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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론(血脈論)
『달마혈맥론』의 판본으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85권에 수록된
소실육문(少室六門)의 제육문혈맥론(第六門血脈論), 만신찬속장경(卍新纂續藏經)의
63책에 수록된 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 경허 스님이 편집한 선문촬요(禪門
撮要)의 혈맥론(血脈論)등 세 가지가 있다. 여기에서는 선문촬요본 혈맥론을 저본으로
하고, 문맥이 어색한 곳에서는 소실육문본과 속장경본을 참고로 교정하였다.
1.
삼계(三界)가 뒤섞여 일어나지만, 함께 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에 전하고 문자(文字)를 세우지 않는다.
三界混起 同歸一心 前佛後佛 以心傳心 不立文字
묻는다.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問曰 若不立文字 以何爲心
답한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答曰 汝問吾 卽是汝心 吾答汝 卽是吾心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답할 수 있겠으며,
그대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
吾若無心 因何解答汝 汝若無心 因何解問吾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
시작 없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모두가 그대의 본래 마음이고 모두가 그대의 본래 부처이다.
問吾卽是汝心 從無始曠大劫以來 乃至施爲運動 一切時中一切處所 皆是汝本心 皆是汝本佛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 역시 그와 같다.
卽心是佛 亦復如是
이 마음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다른 부처는 결코 없으며,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깨달음과 열반을 찾을 수는 절대로 없다.
除此心外 終無別佛可得 離此心外 覓菩提涅槃 無有是處
스스로의 본성(本性)은 진실하여,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自性眞實 非因非果
법(法)은 곧 마음이라는 뜻이다.
法卽是心義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自心是菩提 自心是涅槃 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 無有是處
부처와 깨달음이 모두 어디에 있는가?
佛及菩提皆在何處
비유하자면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으니,
붙잡을 수가 있겠는가?
譬如有人以手捉虛空 得否
허공은 다만 이름일 뿐이고 모양은 없어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虛空但有名 亦無相貌 取不得捨不得
허공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마음을 없애고 밖에서 부처를 찾을 수는 결코 없다.
是捉空不得 除此心外覓佛 終不得也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佛是自心作得 因何離此心外覓佛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그 마음을 말할 뿐이다.
前佛後佛只言其心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다.
心卽是佛 佛卽是心 心外無佛 佛外無心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若言心外有佛 佛在何處
마음 밖에 이미 부처가 없는데
왜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켜서 서로 속이고 속는가?
心外旣無佛 何起佛見 遞相■惑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저 무정물(無情物)에게 사로잡혀서 자유로울 수 없다.
不能了本心 被他無情物攝 無自由
만약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
若也不信 自■無益
부처에게는 허물이나 근심이 없는데, 중생이 거꾸로 되어 있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해도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佛無過患 衆生顚倒 不覺不知 自心是佛
2.
만약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않을 것이니, 부처가 부처를 헤아리지는 않는다.
若知自心是佛 不應心外覓佛 佛不度佛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는다면 부처를 알지 못한다.
將心覓佛 不識佛
밖에서 부처를 찾기만 하면,
모두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但是外覓佛者 盡是不識自心是佛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할 수는 없으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생각할 수는 없다.
亦不得將佛禮佛 不得將心念佛
부처는 경(經)을 외우지도 않고,
부처는 계(戒)를 지키지도 않고,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는다.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으며, 선(善)도 악(惡)도 짓지 않는다.
佛不誦經 佛不持戒 佛不犯戒 佛無持犯 亦不造善惡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본성을 보아야 하니, 본성이 곧 부처이다.
若欲覓佛 須是見性 性卽是佛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念佛)하고 경을 외우고
재(齋)를 지내고 계(戒)를 지킨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若不見性 念佛誦經持齋持戒 亦無益處
염불하면 인과(因果)를 얻고, 경을 외우면 총명(聰明)을 얻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날 수 있고, 보시(布施)하면 복된 과보(果報)를 얻지만,
끝내 부처를 찾지는 못한다.
念佛得因果 誦經得聰明 持戒得生天 布施得福報 覓佛終不得也
3.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생사(生死)의 근본을 밝혀내어야 한다.
若自己不明了 須參善知識了却生死根本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이라고 할 수가 없다.
若不見性 卽不名善知識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비록 12부경을 설명할 수 있더라도
역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삼계(三界)에서 받는 고통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若不如此 縱說得十二部經 亦不免生死輪廻 三界受苦 無出期時
옛날 선성(善星) 비구는 12부경을 외울 줄 알았지만,
도리어 스스로는 윤회를 면하지 못했으니,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昔有善星比丘 誦得十二部經 猶自不免輪廻 緣爲不見性
선성(善星)이 이미 그와 같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서너권의 경론(經論)을 강의할 수 있는 것으로
불법(佛法)이라고 여긴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善星旣如此 今時人 講得三五本經論 以爲佛法者 愚人也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若不識得自心 誦得閒文書 都無用處
4.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바로 본성을 보아야만 한다.
若要覓佛 直須見性
본성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자재(自在)한 사람이며,
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조작함이 없는 사람이다.
性卽是佛 佛卽是自在人 無事無作人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종일 아득하고 어두워서 밖으로 쫓아 다니며 찾겠지만,
부처를 찾아 보아야 원래 부처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若不見性 終日茫茫 向外馳求 覓佛元來不得
비록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지만,
아직 깨닫지를 못했다면, 역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
반드시 끈기 있게 공부하서 마음이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雖無一物可得 若未會 亦須參善知識 切須苦求 令心會解
살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
生死事大 不得空過
스스로를 속여 보아야 이로울 것이 없다.
自■無益
비록 값진 보배가 산처럼 쌓여 있고
일가 권속이 강의 모래알처럼 많더라도,
눈을 뜨면 보이지만, 눈을 감아도 보이는가?
縱有珍寶如山 眷屬如恒河沙 開眼卽見 合眼還見?
그러므로 유위(有爲)의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故知有爲之法如夢幻等
만약 급히 스승을 찾지 않는다면, 헛되이 일생을 보낼 것이다.
若不急尋師 空過一生
그러므로 불성(佛性)은 자신에게 있지만,
스승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끝내 밝혀낼 수가 없다.
然則佛性自有 若不因師 終不明了
스승을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자는 매우 희귀하다.
不因師悟者 萬中希有
만약 자기 스스로 인연을 깨달아 성인(聖人)의 뜻을 얻는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이런 사람은 곧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남다른 뛰어난 공부꾼이다.
若自己 以緣會合 得聖人意 卽不用參善知識 此卽是生而知之勝學也
만약 아직 깨달아 알지 못했다면,
반드시 부지런히 끈기 있게 선지식을 찾아 배워야 하니,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若未悟解 須勤苦參學 因敎方得悟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는다면,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같지가 않다.
若自明了 不學亦得 不同迷人
흑백을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망령된 말로써 불교를 알린다면,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창하더라도
모두가 마구니의 말일 뿐 부처의 말은 아니다.
스승은 마구니의 왕이고 제자는 마구니의 백성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저 백성을 떠맡아 이끌어 모르는 사이에 생사(生死)의 바다에 떨어진다.
不能分別■白 妄言宣佛敎勅 謗佛妄法 如斯等類 說法如雨 盡是魔說 卽非佛說 師是魔王
弟子是魔民 迷人任他指揮 不覺墮生死海
그저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이면서 망령되이 부처라고 자칭한다면,
이러한 중생은 죄가 큰 사람이니,
저 일체 중생을 속여서 마구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但是不見性人 妄稱是佛 此等衆生是大罪人 ■他一切衆生 令入魔界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도 12부 경전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이것은 모두 마구니의 말이며 마구니 집안의 권속이지, 불교 집안의 제자는 아니다.
이미 흑백을 구분히 못하는데, 무엇에 의지하여 생사를 면할 것인가?
若不見性 說得十二部經敎 盡是魔說 魔家眷屬 不是佛家弟子 旣不辨■白 憑何免生死
만약 본성을 본다면 곧 부처이고, 본성을 보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若見性卽是佛 不見性卽是衆生
만약 중생의 본성을 떠나서 따로 얻을 불성(佛性)이 있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중생의 본성이 곧 불성이다.
본성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가 곧 본성이다.
이 본성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고, 부처를 제외하고는 얻을 본성이 없다.
若離衆生性別有佛性可得者 佛今在何處 卽衆生性 卽是佛性也 性外無佛
佛卽是性 除此性外 無佛可得 佛外無性可得
5.
묻는다.
“만약 본성을 보지 않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널리 복되고 이로운 일을 한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問曰 若不見性 念佛誦經布施持戒精進廣興福利 得成佛否
답한다.
“성불할 수 없다.“
答曰 不得
다시 묻는다.
“어찌하여 성불할 수 없습니까?“
又問 因何不得
답한다.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法)으로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答曰 有少法可得 是有爲法 是因果 是受報 是輪廻法
생사(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느 때에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겠는가?
不免生死 何時得成佛道
성불이란 모름지기 본성을 보는 것이다.
成佛須是見性
만약 본성을 보지 않으면, 인과(因果) 등의 말들은 외도(外道)의 법이다.
若不見性 因果等語是外道法
만약 부처라면, 외도법(外道法)을 익히지 않는다.
若是佛 不習外道法
부처는 업을 짓는 사람이 아니니, 부처에게는 인과(因果)가 없다.
佛是無業人 無因果
다만 얻을 수 있는 조그만 법이라도 있기만 하면,
모두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어떻게 성불하겠는가?
但有少法可得 盡是謗佛 憑何得成
하나의 마음(一心)에든 하나의 능력(一能)에든
하나의 이해(一解)에든 하나의 견해(一見)에든 머물기만 하면,
부처는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但有住着一心一能一解一見 佛都不許
부처에게는 지키거나 범할 것이 없다.
佛無持犯
마음의 본성은 본래 공(空)이니, 역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心性本空 亦非垢淨
모든 법은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諸法無修無證 無因無果
부처는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선(善)을 닦지도 않고, 악(惡)을 짓지도 않고,
정진(精進)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佛不持戒 佛不修善 佛不造惡 佛不精進 佛不懈怠
부처는 만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마음에 머물러 부처를 본다면, 용납되지 않는다.
佛是無作人 但有住着心見佛 卽不許也
부처는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만들지 말라.
佛不是佛 莫作佛解
만약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결코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若不見此義 一切時中 一切處處 皆是不了本心
만약 자성을 보지 못하고
언제나 ‘만드는 일이 없다’라는 생각을 만들려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고, 어리석은 사람이고,
무분별의 허공 속에 떨어져서 어둡기가 술취한 것과 같은 사람이어서
좋고 나쁨을 판별하지 못한다.
若不見性 一切時中 擬作無作想 是大罪人 是癡人 落無記空中 昏昏如醉人 不辨好惡
만약 만드는 일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한다면,
먼저 반드시 자성을 본 연후에야 반연하는 생각이 쉬어지는 것이다.
若擬修無作法 先須見性然後 息緣慮
자성을 보지 못하고도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若不見性 得成佛道 無有是處
어떤 사람은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마구 악업(惡業)을 짓고는,
망녕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이니 악한 일을 해도 허물이 없다.’고 한다.
有人撥無因果 熾然作惡業 妄言本空作惡無過
이러한 사람은
무간흑암지옥(無間黑暗地獄)에 떨어져 영원토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如此之人 墮無間黑闇地獄 永無出期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若是智人 不應作如是見解
6.
묻는다.
“이미 움직이고 동작함이 언제나 모두 본래 마음이라면,
육체가 무상(無常)할 때에 어떻게 본래 마음을 보지 못합니까?“
問曰 旣若施爲運動 一切時中 皆是本心 色身無常之時 云何不見本心
답한다.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答曰 本心常現前 汝自不見
묻는다.
“마음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 무슨 까닭에 보지 못합니까?“
問曰 心旣見在 何故不見
스님이 말한다.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없는가?“
師云 汝曾作夢否
답한다.
“꿈 꾼 적이 있습니다.“
答 曾作夢
묻는다.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본래 몸인가?“
問曰 汝作夢之時 是汝本身否
답한다.
“본래 몸입니다.“
答 是本身
다시 묻는다.
“그대의 말과 움직임과 동작은 그대와 따로 있는가 따로 있지 않는가?“
又問 汝言語施爲運動 以汝別不別
답한다.
“따로 있지 않습니다.”
答 不別
스님이 말한다.
“이미 따로 있지 않다면, 곧 이 몸이 그대의 본래 법신(法身)이고,
이 법신이 그대의 본래 마음이다.
師云 旣若不別 卽此身是汝本法身 卽此法身是汝本心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此心從無始曠大劫來 與如今不別 未曾有生死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승속(僧俗)과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닦아서 깨달음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筋力)도 없고, 용모(容貌)도 없다.
不生不滅 不增不減 不垢不淨 不好不惡 不來不去 亦無是非 亦無男女相 亦無僧俗老少
無聖無凡 亦無佛亦無衆生 亦無修證 亦無因果 亦無筋力 亦無相貌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막을 수도 없다.
猶如虛空 取不得捨不得 山河石壁不能爲■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自在)하고 신령스러이 통한다.
出沒往來 自在神通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業)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透五蘊山 渡生死河 一切業拘此法身不得
이 마음은 미묘(微妙)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此心 微妙難見 此心不同色心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사람들은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 광명(光明) 속에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물어 보면 전혀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과 같다.
此心是佛 人皆欲得見 於此光明中 運手動足者 如恒河沙 及乎問着 總道不得 猶如木人相似
모두가 스스로 받아서 사용하는데,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總是自己受用 因何不識
부처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까닭에 업을 지어서 생사(生死)의 강에 떨어져 나오고자 하지만 도리어 잠겨 버리니,
단지 본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중생이 만약 어리석지 않다면,
무슨 까닭으로 물어 보면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스스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면서도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佛言 一切衆生盡是迷人 因此作業 墮生死河 欲出還沒 只爲不見性 衆生若不迷 因何問着 其中無有一人得會者 自家運手動足 因何不識
그러므로 성인의 말은 잘못됨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겠다.
故知聖人語不錯 迷人自不會曉
그러므로 이것은 밝히기가 어려워서
오직 부처 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잘 알아차릴 뿐,
나머지 사람들과 하늘 사람과 중생들은 전혀 밝게 깨닫지 못함을 알겠다.
故知此難明 唯佛一人能會此心 餘人天及衆生等 盡不明了
만약 지혜가 이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바야흐로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또 해탈이라 이름 하니, 생사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若智慧明了此心 方名法性 亦名解脫 生死不拘
모든 법이 그를 구속할 수 없으니
일컬어 크게 자유로운 으뜸가는 여래[大自在王如來]라 하고,
또 생각과 말로 하지 못한다[不思議]고 하고, 또 성스러운 바탕[聖體]이라고 하고,
또 영원히 살아서 죽지 않는다[長生不死]고 하고, 또 큰 신선[大仙]이라 한다.
一切法拘他不得 是名大自在王如來 亦名不思議 亦名聖體 亦名長生不死 亦名大仙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바탕은 곧 하나이니,
성인(聖人)이 여러 가지로 분명한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名雖不同 體卽是一 聖人種種分明 皆不離自心
마음의 크기는 광대하고, 응대하여 작용함은 끝이 없다.
心量廣大 應用無窮
눈에 응해서는 색을 보고, 귀에 응해서는 소리를 듣고,
코에 응해서는 냄새를 맡고, 혀에 응해서는 맛을 알고,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다.
應眼見色 應耳聞聲 應鼻嗅香 應舌知味 乃至施爲運動皆是自心
언제나 말길이 끊어지기만 하면 곧 자기 마음이다.
一切時中 但有語言道斷 卽是自心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色)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故云 如來色無盡 智慧亦復然
색에 다함없음이 곧 자기 마음이고,
마음인 의식이 모든 것을 잘 분별함과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함이 모두 지혜이다.
色無盡是自心 心識善能分別一切 乃至施爲運用 皆是智慧
마음은 모습이 없고, 지혜 역시 다함이 없다.
心無形相 智慧亦無盡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故云 如來色無盡 智慧亦復然
사대색신(四大色身)이 곧 번뇌이니, 색신에는 생멸(生滅)이 있기 때문이다.
四大色身卽是煩惱 色身卽有生滅
법신은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 (다시) 머물 것은 없다.
法身常住無所住
여래의 법신은 한결같아서 다르게 변하지 않는다.
如來法身常不變異
그러므로 경(經)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불성이 본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故經云 衆生應知 佛性本自有之
7.
가섭(迦葉)은 다만 본성(本性)을 깨달았을 뿐이다.
迦葉只是悟得本性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
本性卽是心 心卽是性
바로 이것이 모든 부처의 마음과 같다.
卽此同諸佛心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이 마음을 전하였을 뿐이다.
前佛後佛只傳此心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다.
除此心外 無佛可得
뒤집힌 중생은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찾아서 하루 종일 바쁘다.
顚倒衆生 不知自心是佛 向外馳求 終日忙忙
염불(念佛)하고 예불(禮佛)하지만,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念佛禮佛 佛在何處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不應作如是等見
단지 자기 마음만 알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但識自心 心外更無別佛
경(經)에서 말하기를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모두 허망(虛妄)하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있는 그곳에 곧 부처가 있다.’고 하였다.
經云 凡所有相皆是虛妄 又云 所在之處卽爲有佛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해서는 안된다.
自心是佛 不應將佛禮佛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문득 앞에 나타나더라도, 결코 절하고 공경할 필요가 없다.
但是有佛及菩薩相貌 忽爾現前 亦切不用禮敬
나의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하니, 본래 그런 모습은 없다.
我心空寂 本無如是相貌
만약 모습을 취한다면 곧 마구니에게 포섭되니, 모두 사도(邪道)에 떨어진다.
若取相卽是魔攝 盡落邪道
만약 (불상과 보살상이라는) 환상(幻想)이 마음에서 생긴다면, 절할 필요가 없다.
若知幻從心起 卽不用禮
절하는 자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진실을) 아는 자는 절하지 않는다.
禮者不知 知者不禮
절하는 것은 마구니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禮被魔攝
학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그 때문에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다.
恐學人不知故 作如是辨
모든 부처와 여래와 본성(本性)의 바탕 위에는
전혀 이러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諸佛如來本性體上 都無如是相貌 切須在意
다른 경계가 있더라도, 결코 붙잡아 취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但有異境界 切不用採括 亦莫生?怖 不要疑惑
나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니, 어느 곳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겠는가?
我心本來淸淨 何處有如許相貌
나아가 천룡(天龍), 야차(夜叉), 귀신(鬼神),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등의
모습에 대해서도, 또한 마음을 써서 공경하거나 귀중하게 여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乃至天龍夜叉鬼神 帝釋梵王相等 亦不用心生敬重 亦莫■懼
나의 마음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모든 모습은 전부 허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결코 모습을 붙잡지는 말라.
我心本來空寂 一切相貌皆是妄相 但莫取相
만약 부처라는 견해, 법이라는 견해를 내고,
부처라는 모습, 보살이라는 모습을 내어서, 공경하고 귀중하게 여긴다면,
스스로 중생의 처지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若起佛見法見 及佛菩薩等相貌而生敬重 自墮衆生位中
만약 진실로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다만 어떤 모습도 취하지 않으면 될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若欲眞會 但莫取一切相卽得 更無別語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무릇 있는 모습들은 모두 허망하다.’고 하였으니,
전혀 정해진 진실은 없는 것이다.
故經云 凡所有相 皆是虛妄 都無定實
환상(幻相)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상(無常)한 법이다.
幻無定相 是無常法
단지 모습을 취하지 않기만 하면, 저 성인의 뜻과 합할 것이다.
但不取相 合他聖意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모습을 떠난 것을 모든 부처라고 일컫는다.’라 한 것이다.
故經云 離一切相 卽名諸佛
8.
묻는다.
“무엇 때문에 부처나 보살들에게 절하면 안됩니까?“
問曰 因何不得禮佛菩薩等
답한다.
“천마(天魔)와 파순(波旬)과 아수라(阿修羅)가 신통(神通)을 드러내어
모두 보살의 모습을 지을 수 있다.
答曰 天魔波旬阿修羅示見神通 皆作得菩薩相貌
여러 가지로 변화(變化)하는 것은 모두 외도(外道)이고, 결코 부처가 아니다.
種種變化 是外道 總不是佛
부처는 자기 마음이니, 착각하여 절하지 말라.
佛是自心 莫錯禮拜
불(佛)이란 인도 말로서, 중국에서는 각성(覺性)이라고 한다.
佛是西國語 此土云覺性
각(覺)이란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것이다.
覺者靈覺
기연(機緣)에 응하고 사물을 대하며,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본성이다.
應機接物 揚眉瞬目 運手動足 皆是自己靈覺之性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도(道)이고, 도가 곧 선(禪)이다.
性卽是心 心卽是佛 佛卽是道 道卽是禪
선(禪)이라는 한 글자는 범부도 성인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禪之一字 非凡聖所測
또 말한다.
“본성을 보는 것이 선(禪)이다.
又云 見本性爲禪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若不見本性 卽非禪也
설사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서를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다만 범부일 뿐, 불법(佛法)은 아니다.
假使說得千經萬論 若不見本性 只是凡夫 非是佛法
지극한 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써는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경전의 가르침이 어떻게 미치겠는가?
至道幽深 不可話會 典敎憑何所及
단지 본성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몰라도 된다.
但見本性 一字不識亦得
본성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이다.
見性卽是佛
성스런 본바탕은 본래 청정하여 잡스런 때가 없다.
聖體本來淸淨 無有雜穢
있는 말들은 모두가 성인(聖人)이 마음에서 일으켜 사용하는 것이다.
所有言說皆是聖人 從心起用
작용이니 본체니 하는 것은 본래 헛된 이름이다.
말로 미치지도 못하는데, 12부 경전으로 어떻게 미칠 수 있겠는가?
用體本來空名 言尙不及 十二部經 憑何得及
도(道)는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닦아서 증득(證得)할 필요가 없다.
道本圓成 不用修證
9.
도는 소리와 색이 아니니,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
道非聲色 微妙難見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서 차갑고 따듯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아서,
남에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如人飮水 冷暖自知 不可向人說也
오직 여래(如來)만이 알 수 있을 뿐,
나머지 사람이나 하늘사람 등의 부류는 전혀 깨달아 알지 못한다.
唯有如來能知 餘人天等類 都不覺知
범부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니, 모습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凡夫智不及 所以有執相
자기의 마음이 본래 텅 비고 고요한 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모습을 붙잡고 일체법을 붙잡으면, 바로 외도(外道)에 떨어진다.
不了自心本來空寂 妄執相及一切法 卽墮外道
만약 모든 법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남을 안다면,
붙잡지 말아야 하니, 붙잡으면 알지 못한다.
若知諸法從心生 不應有執 執卽不知
만약 본성을 본다면, 12부 경전은 모두 부질없는 문자(文字)이다.
若見本性 十二部經 總是閑文字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논서가 다만 마음을 밝히는 것이니,
말끝에 계합(契合)하여 알아차리면,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千經萬論只是明心 言下契會 敎將何用
지극한 도리(道理)는 말을 벗어났지만, 가르침은 말이니 사실은 도(道)가 아니다.
至理絶言 敎是言詞 實不是道
도는 본래 말이 없고, 말은 허망한 것이다.
道本無言 言說是妄
만약 밤에 꿈속에서 누각(樓閣), 궁전, 코끼리, 말 등을 보거나,
나무, 수풀, 연못, 정자(亭子) 등과 같은 모습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모습들에는 좋아하여 집착하는 한 생각도 낼 수가 없으니,
모두가 의탁하여 생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若夜夢見樓閣宮殿象馬之屬 及樹木叢林池亭 如是等相 不得起一念樂着
盡是托生之處 切須在意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 모습을 붙잡지 않을 수 있다면, 의심을 제거할 수 있다.
臨終之時 不得取相 卽得除疑
마음이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곧 마구니에게 사로잡힌다.
心瞥起 卽魔攝
법신(法身)은 본래 청정하여 받을 것이 없다.
法身本來淸淨無受
다만 인연을 따라서 헤매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망령되이 과보(果報)를 받는다.
只緣迷故 不覺不知 因玆故 妄受報
그러므로 좋아하여 집착하게 되면, 자재(自在)할 수가 없다.
所以有樂着 不得自在
지금 만약 깨닫는다면, 본래의 몸과 마음은 습기(習氣)에 물들지 않는다.
只今若悟得 本來身心 卽不染習
만약 성인을 벗어나 범부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면,
스스로 중생이 되는 것이다.
若從聖入凡 示現種種雜類等 自爲衆生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거스르는 경계에서든 순탄한 경계에서든 모두 자재할 수 있으니,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 없어서 성스러움이 영원하다.
故聖人逆順皆得自在 一切業拘他不得 聖成久
큰 위덕(威德)이 있는 모든 종류의 업(業)을 저 성인(聖人)이 부리니,
천당과 지옥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
有大威德 一切品類業 被他聖人轉 天堂地獄 無奈何他
범부(凡夫)는 정신(精神)과 의식(意識)이 어두우니,
성인이 안팎이 밝게 통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凡夫神識昏昧 不同聖人內外明徹
만일 의심이 있으면 행하지 않지만,
행하게 되면 생사(生死)의 바다 위에서 떠다니게 되어,
뒤에 후회하더라도 구해 줄 수가 없다.
若有疑卽不作 作卽流浪生死 後悔無相救處
가난과 고생이 모두 망상(妄想)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서로서로 권고하여 다만 행함 없이 행한다면,
곧 여래(如來)의 지견(知見)으로 들어간다.
貧窮困苦皆從妄想生 若了是心 遞相勸勉 但無作而作 卽入如來知見
10.
처음 발심한 사람은 정신과 의식이 전혀 안정(安定)되어 있지 않다.
初發心人 神識總不定
만약 꿈속에서 흔히 이상한 경계를 보더라도 바로 의심할 필요는 없으니,
모두 자기의 마음이 일으킨 것이고 밖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若夢中頻見異境 輒不用疑 皆是自心起故 不從外來
꿈에서 만약 밝음이 나타남을 보았는데 태양보다도 더 밝다면,
곧 남은 습(習)이 문득 없어지고 법계(法界)의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夢若見光明出現過於日輪 卽餘習頓盡 法界性見
만약 이러한 일이 있다면, 바로 도를 이루는 원인이지만,
오직 스스로가 알 뿐 남에게는 말할 수 없다.
若有此事 卽是成道之因 唯自知 不可向人說
혹시 고요한 숲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사이에
눈에서 밝음을 보는데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면,
남에게 말하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지니, 역시 자성(自性)의 밝음이다.
或靜園林中 行住坐臥 眼見光明 或大或小 莫與人說 亦不得取 亦是自性光明
혹은 밤중에 조용한 어둠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눈에서 밝음을 보아 낮과 다름이 없다면,
괴이하게 여기지 말 것이니, 모두가 자기 마음이 밝게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或夜靜暗中 行住坐臥 眼見光明 與晝無異 不得怪 ?是自心欲明顯
혹은 밤에 꿈속에서 별이나 달을 또렷이 보더라도,
자기 마음이 여러 인연을 쉬고자 하는 것이니, 역시 남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或夜夢中 見星月分明 亦自心諸緣欲息 亦不得向人說
꿈이 만약 어둡고 어두워서 마치 어두운 그늘 속을 가는 것과 같다면,
자기 마음에 번뇌의 장애가 두꺼운 것이니, 역시 스스로 알 수 있다.
夢若昏昏 猶如陰暗中行 亦是自心煩惱障重 亦自知
11.
만약 본성을 본다면, 독경(讀經)하고 염불(念佛)할 필요가 없다.
若見本性 不用讀經念佛
널리 배우고 많이 알아보아야 이익될 것이 없고,
정신과 의식이 더욱 혼미하게 될 뿐이다.
廣學多知無益 神識轉昏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다만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設敎只爲標心
만약 마음을 안다면, 가르침을 살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若識心 何用看敎
만약 범부를 빠져나와 성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곧 업(業)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서 분수 따라 시간을 보내야 한다.
若從凡入聖 卽須息業養神隨分過日
만약 자주 성을 내거나 기쁘한다면,
본성을 돌려서 도와 서로 어긋나게 만들 것이다.
若多嗔喜 令性轉 與道相違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한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
自■?無益
성인은 생사 속에서 자재하여, 나타나고 사라지고 숨고 드러남에 정해진 것이 없다.
聖人於生死中自在 出沒隱顯不定
모든 업이 그를 구속할 수가 없으니, 성인은 삿된 마구니를 부순다.
一切業拘他不得 聖人破邪魔
모든 중생이 본성을 보기만 하면, 남은 습(習)이 문득 소멸하고,
정신과 의식이 어둡지 않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 알아차린다.
一切衆生但見本性 餘習頓滅 神識不昧 須是直下便會
다만 지금 진실로 도를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어떠한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업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 남은 습도 역시 사라져서, 저절로 명백할 것이니,
힘써 공부할 필요가 없다.
只在如今 欲眞會道 莫執一切法 息業養神 餘習亦盡 自然明白 不假用功
외도(外道)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힘써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삼으니, 성인의 뜻과는 어긋난다.
外道不會佛意 用功最多 違背聖意
하루 종일 바쁘게 염불하고 경전을 뒤져 보아야,
정신의 본성에는 어두워 윤회(輪廻)를 면하지 못한다.
終日驅驅念佛轉經 昏於神性 不免輪廻
부처는 한가한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바삐 두루 명성과 이익을 찾겠는가?
나중에 어디에다 쓰겠는가?
佛是閑人 何用驅驅 廣求名利 後時何用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고,
늘 배움에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종일 도를 행하고,
늘 배움에 앉아서 눕지 않고, 두루 배우고 많이 듣는 것을 불법(佛法)으로 삼는다.
但不見性人 讀經念佛 長學精進 六時行道 長學坐不臥 廣學多聞 以爲佛法
이러한 중생들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此等衆生 盡是謗佛法人
12.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다.
前佛後佛 只言見性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니,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나는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큰 죄인이다.
諸行無常 若不見性 妄言我得阿■菩提 此是大罪人
10인의 큰 제자 가운데 아난(阿難)은 다문(多聞) 가운데 첫째였지만,
부처를 알지는 못하고 다만 배워서 많이 알 뿐이었다.
十大弟子 阿難多聞中得第一 於佛無識 只學多聞
이승(二乘)과 외도(外道)는 모두 부처를 알지 못하고,
하나하나 닦아서 깨닫는다고 알고 있으니,
인과(因果)에 떨어져 중생(衆生)의 업보(業報)를 받고 생사(生死)를 면하지 못한다.
二乘外道皆無識佛 識數脩證 墮在因果中 是衆生業報 不免生死
부처의 뜻에 위배되면 곧 부처를 비방하는 중생이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
경에서 말하기를 ‘천제인(闡提人)은 믿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다.
違背佛意 卽是謗佛衆生 殺却無罪過 經云 闡提人不生信心 殺却無罪過
만약 믿는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부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若有信心 此人是佛位人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순서대로 나아가도 소용없다.
若不見性 卽不用取次
저 선량(善良)한 성인을 비방하고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해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선과 악이 또렷하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謗他良善 自■無益 善惡歷然 因果分明
천당과 지옥이 다만 눈앞에 있는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고,
지금 깜깜한 지옥 속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天堂地獄 只在眼前 愚人不信 現墮黑暗地獄中 亦不覺不知
다만 업(業)이 무겁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다.
只緣業重故 所以不信
마치 눈 없는 사람이 빛이 밝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에게 말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것은, 다만 맹인(盲人)이기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알 수 있겠는가?
譬如無目人 不信道有光明 縱向伊說亦不信 只緣盲故 憑何辨得日光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지금 축생(畜生)의 잡류(雜類)에 떨어져 있고 빈궁하고 하천(下賤)하게 태어나 있어서,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바로 물으면 또한 말하기를 ‘나는 지금 즐거워서 천당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愚人亦復如是 見今墮畜生雜類 誕在貧窮下賤 求生不得 求死不得 雖受是苦
直問着 亦言我今快樂 不異天堂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살아 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다.
故知一切衆生 生處爲樂 亦不覺不知
이와 같이 악(惡)한 사람은 다만 업장(業障)이 무겁기 때문에
신심(信心)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如斯惡人 只緣業障重故 所以不能發信心者 不自由他也
13.
만약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보면,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으니, 세속인(世俗人) 또한 부처이다.
若見自心是佛 不在剃除鬚髮 白衣亦是佛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머리를 깎아도 역시 외도(外道)이다.”
若不見性 剃除鬚髮亦是外道
묻는다.
“세속인은 처자(妻子)가 있고, 음욕(淫慾)도 없애지 않는데,
어떻게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問曰 白衣有妻子 ?慾不除 憑何得成佛
답한다.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 음욕(淫慾)을 말하지는 않는다.
答曰 只言見性 不言■慾
단지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견성하기만 하면 음욕은 본래 공적(空寂)하니 끊어 없앨 필요도 없고
즐겨 집착하지도 않는다. 비록 남은 습기(習氣)가 있더라도 해가 되지 않는다.
只爲不見性 但得見性 ■慾本來空寂 不假斷除 亦不樂着 縱有餘習 不能爲害
무엇 때문인가? 본성이 본래 깨끗하기 때문이다.
何以故 性本淸淨故
비록 오온(五蘊)의 색신(色身) 속에 있지만,
그 본성은 본래 깨끗하여 오염될 수가 없다.
雖處在五蘊色身中 其性本來淸淨 染汚不得
법신(法身)은 본래 감각을 받아들임이 없어서,
배고픔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추움도 없고, 더움도 없고, 병(病)도 없고,
사랑도 없고, 딸린 권속도 없고, 고통과 즐거움도 없고, 좋아함과 싫어함도 없고,
장점과 단점도 없고, 강함과 약함도 없다.
法身本來無受 無飢無渴 無寒熱 無病 無恩愛 無眷屬 無苦樂 無好惡 無長短 無强弱
본래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다.
本來無有一物可得
다만 이 색신(色身)이라는 원인에 집착하기 때문에,
배고픔, 갈증, 추움, 더움, 질병 등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只緣執有此色身因 卽有飢渴寒熱?病等相
만약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자재하게) 작위하여라.
若不執卽一任作
만약 생사 속에서 자재(自在)를 얻어 일체법을 굴린다면,
성인(聖人)과 같이 신령스러이 통하고 자재하고 막힘이 없어서 불안한 곳이 없을 것이다.
若於生死中得自在 轉一切法 與聖人神通自在無? 無處不安
만약 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결코 어떤 경계도 뛰어넘지 못한다.
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若心有疑 決定透一切境界不過 不作最好
조작하면 생사의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作了不免輪廻生死
만약 본성을 본다면,
찬드라(■陀羅, candala; 도살업 등에 종사하는 최하층의 천민)도 역시 성불할 수 있다.“
若見性 ■陀羅亦得成佛
묻는다.
“찬드라는 살생(殺生)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가 있습니까?”
問曰 ■陀羅殺生作業 如何得成佛
답한다.
“단지 견성을 말할 뿐, 업 짓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비록 업 짓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과 같지 않아도,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가 없다.
答曰 只言見性 不言作業 縱作業不同迷人 一切業拘他不得
애초부터 다만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 속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한다. 본성을 깨닫게 되면, 끝내 업을 짓지 않는다.
從無始曠大劫來 只爲不見性 墮地獄中 所以作業輪廻生死 從悟得本性 終不作業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염불(念佛)해도 과보(果報)를 면하지 못하니,
생명을 살해하는 것까지 말할 것도 없다.
若不見性 念佛免報不得 非論殺生命
만약 본성을 보면, 의심이 문득 사라지니,
생명을 죽인 것도 그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若見性 疑心頓除 殺生命亦不奈他何
14.
인도의 27조사가 다만 차례차례 심인(心印)을 전했을 뿐이며,
나는 이제 이 땅에 와서 오직 돈교대승(頓敎大乘)의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전할 뿐,
지계(持戒)나 보시(布施)나 정진(精進)이나 고행(苦行)을 말하지는 않는다.
自西天二十八祖 只是遞傳心印 吾今來此土 唯傳頓敎大乘卽心是佛 不言戒施 精進苦行
나아가 물과 불 속에 들어가고, 칼을 꽂은 바퀴 위에 올라가고,
한 끼 밥만 먹고, 늘 앉아서 눕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외도의 유위법(有爲法)이다.
乃至入水火登於劍輪 一食長坐不臥 盡是外道有爲法
만약 행위와 동작의 신령스런 깨달음의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대가 곧 모든 부처의 마음이다.
若識得施爲運動靈覺之性 汝卽諸佛心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단지 마음을 전한다고만 하였으니, 다시 다른 법은 없다.
前佛後佛只言傳心 更無別法
만약 이 법을 알아차리게 되면,
범부가 한 글자도 알지 못해도 역시 부처이지만,
만약 자기의 신령스런 깨달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면,
설사 몸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더라도 부처 찾는 일은 끝내 이룰 수 없다.
若識此法 凡間一字不識亦是佛 若不識自己靈覺之性 假使身破如微塵 覓佛終不得也
부처는 또 법신(法身)이라고도 하고,
본심(本心)이라고도 한다.
佛者亦名法身 亦名佛心
이 마음에는 모습도 없고, 인과(因果)도 없고,
근육과 골격도 없고, 마치 허공과 같아서 붙잡을 수도 없고,
물질과 같지 않고, 외도와 같지가 않다.
此心無形相 無因果 無筋骨 猶如虛空 取不得 不同質界 不同外道
이 마음은 여래(如來) 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
그 나머지 중생인 어리석은 사람들은 밝게 알 수가 없다.
此心 唯如來一人能會 其餘衆生迷人不明了
15.
이 마음은 사대색신(四大色身) 속을 벗어나지 않는다.
此心不離四大色身中
만약 이 마음을 벗어난다면, 움직일 수가 없다.
若離此心 卽無能運動
이 몸에는 지각(知覺)이 없으니 마치 초목(草木)이나 기와조각 같고,
이 몸에는 정식(情識)이 없으니 무엇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겠는가?
是身無知 如草木瓦礫 身是無情 因何運動
만약 자기 마음이 움직이면,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들이,
모두 움직이는 마음이 움직여 작용함이다.
若自心動 乃至語言施爲運動 見聞覺知 皆是動心動用
움직이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니, 움직임이 바로 그 작용이다.
動是心動 動卽其用
움직여 작용함 밖에 마음이 없고, 마음 밖에 움직임이 없다.
動用外無心 心外無動
움직임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은 움직임이 아니다.
움직임에는 본래 마음이 없고, 마음에는 본래 움직임이 없다.
動不是心 心不是動 動本無心 心本無動
움직임은 마음을 떠나지 않고, 마음은 움직임을 떠나지 않는다.
움직임에는 마음이 떠나지 않고, 마음에는 움직임이 떠나지 않는다.
動不離心 心不離動 動無心離 心無動離
움직임은 마음의 작용이고, 작용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움직이면 마음이 작용하고, 작용하면 마음이 움직이니, 움직이 않으면 작용하지도 않는다.
動是心用 用是心動 動卽心用 用卽心動 不動不用
작용의 바탕은 본래 공(空)인데, 공은 본래 움직임이 없다.
用體本空 空本無動
움직임과 작용은 마음과 같지만, 마음에는 본래 움직임이 없다.
動用同心 心本無動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움직이니 또 움직일 것은 없다’고 한 것이다.
故經云 動而無所動
이 까닭에 종일 왔다갔다하지만 한 번도 왔다갔다한 적이 없으며,
종일 보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종일 웃지만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으며,
종일 듣지만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으며, 종일 알지만 한 번도 안 적이 없으며,
종일 기뻐지만 한 번도 기뻤던 적이 없으며,
종일 다니지만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으며, 종일 머물지만 한 번도 머문 적이 없다.
終日去來而未曾去來 終日見而未曾見 終日笑而未曾笑 終日聞而未曾聞 終日知而未曾知
終日喜而未曾喜 終日行而未曾行 終日住而未曾住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가는 곳이 사라졌다’고 한다.
故經云 言語道斷 心行處滅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본래 두루 고요하다.
見聞覺知 本自圓寂
나아가 성내고 기쁘고 아픈 것이 나무 인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乃至嗔喜痛痒何異木人
다만 아픔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只緣推尋痛痒不可得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악업(惡業)은 고통스런 과보를 가져오고 선업(善業)에는 좋은 과보가 있다.
성을 내면 지옥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뻐하면 하늘에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故經云 惡業卽得苦報 善業有善報 不但嗔墮地獄 喜卽生天
만약 성냄과 기쁨의 본성이 공(空)임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기만 하면,
모든 업(業)에서 해탈한다.
若知嗔喜性空 但不執 卽業脫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 경전을 읽는다면, 결정코 의지할 것이 없다.
若不見性 講經 決無憑
말을 하려면 끝이 없으니 간략히 삿됨과 바름을 드러낸 것이 이와 같지만,
한두 가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說亦無盡 略標邪正如是 不及一二也
16.
송(頌)한다.
頌曰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은 찾기가 어려우니,
心心心難可尋
넓을 때에는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寬時遍法界
좁을 때에는 바늘도 들어갈 틈이 없다.
窄也不容鍼
나는 본래 마음을 찾고 부처를 찾지 않으니,
我本求心不求佛
삼계(三界)가 비어서 물건이 없음을 밝게 안다.
了知三界空無物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찾을지니,
若欲求佛但求心
단지 이 마음 마음 하는 마음이 곧 부처이다.
只這心心心是佛
나는 본래 마음을 찾았으나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
我本求心心自持
마음을 찾아도 마음을 기다릴 수는 없음을 안다.
求心不得待心知
불성은 마음 밖에서 얻을 수 없으니,
佛性不從心外得
마음이 생기면 곧 죄가 생기는 때이다.
心生便是罪生時
17.
게(偈)한다.
偈曰
나는 본래 이 땅에 와서,
吾本來此土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려 했다.
傳法救迷情
하나의 꽃에 다섯 잎이 열리니,
一華開五葉
열매 맺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結果自然成
혈맥론 마침.
血脈論 終
출처 : http://blog.naver.com/civil59.do?Redirect=Log&logNo=100009607871
[출처] 달마의 혈맥론(血脈論)|작성자 김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