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불교와 북방불교
1. 상좌부 불교[남방불교]
https://ko.wikipedia.org/wiki/%EC%83%81%EC%A2%8C%EB%B6%80_%EB%B6%88%EA%B5%90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教) 또는 테라바다 또는 테라와다(Theravada)[1]는 부처의 계율을 원칙대로 고수하는 불교를 말한다.[2][3]
대중부 불교와 함께 인도 불교의 2대 부문(部門)의 하나이다.
테라바다라는 말은 "장로(長老)들의 길"이란 뜻으로 상좌부(上座部)라고 한역되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가 사용한 언어인 팔리어(빠알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대승 경전과 대비된다.
이 팔리어 경전(아함경과 78% 일치하는 니까야)은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최초로 쓰인 것으로 서력 기원후에 형체를 갖추어가기 시작한 대승권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이나 다른 경전보다도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이 더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4]
[역사]
불멸 후 100년의 근본분열로 교단은 두 부파로 나뉘었는데 그 중 보수파인 상좌의 사람들에 의한 일파가 상좌부이다.
북방불교의 자료들에 의하면 불멸(佛滅) 후 100년 아쇼카왕 치세 때, 마하데바(Mahadeva: 大天)라고 하는 진보파 비구가 교의에 관한 5개조의 신설(新說)을 제창하고 그 승인을 교단에 구했을 때에,
또는 남방불교의 자료인 실론의 《도사(島史)》나 《대왕통사(大王統史)》에 따르면, 와지족의 비구가 계율에 대한 십사(十事)의 신설(十事非法)을 주창했기 때문에(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후자가 승인되고 있다) 불교교단이 신설에 찬성하는 진보파의 대중부(大衆部)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상좌부(上座部)로 양분되었다.
이것이 근본분열(根本分裂)이며, 이를 계기로 부파불교의 시대로 들어간다.[5]
인도의 아쇼카 왕 때인 기원전 3세기에 상좌부의 주도로 빠알리어로 행한 제3차 결집 직후,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 장로를 통해 제3차 결집의 결과물을 가지고 상좌부는 스리랑카에 정착하였다.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스스로를 "분별설부(Vibhajjavada)"[6]라 불렀으며 암송되어 오던 제3차 결집의 빠알리어 대장경을 기원전 1세기에 싱할리문자로 기록하였다.
현재의 테라와다는 이 분별설부의 삼장을 계승하였다.
주로 동남아시아에 분포하여서 남방 불교라고도 불린다.
이후 북방에서는 상좌부가 불멸 후 300년 초에 본상좌부(本上座部)와 설일체유부(說一體有部)로 나뉘고 본상좌부는 히말라야 지방으로 옮겨 설산부(雪山部)라고 불리었으며, 캐시미르 지방을 본거(本據)로 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의 분파에 의한 8부의 성립은 모두 설일체유부의 것으로 된 것이며, 따라서 유부는 상좌부계(上座部系) 중에서도 여러 부파 중 최대의 것이 되었고, 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의 소승불교에 대한 비판 · 논란(論難)은 거의 모두 이 유부에게 돌려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북방에서는 상좌부불교라고 하면 당연히 설일체유부가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기원후 2세기 중반에 카니시카왕 대에 설일체유부를 중심으로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한 제 4차 결집이 있었다.
북방의 아함경은 주로 이 제 4차 결집의 산스크리트어 기록을 한역한 것으로 보여진다.
2. 대승불교[북방불교]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C%8A%B9%EB%B6%88%EA%B5%90
대승불교(大乘佛敎, 영어: Mahāyāna Buddhism) 또는 마하야나(산스크리트어: महायान mahāyāna)는 "대승(大乘)"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큰 탈것"(great vehicle) 또는 "뛰어난 탈 것"이라는 뜻이며, '탈 것'이란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가르침에 의해 사람들을 미혹의 세계로부터 깨달음의 세계로 실어간다는 것이다.
대승불교도들은 소승(小乘)이 자기 완성(자리: 自利)을 목표로 한 '탈것'임에 대하여 대승은 많은 사람들의 구제(이타: 利他)를 목적으로 하는 큰 '탈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주장했다. 소승불교 중 하나인 대중부 불교가 대승불교의 기원이다.[1][2][3][4]
초기의 대승 불교는 부파 시대의 불교가 고타마 붓다 당시의 원시 불교의 활동성·순수성·일반성을 상실하고 아비달마라고 하는 고정적·번쇄적·전문적인 훈고해석에 빠져버려 중생제도(衆生濟度)라는 불교 본래의 사명을 망각해 버린 것을 그 본래의 자세로 되돌리기 위해서 일으킨, 말하자면 불교 부흥 운동이라고 한다.
이 운동의 발생과 그 추진역(推進役)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서력 기원전 1세기경부터 재가(在家)를 중심으로 한 혹은 불탑(佛塔)을 수호하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그 지역도 남인도에 원형(原型)이 생겨서 북인도에서 확립되었다고 한다.
[대승과 소승]
대승(大乘)은 커다란(뛰어난) 승용물(乘用物: 가르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하야나의 번역어이며,
반대로 소승(小乘)은 조그마한(뒤떨어진) 승용물의 뜻인 산스크리트어 히나야나의 번역이다.
불교는 고타마 붓다가 입적한 후 그 가르침의 전승(傳承)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불교로부터 그 정리·해석을 위주로 하는 부파(部派) 불교로 발전했으나, 이러한 불교가 복잡한 이론으로써 자기 혼자만의 해탈(解脫)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르침이었음에 반대하여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구제를 이상으로 하고 대중 속에 적극적으로 작용하여 자리(自利)와 함께 이타(利他)를 설법하는 보살의 가르침이 차차 융성해졌다.
그리하여 이 실천의 뒷받침이 되는 《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화엄경(華嚴經)》 등의 경(經)이나 《중론(中論)》·《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이 작성되었다.
그때 후자의 교도는 자기들의 가르침이 대승이라 자칭하고 전자를 소승이라 하여 경시했다.
대승 불교도 측에서 소승 불교라고 칭하는 상좌부 불교에 속하는 현재의 스리랑카 · 미얀마 · 태국의 불교도들은 결코 자신들의 가르침을 소승이라 하지 않는다.
중국 · 한국 · 일본 · 티베트에서는 대승 불교가 매우 발전했다.
3. 아함경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D%95%A8%EA%B2%BD
《아함경(阿含經)》은 부파불교의 경전 모음이다.
"아함"이란 산스크리트어 낱말 아가마(āgama)의 음역(音譯)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번역(飜譯)한다.[1] "아함"이란 문자 그대로 "전승(傳承)" 또는 "전승(傳承)한 가르침"이며, 스승에서 제자로 계승한 것을 뜻한다.[1][2] 즉, 《아함경》은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전(聖典)을 가리킨다.[1] 실제로는 고타마 붓다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이며, 원시불교 연구의 근본 자료다.[1]
후일 대승불교가 일어나자 아함(阿含)은 소승(小乘)이라고 천칭(賤稱)되어 중국 등 전통적인 불교에서 그리 중시하지 않았으나 근래에 이르러 원전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팔리어 대장경의 《4부(四部)》와 한역 대장경의 《4아함(四阿含)》 비교 연구로 말미암아 원시불교의 진의(眞意)를 구명하려는 경향이 생겨 뛰어난 성과를 얻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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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유의할 것이 있다.
니까야(나 아함경)의 내용과 부파불교의 아비달마[논]을 구별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비달마는 니까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해설하면서 논의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니까까(나 아함경)의 내용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함경과 아비달마의 마음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시오.
마음, 나까야(나 아함경)과 아비달마[논]의 견해의 차이
https://cafe.daum.net/sutta-nipata/ROKO/114
마음의 두 측면, 본래의/해탈한 마음과 오염된 마음
https://cafe.daum.net/sutta-nipata/RUnA/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