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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69
요한계시록 18:1-3
무너진 모든 나라
17:15에서 음녀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였고 16절에서는 그 음녀가 짐승에 의해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취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17절에서 밝혔다. 그리고 18절에서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다시 음녀의 정체를 밝히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18장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음녀 곧 큰 성 바벨론에게 내려진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1절). “이 일 후에”란 시간적인 순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묵시의 차원이기에 장면 전환을 의미한다.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라고 하여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 표현 때문에 이 천사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보아야 할 필요성은 없다. 왜냐하면 10:1에서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라고 하였고, 14:17에서도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라고 하여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하여지더라”라는 말의 헬라어 ‘에포티스데’는 ‘포티조’의 과거 수동태로 ‘밝아졌더라’라는 말이고 이는 곧 ‘빛을 주었다’라는 의미이다. 이 표현은 창세기 1:3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는 말씀과 관련이 있다. 에스겔 선지서에도 이렇게 예언하였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겔 43:2)
그렇다면 이 말씀은 땅이 밝아지게 되어 회복되는 새 창조를 보여준다. 천사, 즉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땅의 회복을 이룬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심판의 상황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멸망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통해 땅을 정결하게 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회복하는 생명을 이루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라고 하였는데 천사가 가진 “큰 권세”와 “영광”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즉 그의 큰 권세는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광”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킨다(참고 요 7:39, 12:16, 23). 하나님으로부터 큰 권세를 넘겨받은 천사가 드러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영광이다. 땅의 회복이라는 새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근거해 있다는 뜻이다.
큰 권세와 영광으로 선포하는 내용은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2절)라고 하였다. 바벨론이 무너진 것에 대해서는 이미 14:8에서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라고 말씀하였지만 여기서 다시 확증적으로 말씀한다.
이렇게 음녀, 바벨론의 멸망을 반복하여 선언하고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묵시의 차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적인 순서를 가지고 앞에서 무너졌다고 하였는데 새삼스럽게 또 무너졌다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확증하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한다.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사 21:9)
비록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나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다. 구약에서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유다)의 원수이기 때문이 아니기에 어떤 특정 국가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17:17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성취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중심으로 해서 일하신다. 이런 점에서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시는 차원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심은 언약의 성취자 안에서 이루실 심판과 구원을 보여주시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제2의 출애굽이라고 하는 것이다. 애굽과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상징하는 죄의 권세를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바벨론을 오늘날 국가의 개념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성경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죄인이라는 개인이 확장된 모습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집단 안에서 상대방과 비교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확장된 모습이 국가라면 그 체제나 이념 자체가 바로 하나님 앞에 죄악 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국가라는 죄인들의 조직체는 오로지 힘과 권세로 자기 의를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바벨성과 탑으로 보여주셨다(창 11:1-9).
그래서 바벨론을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모이는 곳”이란 헬라어로 ‘퓔라케’인데 ‘감옥’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구약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율법에 새 종류는 부정한 동물로 규정한다.
12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13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 까마귀 종류와 15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6 올빼미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17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19 또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신 14:12-19)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심으로 황폐하게 될 것을 이렇게 말씀한다(참고 렘 50:39-40, 51:37).
19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되리니 20 그 곳에 거주할 자가 없겠고 거처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며 아라비아 사람도 거기에 장막을 치지 아니하며 목자들도 그 곳에 그들의 양 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22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사 13:19-22)
그리고 다니엘서에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주신 계시를 보면 바벨론은 땅의 모든 족속이 깃들일 만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10 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니 11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12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단 4:10-12)
그러나 다니엘서 2:31-45에 보면 역사적인 나라를 거대한 신상으로 보여주며 사람이 손대지 않은 뜨인 돌이 신상을 쳐서 멸망될 것을 말씀하셨다. 바벨론 나라가 거대하여 모든 족속이 그 가지에 깃들이지만 언젠가 하늘에서 날아온 돌에 의해 망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것은 겉으로 풍성하게 보일지 모르나 악의 권세를 잡은 자가 장악함으로 언젠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게 될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다.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 13:31-32)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임한 천국은 악의 권세를 잡은 사탄이 자리를 잡는 곳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16:13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은 비진리로 장악된 곳이 감옥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3절). “음행”과 “사치”를 같은 것으로 말씀한다. “사치”라는 말의 ‘스트레노스’는 ‘호색, 향락’이라는 뜻이고 “치부하였도다”라는 단어 ‘플루테오’는 ‘부요하다, 부요하게 되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음행하는 것이나 물질적인 사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음행”을 우상숭배로 본다면 “사치” 역시 같은 의미로 비진리를 세력으로 삼고 즐기며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힘으로 여기고 그것을 즐기는 상태, 그래서 그것을 생명으로 생각한다면 바벨론과 같이 무너져야 하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보자면 “땅의 왕들”은 비진리를 힘과 권세로 여기는 것이며 “상인들”은 경제적인 것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죄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바벨론이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모든 나라를 무너지게 하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비진리에 취한 상태였기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성경에서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이란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누구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쓰신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참고 롬 9: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심판을 통해 자신의 언약, 곧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대적하는 모든 사고방식이나 정신을 가진 죄인에 대한 심판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싫어하는가를 확연히 드러낸 사건이다. 예수님을 죽여야만 인간의 나라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세계, 인간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죄악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현장이 바로 십자가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라함이 떠나야 하는 곳을 지리적으로 말하자면 바벨론이다. 그 의미는 땅을 고향으로 여기고 혈육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곳에서 떠나게 하심으로 언약 안, 곧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셔서 진짜 아버지의 집이 되게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이렇게 찾아오심으로 ‘우리’, ‘나’라는 바벨론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교회요 성도가 되게 하신다(20240317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