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7권
7. 현화품(現化品)
69) 정수리 위에 보배 구슬이 있는 인연
부처님께서는 가비라위국(迦毘羅衛國) 니구타(尼拘陀)나무 아래 계시었다.
당시 성중에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재보를 지닌 장자가 있었다. 그가 어떤 문벌 좋은 집의 딸을 골라 아내로 맞이하여 항상 음악을 즐겨 오다가, 그 아내가 임신하여 열 달 만에 한 남자 아이를 낳으니, 아이의 용모가 단정하고도 수승 미묘하여 세간에 드물 정도였고, 저절로 머리 위에 마니(摩尼) 보배 구슬이 달려 있으므로, 부모들이 이것을 보고 아이의 이름을 보주(寶珠)라 하였다.
아이가 점점 장대하여 여러 친구들과 함께 성문을 나가서 유희하다가 니구타나무 아래에 이르러 불 세존의 그 32상과 80종호로부터 마치 백천의 해와 같은 광명이 비춤을 보고 곧 환희심을 내어 부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수다원과를 얻어서 집에 돌아와 그 부모에게 출가할 뜻을 말씀드렸다.
부모 역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굳이 만류할 수 없게 되자, 아이는 곧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출가하기를 원하였고,
부처님께선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여.”
그러자 머리털이 저절로 깎이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의 모습을 이루었으며, 부지런히 도를 닦고 익혀 아라한과를 얻고 3명(明)ㆍ6통(通)과 8해탈(解脫)을 구족하여 천상ㆍ세간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성중에 들어가 걸식하는데, 그 보배 구슬이 항상 정수리 위에 있어 온 성중 사람들이 어찌하여 비구의 정수리 위에 구슬이 있을까 이상히 여겼다.
그리곤 걸식을 할 때 다투어 와서 이를 보았는데,
보주(寶珠) 비구는 이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겨 곧 처소에 돌아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 머리 위에 있는 이 보배 구슬을 제거할 수 없겠나이까?
제가 성중에 들어가 걸식할 때 이 머리 위에 있는 보배 구슬 때문에 뭇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 이 구슬을 제거해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다만 구슬을 향해서,
‘나는 이제 다시 세간에 태어나지 않을 터이니 다시는 네가 필요없노라’고,
이렇게 세 번 말한다면, 그 구슬이 저절로 사라져 버리리라.”
이에 보주 비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은 그대로 구슬을 향해 세 번 말하자, 과연 보배 구슬이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 다른 여러 비구들이 이 사실을 보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보주 비구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그가 태어날 때부터 해와 달의 광명보다도 더 빛나는 보배 구슬이 정수리 위에 있었으며, 또 무슨 인연으로 이제 세존을 만나서 출가 득도하게 되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과거 91겁 때 이 바라날(波羅捺)에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이 출현하시어 두루 교화를 마치고 열반에 드시자, 그 당시 반두말제(槃頭末帝)란 국왕이 사리를 거두어 높이 1유순이나 되는 4보탑(寶塔)을 만들어 공양하였다.
때마침 왕자가 그 탑 속에 들어가서 마니(摩尼) 보배 구슬 하나를 탑의 기둥 위에 걸어 두고 예배 공양한 다음 발원하고서 떠났는데,
이 공덕으로 말미암아 저 왕자는 91겁 동안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그 보배 구슬이 정수리 위에 있는 채 천상과 사람으로 태어나 하늘의 쾌락을 받아 왔으며,
이제도 보배 구슬이 있는 그대로 나를 만나 출가 득도하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당시 왕자가 바로 지금의 이 보주 비구니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