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선
수필가, 《한강문학》 수필부문 등단, 서치펌싱크탱크 대표
비교불가
얼마 전에 유투브에서 백세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형석 교수의 강연을 재미있게 봤다.
올해 104세가 되는 그 분은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 삶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태어나 30세까지 배우고 65세까지 일하지만, 그 후 대부분 은퇴해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안타깝
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는 잘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사회와 연계해 봉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글
을 쓰고 강의하며 보람 있게 산다고 하셨다.
또한 1920년생 동갑으로 철학계의 삼총사였던 안병욱, 김태길 교수는 돌아가시고, 여자 친구도 다 도망가
혼자 열심히 살고 있다며 익살도 부리셨다.
그 분은 학창시절 윤동주 시인과 함께 공부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들었으며, 또 김일성과 조반을 같이 먹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한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과 만났으니 대단한 일이 아닌가! 마치 스웨덴 작가 요나손이 재미있게 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3.1절 105주년 기념일이다. 창고에서 태극기를 꺼내 창문 밖 난간에 꽂으니 펄럭이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TV를 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는데, 중간에 많은 연기자들이 열정을 다해 공연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학창시절에 많이 외웠던,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선언한 〈기미독립 선언서〉의 도입부이다.
‘독립선언서’를 쓰신 분은 육당 최남선이다. 그분은 한때 내가 다녔던 경신학교 선생님이었다. 또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분은 손병희 선생이 아니라 경신학교 6회 졸업생이신 정재용 선배다. 그 당시 경신학교 선배로는 김규식, 안창호, 서병호 등이 있는데, 나는 고교 2학년 때 기미독립선언 33인 중의 한사람인 이갑성 선배(1889년∽1981년)의 강연을 들었다.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을 때, 동그란 안경을 쓴 이갑성옹이 지팡이를 짚고 단상에 올랐다. 무슨 얘기를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독립선언 현장에 계셨다고 하여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분은 33인 중의 최연소 참가자(청년대표)이자, 마지막 생존자였고, 독립운동가, 약사, 정치가, 광복회장을 하셨다.
얼마 전에 고교동기생의 모친상이 있었다. 24년생이시니 100년 한 세기를 사셨다. 그분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차별과 억압을 당한 후에 광복을 보았고, 20대후반에 6.25 전쟁을 겪으셨다. 또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재 윤석열 대통령까지 많은 지도자를 보며 다양한 사고와 사건을 목격하셨을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나 실감나지 않는다. 그 나이까지 산다 해도 100이란 숫자가 특별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변두리의 잊혀져가는 노인에 불과할것이다.
나는 인품 있고, 능력있는 김형석 교수와는 절대 비교할 수는 없다. 더구나 건강을 유지한다 해도, 100세 넘게 산다는 자신도 없다.
오늘 꽃샘 추위라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우스개 소리를 해 본다.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맞대어 나는 이갑성 선생의 강연을 들었고, 김일성과 조반을 했다지만 나도 한때 중국을 오가며 북경주재 북한대외협력부 직원들을 만나 상담하며 대동강 맥주와 단고기까지 먹지 않았던가!
또 윤동주 시인과 한반에서 공부했다는데, 나도 수년 전에 수필가로 등단한 후에 월간지에 글을 쓰고 있고, 졸저拙著지만 작년에 《인생 뭐 있어?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지!》 라는 책을 썼지 않은가!
아무튼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