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피부는 매우 연약하여 쉽게 상처가 생긴다. 상처는 붓기도 하고 붉게 변하기도 하고 열도 나고 화농이 되기도 한다. 백혈구가 동원되어 침입한 미생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때문이다. 식물은 상처를 어떻게 방어하고 치유할까? 식물도 우리 몸과 같은 조직적인 방어체계가 있을까? 나무에 못을 박아도 괜찮은가? 매우 궁금한 질문들이다. 고등식물 중에서 특히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풍파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해답이다.
동물과 식물은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다. 동물의 세포는 세포벽이 없어 부드럽고 몸은 대부분 단백질로 되어 있다. 미생물 중에서 박테리아는 단백질을 주로 분해하기 때문에 동물을 공격한다. 상처, 소화기관, 호흡기를 통해 우리 몸에 침입하여 염증을 유발하고 온몸에 퍼지기도 한다. 그래서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초기에 조심해서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주사를 맞을 때 박테리아가 침입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무균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식물의 세포는 세포벽을 가지고 있어 딱딱하고, 몸은 대부분 세포벽의 주성분인 섬유질로 되어 있다. 박테리아는 섬유질을 분해하지 못하는 반면, 곰팡이는 효소를 분비하여 이를 분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곰팡이는 살아 있거나 죽은 나무에 침입하여 조직을 파괴하고 섬유질을 분해한다. 나무에 주사를 놓을 때 박테리아의 오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철저한 소독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 몸에 쇠못이 박히면 그 자리에 곧 염증이 생긴다. 미생물이 함께 침입하고 파상풍에 걸릴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박힌 못을 그대로 두고 살 수는 없다. 나무에 쇠못을 박을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까? 쇠못을 나무에 박으면 박힌 부위의 세포는 죽지만 그 숫자가 몇 개 되지 않고 물과 양분은 쇠못 주위를 돌아서 이동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이때 식물에 염증이 생기는가 하는 것이다.
쇠못의 상처를 통해 여러 가지 미생물이 들어오지만, 박테리아는 식물조직을 분해하지 못하니 다행이다. 곰팡이도 들어오겠지만 살아 있는 나무는 방어하는 능력이 있다. 결국 인간의 경우와는 달리 쇠못이 염증을 일으키지 않으니 나무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미량이지만 나무에 철분을 공급해줄 수도 있다.
나무는 상처를 통해 들어오는 미생물을 어떻게 방어할까? 여기서 미생물은 주로 목재를 분해하여 썩게 하는 곰팡이를 의미한다. 목재(木材, wood)란 수피(나무껍질) 안쪽에 있는 목부조직으로 식물학자들은 이를 ‘2차 목부’라고 부르며, 형성층이 세포분열을 하면서 나이테의 형태로 매년 1개씩 축적해 놓은 부분이다. 2차 목부는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위로 올려 보내면서 나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목부조직(2차 목부)은 1970년대 초까지는 죽어 있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조직으로 알려져 왔다. 현미경을 통해 보면 목부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관, 가도관, 섬유세포는 모두 죽어 있는 세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비율이지만 살아 있는 유세포(柔細胞, parenchyma)가 있는데, 그 기능이 상처 부위에서 새살을 만든다는 것 이외에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미국의 샤이고(Shigo) 박사는 1970년대에 상처를 받은 수천 개의 나무들을 기계톱으로 잘라서 상처와 변색이 확산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지금까지 죽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목부조직이 살아 있으면서 침입하는 미생물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획기적인 발견이었으며, 그는 이 이론에 CODIT(코딧)라는 말을 붙였다. CODIT는 ‘수목 부후의 구획화’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미생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나무가 방어벽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4차원적으로 만들어 미생물을 가두어 구획화(區劃化)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방어벽은 미생물이 줄기를 따라서 상처의 위아래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벽이다. 우리 몸의 심장이 피를 온몸에 보내듯이 나무는 뿌리에서 흡수한 물(수액)을 목부조직을 통해 위쪽으로 보낸다. 미생물이 수액을 따라서 이동하면 온몸에 쉽게 퍼질 수 있다. 따라서 나무는 미생물의 상하 이동을 우선적으로 막으려고 한다. 활엽수의 경우 살아 있는 유세포가 자신의 세포 내용물을 도관 속으로 집어넣어 전충체(tylose)의 형태로 도관을 막는다. 침엽수의 경우 유세포가 송진을 분비하거나 막공 폐쇄로 가도관을 막아버린다. 이러한 방어벽을 샤이고 박사는 ‘제1벽’이라고 명명했다.
두 번째 방어벽은 미생물이 나무의 중심부를 향해 침투하는 것을 막는 벽이다. 목재조직에는 우산살같이 퍼진 수선조직(ray)이 있는데, 유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조직을 통해 여러 가지 물질이 가장자리(변재)에서 중앙으로 이동하여 목재의 한복판(심재)이 짙은 색을 띠게 된다. 나이테는 동심원을 그리면서 만들어지는데, 상처에서 가장 가까운 나이테의 유세포가 접선 방향으로 방어벽을 형성하여 미생물이 중앙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이 벽을 ‘제2벽’이라고 명명했다.
세 번째 방어벽은 미생물이 나이테를 따라서 좌우 방향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벽이다. 나이테의 둥근 선을 따라서 미생물이 양방향 즉 접선 방향으로 둥글게 휘면서 이동하는 것을 수선유세포가 방어벽으로 차단한다. 이 벽을 ‘제3벽’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방어벽은 형성층에 의한 방어벽이다. 상처 발생 당시에 이미 있었던 목부조직(나이테)과 새롭게 만들어지는 목부조직을 서로 격리시키기 위하여 형성층이 접선 방향으로 만든 벽이다. 이 벽을 ‘제4벽’이라고 부른다.
위에 언급한 네 가지 방어벽은 입체적으로 네 방향에서 미생물의 이동을 차단하면서 미생물을 벽으로 둘러싸서 가두어 놓아 구획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네 번째 벽이 가장 강력한 방어벽이며, 첫 번째 벽이 가장 약하다. 즉 미생물이 줄기를 따라서 상처의 위 아래로 쉽게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산림 현장에서 상처를 받은 나무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샤이고 박사의 말대로 목재 부패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이론에 근거하여 샤이고 박사는 새로운 가지치기 기술을 개발했다. 가지치기를 할 때 상처가 빨리 아물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지를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가지를 자를 때 가지터기를 10cm 정도 남겨 두고 자르는 것이 관행이었다. 혹시 가지 끝이 마르면서 형성층이 죽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샤이고 박사는 대신 가지를 바짝 잘라서 가지터기를 전혀 남겨 놓지 말라고 했다. 그래야 노출된 형성층에서 즉시 새살이 나와서 상처 주위를 감쌀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죽어 있는 줄만 알았던 목부조직이 살아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입체적으로 그리고 매우 정교하게 미생물의 침투를 방어한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샤이고 박사가 이런 새로운 이론을 1970년대 말에 발표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지치기 방법이 서서히 바뀌었다. 국내에서 그의 새로운 기술은 1982년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샤이고 박사에 의해 알려졌다. 필자는 당시 그의 강의를 직접 듣고 그와 함께 국내 여행을 했는데, 한국 음식 특히 김치와 매운 낙지볶음을 즐겨 드시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가지와 줄기가 만나는 곳에는 내부적으로 활엽수의 경우 페놀 계통의 화합물을, 그리고 침엽수의 경우 테르펜 계통의 화합물을 생산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다. 산림욕의 효과가 있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도 자신의 몸을 미생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분비된다는 주장이 있으며, 상처를 받으면 초기에 더 많이 분비된다고 알려져 있다.
고등식물인 나무는 장수하기 위해 초본식물과 달리 좀 더 적극적이고 복잡한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면역체계가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혜택과 즐거움을 주는 나무의 건강에 대하여 더 많은 지식과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수목의학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수목은 상처를 어떻게 방어하나.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