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해일륜_육조단경요역_6. 정과 혜가 일체(定慧一體)
(용성이 말하기를,
“심지가 일정하고 부동不動하여 산란심이 없는 것을 정定이라고 하고, 심지가 어리석지 아니하여 지혜가 원명圓明한 것을 혜慧라고 하나니 후래의 학자는 이와 같이 미루어 보아야 할 것이다.”)
성사께서 대중에게 보이시기를,
“정과 혜는 하나이고 둘이 아니니, 정은 지혜의 체가 되고, 지혜는 정의 용이 되는 것이다. 지혜에 나아가 체이고, 정에 나아가 지혜이니, 이 뜻을 알면 정혜가 선후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스스로 깨달아 닦는 자는 선후를 다투지 아니하는 것이다. 한결같이 행하는 삼매는 시시염념時時念念에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유마경(淨名經)』에 말씀하시기를, ‘곧은 마음(直心)이 도량’56)이며, 보살의 정토라고 하시니,57) 그릇되게 아첨하는 마음(諂曲心)을 행하지 말고, 다만 곧은 마음(直心)을 행하여 일체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법상法相에 집착하며,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집착하여 말하기를,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마음도 일으키지 아니하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정과 같은 것이니 도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도는 통通하여 막힌 곳이 없으니 만일 마음이 법에 머무르면 스스로 법에 얽히어 매인 것이 되는 것이다. 정혜를 등불에 비유하자면, 등잔은 광명의 체가 되고, 광명은 등잔의 용이 되는 것이니, 이름은 둘이 있으나 체는 하나인 것과 같아서 정혜도 이와 같아서 둘이 없는 것이다.
나의 법문은 무념無念으로 종지를 삼는 것이니, 무념자無念者는 저 생각에서 생각이 없는 것이고, 무상자無相者는 저 상相에서 상을 여의는 것이며, 무주자無住者는 사람의 근본 성품이니 세간의 선과 악 등의 모든 세계(善惡諸趣)와 원친怨親 등에까지 일체 미워하고 사랑하는 경계가 허공과 같아 털끝만큼도 물들어 집착함이 없으며, 삼세의 일체 경계에 돈연무심頓然無心하니라.
만일 일체법에 머물러 있으면 곧 계박繫縛이 되는 것이 것이다. 머묾(住)이 없는 심체心體가 영지불매靈知不昧하여 모든 계박을 해탈한 것이니 이것이 무주無住로 근본을 삼는 것이고, 상이 없다는 것(無相)은 일체의 상을 여의는 것이니 상을 여의면 법의 체성이 청정하기 때문에 무상으로 체를 삼는 것이며, 무념無念은 모든 경계에 호응하되 물들지 아니하기 때문에 무념이라 하는 것이고, 생각을 다 끊어 목석과 같이 하는 것을 무념이라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학도인學道人은 생각하여 보아라. 자기의 잘못된 것은 오히려 말할 것도 없거니와 타인을 그르치게 해 주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러하므로 무념을 세워 종지를 삼는 것이니, 미혹한 사람은 경계마다 생각이 있으며, 생각마다 사견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일체 진노塵勞 망상妄想이 이 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자성은 본래 한 법도 없으니 만일 얻을 것이 있다면, 망령되이 화복禍福을 말할 것이니, 이것이 진노塵勞 사견邪見인 것이다. 그러하므로 무념으로 종을 삼는 것이니, 없다는 말은 두 상相이 없다는 것이며, 또 진노심塵勞心이 없다는 말인 것이다.
염念은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인가? 진여본성眞如本性을 생각하는 것이니, 진여는 생각의 체體가 되고, 생각은 진여본성의 용이 되는 것이니, 그 실은 체와 용이 하나인 것이다. 신심心身이 일여一如하여 둘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