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달우편으로 도착한 사랑
프랑소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 자장가는 일년에 세번 이상 듣지마시요
너무나 달콤해서 뼈가 녹을 열려가 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브람스의 자장가' 에 대한 비유적 찬사다
이 자장가는 브람스가 함부르크 여성 합창단을 지휘할 때
그를 존경하던 베르타 포버라는 단원이 결혼해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작곡해 선물한 곡이라고 한다
이렇게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브람스는 지고지순한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스승인 슈만의 아내이자 열네살 연상인 피아니스트 클라라슈만을 사랑했다
슈만은 정신병으로 일찍 죽었지만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클라라를 도왔고
크라라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자 그녀의 딸에게 편지를 보낸다
"최악의 사태를 각오해야 할 때가 되면 나에게 바로 알려주세요
어머니가 가고나면 내 안의 많은 부분도 끝날 테니까요"
클라라가 위독해지자 그녀의 딸이 브람스에게 전보를 쳤다
그는 여행 중이던 이슐에서 프랑크프르트를 거쳐 본으로 달려갔지만
관 속에 누운 연인의 마지막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죽은 다음해에 브람스의 생명도 스러졌다
이런 브람스를 프랑소아즈 사강은 왜 이 소설에 초대한 것일까?
실내장식가인 주인공 폴은 서른아홉 살의 이혼녀이다
그녀에겐 몇 년째 만나고 있는 로제라는 40대 사업가인 애인이 있다
폴은 그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앞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혼 경력이 있는 로제는 한 여자에게 종속된는것이 싫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자가 되고 싶어 결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친절하고 착하고 교양있는 폴은 밤마다 로제를 기다리며 암담한 행복을 느낀다
이런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적힌 속달우편과 함께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부유한 고객의 아들인 시몽은 스물다섯살의 수습변호사이다
시몽은 문화적이고 시적이며 상상력이 넘치는 눈에 띄게 잘생긴 미남
그 시몽이 연상의 여인 폴에게 끌린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시몽은 브람스를 들으러 가자고 초대함으로써
역시 열네살 연상의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를 연상시키는 작전을 편다
브람스를 내세워 은유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시몽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의문문이 서른 아홉 살의 이혼녀 폴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현실 저 너머에 있는 희망을 가리고 있던 칙칙한 커튼 자락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처럼
"나는 시몽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야. 음악을 만나러 가는거야"
그녀는 편지를 손에 들고 창가에 서서 눈부신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중얼거렸다
전혀 다른 두 사랑 앞에서 방황하는 폴
이를 눈치챈 오래된 연인 로제는 위기감을 느끼며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한다
폴은 시몽을 사랑하지만 10년 후에도 '우리'라고 말하게 될 사람은 아마도 로제일 것이라고 말한다
시몽이 자기 짐을 가지고 폴의 아파트를 떠나던 날
폴은 창문 난간 너머로 몸을 길게 내밀고 시몽에게 외친다
"시몽' 시몽.... 난 이제 늙었어 , 늙은 것 같아...."
...
젊고 순수한 청년 시몽으로 인해 폴은 행복했지만 그녀가 한 번의 이혼과 그동안의 세월을 통해
깨달은 감정의 덧없음은 그 사랑을 떠나보내기로 한다
사랑에 대한 그녀식의 예의일까 그녀식의 방정식일까?
아니면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소심함일까?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독자가 사랑의 영원성을 그린 작품에 열광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위대한 게츠비> <춘향전> 처럼
사랑의 영원성을 다룬 작품은 언제나 환영받았다
그러나 1959년 독자들은 사랑의 덧없음을 그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도 열광을 보내주었다
영원성과 덧없음이 사랑의 두얼굴이라는 것을 현대의 독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우리의 꿈이라면 <브람스를..>의 사랑은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믿으세요? "
1959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출간했을때
한 인터뷰 기자의 질문에 사강은 이렇게 대답했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것은 열정이에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않아요
사랑은 2년이상 안갑니다 좋아요 3년 이라고 해두죠"
사랑의 덧없음을 통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한 작가
열여덟 살에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로 슬픔을 '굿바이'가 아닌
'굿 모닝'으로 받아들인 작가
'천재 소녀 ' 또는 '작은 괴물'로 불려지던 눈망울이 크고 영롱한 그녀가 우리에게
주인공 폴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내일 배고프지 않기 위해 오늘을 굶는 것은 정말 현명한 일일까요?
10년 후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 오늘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현명한 일일까요?"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사랑의 역사 / 남 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