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
모난 돌이라 욕하지 마라
둥근 네가
온 세상 굴러다니며
세상 잡것들과 몸 섞으며
온갖 저지레를 다하는 동안
모가 나서
어느 쪽으로도 구를 수 없는 나는
해와 달, 저 철새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여기 이 강 언덕에 붙박이로 살았노라
때론 모난 돌이
떠돌이들의 이정표임을 잊지 마라
<시작 노트>
시인은 시대와 화합하기 어려운 존재다. 격동의 세월을 때론 치열하게 때론 비굴하게 살았다. 육체의 한계까지 일하는 자학적 하등동물로 살았던 때도 있다. 강은 내게 궁극적 안식처였다. 서산에 걸린 노을, 긴 방죽, 모래사장, 미루나무는 내 쓸쓸하고 가난한 영혼의 안식처였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초능력을 지닌 슈퍼맨이 아니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를 보존하는 인물이다. 탈진실의 시대다. 모난 돌에 더욱 애착을 느낀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아득하다.
첫댓글 윤일현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올립니다.
나비
나비의 삶은 곡선이다
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
길 건너 전깃줄까지
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
나비는 갈지자 날갯짓으로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
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
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
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
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
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
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
엄마가 오갔던 그 길
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
ㅡ계간 『시와 반시』(2022. 가을)
둥근돌은 둥근돌대로
모난돌은 모난돌대로
적기 적소에 쓰임 받기 위해 조물주는 만들어 두었겠지요?
과거가 똑 같은 사람이 없듯이
가는 길도 다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모난 돌 나는 굴을 수는 없어도
서산에 걸린 노을, 긴 방죽, 모래사장, 미루나무가 있는
내내 쓸쓸했고 가난했던 강 언덕.
그곳이 가장 성숙하기 좋은 영혼의 안식처였는지 모를일입니다
해와 달과 별, 그 많은 철새. 떠돌이 구름들
방향을 잃은 둥근 돌들의 길잡이고
이정표가 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하고 큰 일입니까?
구르고 굴러 다시 길을 묻는 지친 이가 있거든
동서남북 팔 벌리고 우뚝 선 이정표로
맡은 소임을 다 하소서
귀한 작품 잘 감상하고 갑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지만 모가 나서 정점도 이룬다. 사물의 선과 선, 면과 면이 만나 이루는 이 점은 새로운 완성-절정이다. 모가 난 사물과 사람은 대지의 운명과 형식이다. 세상 잡것들과 몸 섞으며 떠돌이로 붙박이로 살아온 나角는, 모난方 돌은 한때 온전한 원圓이었다. (헤세의『싯다르타』에 나오는 사공의 말처럼) 강은 오로지 현재만 있다. 시간과 자아를 표상하는 강안江岸에는 물고기처럼 늘 깨어있는 사람이 있다. 모난 돌이 있다. 그 돌로, 도道로 해와 달, 그리고 저 철새들이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