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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2권
14.2.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들[4]
[오온의 수식어로 열거된 ‘과거’ 등의 분석]
185. 이상은 아비담마의 분류법(Abhidhamma-bhājanīya)에 따라 무더기(蘊)들을 상세하게 주석한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경에 따른 분류법을 통해서] 무더기들을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하셨다.
“물질은 그 어떠한 것이건, 그것이
① 과거의 것이건 ② 미래의 것이건 ③ 현재의 것이건
④ 안의 것이건 ⑤ 밖의 것이건
⑥ 거칠건 ⑦ 미세하건
⑧ 저열하건 ⑨ 수승하건
⑩ 멀리 있건 ⑪ 가까이 있건,
그 모두를 함께 묶고, 함께 모아서 물질의 무더기라 한다.
어떠한 느낌이건 ··· 어떠한 인식이건 ··· 어떠한 상카라들이건 ···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 함께 모아서 알음알이의 무더기라 한다(Vbh.1-9)”
물질(rūpa)
186. 여기서 어떠한(yam kiñci)이란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물질이건’은 지나치게 확대하여 적용함을 막는다. 이렇게 이 두 단어로 물질은 예외 없이 모두 포함되었다. 그런 뒤 물질을 과거 등으로 분류하기 시작하셨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과거로 어떤 것은 미래 등으로 분류되기 때문이 이 방법은 느낌 등에도 적용된다.
이 가운데서
(1) 과거의 물질은
① 세월(addhā)
② 상속(santati)
③ 시간(samaya)
④ 순간(khaṇa)에 따라 네 가지이다.
(2) 미래의 물질과 (3) 현재의 물질도 그와 같다.
187. 이 가운데서
① 세월에 따라:
한 중생이 한 생에 재생연결하기 이전을 과거라 하고 죽은 후를 미래라 하고 이 두 사이를 현재라 한다.
188.
② 상속에 따라:
비슷한 형태와 동일한 정도의 온도에서 생겼고 동일한 음식에서 생긴 물질은 비록 이전과 이후로 일어나더라도 이것은 현재의 것이다.
그 이전에 다른 온도나 음식에서 생긴 것을 과거라 한다. 그 뒤의 것을 미래라 한다. 마음에서 생긴 것으로서 하나의 인식과정, 하나의 속행, 하나의 증득에서 생긴 것만을 현재라 한다.
그 이전의 것을 과거라 하고 뒤의 것을 미래라 한다.
업에서 생긴 물질에는 상속에 따라 과거 등의 특별한 분류가 없다.
그러나 온도와 음식과 마음에서 생긴 물질을 돕는 것에 따라 과거의 상태 등이 있다.
189.
③ 시간에 따라:
하나의 경(更), 아침, 저녁, 밤, 낮 등의 시간에서 지속적(santāna)으로 일어나는 시간을 현재라 하고, 그 이전을 과거라 하고, 그 뒤의 것을 미래라 한다.
190.
④ 순간에 따라:
일어남 등의 세 순간(亞刹那)을 포함하는 것이 현재이고, 그 이전이 미래이며, 그 뒤의 것이 과거이다.
191. 더욱이 원인과 조건의 작용(kicca)이 끝난 물질을 과거라 하고,
원인의 작용은 끝났지만 아직 조건의 작용이 끝나지 않은 것을 현재라 하며,
두 작용을 아직 얻지 못한 것을 미래라 한다.
혹은 작용하는 순간을 현재라 하고, 그 이전을 미래라 하며, 그 뒤의 것을 과거라 한다.
어기서 순간 등의 주석은 글자 뜻 그대로이고 나머지는 방편적인 것이다.
192.
(4)-(5) 안과 밖의 분류는 이미 설했다.(§§
여기서는 자기의 안이 안이고 타인의 것은 밖이라고 알아야 한다.
(6)-(7) 거칠고 미세한 분류도 이미 설했다.
193.
(8)-(9) 저열함과 수승함의 분류도 두 가지이다.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이다.
그 가운데서 색구경천(色究竟天)들의 물질에 비해 선견천(善見天)들의 것은 저열한 것이다.
선견천들의 물질은 선현천(善現天)들의 것보다는 수승하다.
이와 같이 지옥 중생의 물질까지 상대적으로 저열함과 수승함을 알아야 한다.
절대적인 측면으로는, [그 물질을 대상으로]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저열한 것이고,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수승한 것이다.
194.
(10)-(11)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이미 설했다.(§73).
더욱이 장소에 따라서도 상대적으로 멀고 가까움을 알아야 한다.
195. 그 모두를 함께 묶고, 함께 모아서: 과거 등이라는 단어로 물질을 따로따로 설명했다.
변하는 (ruppana) 특징을 가졌다.(§34)고 하는 하나의 상태에다 그 모든 물질들을 통찰지로써 더미로 만들어 물질의 무더기(色蘊)라고 부른다는 것이 여기서의 뜻이다.
196. 이 문장에서 모든 물질은 변하는 특징 안에 무더기를 이루기 때문에 물질의 무더기라고 설명하였다. 물질을 떠나 따로 물질의 무더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의 경우처럼 느낌 등도 느껴진 것의 특징 안에 더미를 이루기 때문에 각각 느낌의 무더기 등이라고 설명한다. 느낌 등을 떠나 따로 느낌의 무더기 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느낌(vedanā)
197. 과거 등의 분류에서 느낌의 (1)-(3) 과거, 미래, 현재 상태를 상속(santati)과 순간(khaṇa) 등으로 알아야 한다.
상속으로:
하나의 인식과정, 하나의 속행, 하나의 증득에 속한 느낌과 한 가지 관련되어 일어난 느낌은 현재이다. 그 이전이 과거이고 그 뒤의 것이 미래이다.
순간으로:
세 순간(세 아찰라)에 속해 있고, 이전과 나중의 중간이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느낌이 현재이고, 그 이전에 과거이며, 그 뒤의 것이 미래이다.
198.
(4)-(5) 안과 밖의 분류는 자신의 안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6)-(7) 거칠고 미세한 분류는 『위방가』에서 설한 대로
① 종류(jāti)에 따라
② 고유성질(sabhāva)에 따라
③ 사람(puggala)에 따라
④ 세간·출세간에 따라서 알아야 한다.(Vbh.3)
『위방가』,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해로운 느낌은 거칠고, 유익한 것과 무기의 느낌은 미세하다.(VBH.3)”
199.
① 종류에 따라:
해로운 느낌은 고요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것은 비난받을 행위의 원인이고 번뇌의 열로 불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익한 느낌에 비해 거칠다.
이것은 활동을 가지고, 의욕을 가지며, 결과를 가져오고, 번뇌의 열로 불타며, 비난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과보로 나타난 무기(無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비해 거칠다.
이것은 결과를 가져오고, 번뇌의 열로 불타며, 고통을 초래하고, 비난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단지 작용만 하는 무기에 비해 거칠다.
그러나 유익한 느낌과 무기의 느낌은 앞서 말한 것과 반대되므로 해로운 느낌에 비해 미세하다.
유익한 느낌과 해로운 느낌 이 둘은 모두 활동을 가지고, 의욕을 가지며, 결과를 가져오므로, 두 가지 각각의 무기에 비해 거칠다.
두 가지 무기는 모두 앞서 말한 것과 반대되므로 그들에 비해 미세하다.
이와 같이 종류에 따라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알아야 한다.
200.
② 고유성질에 따라:
괴로운 느낌은 즐거움이 없고, 떨림이 있으며, 혼란을 초래하고, 근심을 불러오며, 압도하기 때문에 다른 두 가지 느낌에 비해 거칠다.
그러나 다른 두 가지는 각각 행복하고 고요하며 수승하고 사랑스럽고 중립적이기 때문에 괴로움 느낌에 비해 미세하다.
즐거운 느낌과 괴로움 느낌, 이 둘은 떨림이 있고 혼란을 초래하며 분명하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에 비해 거칠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앞서 말한 것과 반대되므로 그 둘에 비해 미세하다.
이와 같이 고유성질에 따라 거친 미세한 것을 알아야 한다.
201.
③ 사람에 따라:
법을 증득하지 못한 자의 느낌은 여러 가지 대상에 흩어지기 때문에 증득한 자의 느낌에 비해 거칠다.
반대로 나중 것은 미세하다.
이와 같이 사람에 따라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알아야 한다.
202.
④ 세간·출세간에 따라:
번뇌를 가진 느낌은 세간의 것이다.
그것은 번뇌가 일어나는 원인이고 급류에 휩쓸리기 쉬우며 속박되기 쉽고 매듭이 생기기 쉬우며 자칫 장애의 대상이 되고 집착하기 쉬우며 오염되기 쉽고 범부에게 공통된 것이므로 번뇌 다한 느낌에 비해 거칠다.
번뇌 다한 느낌은 앞서 말한 것과 반대되기 때문에 번뇌를 가진 느낌에 비해 미세하다.
이와 같이 세간·출세간에 따라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알아야 한다.
203. 그러나 종류(jāti) 등으로 서로 섞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해로운 과보로 나타난 몸의 알음알이와 관련된 느낌은 그것이 무기(결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종류로서는 미세하지만 고유성질 등에 따라서는 거칠다.
이처럼 설하셨기 때문이다.
“무기의 느낌은 미세하다. 고통스런 느낌은 거칠다 ···
법을 증득하지 못한 자의 느낌은 거칠다 ···
번뇌에 물들기 쉬운 느낌은 거칠다.(Vbh.3-4)”
괴로운 느낌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느낌 등도 종류에 따라서는 거칠지만 고유성질 등으로는 미세하다.
204. 그러므로 종류 등으로 서로 섞임이 없도록 그렇게 느낌의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무기는 종류로서는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에 비해 미세하다’고 설했을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록 오유성질 등의 분류를 고집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무기인가?
그것은 고통스런 것인가? 그것은 즐거운 것인가?
그것은 법을 증득한 자의 것인가? 증득하지 못한 자의 것인 것?
번뇌가 있는 것인가? 번뇌가 다한 것인가?’
이 방법은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205. 그리고 “이런 저런 느낌과 비교하여 느낌은 거칠기도 하고 미세하기도 하다고 보아야 한다.(Vbh.4)”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해로운 느낌 등의 경우에도,
성냄이 함께한 느낌은 마치 불처럼 자기의 의지처를 태우기 때문에 탐욕이 함께한 느낌에 비해 거칠다.
탐욕이 함께한 느낌은 미세하다.
성냄이 함께한 느낌도 그 성냄이 일정할 때엔 거칠고, 일정치 않을 땐 미세하다.
일정한 것도 한 겁 동안 지속되면 그것은 거칠고 다른 것은 미세하다.
한 겁 동안 지속되는 것도 자극을 받지 않은 것은 거칠고 다른 것은 미세하다.
탐욕이 함께한 느낌도 사견이 연결될 때 거칠고 다른 것은 미세하다.
그것도 일정하고, 한 겁 지속되고, 자극을 받지 않은 것은 거칠고 다른 것은 미세하다.
예외 없이 해로운 느낌은 과보를 많이 주는 것은 거칠고 과보를 적게 주는 것은 미세하다.
그러나 유익한 느낌은 과보를 적게 주는 것이 거칠고 과보를 많이 주는 것이 미세하다.
206. 욕계의 유익한 느낌은 색계의 것은 미세하다.
그것보다 무색계가 미세하며 출세간 느낌은 더 미세하다.
욕계의 것도 보시를 행한 것은 거칠고, 계를 가진 것은 미세하다.
수행을 한 것은 더 미세하다.
수행을 한 것도 그것이 두 가지 원인을 가진 것은 거칠고 세 가지 원인을 가진 것은 미세하다.
세 가지 원인을 가진 것도 자극을 받은 것은 거칠고 자극을 받지 ㅏ않은 것은 미세하다.
색계의 초선은 거칠다 ··· 제5선은 미세하다.
공무변처와 관련된 무색계의 느낌은 거칠다 ··· 비상비비상처와 관련된 것은 미세하다.
예류도와 관련된 출세간의 느낌은 거칠다 ··· 아라한도와 관련된 것은 미세하다.
이 방법은 각 경지의 과보로 나타난 느낌과 단지 작용만 하는 느낌과, 괴로움 등의 [느낌과], 증득하지 못한 자의 [느낌] 등과, 번뇌가 있는 [느낌]등으로 앞서 설한 느낌들에도 적용된다.
207. 이제 장소(okāsa)를 통해서 [살펴보자].
지옥에서 괴로운 [느낌]은 거칠다. 축생에서는 미세하다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들에서는 미세하다.
괴로운 [느낌]처럼 즐거운 [느낌]도 모든 곳에서 적절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208. 사물(vatthu)을 통해서 [살펴보면],
저열한 사물을 대하여 일어난 느낌은 거칠고 수승한 사물을 대하여 일어난 느낌은 미세하다.
저열함과 수승함의 분류에서 거친 것은 저열한 것이고 미세한 것은 수승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209.
(8) 멀리라는 단어는 “해로운 느낌은 유익한 것과 무기의 느낌으로부터 멀다.”
(9) 가까이라는 단어는 “해로운 느낌은 해로운 느낌과 가깝다.(Vhb.4)” 등의 방법으로 『위방가』에서 설하셨다.
그러므로 해로운(不善) 느낌은 유익한(善) 느낌과 무기인 느낌으로부터 멀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슷하지 않고 닿지 않으며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익한 느낌과 무기인 느낌도 해로운 느낌으로부터 멀다. 이 방법은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해로운 느낌은 해로운 느낌과 가깝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슷하고 닮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느낌의 무더기의 과거 등의 분류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마친다.
[순서 등을 통한 판별]
210. 여러 가지 느낌과 관련된 인식 등도 위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처럼 알고서 다시 무더기들에 대한 지혜를 분류하기 위해 슬기로운 자는 다음과 같이 바르게 판별을 해야 한다.
① 순서에 따라
② 차이점에 따라
③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으로
④ 비유로써
⑤ 두 가지로 보아야 함에 따라
⑥ 이렇게 보는 자가 성취할 이익에 따라
211.
① 순서에 따라:
일어남의 순서, 버리는 순서, 수행의 순서, 지혜의 순서, 가르침의 순서 등 여러 가지 순서가 있다.
그 가운데서 “첫 번째 단계인 깔랄라(kalala)가 일어나고 깔랄라로부터 두 번째 단계인 압부다(abbuda)가 일어난다.(S.i.206)”는 등이 일어남의 순서이다.
“봄(見)으로써 버려야 하는 법들, 수행으로써 버려야 하는 법들(Dhs.1)” 등이 버림의 순서이다.
“계의 청정 ··· 마음의 청정(Mi.148)” 등이 수행의 순서이다.
“욕계, 색계(Ps.i.83)” 등이 일어나는 곳의 순서이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D.ii.120)”. 혹은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M.i.379)” 등이 가르침의 순서이다.
212. 이 가운데서 일어남의 순서는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 태아의 첫 단계인 깔랄라처럼 무더기(蘊)들은 전후를 확정지을 수 있는 형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버림의 순서도 적용되지 않는다. 유익한 것과 무기를 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수행의 순서도 적용되지 않는다. 해로운 것을 닦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곳의 순서도 적용되지 않는다. 느낌 등은 네 가지 일어나는 곳 모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순서만 적용된다.
213. 사람들은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蘊)을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자아라고 집착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세존께서는 그 덩어리로 밀집되어있는 것이 분리되는 것을 보여주시어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 자아라고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이 이익을 얻게 하고, 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눈 등의 대상이 되는 거친 물질의 무더기(色蘊)를 제일 먼저 설하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원하는 물질과 원하지 않은 물질을 경험하는 느낌을 설하셨고,
“느낀 것을 인식한다(M.i.293)”는 말씀처럼 느꼈던 대상의 측면을 이해하는 인식을 설하셨으며,
인식에 따라 [업을] 형성하는 상카라들을 설하셨고,
그 느낌들의 의지처요 그들을 지배하는 알음알이를 설하셨다.
이와 같이 순서에 따라 판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214.
② 차이점에 따라:
무더기(蘊)와 취착하는 무더기(取蘊)의 차이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무더기는 일반적으로 설하셨다. 취착하는 무더기는 번뇌가 있고 취착하기 쉬운 것으로 한정되어 설하셨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무더기들과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을 설하리라. 그것을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다섯 가지 무더기들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 어떠한 것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을 물질의 무더기라 한다.
어떠한 느낌이건 ··· 어떠한 인식이건 ··· 어떠한 상카라들이건 ···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 이것을 알음알이의 무더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다섯 가지 무더기들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인가?
비구들이여, 물질은 그 어떠한 것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무엇이든 번뇌가 함께하고 취착하기 마련인 것. 이것을 취착하는 물질의 무더기라 한다.
어떠한 느낌이건 ··· 어떠한 인식이건 ··· 어떠한 상카라들이건 ···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 그 무엇이건 번뇌가 함께하고 취착하기 마련인 것, 이것을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이라 한다.(S.iii.47-48)”
215. 여기서 느낌 등은 번뇌가 다한 것도 있고 [번뇌가 함께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물질은 그렇지 않다. 물질은 더미(rāsi)라는 뜻에서 무더기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무더기(蘊)들 가운데서 언급된다.
또한 이것은 무더기라는 뜻과 번뇌가 함께한다는 뜻에서 취착하는 무더기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착하는 무더기(取蘊)들 가운데서도 언급된다.
그러나 느낌 등은 번뇌가 다한 것은 오직 무더기들 가운데서만 언급되고 번뇌의 대상이 될 때는 취착하는 무더기들 가운데서 언급된다.
여기서 취착하는 무더기란 ‘취착의 대상(gacara)인 무더기들이 취착하는 무더기들이다’라고 그 뜻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데 묶어 무더기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216.
③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으로:
왜 세존께서는 더도 덜도 아닌 오직 다섯 가지 무더기들만 설하셨다?
㉠ 모든 형성된 것들의 비슷한 것을 한데 묶었기 때문이고
㉡ 자아와 자아에 속한다는 가정의 대상으로 최대의 숫자이기 때문이며
㉢ 다른 것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217.
㉠ 여러 종류의 형성된 법(saṅkhara-dhamma, 有爲法)들을 비슷한 것끼리 묶을 때 물질은 물질이라는 비숫한 것에 따라 하나로 묶어 한 개의 무더기가 된다.
느낌은 느낌이라는 비슷한 것에 따라 하나로 묶어 한 개의 무더기가 된다.
이 방법은 인식 등에도 적용된다.
그러므로 모든 형성된 [법]들의 비슷한 것을 한데 묶었기 때문에 오직 다섯 가지를 설하셨다.
218.
㉡ 물질 등의 다섯은 자아와 자아에 속한다는 가정의 대상으로 최대의 숫자이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물질이 있을 때 그 물질을 취착하고 그 물질을 고집하여 이런 견해가 일어난다.
‘이것은 나의 것이며,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느낌이 ··· 인식이 ··· 상카라들이 ··· 알음알이가 있을 때 그 알음알이를 취착하고 그 알음알이를 고집하여 이런 견해가 일어난다.
‘이것은 내 것이며,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S.iii.181-82)”
그러므로 자아와 자아에 속한다는 가정의 대상으로 최대의 숫자이기 때문에 오직 다섯 가지를 설하셨다.
219.
㉢ 계 등으로 시작하는 다른 다섯 가지 법들의 무더기들(五法蘊)을 설하시ㄱ;ㄴ 했지만 그들은 상카라들의 무더기(行蘊)에 속하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다른 종류의 무더리들도 다 포함하기 때문에 오직 다섯 가지를 설하셨다.
이와 같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으로써 판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220.
④ 비유로써: 여기서 취착하는 물질의 무더기(色取蘊)는 병원과 같다.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라는 환자가 토대와 문과 대상으로 삼아 머물 곳이기 때문이다.
취착하는 느낌의 무더기(受取蘊)는 병과 같다.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취착하는 인식 무더기(想取蘊)는 병의 일어남과 같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 등 때문에 탐욕 등이 함께하는 느낌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취착하는 상카라들의 무더기(行取蘊)는 적합하지 않은 것을 받들어 행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병이라는 느낌의 원천(nidāna)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느낌을 위해서 느낌을 계속 형성한다(abhisaṅkharonti).” 그와 마찬가지로
“해로운 업을 지었고 쌓았기 때문에 고통이 함께하는 과보로 나타난 몸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Dhs.117-18)”라고도 [설하셨기 때문이다].
취착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는 환자와 같다. 병이라는 느낌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221. 그리고 감옥과 벌과 범죄와 벌주는 자와 범죄자와 같다.
그리고 이들은 접시와 음식과 반찬과 시중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과 같다.
이와 같이 비유로써 판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222.
⑤ 두 가지로 보아야 함에 따라:
간략하고 자세하게, 이와 같이 두 가지로 보아야 함에 따라 판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223. 간략하게,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들(五取蘊)은,
「독사비유경」(Āsīvisaupama Sutta, S.iv.174)에서 설한 칼을 빼든 원수처럼,
「짐의 경」(Bhāra Sutta, S.iii.25)에서 설한 짐처럼,
「캇자니야빠리야야 경」(Khajjanīyapariyāya Sutta, S.iii..87-88) 에서 설한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자처럼,
「야마까 경」(Yamaka Sutta,雙經,S.iii.112-14)에서 설한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무아요 형성된 것이요 살인자처럼 보아야 한다.
224. 상세하게, 물질은 거품덩이(pheṇapiṇḍ)처럼 보아야 한다. 쥐어짜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낌은 물거품(udaka-pubbuḷa)처럼 보아야 한다. 즐거움은 짧은 한 순간 뿐이기 때문이다.
인식은 신기루(marīcikā)와 같다고 보아야 한다. 틀린 말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상카라들은 까달리 나무(파초)의 수간(樹幹, khandha)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고갱이(sāyā)가 없기 때문이다.
알음알이는 요술(māyā)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속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주 고상한(su-uḷāra) 안의 물질도 더러운 것(不淨)으로 보아야 한다.
느낌은 세 가지 괴로운 성질(dikkhatā)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식과 상카라들은 복종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자아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알음알이는 일어나고 사자지는 법이기 때문에 무상하다고 보아야 한다.
225.
⑥ 이렇게 보는 자가 성취할 이익에 따라:
이렇게 간략하고 상세하게 두 가지로 보는 자에게 이익이 있다.
이것에 따라 판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먼저 간략하게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五取蘊)을 칼을 빼든 원수 등으로 보는 자는 무더기들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물질 등을 상세하게 거품덩이 등으로 보는 자는 고갱이가 아닌 것들에서 고갱이를 보는 자들이 아니다.
226. 특히 안의 물질을 깨끗하지 않다고 보는 자는 먹는 덩어리 음식(飮食)을 철저히 안다(parijānāti).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다고 하는 전도(顚倒)를 버린다.
감각적 욕망의 격류를 건넌다.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에 관해서는 번뇌 다 한 자가 된다.
욕심이라는 몸의 매듭을 끊는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을 갖지 않는다.
227. 느낌을 괴로움이라 보는 자는 감각접촉의 음식(觸食)을 철저히 안다.
괴로움에 대해서 즐거움(행복)이라고 하는 전도를 버린다.
존재(有)의 경류를 건넌다.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존재의 번뇌에 관해서는 번뇌 다한 자가 된다.
악의라는 몸의 매듭을 끊는다.
계율과 의식에 대한 취착(戒禁取)을 갖지 않는다.
228. 인식과 상카라들에 대해서 무아라고 보는 자는 마음속 의도의 음식(意思食)을 철저히 안다.
무아에 대해서 자아라고 하는 전도를 버린다.
사견의 격류를 건넌다.
사견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사견의 번뇌에 관해서는 번뇌 다한 자가 된다.
이것만이 오직 진리라고 하는 몸의 매듭을 끊는다.
자아ㅢ 교리에 대한 취착(我語取)을 갖지 않는다.
229. 알음알이를 무상하다고 보는 자는 알음알이의 음식(識食)을 철저히 안다.
무상한 것에 대해서 항상하다는 전도를 버린다.
무명이 격류를 건넌다.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무명의 번뇌에 관해서는 번뇌 다한 자가 된다.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이라는 몸의 매듭을 끊는다.
사견에 대한 취착(見取)을 갖지 않는다.
230. 이와 같이 [오온을] 살인자 등으로 보는 것은 큰 이익이 있다. 그러므로 지자는 무더기들을 살인자 등으로 보아야 한다.
어진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은 청정도론의
통찰지수행의 표제에서
무더기들에 관한 해설이라 불리는
제14장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