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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책을 찾아라
푸른 황무지
(데이비드 알몬드, 비룡소, 2006)
채팅토론 : 동쪽마녀, 반골이, 상상무진, 섭섭네, 소년
정리: 반골이
동쪽마녀 이 책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진짜 숨은 책 같더라고요.
반골이 전 첫 부분은 너무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어서 살짝 지루했어요. 그런데 좀 읽다 보니 확 빠져들던데요.
섭섭네 아이들이 읽기엔 조금 난해하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소년 청소년 문학에 걸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주 짧은 직관의 시기, 칼날 같은 시기에만 소통될 것 같은.
동쪽마녀 황무지라는 단어에 ‘푸른’ 이라는 수식어가 꽤 인상적이고 의미심장했어요.
상상무진 원제는 키트의 황무지였던 모양이에요. 그걸 번역하면서 푸른 황무지로 바꾼 거 같은데 괜찮네요.
섭섭네 그런데 대체로 지루함을 다들 조금씩 느꼈던 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반골이 전반적으로 죽음이나 어둠에서 오는 정적인 느낌 때문 아닐까요?
상상무진 탄광촌의 스산한 분위기 묘사가 많다 보니 좀 그렇지 않았을까요? 전개가 느리지요.
동쪽마녀 우리가 읽어 왔던 청소년 소설에 비해 폭발적인 사건이 없는 것도 그런 것 같고.
반골이 아, 전 눈에 보이는 큰 사건이 없었지만, 데스 게임 그 자체에서 좀 공포스러웠어요. 조마조마하고.
소년 저는, 이 책이 『리버보이』와 어딘가 흡사한 분위기라서, 게다가 결말이 예측되어서 지루함을 느낀 것 같아요.
동쪽마녀 『리버보이』와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소년 내용은 다르나 제가 느낀 감정이 비슷했던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일종의 조력자라서 그런 건지.
섭섭네 애스큐가 갈등의 중심인데 중간에 사라지는 게 맥이 빠지더라고요. 실은 초반에 키트보다 애스큐한테 더 끌렸었거든요.
동쪽마녀 저도 애스큐가 더 맘에 들던데요. 그런 환경이라면 죽음이라는 것도 별로 두렵지 않았을 것 같고…….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소년 애스큐에겐 어둠의 마력이 있잖아요. 마치 할아버지가 탄광을 두려워했으면서도 자꾸만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것처럼. 애스큐가 그런 위험하고 어두운 탄광의 마력을 대변한 것 같아요.
상상무진 그런데 애스큐가 악한은 아닌 걸로. 처음엔 그 아이의 어둠이 강하게 잡아끄는데……. 하지만 결국 상처 많은 아이일 뿐이라는.
섭섭네 저는 좀 더 애스큐의 어둠에 들어가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잠깐 보여 주고 애스큐를 어둠에서 끌어내기 바쁜 인상.
소년 그렇죠. 애스큐가 단편적인 이미지에 머물렀어요.
반골이 삶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욕망도 크다고 하더라고요.
상상무진 우리도 어릴 때 데스 게임은 아니어도 어떤 자극적이 놀이에 빠져들곤 하잖아요. 그게 공감 가게 그려졌어요.
소년 마치, 할아버지가 탄광을 두려워했으면서도 자꾸만 들어가고 싶다고 한 것처럼. 애스큐가 그런 위험하고 어두운 탄광의 마력을 대변한 것 같아요.
동쪽마녀 탄광이라는 게 지구의 과거를 응축해 놓은 곳이니까.
상상무진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표현이 좋더군요. 탄광 깊숙이 내려가면 갈수록. 할아버지 말에서.
섭섭네 그러게요. 지구 역사의 순환과 죽음을 대비시킨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반골이 전 그러한 과학적인 사실을 작품 속에서 관념화시키면서 서사를 끌어내는 게 이 작가의 치명적인 매력 같았어요. 다른 작품 『스켈리그』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또 책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 물건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좋았어요. 결국 애스큐를 어둠에서 끌어내어 치료하는 것도 이야기였죠. 빙하 소년 라크.
동쪽마녀 알타미라 동굴 벽화도 나오고 그랬죠.
소년 그런데 이 작품은 초반에 너무 많은 걸 오픈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서요.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란다. 아무렴, 이 세상에는 어둠이 차고도 넘치지. 하지만 그 무엇이든 이 즐거움만 있으면 괜찮단다. 키트야. 이 아름다운, 이 아름다운 햇살만 있으면 괜찮은 거야.” 마치 결말의 스포일러 같지 않나요?
섭섭네 맞아요!
소년 또 있어요. “아마도 걔 안에 숨은 아기는 누가 자기를 찾아 줘서 한껏 위로를 받은 뒤에 자랄 수 있기를 기다릴 것이야.”
반골이 ㅋㅋ 햇살이 아름다운 건, 어둠이 있었기 때문이죠.
섭섭네 그런 매력이 있죠. 전 너무 낭만적이라 질투가 나더라고요.
소년 “마음의 선한 한편이 금이 가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단다. 키트야. 중요한 건 그걸 깨닫고 햇살 속에 그 상처를 보여 주는 일이지.”
동쪽마녀 어째 주옥같은 말들만 골라내시는군요.
소년 이 모든 게 할아버지의 대사예요. 그게 아쉬워요. 이 책의 스포일러를 할아버지가 다 쥐고 있었다는 게.
섭섭네 그러고 눈에 띈 게 우리나라 작가가 탄광촌을 배경으로 이런 소설을 썼다면 이렇게 서정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와 역사가 다른 건가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 탄광촌 이야기 속엔 힘겨운 삶과 투쟁 일색인 듯하여.
상상무진 그러게요. 탄광 이야기인데 생활의 고달픔만 그리고 있지 않지요. 이야기의 주술적 힘을 말하고자 하는 게 저도 강하게 느껴지던데. 상징들을 풍부하게 활용하는 작가 같아요. 탄광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페르세포네 같은 지하 세계 이야기들을 끌어오고, 동굴로 들어가 고립된 채 통과 의례를 거치는 소년들을 보여 주고, 『스켈리그』에서는 추락한 천사 이야기니까 이카루스의 날개와 조류 이야기를 하고.
동쪽마녀 뭔가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이 책은 그게 아니어서 더 좋았어요. 그래서 뻔하다는 느낌이 안 들고 신선했어요. 애스큐를 구원하고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도 키트의 이야기였잖아요.
섭섭네 이야기가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좋지만 조금 쉬운 해결 같기도 하더라고요.
반골이 어쩌면 애스큐와 키트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랬다고까지는 생각하겠는데……. 그런데 스스로 치료까지? 기특한 열세 살.
소년 키트가 라크와 황무지 이야기를 쓰며, 이야기 속 주인공인 라크와 아기, 엄마를 걱정하잖아요. 그러면서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계속 궁리하고. 저는 그 부분이 새롭진 않았지만 좋았어요.
동쪽마녀 이야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살아 낼 힘을 얻는다는 건 요즘 같은 속전속결의 시대에 좀 남다른 제안 같긴 해요.
상상무진 라크 이야기도 키트와 애스큐의 또 다른 자아로 그려지잖아요.
소년 그렇지요. 키트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궁리하고 염려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지요.
반골이 전 비다니가 서사에서 큰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했는데…….
섭섭네 그러게요. 그러나 그런 세밀한 조합들이 이 작품을 살리는 것 같아요.
동쪽마녀 잔뜩 기대만 하게 해 놓고. 결국 슬쩍 지나가는, 가끔씩 보였다 사라지는 비다니.
섭섭네 비다니가 분명 큰 상징성을 지닌 것 같은데 뭘까요?
소년 비다니에게 작가는 깊은 상징과 의미를 부여하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반골이 결국 탄광 속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이잖아요.
동쪽마녀 그럼 애스큐도 키트가 구하지 않았다면 비다니가 되는 건가?
소년 그러나 환상계로 가는 관문 문지기 역할은 했어요. 마치 폭우 오기 전에 짐승들에게서 조짐을 읽어 내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비다니가 연출해 준 거죠. 일종의 약속으로요.
소년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로도 생각해 보았어요. 영혼의 영혼, 애매한 표현이네요. 이상하게 이 책은 어딘가 진부한데가 있지 않나요? 그래서 무료한데 그게 매력적이에요. 이 나이 때 약간, 자신이 겪는 일들 모두를 과대평가하는 듯한 자세요.
반골이 여기서 대비되는 게 애스큐의 그 못된 아빠가 젊은 시절, 바로 탄광이 매몰되었을 때 사람들을 이끌고 땅위로 나온 그런 사람이었죠. 그래서 결국 애스큐 역시 어둠을 뚫고 나올 거라는 정당성을 강하게 부여 받았다는 느낌.
상상무진 아니. 아버지가 아니고 애스큐의 할아버지. 애스큐의 아버지는 무력하고 폭력적이기만 한 아버지일 뿐인 걸로 나오죠. 물론 나중에는 사라진 애스큐를 넋 놓고 찾아다닌다고 했지만.
반골이 아, 그렇구나. 전 애스큐 아빠가 혼자 살겠다 하지 않고 갇힌 광부들 다 끌고 올라와서……. 어째든 할아버지는 인정해 주잖아요. 그래서 애스큐네도 키트네를 존중해 주고.
상상무진 애스큐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다가 극복해요. 어둠과 싸워서 이기는 아이지요. 나중에 어린 아가 여동생을 띠로 안고 다니며 돌보는데. 이 작가는 품성이 따뜻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지요.
소년 앨리도 따뜻하고 밝은 인물이죠. 이들을 구원(?)하는. 그래서 할아버지가 앞에 한 말이 또 생각나서 좀 아귀가 맞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섭섭네 그러게요. 작가가 너무 품성이 따뜻해서 더 독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지 못한 듯한 인상도 들더라고요.
상상무진 처음엔 키트가 라크를 자신이라고 느꼈다가 나중에는 애스큐가 라크 같다고 느끼잖아요. 실제로 아기인 여동생의 목숨을 온갖 시련을 물리치고 살려 낸 것처럼 애스큐도 어린 여동생을 품에 품고 돌보면서 아버지의 폭력이라는 어둠에서 벗어나죠. 생명의 편으로 돌아서는! 저는 청소년 문학으로서 이 작품이 좋았어요. 좀 더 나가지 못했다는 느낌은 물론 들었지만.
반골이 그 묘하게 그 독하지 않은 부분이 좋았어요. 충분히 처절하지 않아서 또한 따뜻하고 그래서 좀 더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게 되는 느낌이요.
소년 청소년 문학만의 아슬한 경계에 정확히 서 있는 작품이에요. 저는, 주인공이 에스큐에 대해 계속 직관으로 아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동쪽마녀 현실과 마술 세계를 잘 버무린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소년 어른이 되면 잃게 되는 그런 직관 같은 걸 이 시기에 갖고 있잖아요. 비다니도 그것의 상징 같고요. 비다니는 어둠으로 이끈 뒤 사라져 버리곤 하잖아요.
상상무진 인상적이었던 게 키트의 가족애예요. 서로를 참 아끼는 가족이죠. 신뢰하고. 내세우고 부딪치고 냉소하는 가족이 아니라. 키트의 힘은 거기에서 나온 면도 있다고 느꼈어요. 애스큐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잖아요. 변화시키고.
동쪽마녀 저도 그런 할아버지 있었음 좋겠다 싶었어요.
반골이 전 막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더라고요. 또 어떻게 해서든 애스큐한테서 키트를 떼어 놓고 싶은 어른의 마음이요. 그치만 결국 그건 회피였죠. 이게 정면 돌파 아닐까요?
소년 어둠이 빛을 이긴다는 걸 영혼으로 아는 아이죠. 키트는. 그리고 에스큐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외로운지 아는 아이고.
반골이 이긴다? 글쎄, 그 표현은 조금…….
소년 이긴다가 세다면 감싸 안는다, 치유한다 정도가 될지. 표현은 잘 모르겠네요. 할아버지의 대사가 늘 그 방향이라고 읽어 냈는데 저는.
상상무진 그걸 과장하지 않으면서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사이의 정으로. 사랑은 좀 낯간지럽지만. 사랑받아 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잖아요. 무지 단순한 얘기 같지만……. 요즘 우리 청소년 문학에선 잘 못 느꼈던 부분이에요.
동쪽마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그걸 새롭게 해석해 내는 게『반지의 제왕』 간달프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반골이 맞아요. 멋진 할아버지. 우리도 나이 들면 그런 통찰과 지혜가 생기면 좋으련만.
동쪽마녀 이 책도 결국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데. 뻔한 결론이라는 느낌은 없었어요.
반골이 그런데 빠른 서사에 익숙해 그런지. 굉장히 서정적인 걸 난 좀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소년 저는 왜 이 책의 결론이 너무 빨리 예측되었나 모르겠어요. 이런 서사 방식이 새롭지는 않았어요.
동쪽마녀 전 애스큐를 구하는 게 어른이 아니라 같은 또래의 아이 키트라는 게 좋았어요. 아이들끼리니까 교훈적일 필요도 없고요.
소년 저는 서사는 이렇게 느리고 깊고 조밀조밀한 것에 더 끌리기는 하는데…….
동쪽마녀 새롭지는 않지만 뻔하지 않다는 거지요.
상상무진 하지만 모든 작품을 꼭 새롭다는 거에만 방점을 두고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반골이 인간의 보편적 가치이니까.
상상무진 오히려 삶의 기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 그런 독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섭섭네 요즘 드는 생각이 선하고 착한 면보다는 어둡고 악한 부분에 더 몰입한 작품에 끌리더라고요.
소년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 보편적 정서와 잘 닿은 것 같아요. 그러나 상징을 쓰는 방법이라든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주변 인물 구성은 새롭지 않아요. 여기서 새로움은 소재를 말함이 아니라 서사 방식이요.
상상무진 전형적인 면이 있다는 거지요? 서사 방식이.
소년 네. 서사 방식이 영미 문학의 서사 방식의 틀을 너무 그대로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안정감이 있지만, 왜 이런 거 있잖아요. 아. 저 앨리가 뭔가 따뜻한 역할을 하겠군. 할아버지 돌아가시겠어. 애스큐는 큰 어둠에 들어갔다 나오고 변화될 테고. 둘은 우정을 나누고 성장하겠지, 같은 추측들.
섭섭네 좀 반복되거나 하는 곁가지 이야기들이 긴장감을 좀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상상무진 기독교 문화권이어서인지 어쩔 수 없이 선과 악의 문제에 천착하다는 건 느껴지죠.
소년 앨리랑 러브라인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어요. 제 예상 벗어난 건 바로 그 부분이라 즐겁더라고요.
반골이 맞아요. 자고로 책속에는 아니 성장 속에는 항상 로맨스가 있어야 하는데 쩝. 섭섭
동쪽마녀 전 앨리랑 러브라인 없는 게 더 좋던데요. 왜 청소년 소설에는 그런 곁가지가 꼭 따라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상상무진 소년성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성장의 관문을 이제 막 통과해야 하는 어린 소년. 두 작품 다요.
소년 그러고 보면요. 소녀의 감성과 소년의 감성은 어딘가 결이 다르지요. 문학 작품에서도 그렇고요.
상상무진 우정이 더 크죠. 이 작가의 책에서는. 첫사랑 보다는.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소년들의 통과의례를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저는 아들애에게 꼭 읽히고 싶던 걸요. 물론 권했지만 일주일째 아이 책상에 그대로 있는 걸 도로 갖고 나왔다는……. ㅠㅠ
반골이 음……. 우리 아들 친구는요,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이걸 보고는 바로 읽어 보고 싶다고. 끌린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이랑 표지만 딱 보고……. 사춘기 소년.
동쪽마녀 표지의 아이가 애스큐 같지요?
소년 원래 상처가 깊은 이에게는 어둠의 마력이 있잖아요. 그런데 애스큐가 그런 뉘앙스가 있는 듯 매력을 발산하더니 그냥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이미지로 멈추더라고요.
반골이 어둠의 마력에서 상처라니…… 사실 그게 우리의 본 모습일수도 있지요. 강한 척하지만 여리디 여린 마음.
섭섭네 애스큐의 어둠의 마력이 싱겁게 끝난 건 아쉬웠어요.
상상무진 앨리는 아주 밝은 면을 나타내죠. 생명력 그 자체인. 『스켈리그』의 미나도 같은 느낌이고요. 소녀 인물들을 그런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로 그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느낌으로.
소년 앨리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작품에서 이런 인물은 그리 두각을 나타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 두 소년 때문에 더 그랬나 봐요.
반골이 전 앨리가 너무 가벼워요. 생명력을 나타낸다는 건 오로지 할아버지의 말에서만 강하게 나타난 것 같고 생활 속에서는 난 좀 아리송하던걸요.
소년 저는 앨리가 재잘거리잖아요. 잔소리하고. 그 자체가 좋았어요. 긴장감이 완화되는 느낌이요.
동쪽마녀 앨리가 배우가 아니라 마술사가 되겠다고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상상무진 맞아요. 그건 좀 시시하죠. 앨리가 스타가 되고 싶어 하니까. 현실에서 그런 설정이 설득력은 있지만 왠지 아주 괜찮았던 소녀 아이가 그저 그런 아이로 좀 시시해지는 느낌.
소년 키트가 눈밭을 걸어가며, 앨리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눈에 잠잠해지는 것을 표현한 부분 좋았는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나네요.
반골이 생명은 늘 소란스럽죠.
소년 그 표현 좋네요. 생명은 소란스럽다.
상상무진 할아버지에게도 그렇고 키트에게도 그렇고 앨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소년 솔직히 말하면 앨리가 매력이 없어서 그게 매력이었거든요. 청소년 소설 속. 남자아이들의 이야기 속 여자아이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소년. 그냥 인간의 이미지요.
상상무진 앨리가 너무 소녀스럽게 그려졌다면 별로였을 거예요. 앨리는 작품 분위기의 중심을 나름 잡아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작품이 어둠으로 가라앉지 않게.
반골이 가만 생각해 보니까 우리 남자 소설가들의 쓴 자신의 이야기에서 보면 아주 우울한 소년을 많이 본 거 같아요. 그렇다면 여자의 사춘기는 그렇게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았나? 다들 생명력이 넘치는 사춘기를 보내셨나요? 내 개인의 경험은 우울하진 않았어요.
상상무진 획일적인 건 별로지요. 소녀도 어두운 애가 있고 밝은 애가 있고, 소년도 역시.
소년 오히려 더 복잡 미묘했죠. 어둠과 빛이 뒤엉킨.
섭섭네 맞아요. 어두움과 밝음. 새롭게 알아가는 세계에 대한 경의, 혐오.
반골이 혐오?
섭섭네 순수하지만은 않은 어른들 세계를 알아 가면서 느끼는 혐오요.
상상무진 다만 비교하자면, 여성의 생명성이 더 강하고 긍정적인 건 있지 않나요? ㅎ
소년 할아버지가 그런 표현하거든요. 비다니가 비스킷을 먹었냐는 질문을 하니까. 먹은 것 같다면서, 깊은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환한 일 이었다고요. 그 부분이 생각나네요. 그 표현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사춘기에서.
반골이 그러니까 비스킷을 먹었다는 게 삶에 대한 밝음을 표현해 주는 한 부분으로 이해해도 되나요?
소년 새로운 생각이네요.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에요.
상상무진 비다니 부분. 저는 그 비다니의 역할이 그 정도가 좋았는데 좀 아쉬웠다고들 하신 거지요?
섭섭네 그 상징성이 모호해진 면이 있어요. 작가는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도요.
반골이 전 갇힌 그 아이들의 영혼을 지상으로 끌어내 주는 과정이 바로 애스큐로 통해 실현되었다. 그 정도만.
상상무진 이 작가의 관심사가 그것보다는 소년의 성장 과정을 보여 주는 데 있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반골이 초점의 문제일수도 있네요.
상상무진 비다니 이야기 비중이 더 커지다 보면 판타지 작품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고.
섭섭네 할아버지와 키트가 처음 소통한 것도 비다니를 통해서고. 애스큐와 키트의 공통점도 그러네요. 비다니를 본다는.
상상무진 결국 관심은 지금 바로 곁의 사람들이고 그 관계의 문제들이고. 비다니는 그 존재의 아픔 때문에 현실의 이야기를 더 곡진하게 만들죠.
반골이 근데 생뚱맞지만 비다니, 이름 예쁘지 않아요?
상상무진 비다니 작명이 근사하죠? 비단 같은 형체, 존재라는 건데.
반골이 어머나! 난 영어인 줄 알았는데.
동쪽마녀 번역하신 김연수 씨가 가 그렇게 한 것 같았는데요. 죽음과 데스를 같이 쓰기도 하고요. 번역은 반창작이라는 데 한껏 힘을 실은 것 같아서.
섭섭네 그러고 보니 이름에서 하얀 실루엣이 느껴지네요.
반골이 슬슬 마무리 할까요. 총평하자면?
동쪽마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성장 소설
반골이 묵직한 주제와 정통 서사 형식을 잘 갖춘 청소년 소설.
동쪽마녀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삶으로 돌아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상상무진 키트 아버지가 자신들도 어릴 때 그런 위험한 놀이에 끌렸고 하지 않았냐고 하는 부분. 전 그런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좋은 어른이 된 이들이 보여 주는 그런 너그러움 말이죠. 물론 애스큐를 경계하고 화도 내지만 결국은 내 아이의 친구이고 마을의 아이로 봐주는 어른들. 부러웠어요.
섭섭네 죽음, 귀신……. 모두 두려워하면서 짜릿하게 끌리는 게 있잖아요. 어쩌면 원시 인류보다 공포 상황 속에서 느꼈던 그 짜릿함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소년 저는 선생님이 말했던 문장이 기억나요. 대지는 끊임없이 새로 형성된다고 하는 부분이요. 용암이 솟구치고 언덕이 사라지고 바닷물이 갈라지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대지에 의해 삼켜지고 토해지고 줄어들고 늘어나고 하는 부분이요.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이 용암처럼 끓고 있는 대지의 겉 표면은 황무지와 같은 것.
반골이 그래서 황무지구나. 붉은빛이 아니라……. 혹 생명의 빛인가? 푸른색은?
소년 푸른색은 정말 쓸쓸하고 춥잖아요. 그런데 그 속은 용암으로 솟구치고 죽은 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혼의 속삭임을 듣는 이가 있고…….
상상무진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지요? 혹독하고 황량하기만 한 긴 겨울이 배경이다가 봄에서 작품이 끝나는 걸 보면요.
반골이 그 아이들의 성장 후 이야기는 인생의 여름??? ㅋㅋ
섭섭네 그렇지요. 폭염에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겠네요.
상상무진 ㅋㅋ 다시 숲으로 모험을 떠나는? 시련을 겪고? 아.. 사막이 어울리겠다. ㅋ
소년 에스큐 아버지가 너무 술을 일찍 끊어서 당황스럽더라고요. 너무 착한 아빠 된 느낌이 있어서. ㅎ
섭섭네 맞아요!^^*
동쪽마녀 그렇게 쉽게 끓을 걸 왜 그랬나 싶지요?
상상무진 그 아버지의 변화는 사실 좀 너무 급작스러워요.
섭섭네 애스큐가 아기 안고 오는 것도 안심이 되긴 하지만 초반의 매력에 비하면 바보가 된 느낌^^*
상상무진 ㅋㅋ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작가가 어린 아가가 있는 아버지인가?
소년 그 생각 저도 했어요. 젖먹이는 부분 묘사 보면서요.
상상무진 아버지가 되면 바보가 되거든요. 아가 바보. 그 어린 생명체의 매력에 푹 빠져서. 『스켈리그』에서도 아픈 갓난아기가 큰 중심 이야기로 나오고.
섭섭네 결국은 죽음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순환으로 끝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고 인류를 이어 가는 작은 고리라는. 그래서 작가는 판의 구조에 대해 원시 소년 라크의 이야기 까지 끌어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동쪽마녀 맞아요. 키트의 암모나이트가 애스큐에게는 어린 동생 루시로 나타나는 거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앨리와 키트가 숙제하는 부분이 나오거든요. 저도 그거 해 보고 싶었어요. 아프리카와 인도양……. 그거 다 붙여 보면 태초의 지구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까 하면서요.
상상무진 그래요. 저도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온 돌 암모나이트와 깊은 시간의 지층을 가진 탄광과 사람의 오랜 역사가 겹쳐지면서 이야기가 깊이 있게 전개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 책을 이렇게 여러 관점에서 함께 보며 얘기 나누니 좋네요. 진지한 작품으로 좋은 얘기 뿌듯하군요.
소년 같이 어둠 속에 들어갔다 나온 전우애가 생기네요. 같이 데스 게임 한 기분이요.
섭섭네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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