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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스크랩 [유청아의 리걸 프레임] - 검은 피카소, 낙서의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
사무국 추천 0 조회 210 12.06.16 21: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린 시절, 동네 담벼락에 낙서를 해본 기억이 있나요? 낙서를 하다 집 주인에게 걸려 혼이 난적은 없는지요.


 어른들이 동네 코흘리개들의 낙서를 꾸짖었듯이, 우리나라 법은 무단낙서 행위를 경범죄처벌법상 처벌대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빈곤층 청년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거리 곳곳에 낙서를 하는 바람에 거리가 매우 어지러워졌습니다. 이에 골머리를 앓게 된 지방자치단체들은 무질서한 거리 낙서를 규제하고자 여러 법적 조치를 강구하였지요.

 각 법원은 낙서행위를 경범죄보다 무거운 죄목으로 처벌하기 시작했고, 낙서를 뿌리뽑고자 스프레이 페인트 소지를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들어 미국 시카고시는 스프레이 페인트 판매와 소지 모두를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하였고, 뉴욕시는 미성년자에게 스프레이 페인트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를 추진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리 낙서는 오늘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등장으로 낙서는 이제 독립된 하나의 예술영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들의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지요.

 

 오늘은 낙서를 위대한 예술로 재탄생시킨 한 화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던 천재 낙서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년 - 1988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흑인화가로,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합니다. 18살이라는 다소 이른 나이 독립한 바스키아는 낙서그룹 SAMO를 조직하고, 자신의 작품을 사업화하기 시작합니다. 20살이 되던 해, 첫 그룹전시회 TIMES SQUARE SHOW를 개최하였고, 이듬해에는 뉴욕 뉴웨이브전 20명의 미술가에 포함되기도 하지요. 같은 해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독자적인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바스키아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미술관 안을 잘 살펴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

 

미술이 백인의 전유물이던 시절, 그는 낙서화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확립하며 검은 피카소로 불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즉흥적인 작품성을 토대로 한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과 공동작업을 하기도 하지요.

  


그는 주로 흑인과 죽음에 관한 관심을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하였습니다.

해골얼굴을 한 인물, 가면같은 얼굴들, 자동차나 비행기, 경찰, 어린아이들의 길거리 놀이, 낙서 등과 같은 뉴욕거리와 자신이 성장해 온 환경에서 접했던 이미지들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한 소재는 바스키아 스스로 자신의 뿌리라고 여겼던 "흑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뉴욕도시의 이미지를 작품에 차용하였고, 왕관이나 저작권을 상징하는 기호 등을 종종 표기하곤 하였지요.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이는 쉽게 해독되지 않는 문자들도 바스키아 작품의 주된 특징이지요.

얼핏 보기에 이러한 그의 작품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낙서와 같지만, 그 이면에는 백인 중심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열등했던 흑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사회 모순점을 지적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그는 많은 작품에서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비교적 장난스럽게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접근 대신, 죽음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키워드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낙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천재화가 바스키아.

천재가 피해갈 수 없다는 하늘의 질투를 받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27살 꽃다운 나이에 약물 중독으로 요절하게 됩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삶은 이제 작품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을 뿐이지요.

 

검은피카소라 불리던 낙서의 예술가.  장 미쉘 바스키아.

편견을 혁파하고 낙서라는 장르로 현대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천재화가.

그로 인해 우리는 길거리 낙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한번쯤 가져볼 수 있게 된 듯 합니다.

 

물론, 오늘날 모든 낙서가 법적으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거나 예술의 영역으로 포섭되어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유명 예술가로 인정받는 작가의 낙서조차 100%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거리 낙서 예술가인 리벅은 미술관 작품전을 개최할 정도로 인정받는 유명한 거리미술 작가이지만, 지난 2011년  길거리에 계속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실형선고를 받기도 하였지요.

  

그렇지만 어느날인가,

당신이 무심코 지나친 거리의 낙서가 값비싼 예술작품이 되어 미술관에 전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대상을 바라보는 작은 시각의 차이가 낙서를 경범죄로도 미술작품으로도 만들 수도 있겠군요~!

 

 

- 대검찰청 블로그 기자단 명예필진 유청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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