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
여섯 시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 창밖은 훤하게 날이 밝았음을 알린다. 해가 뜨기 전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부쩍 잠이 든 시간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다. 자다가 깨는 횟수는 한 두 차례다. 나이가 들면서 일어나는 습관이 바뀐 것이다.
옷을 갖춰 입고 집을 나선다. 기온 차이로 생긴 이슬이 등산화 끝을 적신다. 마을은 조용하다. 일을 나가려는 아낙네들이 서너 명 씩 모여있다. 강한 햇살을 견디기 위해 나름 무장을 했다. 마을 안 길을 지나 포장 도로를 차로 달린다. 몇 달 째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다니는데 아직 길이 익숙지 않다. 편도 일차로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조심스럽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오른다. 대나무 밭을 따라 오르면 야생으로 자랐는지 아니면 따로 주인이 있어 심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복분자 군락지가 펼쳐진다. 이른 봄부터 눈 독을 들였다. 평상시와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로에 들어섰다. 초봄과 달리 무성한 나무 잎으로 입구가 좁아졌다. 활엽수가 많은 탓에 푸른 하늘이 대부분 가려져 날은 개었지만 어둡다. 오직 사람들이 다니는 길 바닥만 훤히 뚫린 느낌이다. 그루터기에는 새 순이 돋아 작은 가지를 만들어 나간다.
전망대 아래로 펼쳐진 두물머리의 모습은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 자욱하게 내려진 물안개를 보여 주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장수들이 창칼을 둘러맨 모양이 엿보인다. 자연은 끊임없는 입체 예술가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그림을 다양하게 내민다. 아침 잠을 줄이고 산에 오른 나에게 선물을 안긴다. 일부러 잠을 깨 하루를 일찍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작은 고통을 줄이려 산을 찾았다 즐거움을 누린다.
내려가는 길에 베어져 있는 참나무 등걸을 챙긴다. 땔감용으로는 제격이다. 마른 나무라 가볍고 적당한 길이로 토막이 나 있어 보자기 천을 멜빵으로 이용한다. 양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내려간다. 내려오는 도중에 아침 산행을 오는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무엇에 쓸 것이냐 묻는 사람과 힘들겠다며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이도 있다. 온돌 방 땔나무로 가져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주차장에 나무 짐을 내려놓고 산딸기 군락지까지 몇 걸음을 옮긴다. 잘 익은 딸기를 골라 입으로 넣는데 달콤한 맛이 혀 끝에 닿는다. 복분자가 이제 막 익기 시작한 터라 한 줌 정도만 준비한 비닐에 담는다. 복분자의 위세를 본다. 뽀족하게 돋아난 가시를 비켜가며 낱알을 모았다. 작은 양이지만 집에 있는 가족에게 자연에서 수확한 열매를 안겨 주고 싶은 마음이다. 손에 쥐어지는 양이 많아질 때를 기다리며 기쁘게 길을 나선다. 자연의 고마움을 느낀다. 산림과 수목의 성장을 통해서 안정과 열매를 얻었다. 소중한 자연이 다가오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