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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전신년칼럼
우리 시대의 아픈 손가락, 탈북민(脫北民) 이야기
지난해 11월, 정부가 탈북민 증언을 토대로 작성해 공개한 북한 인권보고서에는 북한 주민의 끔찍한 참상이 담겨있다. 즉 2015년,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16~17세 청소년 6명을 원산에서 공개 처형했다. 2017년에는 손가락으로 김일성 초상화를 가리켰다는 이유로 임신 6개월 여성을 총살했다. 탈북했다 잡혀 온 임신부가 낳은 아기를 엄마가 보는 앞에서 죽였다는 내용도 있다. 오늘도 북한 전역에 널려있는 정치범 수용소 등 각종 구금시설에서는 고문과 비밀 처형(處刑)뿐만 아니라 생체실험까지 자행되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이기를 거부한 북한 정권의 만행(蠻行)은 끝이 없다. 이런 인간들을 상대로 평화와 인권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허망한 짓이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는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그때 출생한 북한 아이들은 심각한 성장 지체를 보였다. 남북 간 존재하는 비교 불가(比較不可)의 엄청난 체격 차이는 마침내 ‘잃어버린 세대(Missing Generation)’라는 민족사의 상처로 남아있다. 그때 이후 수많은 주민들이 죽음의 땅을 탈출했지만 수천여 명은 지금도 중국에서 도망자로 숨어지낸다. 그들의 70%가 여성들이고 이들 대부분은 인신매매로 팔려나간다. 특히 코로나 이후는 철저한 국경봉쇄와 중국정부의 강제송환으로 탈북은 말 그대로 ‘낙타 바늘구멍 통과’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탈북 스토리는 ‘천신만고(千辛萬苦)’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기적의 인간승리다. 그래서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입을 모은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아보았다. 북에서 우리는 그냥 짐승이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탈북민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동영상을 자주 본다. 거기에 나오는 하나같이 기막힌 이야기들은 늘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수용소를 탈출하고 국경을 넘는 탈북과정은 처절한 극단의 시나리오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피날레 장면은 여기에 비하면 약과다. 인생을 살 만큼 살아오면서 숱하게 험한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연은 내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역사 전공자로서 내게 탈북민의 증언은 소중한 인권사(人權史)의 기록이다.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나치 전범들을 능가하는 북한 독재정권의 악랄한 범죄기록이다. 또 탈북민들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일깨워 준 인생의 선각자들이다. 불평과 불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감사와 감동이 무엇인지를 생명을 걸고 가르쳐 준 인생의 선배들이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와서 비로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국정원에 도착했을 때 ‘환영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우리가 한국에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우리를 환영하나?’라는 생각에 울컥했다는 것이다. ‘동무’ 아니면 ‘야!’만 듣던 그들에게 ‘○○씨’, ‘○○분’ 같은 호칭도 감동 그 자체였다. ‘벌레처럼 살았던 우리가 비로소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라는 증언들이 넘친다. 우리에게는 일상이지만 그들에겐 다 감동이었다. 탈북민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감동으로 가득했다. 웅장하지만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항 바닥, 특히 화장실은 놀라움의 절정이었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재래식 공중변소를 이용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그런 곳에서 살다 온 탈북민들이 비데 있는 변기에서 받을 충격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탈북민들은 하나원을 나와 집을 배정받았을 때 감격에 겨워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하루 종일 수도꼭지 하나에서 더운물과 찬물이 번갈아 나오고 전기가 언제 나가는지 밤새 기다렸지만 날이 밝아도 그대로였다. 모든 게 다 신기했다. ‘밤에도 밝은 세상’은 그들에게 별천지였다. 평양에서 상류급으로 살았던 태영호 의원의 부인도 ‘한국에 와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라는 질문에 곧바로 ‘24시간 멈춤이 없는 수돗물과 전기였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탈북민들은 주민등록증과 여권을 받는 순간이 더없는 ‘감격’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자유를 찾아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그들에게는 그 어떤 수식어도 부족했을 것 같다. 승리의 월계관, 망망대해에서 내려 준 구명정, 자유의 증표이자 생명의 보증서였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에게는 신변보호를 위해 배정된 경찰관들조차 놀라움이었다. 괴롭히고, 잡아가고, 때리고, 빼앗는 북한의 보안원(경찰), 보위부원(국정원)을 기억하는 그들에게 ‘경찰의 보호와 안내’, ‘국정원의 조사’는 눈물 나도록 고마운 친절이자 파격이었다. 북에서는 조사받다가 조사관을 쳐다보기만 해도 때렸다. 고문받을 각오였는데 국정원 조사관은 힘들면 쉬었다 하자며 커피까지 갖다주었다. 그 친절함에도 그들은 목이 메었다. 그들에겐 모든 게 다 난생처음 느끼는 감동이었다. 적십자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도 난생처음이었고 국정원에서 받은 생활필수품 올 셋트 트렁크도 난생처음이었고 특히 여성용 생리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받은 운동화가 너무 좋아 10년이 지난 지금도 신고 있다는 증언도 있었다. 자유의 땅에서 난생처음으로 두 발로 딛고 선 신발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옆 동네도 쉽게 갈 수 없고 시군경계를 벗어나도 통행증을 발급받아 서너 개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여권이란 게 아예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 이들이 난생처음으로 받아본 ‘대한민국’이란 글씨가 선명한 초록색 여권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어디든 내보이고 싶었다. 어느 탈북민은 해외를 어디든 갈 수 있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서 그냥 울었다고 말한다. 또 남한 남성과 결혼 후 남해에서 양식업을 하는 어느 탈북민은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에 출연 후 전국에서 주문이 폭주해 밤새 주문을 받으면서 계속 울었다고 한다. “고맙습니다. 잘살겠습니다.” 어떤 탈북민은 한국에 와서 저녁노을을 처음 봤다고 했다. 북에도 저녁노을은 있었겠지만 눈에 들어와 느낀 적 이 없었던 것이다.
또 탈북민들은 등산하고 운동하는 한국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 낯설었다고 말한다. 종일토록 먹을 걸 찾아 산을 헤매고 오직 먹기 위해 배낭을 메고 걷고 뛰며 살다 온 게 전부인 사람들에게 등산과 운동은 이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같다. 요컨대 탈북민들에게 난생처음 보는 한국에서 받은 문화충격은 끝이 없다. 탈북민들이 털어놓은 공통적인 문화충격으로 자동차와 빌딩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선글라스와 장갑까지 끼고 운전대를 잡는 로망은 그 자체가 꿈이었다. 어떤 이는 처음 승용차를 사고 운전하면서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보다.’라고 감격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내가 북한군 복무 중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휴가를 보내 주지도 않지만 보내준다 해도 가다 서다 가다 서는 기차를 타고 며칠 걸려 도착하면 장례가 다 끝난 뒤’라고 말한다.
물론 음식도 이들에게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화제거리다. 한국에 와서 체중이 갑자기 불어 난 사람, 국정원에서 처음 경험한 뷔페식 식사의 에피소드는 이들도 지금은 부끄러워한다. 난생처음 보는 음식들, 있을 때 마구 먹어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식판에 음식을 산처럼 담아와 먹었다. 끼니마다 바뀌는 반찬, 기름진 쌀밥에서는 하나 같이 목이 메었다. “그동안 풀만 먹고 살았는데.....” 밥 위에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 얼굴이 어른거려 밥그릇을 앞에 놓고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처음 며칠 동안은 고기만 먹었다는 사람, 처음 먹어본 음식 맛이 너무 신기해 질리도록 먹었다는 라면, 쪼코파이, 계란 등등.....끝이 없다. 특히 식사 시간에 자기들에게 젓가락을 줘서 놀랐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에서 젓가락은 간부들만 사용하는 것, 우리가 쓰면 건방지다라고 한다.”라는 증언도 나온다.
북한의 위생,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온 가족이 수건 한 장으로 생활하고 신문지조차 흔치 않은 그들에게 한국에 와서 본 집집마다 가득한 타월, 화장지는 환상이었다. 무너진 의료시설은 굳이 탈북민들의 입을 통하지 않아도 널리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의사가 처방해 주면 약솜, 붕대, 주사기부터 모든 의약품을 장마당에서 사 와야 한다. 한국에서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페트병 링거주사조차 북한 주민들에게는 사치에 속한다. 치과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서 심각한 치통이 생기면 동네 돌팔이가 강제로 이를 뽑는다. 심지어 기절하는 경우도 많다. 젊은이도 틀니가 흔하다. 게다가 중년이 넘으면 절반이 틀니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칫솔 자체가 귀해 평생 칫솔 하나로 살다 보니 칫솔질은 안하거나 가끔 한 탓이다. 비타민C 같은 영양분이 절대 부족한 조악(粗惡)한 식사도 한몫 보탰을 것이다. 어쨌든 북한에선 60세를 넘기면 오래 살았고 어디든 70세를 넘긴 노인은 구경하기조차 어렵다는 증언도 나왔다.
나는 늘 북한 실정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북한이다. 평양도 아니고 금강산도 아니고 북한의 농어촌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고아원도 군부대도 학교도 장마당도 가보고 싶다. 여러 해 전 중국 단동에서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북한 쪽으로 접근해 본 것, 젊은 날 판문점을 한번 다녀온 게 다였기에 늘 아쉽다. 그동안 수많은 북한 관련 자료를 읽었고 글을 썼고 번역서도 냈지만 내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여전히 빙산의 일각이다. 탈북민은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이다. 하지만 그들을 보듬고 싸매고 키워주면 곧바로 소중한 우리 국민이 된다. 특히 그들의 스토리 텔링은 뺄 것도 보탤 것도 없는 기막힌 문학작품이고 역사책이고 종교적 경전에 버금가는 인생 고백록이다. 탈북민, 비록 주제는 하나지만 간절한 사연은 하나가 아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감동과 감사로 바꾸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이 시대의 아픈 손가락, 역사의 나그네들이 지금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요컨대 탈북민 문제를 비롯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자유민주주의 문명세계가 감당해야 할 엄중한 과제다. 이를 위해 북한인권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전시해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할 터이나 아직 한국은 이런 일을 수행할 국립기관이 하나도 없다. 통일 이전 서독은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를 통해 동독의 인권침해 관련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해 기록했다. 이를 통해 서독은 동독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했고 통일 이후에는 그 자료를 근거로 가해자를 처벌했다. 역사 청산에 실패한 민족은 고통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문정부가 박아 놓은 친북 대못을 뽑지 못해 북한인권정책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2016년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북한인권법’에 의해 북한 인권재단이 벌써 출범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7년째 이사를 추천해 주지 않아 아직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자유를 찾아온 탈북청년 2명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던 장면을 기억한다. 임기 내내 김정은의 눈치만 살피던 문정부와 민주당에게 탈북민과 북한인권문제는 그냥 뒤통수에 붙어 있는 귀찮은 혹이었을 것이다. 이러니 지금도 탈북민들을 ‘변절자’,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는 ‘주사파 종북 운동권’ 여의도 금배지들은 여전하다. 대남 핵공격을 법제화, 헌법화 한 김정은의 추종세력들은 오늘도 대한민국 헌법을 조롱하며 나라의 단물을 빨아먹는다. 새해에는 제발이지 이들을 단 하루만이라도 북으로 보내 북한 주민의 삶을 살아보게 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시대의 아픈 손가락, 탈북민들의 소원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고도 그들이 ‘위수김동’을 주절거릴지가 궁금하다. 그러고도 탈북민을 향해 ‘변절자’, ‘인간쓰레기’ 같은 막말이 그들 입에서 나올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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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다가오면서 국민은 양분되었고 상대를 향한 악마화의 굿판은 요란하다. 나라를 거덜 낼 듯 쏟아지는 포퓰리즘으로 세상이 어지럽다. 게다가 이재명 피습과 김건희 특검이 총선 이슈를 빨아들일 블랙홀로 입을 벌렸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은 이런 이슈에 빨려들 만큼 한가롭지 않다. 예컨대 그의 목에 난 상처가 몇 센티의 열상(裂傷)인지 자상(刺傷)인지 범인이 누구인지에도 관심이 없다.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부풀린 ‘찻잔 속의 태풍’은 날마다 우리 앞을 지나간다. 아마도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은 난장판의 소음 그 너머를 볼 것이다. 4월 선거로 여의도의 ‘고인 물’, ‘썩은 물’을 빼내지 못하면 나라의 미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의 세계최강 국가 탄성계수를 믿는다. 국가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격 말이다. 여러 해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 한국이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한 국가가 되었다. 당시 외신들은 한국의 경이로운 오뚝이 회복력을 일컬어 ‘교과서적 극복 사례(Textbook Recovery)’라는 제목을 달았다. 물론 국가안보도 바늘방석이긴 하다. 친북 주사파 권력 카르텔은 그대로이고 김정은의 핵 공갈은 날마다 수위를 높인다. 시한폭탄, 트럼프도 저쯤에서 다가온다. 하지만 길은 있다. 다가올 폭풍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빗속에서 춤추면 된다.
어쨌든 금년은 대단히 요란하고 시끄러운 한 해를 보낼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비록 그럴지라도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대한민국 원위치’라는 시대정신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리듯 세상이 아무리 요동칠지라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게 바로 ‘진리는 기필코 승리한다.’라는 인류문명사의 법칙이다. 이제 국민의 건강한 상식과 이성을 회복하는 일만 남았다. 대한민국은 내 나라이지 남들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4세기 로마제국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말로 전성기를 열었다. 천년 제국, 로마의 위대한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라 안팎이 전쟁터다. 패역(悖逆)과 괴물(怪物)이 지금 대한민국의 생명줄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 졸면 죽는다. 이 시대 한국인들에게 부여된 지상명령이다.
* 2024년 1월 5일 /글 학전 최익제
첫댓글 최 박사 글 전적으로 공감 하며 올해도 건강 하시고 좋은글 많이 부탁합니다.
역사학자 답게 우리시대의 우선적으로 짚어야할 문제점을 잘 지적 하여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