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고구마 꽃피다
이영백
어린 날 세 번째 살던 집 앞에 채소밭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문전옥전(門前玉田)이었다. 들며나며 채소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러 밭 중에 가장 아끼는 밭이다. 그 해는 유별나게 더웠다. 아버지는 그 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 심으려면 준비부터 하여야 한다. 아버지는 여러 곳에 밭농사 지으면서 지형과 위치에 따라 어떤 작물을 심을까 정하였다. 그러기에 고구마는 수시로 관리하기에도 좋은 집 곁에 정하였던 것이다. 밭은 관리가 잘 안되면 동네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다. 또 한적한 곳의 고구마 밭은 도둑맞기 십상이다.
우선 씨로 보관하여 둔 고구마를 모종용으로 싹 틔었다. 무성하게 자란 싹은 모두 잘라서 그늘에다 모아 덮어 두었다. 밭에 골 만들고 비 오기를 기다린다. 고구마는 비가 오는 중에 심어야만 활착을 잘하므로 그렇게 비 오기 기다린 것이다. 채소농사는 비 오기에 따라야 한다.
마침 기다리던 비가 온다. 골 타고 골마다 싹을 던져두었다. 아버지 우의 걸치고 호미로 적당한 구덩이 팠다. 엄마는 뒤따라 깔아 놓은 싹 심고 흙을 거슬러 넣어 손으로 꼭꼭 눌러 준다. 일하는 데 진흙으로 인하여 무척 거치적거렸다.
조금 지나자 고구마는 뿌리가 활착하기 바쁘게 땅 위로 기는 줄기가 잘 뻗어나갔다. 줄기는 사이마다 중간 발이 났다. 잎은 하늘바라기를 잘도 한다. 가물었음에도 밭 전체를 푸른 잎사귀로 온통 덮어버렸다. 고구마는 별다른 관리가 필요 없이도 잘 자랐다. 그러나 그해에는 유별나게 가물기 시작하여 고구마 자신도 후손이 없을까보아 겁이 났던지 갑자기 평소에 없던 꽃을 피워댔다.
별나게도 고구마가 꽃을 피웠다. 여태까지 이런 때가 없었다고 한다. 일백 년 만에 고구마 꽃 피웠다. 고구마가 꽃 피우면 흉조라고 한다. 잎자루 겨드랑이에서 메꽃과 연분홍색 나팔꽃같이 피어서 보기는 좋은데 아버지는 불만이 많았다. 고구마 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꽃 지고나면 열매는 흑갈색 종자로 여문다.
모내기철 새참 내어 가는 것도 일이다. 아침나절, 오후나절 등 두 번 새참에 쓰려고 햇고구마 캐라하였다. 우선 낫으로 고구마 줄기 일부를 걷어내었다. 고구마 꽃은 여지없이 줄기 따라 잘렸다. 호미로 파면 연한 황토색의 여린 고구마 씨알이 나온다. 소쿠리 째 부엌에 갖다 드렸다.
가마솥에 삶아낸 햇고구마는 그렇게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새참으로 적격이다.
고구마가 꽃 피우는 것은 기후가 부족하였기에 제 후손을 이어가려고 꽃피워 열매라도 맺으려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고구마 꽃 못 본 이유가 있다. 고구마 꽃이 피면 씨알이 적어진다고 농부가 미리 가위로 모두 잘랐기에 꽃 핀 것을 잘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