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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회는 왜 21세기 미래형 대안교회인가?
지금 이 시간에 긴장하고 계신분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순서를 부탁하신 김치현 목사 입니다. 그가 긴장하는 이유는 제가 아무도 못 말리는 이 교회의 “뜨거운 감자”이고 “임금님의 귀”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본데로 말하는 어린아이 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분의 눈치를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파악한 김치현 목사는 이러한 저의 방침을 오히려 좋게 평가하고 지지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김치현 목사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고심한 것도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여러분이 찾아오신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먼저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1) 인터넷이나 종이 주보를 발행하지 않습니다. 매주 마다 집회순서는 설교자 만 미리 정해져 있을 뿐이고,나머지 순서는 모든 축제와 잔치가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 평신도들에 의해서 진행되는 창의적이고 우발적인 “Happening" 이기 때문에 주보를 발행하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2) 부목사가 1명도 없고, 장노와 집사, 권사 등의 직책이 없으며, 행정실에는 1명의 무급직원이 있을 뿐입니다. 이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가 1-2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 성경책과 찬송 책을 들고 오는 교인이 없고, 교회 집회실 안에도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4) 한때 성찬예식을 집행하였으나 배고픈 제자들이 떡과 포도주를 절제 없이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목사님이 그 후로 중단하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5)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으나 장례식은 엄숙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문상객은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넥타이를 매는 대신에 평소에 좋아하는 캐쥬얼을 입고 옵니다. 엄숙한 표정으로 조의를 표하고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2시간 가까이 고인을 회고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웃으면서도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목격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고인과 연고가 있는 평신도가 입관예배 등을 집행합니다. 최근에 고인이 된 젊은 자매를 기리기 위해서 4-5회의 추모예배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6) 집회시간에 부르는 대부분의 찬송가는 이교회에서 작사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개사한 유행가와 판소리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7) 일요일 마다 3시간 이상 진행되는 집회에는 평신도 대표의 기도가 없고, 헌금순서가 없으며 유니폼을 입은 성가대의 노래를 1-2개월 마다 한번씩 들을 수가 있습니다.
(8) 1시간 정도의 설교와 30여분에 걸친 노래 및 국내외 방문자들의 인사, 그리고 시간제한이 없는 평신도들의 화답간증으로 이어 집니다.
(9) 집회를 마친 후에는 점심을 먹고 다시 20-30개의 아늑하고 작은 방으로 흩어져서 1시간 30분 동안의 생애간증을 하고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CCC 운동의 전통을 이어 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0) 간증시간을 통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여과 없이 노출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자발적이고 이 시간에 공개되는 굴곡진 삶의 아픔과 수치들은 모두에게 “힐링”의 효과를 갖게 합니다. 6개월 마다 작은 모임의 구성원들이 바뀌면서 가진 자와 못가진자들이 함께 먹고, 말씀을 나누고, 사생활을 공개 하는 사이에 사회적 신분의 높은 벽을 허물고 하나의 강도 높은 집단연대의식을 갖게 합니다. 同病常鱗 입니다.
(11) 평신도들의 “코이노니아”는 지역을 초월하여, 전국규모로 확산되다가 근래에 와서는 미국, 카나다, 중국, 일본에 있는 “디아스포라” 해외교회들과 온/오프라인 교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2)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지구촌 교회로 성장하였으나, 다수의 전체교인들이 서로가 서로의 자서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성서의 표현을 빌리면 “사자와 어린양들이 평화롭게 동거하는 교회”라고 해도 무방 할 것입니다.
(13) 지난 40여 년 동안 사역 해 오신 이현래 목사님은 이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공유해야 할 전설적 인물로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의 말씀과 생애가 보여준 권세 때문입니다.
(14) 그가 전해 온 말씀의 핵심은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Paul Tillich의 존재론적 신학과 그 궤를 함께 하는 것으로 평가 합니다. 제가 1년 동안에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보니, 주제가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입니다. “지식의 선악과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과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고, 연합하자“라는 것입니다.
(15) 그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말씀이 하나의 Cliche로 들리지 아니하고, 지금도 권세가 있는 것은 그의 생애와 말씀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16) 젊은 시절, 김준곤 목사가 주도하는 CCC 운동의 간부가 되어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에 동참하였으나, 건강을 잃고, CCC를 떠나서 대구에 내려 올 때, 그를 추종하던 학생들이 무작정 대구까지 따라오자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 하면서 생겨난 작은 생활공동체가 오늘의 대구교회를 있게 한 모체 입니다.사모가 재봉틀로 이불을 만들어서 서문시장에 납품해서 생긴 수입으로 공동체의 생활비를 부담 한 이야기, 영하의 추운 겨울, 얼어붙은 화장실의 똥 무더기를 목사님이 작대기로 청소하던 이야기, 훗날에 의사가 되고, 성공한 사업가가 된 몇 명의 제자들이 교회 근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원목 통나무 집을 건축하여 목사님 명의로 된 등기필증을 전달하였으나, 자신의 명의를 교회의 명의로 고치도록 지시한 이야기, 결혼 주례를 하고 받은 1천 만 원의 사례비를 교회에 헌금 한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이제는 그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60대의 제자들이 집필하여 문서화 할 것이라고 합니다.
(17) 저는 두 가지의 이유 때문에 김치현 목사를 불쌍하게 여깁니다. 첫째는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자란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그가 지닌 말씀의 능력이 이제는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유모어 감각도 일조 할 것입니다.
젊은 후임목사를 불쌍하게 여기는 두 번째의 이유는 선임목사가 일생동안 보여준 근검절약 정신 때문에 이제는 교회가 커지고 재정사정이 옛날 보다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회의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적정한 근무조건을 요구하거나 기대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해 전에 이교회의 평신도가 타던 중고차를 이현래 목사가 기증 받아서 타다가 이제는 김치현목사가 물려받기를 하여 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부품이 장착되지 아니한 3세대 중고차입니다.
(18)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외부에서 교회를 심하게 비판하더라도 글을 삭제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용과 개방성은 교회가 갖고 있는 자신감의 표현 일 것입니다.
(19) “옷장 속에 뼈다귀”를 감추지 아니하고, 싸운 후에 화목제를 드리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20) 여름에 너무 더워서 교인들이 부채를 들고 온다. 교회에 돈이 있으나 아끼는 것인지,
돈이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21) 집회시간에도 음식과 음료를 가지고 와서 옆에 앉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마시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22) 집회시간에 정신박약자와 정신이상자가 돌아다니고, 강단에 올라가서 목사와 필담을 나나지만 아무도 말리거나 불평하지 아니 합니다.
(23) 주일 집회시간에 평신도들이 돌아가면서 설교 한다.
지금까지 제가 소개해드린 어린 양들의 대구교회를 13년 전에 한 마리의 괴물이 나타나서
잡아먹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괴물은 표범의 다리, 사자의 입, 독수리의 날개와 용의 머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쇠로 된 큰 이빨과 열 뿔을 가진 짐승이다. 그 이름이 한국기독교총연맹이고 약칭으로 “한기총”이라고 합니다. 이 당시 통합 예장 교단과 합동 예장 교단이 주축이 된 단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단체가 자의적인 내부종교재판에서 대구교회와 담임 목회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지금은 이 단체가 주도권 싸움 때문에 분열 및 해체단계에 돌입하였으나, 인터넷에 올려 진 기사자료는 이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http://www.kcjsm1972.or.kr/main/sub.html?Mode=view&boardID=www82&num=183&page=&keyfield=&key=&bCate
84. 이현래(대구교회, 양문성서회보) : 한기총(2005/16/이단)
형식상으로는 한기총이 대구교회의 가해자이지만, 실질적인 가해자는 이당시의 한기총을 주도한 합동예장이고, 하수인은 몇 명의 신학교수 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구교회 이단사냥의 최초 원인제공자는 대구지역에 위치한 몇 개의 합동장노교단 소속 교회들입니다. 이 교회들이 지역관료들과, 아파트단지 주민들과 연대하여 한시적 이익집단을 형성하여 대구교회 신자가 운영하는 남산병원을 이단교회의 전진기지라고 주장하고, 종교재판에 제소 한 것이 발단입니다.
이것은 제가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를 조사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증언 해 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제가 이러한 정보를 얻게 된 후 분노하여 한기총 상대로 도전장을 내기 직전에 교회의
게시판을 통하여 저의 계획을 전체교인들에게 알린 것을 보시고 이현래 목사가 올리신
다음의 답변 글을 보고 저의 행동을 중단하였습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마라”
이교회는 마음이 가난하고 눈물이 많은 교회입니다. 이혼자가 다수이고, 기초수급자, 조직폭력배, 정신질환자, 지체장애자들이 눈에 띄게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교회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눈물이 많고 마음이 가난 한 것은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질고 때문이 아닙니다.
대학교수, 의사, 판사 등의 전문직업인과 성공한 사업가들도 다수이지만 이들이 사회적 신분의 벽을 허물고 “지극히 못가진 자”들과 하나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형제와 자매”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뼈아픈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전국 각지에서 이 교회를 방문 해 주신 것은 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한국의 주요교단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이 교회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위로 해 주신 날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7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열정을 가지고 이 교회에 헌신하도록 동기를 부여 해 준 것은 제가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의 특징들 때문입니다.
눈물이 많고 마음이 가난하다고 해서 애통 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를 소개할 때 사용되는 단어가 잔치 집입니다. 매우 역동적이고 역설적인 교회 입니다. 이교회의 상당수 구성원들은 한국의 여러 교단과 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통합예장, 합동예장은 물론이고, 침례교, 순복음교회, 안식교, 기쁜 소식선교회, 지방교회, 신천지 등의 교회에서 개별 혹은 집단이주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르기아와 밤빌리아, 에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 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곳 대구교회 사람들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경상도가 고향 입니다. 미국, 카나다, 중국, 그리고 일본의 교포들도 거의 매주 마다 이교회를 일시방문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 머무시는 동안에 여러분은 대구/경상도 말씨보다 타 지역의 말씨를 더 자주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교회 안에는 한국최초, 유일의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합동장노교, 통합장노교, 순복음 교회, 침례교단 소속의 교회에서 사역하는 40-50명의 목회자들이 주1회 대구교회에 모여서 교단의 벽을 허물고, 함께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한국개신교의 아킬레스 건이
분열과 배타 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초교파적 단합과 연대의식은 21세기 미래형 대안교회가 갖추어야 할 주요 덕목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단이라는 개념의 판정기준이 이른바 정통교회의 교리와 직제, 그리고 예배형식 이라면, 위에서 밝힌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도, 대구교회는 이단적 요소가 없지 아니한 것이 사실입니다. 주일집회에 참석 해 보시면 저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정통교회와 비교 할 때 나타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구교회는 이단성이 없다고 판정 한 것은 제가 이해하는 신학적 규범과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참고하여 대구교회를 조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대구교회의 대담한 실험을 한국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 할만한 “21세기 미래형 대안교회”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비록 제가 어려서 부터 교회를 다녔고, 국내외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교수가 되기도 하였으나, 저는 지난 30여 년 동안 교회를 떠나서 “홀로서기”를 하였던 자입니다. 1년 전부터 이교회를 출석하지만, 지금도 “홀로서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계 선상에 있는 “Participating Observer" 이지요.이유가 없지 아니 합니다. 대구교회는 제가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로에 불과하며, 제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증거 하기 위한 수단 일 뿐이고, 대구교회 자체가 저의 목적이 되거나, 저의 “지방신” (a god)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교회를 떠난 이유는 교단과 교회들이 하나의 mission을 수행하는 섬김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집단적 이기주의와 자기-영광의 방편으로 쓰여 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교회와 교리를 하나의 지방신으로 우상화 하는 모습들이 저로 하여금 교회로 부터 turn off 되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성경해석의 차이 때문에 개체교회와 목회자를 이단으로 정죄하거나, 교회와 교단들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냉소적 시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 하였습니다.
제가 대구교회를 출석한 이유는 이교회가 이러한 문제들로 부터 자유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구교회 Only"의 Narcissism 입니다. 설교자들이 이렇게 간증하도록 가르치거나 유도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초수급자, 폭력전과자, 정신병자, 신체장애자, 이혼경력자 등의 사회적 소외계층을 포함한 이 교회의 다수구성원들이 살아 온 굴곡진 삶과 그들의 방황 끝에 교회의 생활공동체를 통해서 누리게 된 개인적 위로의 경험이 이러한 간증을 하게 만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월50만원의 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매에게 ”매주 3회씩이나 교회에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저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저는 잡을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사자와 어린양“이 사회적 신분의 벽을 허물고 축자적으로 同居同樂 하는 곳이 대구교회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 상당수 교인들의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는 “대구교회 Only"의 배타주의와 순혈주의는 이 개체교회의 공교회적 속성을 약화 시키는 위험성에 노출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구교회를 “21세기 미래형 대안교회”의 성공적인 Model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2000년의 교회역사를 지배 하였던 기복적 신앙체계를 대체하는
존재론적 신학의 메시지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빈곤과 무지와 질병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롭게 된 21세기의 세속주의적 시대정신과 그것의 한계 때문에 부딪혀야 하는 삶의 무의미성과 부서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소외감에 대하여 의미 있는 해답을 제공 할 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대구교회의 도전과 실험을 주목하시고 여러분이 섬기시는 교회들이 대구교회가 거둔 성과를 참고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생각을 말씀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