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신
◼ 이(履)
어떤 독특한 형태가 없이 족의(足衣)로서 신발의 일반적 의미를 가지며, 혜(鞋), 비(扉), 구(屨), 극(屐), 석(舃), 교답(蹻踏) 등 신목이 짧은 모든 신을 말하는 남방족계의 신이다.
이(履)의 기원은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 의복재봉변증설(衣服裁縫弁證說)에 의하면 “황제의 신 어측(於則)이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풀로 만든 것은 비, 마(麻)로 만든 것은 구, 가죽으로 만든 것은 이라고 하였다
◼ 석
이(履)의 일종으로 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신. 나무나 가죽을 여러 겹 대어 습기가 오르는 것을 막았다.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정종이 관복을 도입한 이후로 조선시대 말까지 왕과 왕비가 신었다. 색은 착용하는 옷이나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즉 조선시대에는 왕의 상복(常服)에는 적석, 1403년(태종 3)의 왕복에는 홍색의 사석(絲舃), 1425년(세종 7)에는 흑석, 1444년의 면복에는 홍사석이 착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왕비 복에는 조선시대 인목대비가례 때 적의(翟衣)에 적석을, 효현세자 가례 때 빈궁과 중전의 법복(法服)에 적석을 신은 기록이 보인다. 영조 때 <상방정례 尙方定例 >에 의하면 빈궁 법복에는 흑석으로 바뀌었다. 유물로는 왕비 또는 동궁비가 적의를 입을 때 신었던 청석(중요민속자료 제55호)과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석이 남아 있다.
◼ 화•혜(靴鞋)
조선시대에 목이 있는 신은 화(靴), 목이 없는 신은 혜(鞋)라 했다. 이를 재료 면에서 보면 피혁제, 초마제(草麻製), 포백제(布帛製), 유제(鍮製:놋쇠 제품), 지제(紙製), 목제(木製)등이 있다.
⚫ 화(靴) : < 석명 釋名 > 석의복조(釋衣服條)에는 “화는 혜(鞋)이니 양족(兩足)이 각각 일혜(一鞋)로 기마에 편리한 신이며 조무령왕(趙武靈王 기원전 340년 - 기원전 295년,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왕)이 처음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명 화(鞾)라고도 하며, 이(履)와 더불어 우리나라 신의 대표적인 종류의 하나이다. 흑피화(黑皮靴), 협금화(挾金靴), 목화(木靴), 수화자(水靴子) 등이 있는데, 주로 왕이나 백관이 신었다. 조선시대는 인조 때 왕비 법복에 흑피화를 신었으며, 세종 때에는 왕세자 공복에 흑화를 신은 기록이 있다. 유물로는 조선 말 순종이 어렸을 때 신은 목화가 있다. 또한, 1품에서 9품까지 문무백관의 공복에 흑피화를, 당상관은 상복(常服)에 협금화(挾金靴)를 신었다는 기록이 < 경국대전 >의 장조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에는 흑피화 대신 목화가 많이 착용되었다.
⚫ 혜(鞋) :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어측(於則)이 초혜를 처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기원은 가장 오래된 신으로 부여의 혁답(革鞜), 마한의 초교(草鞒), 초리(草履), 혁교답(革鞒鞜) 등으로, 이것은 초혜(草鞋)로서 짚신이나 미투리, 가죽신을 말한다.
< 삼국유사 > 권42에는 망혜(芒鞋)의 기록이 있어 혜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이 혜는 고구려의 황혁리(黃革履), 백제의 오혁리(烏革履), 신라의 금동리(金銅履)와 함께 이(履)의 범주로 본다.
조선시대에 신목이 없는 모든 신발을 ‘혜’라는 용어로 통일 했다. 혜의 종류로는 흑피혜, 분투혜(分套鞋), 투혜, 피초혜(皮草鞋), 태사혜(太史鞋), 발막신, 진신(유화油鞋), 당혜(唐鞋), 운혜(雲鞋), 온혜(溫鞋), 등이 있다.
흑피혜는 백관의 조복,공복,제복에 사용된 신이고, 분투혜와 투혜는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으나 화자(靴子: 발목 있는 신) 위에 겹쳐 신는 신으로 동반, 서반 7품 이하와 상민에게는 금(禁)하였다. 피초혜는 가죽과 풀로 섞어 만든 마른신의 일종이다. 태사혜는 코와 뒤축에 태사문을 놓은 신으로 양반 노인과 사인(士人)의 마른신이다. 발막신은 남녀 노인의 마른신으로 코와 뒤축에 꿰맨 솔기가 없다. 진신은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 만든 신으로 비오는 날 진 땅에서 신었다 하여 진신이다. 당혜, 운혜, 온혜, 는 앞부리와 뒤꿈치에 당초문(唐草文), 구름무늬, 비단장식을 새긴 여자의 마른신으로 궁중을 비롯한 상류층 부인이 신었다.
초(草), 마제(麻製)의 신으로는 초혜(草鞋), 고혜(藁鞋:마른풀로 만든 신), 마혜(麻鞋:미투리)가 있고, 포백(布帛)으로 만든 신으로는 당혜, 운혜, 태사혜가 있다. 놋신(유혜鍮鞋)은 놋쇠로 만들며 비오는 날 신었다. 지혜(紙鞋)는 종이로 만들며 숙종 때에는 마혜와 함께 대유행을 일으켰다. 일명 ‘격지’라는 나막신은 나무로 만든 신으로 비오는 날 신었다.
이와 같이, 혜는 조선시대 최고로 발달되었던 신이며, < 경국대전 >기록에 문무백관의 조복에는 1품에서 9품까지 흑피혜(黑皮鞋)를 신고 있어, 조선 전기에는 관복에 흑피혜 일색이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신으로서 존비등위를 구별하였는데, 금제를 보면 1426년(세종 8),1470년(성종 1)에는 투혜,피혜,초혜를 금지하였고, 1446,1449년에는 피초혜, 1519년(중종 14)에는 피혜, 정종 때에는 혜의 금지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