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도특설대 : 동북항일연군 등 항일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창설된 대대급 특수부대. "조선 독립군은 조선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취지로 창설됐다. 일본군의 만주 점령기간 동안 간도특설대는 잔학한 악명을 얻었으며, 광범위한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던 조선인들은 독립군 말살이라는 활동의 악랄함 때문에 장교가 아닌 사병으로 근무했던 이들까지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친일부역자로 분류됐다.
광복 이후 한국에서 반민특위 등 친일청산 작업이 실패하면서 구 일본군, 만주군 소속 군인들이 그대로 한국군의 주축이 되었다. 특히 이들은 게릴라전 경험이 풍부하였기에 제주 4.3 사건 등에서 민간인 학살 등에 깊이 관여했다. )
< 간도특설대 부대가 -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야마토 혼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 백선엽은 소련군에게 무장해제 당한 후, 만주에서 귀국한다.
1946년 국방경비대 중위로 임관.
1948년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하다 검거돼 사형선고를 받은 박정희 소령을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이유로 구명해 줌.
1950년 625전쟁 발발시 1사단장으로 근무. 625전쟁에서 많은 전공을 세움.
1960년 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
1961년 516쿠테타 후 박정희를 살려줬던 것을 계기로 외교관을 거쳐 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한 후 1979년 정계에서 은퇴.
백선엽은 예편 후 동생인 백인엽과 함께 선인학원을 설립했는데 이후,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아 선인학원은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엄청난 규모로 커진다. 백선엽은 625전쟁에서 활약한 전쟁영웅이라는 평가와 친일반민족 행위자, 사학비리의 원흉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선인학원은 인천시 도화동 52만 평의 땅 위에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무려 16개 학교를 거느리고 있었다. 학생 수는 3만 명이 넘었었다. 80년대 초 부정비리가 적발돼 백인엽 이사장은 선인학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구속되었지만, 석방 이후 배후에서 계속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선인중고교, 선화여중고, 인화여중고, 운산공고, 운봉공고, 인천대 등이 소속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