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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한 자락 유희산행
통도사-세심교-한피지기고개-영축산-신불평원-신불산-공룡능선-자수정동굴
2004년11월7일 (일) 날씨 : 맑았다 흐렸다가
같이한 사람들 : 울산의 불새님, 대구의 능금님, 대산의 덩달이님, 부천의 초이님, 광인
내가 영남알프스 자락으로 처음 찾아본 것이 80년대 중반,
그러니까 산으로 입문하고 몇 년 지나서였다
처음으로 찾은 것이 사자산-재약산 일원이었고 당시만해도 상당히 이국적인 정취에 매료되어서 이 후 대용량의
배낭을 메고 산에서의 1박을 하면서 억산-운문산-가지산-석남고개-능동산-간월산-신불산-영취산을 도는 산행을
이십여년전에 행한적이 있음으로 나의 영남알프스산행도 제법 오래된 추억을 지니고 있음이다
이 후 영남알프스 자락을 잘 찾지않은 것은 잘 아는 내 산행패턴과 관계있듯이 엄청난 인파로 들끊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멀어져갔고 이 후 대간입네 정맥입네 오지산행 이어가기네 어쩌구 하다보니 몇 년에 한번씩 갈까말까
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이 곳 저 곳의 산님네들과 어울리다보니 낙동정맥 이 후도 찾게된다
◁신불평원 사자평과 더불어 영남알프스 대표적인 억새평원이다▷
무슨 문제를 가지고 심사숙고 ... 오래 생각하는게 아니라 갑자기, 불현 듯 ... 그렇게하는 습성 때문에
이번 영남알프스 산행도 결정된다
10월 셋 째주까지 “단풍 따라잡기” 산행으로 일관하다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넷 째주 산행을 포기하고 그 다음주
금북정맥으로 이어간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 듯 영남알프스로 한번 가보자
그러면 어디로갈까 뭐 다 가보았으니 아직 한번도 가보지않은 한피지기고개 쪽으로 올라서 그다음은 마음 내키는
곳으로 가면되지 않겠나 어차피 유희산행인것을,
그렇게 하다보니 울산의 권형과 약속이되고 아주 단촐하게 몇 사람만 다녀오기로한다
서산의 덩달이님은 서울로 올라오기보다는 그 곳의 H화학 산악부팀의 차량을 이용해서 통도사 인근에서 먼저
도착해서 휴식 후 합류하기로하고 초이와 나는 당초 바로 통도사로 가려했으나 대구의 능금님과 합류하기로하고
교통이 편리한 대구로 심야버스로 향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께서 창건했다는 통도사▷
어찌하다보니 인연을 맺은 대구의 능금님과 산길로님께 내 언젠가 무슨 보답을 해야만한다
특히 다시 돌아갈 때의 운전은 자연스럽게 술 마신(?) 산길로님 대신 능금님이 해야하니
항상 고맙고 미안한 심정인데 이 새벽 바쁜 산길로님은 제외된 체 차를 몰고 나왔다
04시가 조금 못되어 동대구역 인근에서 능금님과 합류해서 울산으로 향하고 신북로터리
인근에서 불새님과 합류 후 다시 통도사 산문앞에서 덩달이님과 합류 식당에서 날 밝기를
기다리며 어차피 유희산행이다 싶어서 반주로 반병을 마시고 07시 “영취산문”으로 들어선다
싸늘한 공기가 걸친 선유를 뚫고 피부에 와 닿으니 “아래녁인데 와! 이래 춥노?”
보기좋은 노송들이 터널을 이룬 통도사 가는길은 좌측으로 흐르는 게곡을 거스르며 가는데
주변은 끝물의 단풍들이 보기좋고 바닥에 깔린 갈비의 감촉도 부드럽다
가히 전 국민의 달리기 운동 인 듯 아침운동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들 스쳐 지나간다
◁퇴색한 목조의 색상이 오하려 정감이간다 통도사▷
일주문을 들어서기전 우측으로 바라보이는 거대한 회색의 시멘트 벽은 이 산속의 산문앞에 자리하기에는 조화가
이루지지 않는 느낌이지만 박물관이라니 박물관의 특성상 그리해야 하는 걸까???
건축쪽에 내가 뭘 아는 것이 없으니 뭐라 할말없다
이른 아침부터 참배객들이 많이 눈에띠고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둘째놈 원하는 대학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덩달이님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들의 애잔한 부모의 모습이다
맞다! 특히 이 곳 경남북쪽에 불자들이 많았다
내 어릴 때 기억이 숨 쉬는 곳, 대구땅의 우리 외할머님도 일년에 한번정도는 통도사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있다
당시의 교통사정으로서는 결코 가까울 수 없는 거리임에도 매년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이즈음 7~80대 할머니들이
설악산 봉정암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佛心때문일 것임을,
◁통도사 담장을 끼고 흐르는 게곡과 세월의 두께를 느끼게하는 고목, 그리고 멀리 영취산이 보인다▷
언제 다시 와보겠냐며 통도사 경내를 대강 둘러보고 절집의 담장을 우측으로 끼고 걷는데 여전히 게곡가의
단풍이라든지 수북히 떨어진 낙엽이 보기좋다
다녀간지가 상당히 오래된 기억이지만 보이는 그림은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오니 그렇게 절집 담장을 끼고 오르면
된다고 그렇게 사찰을 뒤로하고 영축산 자락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갑자기 아주 튼튼한 철조망이 우리앞을
가로 막는다
그래! 통도사 입구 직전에 좌측으로 “등산로” 표시가 있더니만, 그렇지만 예전에 분명 이 길로 다녔었는데...
내 기억이 틀린 것이 아니다 영축산쪽에서 내려서는 사람들이 사찰 관람료를 내지 않고 들어서는 것을 막자고 설치된
것이라하니 “에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정녕 부처님께서 원했던 것일까? 하기야 부처님도 이 시대를 살았다믄.....
다시 돌아가기 싫어서 살펴보니 철문 아래 몸을 바짝 낮추며 빠져나간다
◁세심교를 건너기 직전 문득 영축산쪽을 바라보니 가을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 거린다▷
洗心橋를 건너며 저 우측으로 바라보자니 가을을 태우는 모습과 그 구수한 내음이 난다
밤새 이슬이 내렸든지 축축한 들판과 산속이니 불 날 일은 없을 것같다
세심교를 건너며 마음의 때를 씻어보려 하지만 세속에 찌들은 내가 그 다리만 건넌다고 씻어진다면야! 그래! 모든건
내 마음속에 있는거 산 들어가는 이 때만큼이야!!!
다리를 건너면 ☜자장암 금수암 서축암 ☞백운암 비로암 극락암 반야암 갈림 길이고 우측의 기존의 많은 이들이
다니는 길을 버리고 우리는 좌측의 자장암쪽으로 향한다
포장된 좁은 도로를 따라서 휘돌아가면 마을쪽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숲길로 갈라지는 지점에는 손주들의
용돈벌이라도 하려는 시골할머니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이 바쁘다
땀이라도 내 볼양으로 바쁘게 올라서는 산속의 그림이 오히려 평온하게 다가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피지기 고개쪽으로 오르다가 올려다본 시살등 쪽▷
08시10분 쯤이었을거다
삼나무인가 하여튼 그런 종류의 나무가 조림된 지역을 벗어나니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타나고 그사이 온 몸은
등뒤에서 비춰주는 강렬한 아침 해에 의해서 땀에 젖어버렸다
아이구! 전날 서울지역에 많이 내린 비로 인해서 쌀쌀한 날씨를 의식한 초이는 두꺼운 옷만 준비해왔으니 어지할꼬!
아쉽지만 내 반소매 옷으로 갈아 입으라 건네준다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 밟는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마냥 정겹다
붉은 것이 아니라 온통 노오란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너무 강렬한 화려함보다는 은근한 아름다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분 “짱” 일수밖에,
08시28분 께 넓은 산길을 버리고 북쪽으로 휘어지는 듯 하더니 너덜지대를 지나고 마른 계곡을 건너면서 부터
한피지기 고개로 오르는 산길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코스가 나온다
◁영축-신불간의 광활한 억새평원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사자평 재약산 사자봉▷
시종일관 급하게 오름이 이어지고 등뒤의 동쪽에서 비춰지는 태양이 너무 뜨겁다
거친 숨을 쉬며 오르다말고 바위반석이 좋아서 주저앉아 쉼을 한 것이 08시41분이고
물 한모금 마시고 54분 출발 다시 지그재그의 급사면을 올라간다
다시한번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저위로 바라보니 “시살등(980.9m)”쪽의 노란 억새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한템포 숨을 고르며 그냥 오르게된다
이미 앙상한 가지들로 벌거벗은 나무들이 조금전의 노란 숲을 금새 그리워지게 하는 을씨년스러움으로 다가올즈음
09시29분 이 곳 특유의 억새가 하늘거리는 한피지기고개에 올라서서 배낭을 던져버린다
저 서쪽 멀리 사자평위로 재악산과 천황산이 바라보이고 북쪽으로는 영축산 정상쪽만 돌출되어 보이는 이 곳에는
“영축산3km 통도사 4.5km”의 이정표 다
14분 지체 한 09시43분 다시금 출발한다
◁한피지기 고개에서 영축산으로 향하다가 뒤돌아본 시살등쪽 능선▷
주능선에 올라서니 의외로 찬바람이 쌀랑하게 불어대니 능금님과 불새님이 한마디한다
헐렁한 내 반소매 옷을 시종일관 입고가는 미라니의 패션(?)이 “불쌍한 패션”이란다
아직은 본격적인 억새지역이 아니라서 그런지 금방 소나무가 무성한 지역으로 오르다보면 중간 중간 억새 사이로
억센 진달래와 싸리나무들이 즐비하다
두 어번의 오름이 후 10시10분 오른 바위봉에는 몇 몇 사람들이 일대의 경치를 즐기며 앉았는데 동쪽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극락암”인 듯 산기슭에 자리한 것이 보이고 멀리 우리가 지나왔던 통도사도 희미하게 내려다 보인다
자욱한 개스 때문인지 동쪽 멀리 낙동정맥상의 노상산 골프장과 천성산쪽이 희미하게 보이니 낙동정맥을 지나보았던
불새님과 능금님은 고개를 끄덕거려주고,
◁영축산 정상쪽과 신불산쪽을 바라본다 아직도 갈길은 멀다▷
아기자기한 바위등을 타고 내려서다가 잘록이에서 다시 바위등의 오르내림이 이어지는데 이 즈음서부터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내려온 산악회 단위의 사람들이 맞은편에 온다
사실 억새야 9~10월 정도에 아직 녹색이 남아있을 때 은빛으로 꽃을 활짝 피운 모습이 보기 좋지만 이 맘 때
산꾼들은 설악산 지리산등 유명한 산의 단풍을 즐기러 다니느라 억새의 진면목은 놓치고 말지만 반면에도
이 맘 때쯤 이 곳을 찾는 이들은 단풍도 늦고 그렇다고 아직은 하얀 설화를 보기에는 이른 어중간한 시기라서
대개 산악회단위로 영남알프스 등으로 몰리는 것 같다
10시23분 쯤 “청수골 중앙능선” 갈림길에서 잠시 지체 후 올라서면 역시 전망 좋은 바위봉에 올랐으나 많은
등산객들로 붐벼서 잠시 조망만 즐기고 내려선다
◁한피지기 고개에서 영축산 가는 능선은 온통 암릉과 암봉들의 연속이다▷
10시45분
“양산시 4 구조지점”의 표식이있는 지점을 살짝 지난 바람을 피해서 휴식을 취한다
참! 먹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가는 스타일의 나도 여러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오르니 먼저 배가 고프다는 배부른(?)
투정을 부리며 간식을 먹는데 그나마의 평소의 나의 간식이래야 캔 맥주에 빵 조각이지만 다양한 간식을 맛보는
기회가 오늘같은 날이다
11시05분 자리를 털고 영축산 정상을 향해서 출발하는데 마냥 널널할 수 만은없다
때로는 산죽과 진달래와 어우러진 바위능선도 지나며 한동안 말없는 진행이 이어진다
영축산에서 신불산 간월산을 거쳐서 배내봉까지 이어지는 이 곳의 주능선도 전형적인 東高 西低형의 능선으로서
동쪽은 급한 벼랑과 바위들이 발달된 반면 서쪽은 완만하고 부드러운 억새능선이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영축산 정상쪽도 가까워 보이고 그 너머 광대한 신불평원이 바라보인다
◁영축산 정상 오르기전 내려다본 지나온 능선▷
이제 점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등산객들로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의 인사가 잦아질 무렵 억새가 없이
패어진 흔적에는 부지기로 널려진 돌들로 작은 돌탑들을 쌓아놓은 것을 볼 수 있고 당연히 하나의 조각돌을 올려놓고
합장 한번하고 지나간다
“산신님! 이 어렵고 힘든 불황의 터널을 슬기롭게 지나게 해 주옵소서”
“지도층부터 힘없는 백성들까지 반목과 고집스러움으로 싸움질 않게 해 주옵소서”
전자는 정말로 마음속에 있어 하고간 내용이고 후자는 제발 좀 그랬으면하는 바램이다
통도사쪽 기존의 코스, 즉 백운암을 거치는 코스의 갈림길도 지나면서 11시25분 영축산 정상 직전의 잘록이를 지나서
힘차게 오르니 4분만에 정상에 오른다
“언양”이라는 굴씨밖에 보이지 않는 깨진 삼각점이 있고 정상 표시석 앞에는 사진을 찍는 등산객들로 붐비니
아무도없는 깨끗한 표시석 하나를 제대로 찍을 수 없다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모습은 역시 사자평과 사자봉쪽이다▷
이제 저 북쪽 신불평원은 발 아래 바라보이고 그 위로 육중하게 서있는 신불산 정상도 멀지 않게 보이는 이 곳에서
문득 이십년이 조금 안된 먼 기억하나를 끄집어 내본다
날씨가 제법 추운 정초 였다
석남고개 저 아래서 텐트치고 야영 후 100리터짜리 육중한 배낭을 폼나게 메고,
(그 때는 그랬다 배낭안에 울툭불툭 하지않게 깔판을 두르고 그 무거운 중 비브람 신고 터벅 터벅 걷는게 폼 나는
모습이었으니,)
부지런히 능동산 찍고 배내고개 내려선 후 간월산 신불산 거쳐서 영축산 정상에 닿으니 이미 오후 4시가 넘어
곧 날이 저물어가려고 하는데 같이한 후배놈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때는 아무리 겨울이라 하지만 하루 종일 반대쪽에서 오는 산꾼 하나를 만나지 못했었고 그렇게 뒤쳐진 후배넘을
기다리며 몇 개비의 담배도 태웠을거다
그래! 그 때는 엄청난 골초, 아니 애연가였기에 산에 가면서 불안해서 몇 갑의 담배를 넣고 다니던 시절이었지,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니 어둠이 서서히 밀려올 무렵 저 아래 작은 점 하나가 움직이는게
보인다
결국은 어두워져서 “지산마을”쪽으로 뛰어 내려가면서 궁시렁 거렸었다
“짜식! 나보다 어린 넘이 뭐 그리도 빌빌 대능겨? 우씨! 궁시렁 궁시렁”
그래봐야 나도 힘이 팔팔한 30대였고 그 후배는 나보다 세살 어린 친구였는데 ....
◁그 때 여기서 저기를 바라보자니 어둠속에서 점 하나가 나타났다 이십여년전 말이다▷
자 ~ 이제부터 환상의 신불평원을 걸어간다
곳 곳에 속살을 드러낸 넓은 등로를 바라보노라면 자연휴식년제 나 등산객들의 숫자를 제한해야할 곳이 이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건 비단 나 뿐일까???
그래도 울산 사는 불새님은 같이가는 미라니와 덩달이를 위해서 열심히 설명한다
“저기가 아리랑 릿지고 ... 흠! 쓰리랑 릿지”
“술비님은 저 아리랑 릿지를 했다면서 언니! 야 ~ 재밌겠다”
하는건 몇 일전 포항의 술비랑 서울로 왔을 때 전날 북한산을 다녀왔는대도 불구하고 다음날 기꺼이 지방의 북한산
촌놈(?)들을 위해서 가이드를 해준 미라니의 반문이다
능금님 몇 일전에 신문에 난 신불평원의 기사를 보고 “엄마! 신불평원 가자고” 청하는 딸과 같이 지나갔던
곳인데도 기꺼이 같이 해주었으니 “광인 넌 참! 복도 많은 넘이여”
한차례 평탄하게 주 ~ 욱 내려섰다가 평탄하게 진행하고 그러다보니 반대 쪽에서 엄청나게 달려오는 사람들이라니!
내년 오늘이 신불평원 제삿날인가?
◁신불평원 많은 산행객들로 붐빈다▷
아 ~~ 솔직히 말하건대 사람많은 등로를 걷노라면 귀찮은거 하나있다
가끔씩 하는거는 분명 진심으로 하는 것이데 이렇게 엄청난 사람들이 스쳐 지나면서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등의 인사를 게속 청해오면 정말이지 마음에도 없이 의례적인 인사가 오간다“ 똑같은 내용의 성의 없는 인사 말이다
단체 멤버가 지나면서 그렇게 말을 걸고 지나면 미치고 환장하겠다
1 : 30 내지는 50 ... 그들은 한 사람이, 홀로 산꾼은 그 인원만큼 대꾸를,
다시 은근한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예상외로 많은 산을 다닌 것으로 알고있는 미라니도 이 곳은 처음이라고 하고,
당연히 모든 곳이 처음인 우리들의 덩달이님의 감탄사,
그래도 내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건 서쪽(좌측)으로 보여지는 사자평 쪽이다
“여보슈 들 저기 보이는 솔표 우황청심원 나무 아래로 가 보슈들”
하는 내 말에 처음에 어안이 벙벙하던 일행들이 억새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아름다운 소나무 아래에서 폼 잡고,
◁신불재로 향하다가 보기좋은 소나무 아래서 사진 한장 찍어주고 나는 언제나 없다▷
그렇게 한차레 올랐다가 평탄하다가 또 오르고 그러면서 저 신불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뻗어나간 공룡능을 바라보자니
능선위에 무슨 나무들이 서있는 듯,
아 ~ 그 것은 엄청난 인파의 정체현상을 멀리서 바라보는 그림이다
“광인님 우리 어디로 하산 할까요?”
묻는 말에 저 엄청난 인파를 바라보자니 딱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늘 왜!이리도 배가고파유 신불재에서 점심묵고 상황 보기로 하쥬”
12시 참으로 엄청난 인파가 바글대는 신불재에 내려선 후 우측 가천리쪽 하산로 쪽의 간이 산장 옆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아무리 다섯명이라해도 앞으로는 메뉴를 지정해주든지 준비물을 지정해줘야 할까보다
아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주기위한 정이 넘쳐서 그럴게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맛난 것을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결국은 능금님과 불새 권형이 준비해온 음식들로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情을 듬뿍담은 술잔이 오간다 ...
여자들 끼리만,
◁신불재 인근에서 신불산 정상쪽을 올려다본다▷
젠장! 여성용으로 준비해온 백세주는 세 사람의 여자들끼리만 부딧치고,
아침에 혼자서 반병 꼴작거린 큰 소주병을 그대로 나발불며 노닥거리니 시간도 잘간다
에구!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능금님과 불새님은 아예 미란아 그리고 언니야 하면서 잘도 어울리고
술 마시지 않고 끊임없이 너스레를 펴는 덩달이님의 능력에 감탄도,
문득 저 위로 신불산 정상쪽을 올려다보니 어느새인가 잔뜩 끼어있던 개스도 물러나고 파란 하늘이 높아 보이고
어디를 쳐다봐도 갈색의 억새는 바람에 나부낀다
무려 한 시간 삼십분이나 지체하며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신불 정상을 향해 오른다
그렇게 털레 털레 신불산 정상을 향해 오르며 여전히 입에 발린 인사를 하며 오른다
돗대기 시장에 근무하시는분들 “미안, 죄송합니다”
여전히 돗대기 시장이라 할 만큼 시끄러움과 분주함, 그런 어수선함으로 가득찬 정상,
“광인님! 마 ~ 그냥 저 공룡릉으로 내리 가입시더 퍼뜩 내리가서 여도 가고 저도 가고... ”
“마 ~ 까짓거 그라입시더 일로 가믄 우짜고 절루 가믄 어떻십니꺼”
◁신불산 정상쪽을 올려보고, 그리고 신불산 정상▷
이미 아까 엄청나게 정체되며 올라오던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동쪽의 공룡릉으로 향하면서 이렇게 생각해본다
“이 코스는 내려가는 사람보다 거의 올라오는 사람들이다”
이 신불산 공룡릉이라는 곳도 그렇다
예전에 그러니까 80년대 후반 동호인 산악회를 데리고 이 곳 공룡릉을 찾을 때만 하드라도 이렇게 밀리지 않았었다
그 이전에는 서울에서 이 곳을 찾을 때는 그냥 등억리 깃점 간월재로 뻔한 넓은길 따라 간월재로 오르고 그리고는
신불산 찍고 영축산 - 백운암 - 통도사 주차장 그리고 먼저 내려오는 사람들 파전에 막걸리에 찌들고 열심히 서울로
올라갔던 기억들,
신불의 정상을 벗어나며 불과 3년전 봄에 낙동정맥을 하며 지났던 기억을 떠 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어보는 사연은
이렇다
영축산 정상에 새로산 밀레 재킷을 덥다고 벗어두고 그냥 신불산으로 향하는 지금은 시집간 “두병반”의 그 재킷을
놀려 주고자 누군가의 배낭에 숨겨 가자고한다
마침 처음으로 우리팀에 합류한 막내 진가락의 배낭에 숨겨버린다
◁신불 공룡릉▷
조금전까지 이 글에서 너스레를 떨었던 신불평원도 지나고 아마! 신불산 정상에 앉아서 조금은 썰렁했던 모양이다
그제서야 우리들의 두병반은 재킷을 챙겨오지 못함에 온몸이 굳어버리고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짐짓
“병반아! 내가 알기로는 영축산 정상에 있을터 기다릴테니 댕겨와라”
“어따! 언제 쩌 그를 다녀 온다요 그렇다고 거그 가서 꼭 있다는 보장도 없는디”
전라도 하고도 순천 출신 우리들의 두병반의 체념하면서도 억울한 듯한 대꾸에 거짓으로 힘을 불어 넣어주는
이 몸 이다
“병반아 이 어려운 낙동의 능선에 데리고온 나도 잘못이라 너의 그 재킷을 내가 사주고 싶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벅차니 옆에 있는 박너물 선배와 공동으로 구입해주마“
“괜찮은디 뭐 ~ 꼭 사주실라믄 빨강색말구 검정색으로 사줬으믄 쓰겄는디라 ~~ ”
“이 친구야 우리는 꼭 같은 붉은색으로 사주고 싶다네”
그렇게 놀려대며 배내고개까지 키득거리며 낙동의 마루금을 따라갔던 기억이 그것이다
그래! 오랜만에 추억, 사랑 , 정 , 아름다움 , 느긋함을 만끽하는 날이다
◁내려서면서 간월산 배내봉쪽의 능선을 바라본다▷
동쪽의 공룡릉으로 내려서는데 혼자서 병채로 조금씩 마신 소주 탓인가!
어째! 몸이 흔들리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도 이 코스도 참으로 오랜만에 지나본다
내려서다말고 북쪽으로 흘깃 쳐다보니 간월산에서 배내봉으로 이어지는 낙동의 능선도 보기 좋은데 우리들의 덩달씨!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다며 그렇지 않아도 많이 흘리는 땀을 뻘 ~ 뻘 흘리며 열심히 따라온다
능선의 남쪽 아래 가천리에서 오르는 골짜기쪽은 아직도 붉은 단풍들이 많이 보인다
그렇게 흐느적 거리면서도 14시44분 어느 정도 바위가 끝나는 지점에 내려서니
“이 곳은 위험구간이니 우회 하십시오”의
팻말이 있는 갈림길인데 내가보기에 이 곳에서 우회해서 오른다거나 내려서는 사람이 있기나할까?
다시 한 15분 여 내려서고보니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부드러운 하산길▷
부드러운 숲길은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취기도 남았겠다 요즈음 자제하고 있었던 뛰어서 내려가기를
선 보인다고 부지런히 달려도 보며 내려간다
15시30분 자수정동굴이 바라보이는 도로변에 내려서보니 참! 예전과 많이도 달라졌다
부산으로 달려가던 마음씨 좋은분의 밴 차량에 모두 얻어타고 통도사 입구로 달려간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어! 우측을 바라보니 낙동정맥상의 삼화목장쪽의 능선이 보인다
“그렇다면 요 아래 도로가 정맥상이네 저 아래 ok목장 팻말도 붙어있을테구... ”
“맞네요 맞아” 낙동정맥 이 구간을 지나보았던 불새님과 능금님의 맞장구 다
차량을 회수하고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불새님과 울산으로 달려가고 횟집에서의 주고받는 술잔은 한없는 정이
넘쳐나는데 헤어짐이 아쉬운 불새님은 연신 소주잔을 털어 넣는다
사정상 산행하지 못한 대구의 산길로님의 성화에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려보지만 동대구역 인근의 호프집에서
짧은 만남으로 아쉬움을 털어내고 ktx열차에 몸을 싣는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