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에 대한 명상
봄은 경운기 엔진음과 함께 왔다. 내가 구례에서 봄을 맞은 지 벌써 4년째가 되어 간다. 농촌에서의 겨울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일 열심히 하는 농부도 겨울엔 할 일이 없어 구판장에 누가 왔는지 살펴보다가 반가운 얼굴이나 하나 걸리면 붙잡고 막걸릿잔이나 들어올리는 일 아니면 하루하루 보내기가 심상하지가 않았다.
구례군 토지면 용두마을은 섬진강 옆에 펼쳐진 들판 옆에 딱 붙어 있는 마을이다. 겨우내 차갑게 냉각된 강바람이 마을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수족냉증에 걸린 사람의 차가운 손바닥이 옷속으로 쑥 들어와 맨살을 더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용두마을의 집들은 죄다 두꺼운 비닐로 집 앞을 칭칭 감아놓았다. 비닐로 일차 바리케이트를 치고 알루미늄 새시로 이차 방어벽을 쳐야 겨울 추위를 조금 막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은 비닐로만 일차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기 때문에 이차 방어벽은 내 마음으로 칠 수밖에 없었다. 겨우내 나는 웅크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 내가 전화를 해서 술 한 잔 하자고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은 두 살 아래 동생 광석이밖에 없었다. 그 광석이도 어제 술 많이 마셨다고 나의 요청을 거절해 버리면 나는 등산화를 꺼내 신고 홀로 산에 올랐다. 눈 내리는 화엄계곡으로 올라서 무냉기까지 갔다. 코재에 당도해서 내가 사는 구례를 내려다보았다. 햇빛을 반사하며 섬진강이 허옇게 떠올랐고 오산이 동그마니 그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얼어붙은 손을 부비며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수도도 녹아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고 내 목에서 목도리도 떨어져나갈 무렵의 아침에 드디어 경운기의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반가운 손님을 맞듯 벌떡 일어나 그 경운기가 무엇을 싣고 어디로 가는지 내다보았다. 옆집 한공수 형님이 형수님을 경운기 짐칸에 태우고 골목을 지나 논 쪽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짐칸에는 비료나 거름이 실려 있을 것이었다. 공수 형님 부부도 겨우내 웅크리며 봄을 기다렸을까. 아직 본격적인 농사철도 아닌데 경운기를 몰고 가는 것을 보면 그들은 나보다 더 간절히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농촌에 들어와 살면서 경운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농기계로 치자면 트렉터나 콤바인 같은 것들보다 훨씬 오래되고 단순하고 값싼 기계일 것이다. 하지만 마치 오래된 집을 오래 지키고 있는 물건처럼 없으면 안 될 것이 바로 경운기였다. 그런데 나는 경운기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대학 때 농활을 가서 경운기를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그 마을의 어르신한테 간단히 경운기 조작법을 배운 다음 경운기를 몰고 논 옆 도로를 운전해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버스가 와서 피하려다 모가 자라는 논에 경운기를 처박고 만 것이었다.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는 핸들하고 경운기의 방향전환 핸들을 혼동한 것이었다. 그 일 때문인지 농촌에 들어와 살면서도 경운기만 보면 슬슬 피하려는 습성이 생겼다.
한 번은 하사마을의 인태 형 밭일을 도우러 갔는데 인태 형이 가게에 가서 막걸리와 음료수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인태 형의 트럭을 몰고 가게에 갔다 오다가 기역자로 된 좁은 농로에서 커브를 돌다 뒷바퀴가 농로에 빠지는 사고를 냈다. 앞으로도 뒤로도 옴짝달싹 못 하는 트럭을 결국 경운기가 와서 해결해 버렸다. 인태 형은 이 경운기가 사람 100명 합친 것보다 힘이 세다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 웃음은 경운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담긴 것이었다.
장날이 되면 늙은 농부들이 경운기의 짐칸에 아내를 태우고 장에 모여든다. 뒤따르는 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성화에도 아랑곳없이 느긋하게 경운기를 모는 농부의 묵묵한 얼굴을 나는 좋아한다. 나도 반가운 친구를 만나려는 즐거운 마음이 되어 구례장에 들어선다.
과일전을 지나니 어물전, 어물전을 지나니 채소전, 채소전을 지나니 약초전…. 다른 이들도 나처럼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딱히 장에 내다 팔 것이나 장에 와서 살 것도 없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장에 나온다. 농촌에서의 천연덕스러운 삶에도 힘겨움이 왜 없겠는가. 벼는 탈곡해서 길가에 말려야 하고 저물 땐 거두었다가 다음날 또 말리기를 2,3일 거듭해야 한다. 전기건조기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대농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중소농들은 그런 데 들어가는 비용도 아껴야 하므로 순전히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든 농부들은 트럭이 있는 마을 젊은이들한테 아쉬운 소리 해 가면서 정미소까지 나락 포대를 옮겨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도 장날이면 모처럼 읍내 행차를 해서 다른 면에 사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소주 한잔 하면서 시름을 달래보기도 하는 것이다.
친구 대은이와 나는 가야식당에 자리를 잡는다. T자 대형의 테이블 조합에 한 예닐곱 명 앉으면 꽉 차버리는 주점이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대부분 50대 후반에서 60대 초중반이나 됐을 초로의 농부들이었다. 자리가 협소해도 비집듯 들어가 앉으면 싫지 않은 표정으로 옆으로 자리를 비껴주는 게 구례사람들이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역시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한 나는 술집에서 자리다툼 때문에 턱없이 싸움질을 벌이던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구례에서는 지금껏 그런 문제로 누군가와 얼굴 붉힌 일이 전혀 없었다. 구례에 온 지 3년. 나 스스로도 구례의 지리산과 섬진강에 동화되고 또 그 산과 그 강에 의해 정화되는 것이리라.
막걸리 한잔 마시고 다시 장에 나서 본다. 온갖 생선, 채소, 약초, 철물, 옷이나 신발 같은 공산품들이 그냥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그 물건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팔아서 당분간 호주머니가 두둑해졌으면 좋겠다. 또한 장 보러 나온 사람들도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생활이 좀 편리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다시 꽃 피는 시절이 왔다. 3월 중순이 되자 구례 산동엔 산수유가, 광양 매화마을엔 매화가 폭죽 터지듯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몰려든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19번 국도를 나는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린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 되었다. 누군가의 경운기가 내게 다가오면 이젠 피하지 않고 경운기를 잘 운전해서 논도 갈고 밭도 뒤엎고 싶다.
첫댓글 저도 농촌 살았는데 경운기가 사실좀 위험해요
농촌에서 경운기로 사고가 많이 나죠. 특히 노인들이...
송시인 트럭 운전 실력이 그 정도라 이말씀이지요~
내 애마는 택도 없다
절대 운전대 맡기지 말아야지~
트럭 운전은 아랫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누구는 조컷소!
토지면, 구례장터, 가야식당. 산수유, 매화, 대은친구, 19번 국도, 막걸리....
그리고 지리산, 섬진강!
송시인님은 조컷소!!
참말로 조컷소!!!
오리무중님 ...혹시 우 처사? 냄새가 나는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