이 곱게 자라서 중국 황실의 강아지라고 불렸던 ‘페키니즈’종 강아지 ‘설이’를 15년 정도 키웠다. 설이가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3개월간 동물병원 순례를 하고 야간병원을 찾기도 하였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좋다는 건강식품을 구해 먹이기도 하여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설이가 떠날 때 우리가족은 무척 슬펐고 화장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설이’와 헤어진 지 벌써 4년 6개월이 흘렀다.
보신탕을 즐겨 찾는 이유가 있다. 보신탕은 다른 고기, 소고기나 돼지고기 또는 오리고기, 닭고기에 비하여 불포화지방 함유량이 높아서 소화가 잘 된다. 보신탕을 먹고 배탈이 난 적이 없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한여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더없이 즐겁고 행복하다.
보신탕을 먹어야 한다고 예찬하거나 왜 보신탕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못 먹게 하느냐고 궐기대회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하고 무서운 말도 안 돼는 이야기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식인풍습이 20세기 초까지도 인류문화에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문화와 국가에 따라 음식에 대한 관습이 다르고, 같은 나라이라도 시대에 따라 또는 의식의 변화에 따라 음식에 대한 관점과 느낌이 다르게 변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떤 특정 음식과 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너무 이상한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올 여름에는 어디에 가서 보신탕 한 그릇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9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