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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0년간 짙은 안개에 가려 진면목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을 풀어보았습니다.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 #1: 서쪽 산등성이에 있는 부부와불, 시위불, 칠성바위, 석불군 '바'의 정체는?
운주사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비밀에 싸인 절입니다. 누가 왜 이곳에 셀 수없이 많은 석탑과 석불을 세워놓았을까요? 운주사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처럼 도선국사가 한반도를 배의 형상으로 보고, 산맥이 많은 동쪽에 비해 평야지대인 이곳이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배가 뒤집어질 운세라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비보사찰일까요? 아니면 도망친 노비와 천민들이 미륵세상을 꿈꾼 도피처일까요? 지난 40여 년간 학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운주사 천불천탑은 티베트 밀교 또는 도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 지은 절이라고도 하고, 칠성신앙을 신봉하는 종교집단이 세웠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도대체 운주사 (혹은 천불천탑)은 어떤 절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운주사 천불천탑이 풍기는 기묘함으로 인해 밀교 또는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칠성신앙을 신봉하는 종교집단이 세운 절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고려에 진주한 몽고군이 고려백성을 강제 동원하여 세운 절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주사 천불천탑은 고려후기에 가장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아미타 극락정토신앙을 일반 백성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고려왕실이 재정지원을 하여 세운 왕립극락정토 체험장이었습니다. 인도의 대승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인 CE 3세기에 쿠차의 키질 천불동에 석굴이 처음 개굴된 이래로 불교는 동북아시아 삼국의 국교가 되었고 각 나라마다 불교예술이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운주사 천불천탑은 동북아시아 삼국에 핀 불화 가운데 가장 장엄하게 피운 연꽃이었습니다.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숭배하는 정토종의 소의경전(교리적으로 의지하는 근본경전)이 ‘관무량수경’입니다. 다른 말로는 ‘관경’ 또는 ‘16관경’이라고도 합니다. 불교 경전은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서분은 경전을 기록한 이가 그 경이 설해진 연유를 기록한 것으로 서론에 해당합니다. 정종분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을 기록한 부분으로 경전의 본론이자 핵심입니다. 마지막 유통분은 경전의 이익을 말하여 후세까지 길이 전달되고 널리 드날리기를 권하는 부분으로 결론에 해당합니다.
왕사성의 비극과 관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의 서분에는 이 경을 설하게 된 배경이 되는 ’왕사성의 비극’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펼쳐집니다.
붓다의 생존 당시 마가다국의 빈비사라(頻毘娑羅) 왕과 위제희(韋提希) 왕비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왕이 점술가를 불러 언제쯤 아들이 생길지 물으니 산속에서 수행 중인 선인이 참선수도 3년 후에 왕자로 환생할 것이라는 점괘를 받았습니다. 3년을 기다릴 수 없었던 왕은 자객을 보내 선인을 죽였는데, 바로 이 날 왕비는 임신을 하였습니다. 왕은 기뻐하여 다시 점술가를 불러 점을 치게 했는데 이 아기가 태어나면 죽은 선인의 한으로 왕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점괘를 받았습니다. 두려움을 느낀 왕은 열 달 후에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누각에서 떨어뜨리라고 명령하는데, 아기는 손가락 하나만 부러진 채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이것도 다 운명이라 생각한 왕과 왕비는 아기를 그냥 키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 아사세(阿闍世)였습니다. 이 이름을 한자로 뜻풀이를 하면 미생원(未生怨)이 되는데 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원한을 품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왕자 교육을 받으면서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한 때 부처님 제자였다가 쫓겨난 제바달다가 아사세 왕자를 꼬드겼습니다. 왕자에게 부친을 살해하고 왕이 될 것을 부추깁니다. 그것은 자신의 절친인 왕자가 마가다국의 왕이 되면 자기가 새로 만든 승단에 큰 시주를 하여 빈비사라 왕의 후원을 받던 부처님 승단을 압도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꼬임에 빠진 왕자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제바달다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듣고 나서는 크게 분노하여 마침내 부왕을 옥에 가두고 굶겨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을 안 위제희 왕비는 왕에게 몰래 음식을 제공했으나 얼마 안가 왕자에게 들키고 맙니다. 아들은 크게 화를 내며 어머니마저 왕궁 깊은 곳에 유폐시켰습니다. 큰 슬픔과 고통에 빠진 왕비는 영축산(기사굴산)을 향해 예배하며 석가모니의 왕림을 기원하는데 왕비가 미처 머리를 들기도 전에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석가모니의 모습을 본 왕비는 엎드려 통곡하며 이렇게 호소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속세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악독한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까?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세계를 자상하게 말씀해주옵소서. 저는 마땅히 그곳에 태어나겠사오며 이렇게 혼탁하고 사나운 세상에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원하옵건대, 중생의 태양이신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안락한 세계를 보여주옵소서.’ 왕비의 간절한 소원을 들은 부처는 신통력으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보여주시면서 극락에 태어날 수 있는 16가지 관법을 하나하나 일러줍니다. 이것이 관무량수경의 정종분, 즉 본론에 해당합니다.
이상의 이야기가 관무량수경에 수록된 내용이며, 서분과 정종분의 내용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관무량수경변상도’입니다. 관무량수경의 서분만 따로 떼어내서 그린 불화를 ‘관경서분변상도’라고 하며, 정종분만 따로 떼어 그린 불화를 ‘관경십육관변상도’라 부릅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당·송 시대에 아미타 극락정토신앙이 크게 유행하면서 이 세 종류의 불화는 중국의 당·송, 고려에서 엄청나게 많이 그려졌습니다. 중국에는 둔황 막고굴에만 백 폭이 넘는 벽화가 현재까지 남아있으며, 불교국가였던 고려의 작품은 관경서분변상도가 2점, 관경십육관변상도가 4점 전해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6점 모두 일본의 사찰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관경16관변상도
서복사장 관경16관변상도는 전체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5분할하고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폭이 좁은 현수막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듯 구획한 다음, 각 공간마다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방편인 16관법을 그림으로 풀이하여 넣었습니다.
화면 맨 위에 있는 제1관은 해를 생각하는 일상관(日想觀) 또는 일몰관(日沒觀)입니다. 해가 지는 서쪽을 보고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관상하는 것입니다. 변상도에는 붉은 원 안에 궁전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면의 오른쪽 청색 외연부에는 동그란 원 안에 극락세계의 신비로운 정경(제2관-제7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2관은 물을 생각하는 수상관(水想觀)입니다. 맑고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청정하고 고요해야 극락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제3관은 정토의 땅을 생각하는 지상관(地想觀)입니다. 보배로 꾸며진 땅에서 광명의 빛이 퍼지는 극락의 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4관은 보배나무를 생각하는 보수관(寶樹觀)입니다. 정토의 보배나무는 일곱 주 세워져 있는데 잎, 꽃, 열매는 칠보로 되어 있고 일곱 겹의 진주그물로 덮여 있어 휘황한 광채를 발산합니다. 제5관은 보배연못을 생각하는 보지관(寶池觀)입니다.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팔공덕수(八功德水)가 충만한 칠보의 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6관은 보배 누각을 생각하는 보루관(寶樓觀)입니다. 제7관은 아미타부처님이 앉아 계신 연화대를 생각하는 화좌관(華座觀)입니다. 제1관부터 제7관까지는 장엄한 극락정토의 풍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 바로 아래 전각에는 부질없는 의혹을 일으켜 오백년이 지나야 부처를 만나 설법을 들을 수 있는 범부대중(태생의 무리)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맞은편 청색 외연부에는 극락세계에 머문 아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진신 및 아미타삼존을 친견하는 왕생자의 모습(제8관-제13관)이 있습니다. 제8관은 연화대에 앉아계신 아미타삼존의 형상을 생각하는 상상관(像想觀)이고, 제9관은 아미타여래의 몸을 생각하는 진신관(眞身觀)이며. 제10관은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관음관(觀音觀)이고, 제11관은 지혜의 상징인 대세지보살을 생각하는 세지관(勢至觀)입니다. 사실 관세음보살이나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자비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세 불보살은 이름만 다르지 동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인 것입니다. 제12관은 수행자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생각하는 보관(普觀)이며, 제13관은 왕생자가 아미타삼존의 영접을 받는 것을 생각하는 잡상관(雜想觀)입니다. 제8관부터 제13관까지는 아미타삼존불의 형상을 묘사하고, 위제희 왕비와 같이 근기가 높은 수행자가 극락에 왕생하여 아미타삼존으로부터 영접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 바로 아래 전각에는 부처의 지혜를 믿고 의심하지 않아 극락에 왕생하는 성문대중(화생의 무리)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관경16관변상도의 핵심내용, 즉 타력(아미타불)에 의한 구원관이 담겨있는 그림 중앙부의 화면구성과 이 안에 담긴 주요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제1관(일상관)바로 밑에는 극락세계의 보배로운 나무와 상서로운 구름을 배경으로 석가모니불이 관무량수경을 설법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불회(佛會)’라고 합니다. 그의 좌·우측에는 십대제자, 팔대보살, 십육성중, 육대천왕, 타방보살들이 운집해 있으며, 그의 뒤에는 육방불이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증명하고 있고, 아래쪽에는 주악천인이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부처의 설법 장면 아래는 화면이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마다 궁궐과도 같은 화려한 전각 세 채가 품(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세 전각은 회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각 전각과 회랑에는 불보살, 화불, 비구, 성문대중, 신중이 운집해 있으며 전각 앞 연못에는 극락왕생자가 연꽃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단 화면의 위로부터 아래로 살펴보면, 제14상배관에는 상품의 왕생자가, 제15중배관에는 중품의 왕생자가 아미타삼존으로부터 영접을 받고 있으며, 제16하배관에서는 하품의 왕생자가 관음보살로부터 영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배관 연못의 양쪽 전각에는 왕생자가 아미타불로부터 장차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예언)를 받는 장면을 그린 수기도와 마정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관경십육관변상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범부대중을 위한 구원관, 즉 염불삼매를 설파한 중앙부입니다. 여기 제1관과 설법장면을 거쳐 상배관(上輩觀), 중배관(中輩觀), 하배관(下輩觀)으로 이어지는 화면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그런데 변상도에서 제1관(일상관)은 관불삼매(정선13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화면의 가운데는 사실 석가모니 부처가 설파한 극락왕생할 수 있는 16가지 방편을 모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변상도에 그려진 제1관-불회-상배관-중배관-하배관이 운주사 천불천탑 영역에서는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찾아봅시다.
[1] 부부와불 및 시위불 수수께끼:
16관변상도의 제1관과 불회 영역에 해당하는 천불천탑 공간은 와불 영역입니다. 거북바위 칠층석탑-석불군 ‘바’-부부와불-칠성바위와 칠층석탑을 잇는 공간이 바로 일상관과 불회 영역입니다. 하배관은 운주골의 남쪽 들머리에 있는 구층석탑-석불군 ‘가’와 ‘나’-교차문(X, XX) 칠층석탑-광배석불좌상으로 둘러싸인 영역이며, 중배관은 칠층석탑-석조불감-원형다층석탑-석불군 ‘다’와 ‘라’-수직문(>lllll<) 칠층석탑을 포함하는 영역이고, 상배관은 북쪽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석불군 ‘마’-발형다층석탑-명당탑으로 에워싸인 영역으로, 운주사 천불천탑의 구성은 서복사장 관경십육관변상도와 완벽히 똑같습니다. 13세기말-14세기초 고려시대 천불천탑 건설책임자는 16관변상도를 설계도면 삼아 이곳에 극락정토를 조성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먼저 16관변상도의 일상관과 불회 장면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일상관은 일몰관이라고도 하는데 아까 설명 드렸듯이 해가 지는 서쪽을 보고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관상하는 것입니다. 그 바로 아래 불회 장면은 석가모니 부처께서 관무량수경을 말씀하실 때 주위를 에워싸고 설법을 듣는 팔대보살, 십대제자, 제석천·범천, 두 명의 공양보살, 16성중과 육대천왕 그리고 22타방불과 육방불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설법 장면의 배경에는 칠보로 장식되어 빛을 발하는 수많은 보배나무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관경16관변상도를 참조하면, 운주사 천불천탑 공간에서 서쪽 산등성이의 거대 암반에 조각된 와불은 관무량수경을 말씀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나타낸 것입니다. 와불 옆에 조각된 호리호리한 입상(서 있는 자세의 불상)은 십대제자 가운데 다문제일로 불린 아난존자를 상징하며,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시위불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와불의 우측 바위에 조각하여 떼어낸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만,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십대제자 가운데 두타제일로 불린 가섭존자로 판단됩니다.
[2] 석불군 '바' 수수께끼:
저 아래 북쪽에 있는 거북바위 칠층석탑과 오층석탑, 그리고 남쪽에 있는 칠성바위 옆 칠층석탑은 팔대보살을 의미합니다. 석불군 ‘바’는 부처님 설법을 듣는 16성중, 육대천왕, 22타방불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곳의 석상들은 모양이 제각각이고 오밀조밀 밀집한 채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16성중, 육대천왕, 22타방불을 상징하는 석상들이 부처의 설법을 경청하는 모습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칠성바위로 알려진 일곱 개의 거대한 원반형 석재는 칠층으로 된 보배나무를 표현한 것으로, 이 나무는 불회를 장엄하기 위한 장식물입니다. 지금까지 북두칠성 바위로 알려진 일곱 개의 거대한 원반형 석재는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를 장엄하기 위한 7층보배나무를 표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3] 칠성바위 수수께끼:
관무량수경의 관불삼매(정선13관) 가운데 네 번째 극락왕생 관법이 보수관(寶樹觀)으로, 이것은 극락세계의 장엄한 보배나무를 생각하는 수행법이다. 관경에 의하면, 보배나무는 잎, 꽃, 열매가 모두 칠보로 되어 있고 나무 전체가 일곱 겹 진주그물로 덮여 있어 찬란한 광채를 내뿜는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경전에는 나무의 층수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고려후기(1323년)에 제작된 인송사장 관경16관변상도에는 7층의 층층나무 형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도상학적으로 보배나무는 일상관의 배경으로 사용되거나 불회를 개최한 석가모니불이나 극락회를 연 아미타불이 앉은 연화대좌의 좌우에 한 그루씩 배치되어 극락세계를 장엄하게 꾸미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도상학에 비춰보면, 우연히 북두칠성 별자리를 빼닮은 운주사 칠성바위는 고대 천문유적이 아니라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불회 또는 아미타불이 주최한 극락회를 장엄하기 위한 보배나무칠층석탑(칠층보수탑)의 잔해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칠층보수탑의 잔해에 탑신에 해당하는 석재는 어디로 사라지고 옥개석(지붕돌)만 남아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은 처음부터 미완성 탑이었을 가능성입니다. 이 보수탑은 옥개석 1개의 무게만 12-20톤에 달하고 평균 직경은 3m에 달합니다. 이 정도 무게와 크기의 원반석을 평지가 아닌 산비탈에 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채취한 암석으로 먼저 옥개석을 다듬어 탑을 세울 장소에 끌어다놨지만, 예상보다 너무 무거워서 탑세우기를 중도에 포기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가설은 칠층보수탑을 완공했지만 운주사 폐사 후 어느 시점에서 무너졌을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두 가설은 옥개석만 남아있고 탑신이 없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현장조사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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