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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강 비빔밥-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9. 29.월.
비빔밥
민문자
지금부터 비빔밥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나물과 고기 따위를 섞고 갖은 양념을 넣어 비벼 먹는 밥을 말하지요.
어쩌면 제일 만들기 쉽고 맛있는 것이 비빔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빔밥 맛의 매력은 재료 고유의 맛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오는 데에 있습니다.
내가 처음 먹어본 비빔밥은 대여섯 살쯤일 때 이웃집 또래 남자아이와 잘 놀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아이 누나가 맨 간장을 넣고 비빈 깨소금비빔밥을 그녀 동생에게 한 숟갈 주고 코침이 쩍 묻은 그 숟가락으로 나에게도 한 숟갈 주었는데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받아 입에 물고 절절매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후 어릴 때부터 별 반찬거리가 없는 날은 안방 윗목에서 기른 콩나물 한 가지에 밥만 퍼서 양념간장에 비빈 콩나물 비빔밥이었습니다. 결혼 후 어머니에게 전수받은 가장 자주 해먹던 비빔밥입니다. 그리고 여름이면 상추를 비롯한 푸성귀를 넣고 고추장 양념장을 넣고 만들어 먹던 비빔밥도 좋았습니다. 보리밥에 신 열무김치를 넣고 비빈 밥, 그 또한 손쉽게 먹던 비빔밥이었지요.
겨울밤 친구들과 강강술래 하며 몰려다니며 놀다가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들기름 듬뿍 넣어 볶아 프라이팬이나 냄비 채 들고 나와 먹던 비빔밥 맛 생각이 떠오릅니다.
제삿날이 지나면 제상에 올렸던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숙주나물 시금치나물이 남아서 쉴까 봐 얼른 한데 섞어서 참기름 넣고 비벼 먹던 비빔밥은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뱄던 어머니의 생활 지혜였지요.
고장마다 특산물로 나는 나물을 이용한 비빔밥이 있습니다. 각 지역 특산물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비빔밥은 지역별로 특색 있게 발전되어 특히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 강원도 곤드레나물밥이 유명합니다. 비빔밥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전주비빔밥은 콩나물이 중요합니다. 전주는 수질이 좋고 기후가 콩나물 재배에 알맞아 전주에서 가까운 임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검은 쥐눈이콩을 많이 사용합니다.
진주비빔밥의 경우 숙주나물과 양념한 육회를 쓰고 선짓국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진주비빔밥은 고기, 숙주, 고사리, 도라지, 육회, 청포묵, 고추장, 김 등을 곁들여 '화반(花飯)'이라 하였습니다. 달걀지단 고명을 얹은 비빔밥은 백화요란(百花燎亂), 즉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고 표현한 화반, ‘꽃밥’이라고 했답니다. 선지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철분이 많아 빈혈증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인 식품입니다.
통영비빔밥은 잘 손질한 멍게와 잘게 자른 김 그리고 볶은 깨가 듬뿍 들어가고 거기에 제철 채소와 통영 특산물인 톳을 넣은 멍게비빔밥입니다. 멍게의 쌉싸름한 맛과 김의 달콤한 맛, 깨의 고소한 맛 그리고 채소의 신선한 맛이 한데 어울려 멍게비빔밥을 통영 최고의 향토비빔밥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봄 문학기행으로 가서 맛본 멍게비빔밥은 과연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곤드레나물밥은 태백산의 고지에서 자생하는 산채로서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향이 독특한 것이 특징입니다. 예부터 구황식물로 많이 먹어온 곤드레는 강원도 정선과 평창 영월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졌는데 십여 년 전 영월 김삿갓 유적지를 돌아보고 먹던 곤드레나물 비빔밥은 지금도 잊을 없을 만큼 맛이 좋았습니다.
이제 이런 비빔밥이 미리 준비만 하면 간편하면서 맛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절이나 교회, 학교 행사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절에서도 초파일 같은 큰 행사나 작은 행사에 모두 점심공양으로 비빔밥을 내놓습니다.
비빔밥은 이제 국내뿐 아니라 세계인이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한류의 세계화 바람과 함께 우리의 음식도 세계인이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음식 가운데 기내식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음식은 아마도 비빔밥일 것입니다. 비빔밥은 우리 국내 항공사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외국 항공사들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비빔밥이 외국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우리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비빔밥의 종류와 요리법을 더 발견하고 개발하여 모든 세계인의 입맛을 더욱 사로잡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비빔밥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조병화 약력
趙炳華 시인, 호는 편운(片雲).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에서 부친 조두원(蘭有 趙斗元)과 모친 진 종(陳 鍾) 사이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미동공립보통학교(渼洞公立普通學校)를 거쳐 1943년 3월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보통과 및 연습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東京高等師範學校) 이과에 입학하여 물리, 화학을 수학하다가 일본 패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45년 9월부터 경성사범학교 물리 교수로 교단생활을 시작하여 인천중학교(仁川中學校, 6년제) 교사, 서울중학교(6년제) 교사로 재직하면서 1949년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을 출간하여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아울러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시론을 강의하다가 1959년 서울고등학교를 사직하고 경희대학교 교수(시학 교수, 문리대학장, 교육대학원원장 등 역임), 1981년부터 인하대학교 교수(문과대학장, 대학원원장, 부총장 등 역임)로 재직하다 1986년 8월 31일 정년퇴임했다. 이와 같은 교육과 문학의 업적을 인정받아 중화학술원(中華學術院)에서 명예철학박사, 중앙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카나다 빅토리아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시는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인간의 숙명적인 허무와 고독이라는 철학적 명제의 성찰을 통하여 꿈과 사랑의 삶을 형상화한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김소월이 전원서정을 바탕으로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데 비하여 그는, 외로운 도시인의 실존적 모습, 허무와 고독으로서의 인간존재가 꿈과 사랑으로 자아의 완성에 이르는 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쉬운 낭만의 언어로 그려냈다.
창작시집 53권이 증명하듯 그의 시작활동은 남달리 성실했고, 또한 폭넓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시집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 네덜랜드)에서 25권이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문단에서도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면서 그동안에 세계시인대회 국제이사, 제4차 세계시인대회(서울, 1979) 대회장을 겸임했다. 아울러 그는 이 세계시인대회에 한국대표 또는 단장으로 수차에 걸쳐 참석해 왔으며, 이 대회에서 추대된 계관시인(桂冠詩人)이다. 또한 국제 P.E.N. 이사로 1970년 국제 P.E.N.서울대회에서는 재정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도 겸하여 초대전을 여러 차례 가졌다.(유화전 8회, 시화전 5회, 시화-유화전 5회 등) 그의 그림은 그의 시 세계와 흡사하여 아늑한 그리움과 꿈이 형상화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그는 아세아문학상(1957), 한국시인협회상(1974), 서울시문화상(1981), 대한민국예술원상(1985), 31문화상(1990), 대한민국문학대상(1992),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1996), 516민족상(1997) 그리고 세계시인대회에서 여러 상과 감사패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상금과 원고료를 모아 후배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1991년 편운문학상(片雲文學賞)을 제정했고, 시인, 평론가들과 시문화단체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이후 유족들이 그의 유지를 받들어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창작시집 53권, 선시집 28권, 시론집 5권, 화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등을 비롯하여 총 16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2003년 3월 8일 작고하기 까지 경희대학교 이사, 한국문인협회 명예이사장,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이다. (.(조병화문학관에서
빌려옴))
남남 1 / 조병화
푸른 바람이고 싶었다
푸른 강이고 싶었다
푸른 초원이고 싶었다
푸른 산맥이고 싶었다
푸른 구름 푸른 하늘
푸른 네 대륙이고 싶었다
남남의 자리
좁히며 가까이
네 살 닿는 곳
따사로이
네 입김이고 싶었다
네 이야기이고 싶었다
네 소망이고 싶었다
네가 깃들이는
마지막 고요한
기도의 둥우리이고 싶었다
흙바람 개인 날 없는
어지러운 너와 나의 세월
마른 내 목소리
푸른 네 가슴이고 싶었다
푸른 네 목숨이고 싶었다
너와 날 묻을 푸른 대륙이고 싶었다
9월의 시 / 조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