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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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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행 후기 [후기] 제10회 인문산행/도봉산의 바위글씨들을 찾아서
심산 추천 3 조회 573 17.12.14 00:09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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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7.12.14 00:13

    첫댓글 이번 원고는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줄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약간 오버를 했는데...월간 [산]의 한필석 편집장님의 재량에 맡겼습니다

    올 한해 동안 인문산행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내년의 인문산행은 3월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더욱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연말연시 건강하게 보내시고(특히 술 조심!)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 17.12.14 06:51

    심산 작가님의 고증을 겸한 자세한 해설 감사드립니다^^

  • 17.12.14 22:25

    이번엔 사정상 참석을 못했고 내년 3월이나 뵙겠네요.^^

  • 17.12.14 08:52

    우와~~ 올해 글쓰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 17.12.14 09:56

    즐겁게 감상합니다.

  • 17.12.14 12:19

    한해 글 쓰시느라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 17.12.14 14:02

    역시 작가다운 글솜씨...우리는 이런글을 이렀게 외침니다...따봉!!!!

  • 17.12.14 19:22

    따봉2

    스티커
  • 도봉산을 좋아하는 이로써....유심히 그리고 꼼꼼히 읽었습니다....~~`
    특히 도봉산의 유래에 대해서는 진심 감사드립니다.

    처음 만나는 돌 이야기^^가 많네요.
    연수원 뒤쪽과 도봉서원 계곡의 각자들이 궁금하네요.
    저말고도 많은 회원들이 그러할텐데요...내년에 한번 더 추진하심이...~~`

    도봉동문의 각자는 송시열로 '전해지는'거라고 적혀 있는데요.
    만약 그가 썼다면, 그를 존숭하는 후인들이 도봉산기를 썰때 언급한 글이 있을텐데..있는지 궁금합니다.



  • 17.12.15 07:43

    좋습니다. 나도 마지막 지적한 '송시열' 글씨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우선 글씨체가 다릅니다. 하긴 '도봉서원'이 우암을 배향한 기록이 있습니다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 작성자 17.12.15 15:16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면의 제약 때문에 상세히 밝힐 수 없었던 고증 내용들을 몇 가지 추가합니다.

    도봉서원 터=영국사 터=(고려시대의)도봉사(=도봉원) 터에 대하여

    [고려사절요]에는 “1010년 거란의 침입으로 현종이 도봉사로 피신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화장사 주지 정각국사 비명에 “삼각산에서 노닐다가 도봉사에서 자는데”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 강종 즉위년(1170년)에 최충헌에 의하여 왕사로 모셔진 정각국사의 생몰연대는 1145년(인종 23년)~1229년(고종 16년)입니다.

  • 도봉산에 대한 이 이야기....
    이제 형님의 이 기사를 통해, 도봉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7.12.15 16:15

    송시열의 글씨에 대하여

    우암은 추사에 견줄 바는 못되지만 제법 달필을 구사했던 당대의 서예가이며 다양한 서체를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우암의 추종자들은 그의 글씨를 받기 위해 안달복달하였지요). 기호학파의 근거지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전에 가시면 [우암사적공원]과 [대전역사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암이 남긴 다양한 서체의 친필들을 두루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혹자는 우암과 동춘당(송준길)의 글씨를 일컬어 ‘양송체’라 높여 부르기도 하지만, 저는 오만하고 가당치 않은 주장이라 생각합니다(본래 우암 자신과 그의 추종자들은 일종의 과대망상증 환자였지요).

  • 작성자 17.12.15 15:17

    위에 언급한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료장현송답잔원(聊將絃誦答潺湲)의 경우 우암이 직접 그 아래에 ‘화양노부서(華陽老夫書)’라는 서명을 남겨 자신의 친필임을 인증하였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우암의 호(號)들 중 하나가 화양동주(華陽洞主)입니다.

  • 도봉동문이라는 각자 아래에는 서명이 없는 걸로 기억이 납니다.
    명확한 증거기록이 없다는 게 아쉽네요.
    여전히 송시열의 것이다가 아니라 송시열로 '전해지는'인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송시열인데,
    그러하기에,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 아니라고 추정할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 17.12.15 15:58

    고증 답변 감사드립니다~~

  • 17.12.21 11:54

    좋은글 읽으며 공부햇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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