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기 이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언어를 시작하여 탄생 울음소리부터 언어(모음)를 발화하며 옹알이를 거쳐 단계별로 언어를 습득한다. 이러한 언어습득의 단계는 무질서한 것 같아도 질서 있는 단계를 거치며 그 습득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진척된다. 우리가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도 학자에 따라서 학설이 다르지만 필자의 연구결과 그 학습단계의 원칙은 유사하므로 외국어교수법도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만 외국어 학습의 올바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모국어 습득과 마찬가지로 외국어 학습의 원칙도 듣고->말하고->읽고->쓰기의 단계별 순서에 따라 진행되므로 이 원칙에 의거하여 교육해야만 말하는 능력을 숙달시킬 수 있다. 말하기의 중요성과 힘은 많은 학자들의 학설에서 알 수 있으며, 그 최근의 사례로써 모 정당의 대표로 선출된 정치인의 말하는 능력에서 입증되었다. 물론 히틀러처럼 말의 힘을 악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동물의 소통은 언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시스템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동물의 소통과 다른 것은 바로 이 시스템을 가진 소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초등학교부터 이러한 듣고 말하기와 읽고 쓰기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주로 쓰기에만 주력해온 국어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러한 잘못된 국어교육을 지적하고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바 있다. 오늘날 대학의 교양학부 교육과정에 ‘국어’라는 교과목 명칭은 거의 사라졌다. ‘사고와 표현’ 등으로 달라졌다.
국어교육의 올바른 발전현상은 한국의 영어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어’라는 교과목은 거의 사라지고 ‘영어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발전했다. ‘토플’에서 ‘토익’으로 그리고 필자가 그토록 주장해온 수능시험에서 영어를 제외하고 말하기 교육에 집중하자는 것이 이제 실현될 것 같다. 필자가 30년여 동안 철저한 사명감으로 논문과 저서의 이론을 바탕으로 외국어교육 현장에서 실천하여 성과를 얻어온 듣고, 말하고, 읽고, 쓰기 순서의 외국어교육은 공교육 현장에서 아직도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조사해보니 아직도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 순서로 교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법교육을 분리하여 문법학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려는 잘못된 보수적 경향에서 우리는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외국어학습에서 문법은 터득되는 것이어야 하며 문법에 매달려 문법 그것 자체를 추구하는 문법학 교수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문법은 외국어학습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외국어교육에서는 언어학이 아닌 언어를 교육하며 외국어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아니라 외국어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적 숙달이 목적이다.
문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첫째는 언어라는 대상 그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규칙체계로서 그것에 대한 지식이나 언어학적 기술과는 무관한 비개인적인 것이고, 둘째는 언어에 내재하고 있는 규칙체계를 학문적으로 기술한 것, 즉 문법을 언어학적으로 묘사한 것이고, 셋째는 화자 내지 청자의 두뇌 속에 존재하는 내재적 규칙체계로서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습득자가 목표언어를 구사하고 이해하는 것, 즉 개인적인 언어능력이다. 문법을 의사소통과 분리하여 교육한다면 그 목적은 언어습득이 아니라 언어학의 학습이다. 오늘날까지의 언어습득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1) 언어습득과 외국어학습은 결코 무질서하게 진행되지 않으며 질서정연하게 언어구조를 단계별로 습득한다.
2) 언어습득과 외국어학습은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3) 외국어학습의 과정도 모국어습득 혹은 자연적 제2언어습득의 과정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4) 외국어학습에서 모국어와 외국어간의 구조나 규범의 차이로 인해 전이 내지 간섭 오류가 유발되지만, 이것은 당연한 중간언어(Inter-language)이므로 교수법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잠정적 현상이다.
5) 외국어학습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려면 언어습득의 단계별 순서에 의거하여 자연적 언어입력이 최대화되도록 교육해야 한다.
6) 이중언어 학습이 아동의 두뇌발달이나 학력진보를 저해하지 않으며 특별한 지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7) 4-5세경에서 14-15세경, 즉 사춘기 이전까지가 결정적 언어습득시기이지만 성인도 올바른 언어습득과 학습을 진행한다면 제2언어 내지 제3언어 습득에서 아동과 유사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8) 외국어학습에서 목표언어를 접촉하는 시점은 궁극적으로 외국어학습의 성취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외국어학습의 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원칙이 성립된다.
9) 최근의 언어습득이론에 따르면 인지적 및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의사소통방식, 인지양식 등의 심리적 요인과 동기, 태도 등의 정서적 요인이 외국어학습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것을 외국어교수법에 활용해야 한다.
다수의 언어를 습득하여 사용하는 아동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서 압도적으로 두뇌발달이나 사회화의 과정 혹은 모국어적 세계관의 형성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오히려 아동의 그러한 발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외국어를 올바르게 학습한 사람은 자신의 모국어를 더욱더 세련되고 옳게 사용할 것이다. 언어적으로 올바르게 세계화된 사람은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모국어적 세계관이 더욱더 확고해 진다.
모국어습득이 잘못되면 그 흔적이 평생 가듯이 외국어학습의 과정이 시행착오의 회랑에 빠진다면 그 결과는 개인적 손실이요, 나아가 세계화시대의 국가적 손실이 된다. 특히 외국어교육은 무조건 외국인에게만 맡기면 된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그리고 외국에만 가면 외국어학습이 저절로 될 것이라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사춘기가 지난 청년기나 성인기에 목표언어를 숙달하려면 비록 목표언어 사회에서 습득하고 학습하더라도 장기간 동안의 습득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외국어학습 환경이 제공된다면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다.
우리는 듣고 말하기 우선의 외국어교육을 완전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학생들이 듣고 말하기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여 유학현장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성세대로서 외국어를 잘못 배워왔던 탓으로 부여받은 별명인 ‘10년 영어 공부에 벙어리’라는 오명을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후손들에게는 결코 대물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글쓴이: 박이도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