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나 돌이나 철로 만든 십자가의 형상들이 우리 예수믿음과 십자가의 도, 주님예수 보혈의 생명과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여 예수님의 얼굴?이라 그림그렸으며 성경은 아무 형상이라도 만들어 옆에 두며, 거룩한 것처럼 여기지 말라하셨건만
십자가의 형상?이 무엇인가? 아직도 도의 초보보다 못한 일들로 우리는 알려하고 안타까우나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어리신 양 보혈의 생명 십자가의 도를 말씀하십니다. 유월절 어리신 양 주님예수의 언약의 피 사망의 천사를 넘어가게 주님주신 오직 피의 복음은 주님의 주시는 약속과 생명입니다.
이러한데 아직까지 어디에서 형상의 십자가를 옆에 모셔두며 목에 걸며 자동차 앞면유리에 달아놓고 주님을 기억하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아니라 핑계하고 그럴듯한 변명을 한대도 교회당에 십자가 형상을 두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한국땅 많은 사이비들중에 십자가 형상을 두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예수믿음만 있는 주님의 교회들에도 십자가의 형상을 두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두곳의 차이는 큽니다
대표적으로 안상홍증인회와 여호와 증인에서 십자가의 형상을 우상이라 말하며 자신들은 대단한 진리를 가진듯 성경에서 찾으면 누구라도 알수 있는 지식을 훔쳐 사용하며
그러한 분변 한두개를 이용하여 결국 마지막과 수순은 자칭 재림주 안상홍을 믿게 만들며 여호와 증인만이 성경의 진리만을 가진듯 사탄의 밥으로 포섭시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탄의 회 사이비들에서도 사탄이 처음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 쓰며 영혼들을 노략하고 미혹하듯이 십자가의 형상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저들은 진리를 아는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바른 분변의 한두개를 도적질하여 사용하며 결국 영혼을 노략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의 형상들이 우리 예수믿음 보혈의 도와 아무 상관이 없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라 하는 곳안에서 깨어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존교회들이라고 사람들의 전통이며 바리새인의 누룩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형상을 마치 교회의 부적처럼 처음 만든 것은 로마 가톨릭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예수믿음과 보혈의 도만을 기도하며 바라는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이 변명하고 타협하는 말들에 침묵하며 때로는 강하게 전하며 저 십자가의 형상이 그저 돌이고 나무이며 철인 것을 압니다.
십자가의 형상이 있고 없는 교회의 궁금중이 우리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뿌리신 예수님의 물과 그 보혈 그 구원의 생명이 있느냐가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십자 문양들
교회당들에 십자가의 형상이 없으면 더욱 좋겠지만 어느 교회당이든 이단들이든 사이비 단체들이든 그 곳에 오직예수 독생하신 하나님믿음만을 가지며 성령으로 예수님이 나심을 고백하며
십자가의 도,우리를 대속하신 어리신 양 주님예수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부활의 육체로 다시오시는 예수믿음만으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며 오직 우리의 한목자이심을 고백이면 주님의 교회이고 우리의 분변입니다.
어느 곳들을 분변하는 일들에서 우리의 분변과 관심이 오직 예수믿음 십자가의 도만으로 저들이 구원과 하나님의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라 말하는가
예수님말고 또 다른 목자를 말하지 않는가 주님예수 십자가로 가신 길 말고 다른 길을 전하지 않는가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사탄의 회 이단들과 사이비를 분변할 것입니다 아멘!
1.형상에 대한 구약성경의 태도
가. 십계명 중 제2계명을 보면 그 어떠한 형상이라도(심지어 하늘에 있는 것의 형상일지라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출20:4~5).
나.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을 때 바라보기만 하면 낫던 장대에 달린 놋뱀이 가나안땅에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때히스기야 왕은 이 놋뱀을 부숴버렸습니다(왕하18:4). 그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물건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 형상에 대한 신약성경의 태도
신약성경 역시 어느 곳에도 믿는 이들이 어떤 형상을 지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또한 모임의 장소에 어떤 형상을 비치하는 부분에 대하여도 어떤 암시조차 없습니다.
3. 성경적 결론
그렇다면 십자가이든, 예수님의 달린 형상이든, 마리아의 동상이든 그것을 만들어 그것에 경배를 표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액운을 피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하거나 또는 차안에 십자가 형상의 어떤 장식을 걸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물질로 상징화 될 수 없는 크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것은 고난이고 죽음이며 저주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죄와 저주가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모든 죄 값은 지불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한편 믿는 이에게도 이 십자가는 죽음을 말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음에 넘겨져야 우리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6:6, 갈2:20). 따라서 죽음이 전제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모르면서 눈에 보이는 십자가를 섬기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부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어떠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기성교회의 연약함을 정도 이상으로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모임장소 안에 나무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으로 걸어 놓은 것일 뿐 그것에 경배하거나 절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것을 집요하게 공격함으로 모든 기독교가 잘못되었고 자신들은 옳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이단들의 주장도 100%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형상의 문제에 대한 여호와의 증인의 시각은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이 분명 이단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단지 피조 된 신 정도로 생각하며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한 지옥이 없다고 말하며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을 행위로 얻으려는 잘못된 교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고 하였도다. (갈라디아서 3:13)
그 분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느니라. 우리 역시 그 분 안에서 약하지만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분과 함께 살 것이라. (고린도후서 13:4)
천주교 로만가톨릭 교황이 즐겨 사용하는 앵크 십자가를 고대 이집트 이방신이 들고 있습니다.
앵크 십자가는 이집트 최고신 태양신인 Ra의 숭배시 사용되었던 물건이며, 그가 생육신 한 것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