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치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와는
친구였고 1960년 흑백차별에
항의해 콘서트를 취소한
레이 찰스에 평생 공연중지를 선언한
조지아주가 1979년 "사죄한다"며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를
조지아주 공식 주(州)노래로 선정했고,
인종 차별이 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일부 공연장에서
파격적으로 공연을 취소해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시민들로부터 환호를 받았으며
동시에 흑인 아이들의
교육 등을 위해 2천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기도 했다.
열세 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리듬 앤드 블루스, 소울의 거장
레이 찰스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가슴에 끌어안았고
험난한 인생사를 지닌 어떤 이들보다도
폭넓은 삶을 살았다.
깊은 울림을 지닌 그의 보컬은
특별함 이상의 특별함을 지닌
‘영혼의 소리’로 평가받았다.
그의 음악적 감성,
그의 레코딩 작업은
숱한 연주자들에게 천재가 주는
감흥이 무엇인지 일깨웠다.
삶 자체가 천재적인 존재,
그것이 레이 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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