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 살면서, 남원을 다시 만나다
"천년고도 남원이 조금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남원에 살고 있지만, 정작 남원에 대해 아는게 없었습니다.
늘 오가며 보는 풍경이었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서 남원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유람반 수업에 참석하면서 이렇게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치고 더위도 한풀 꺾인,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한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남원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되고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남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처음에는 교룡산성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은 날아다니는 길이시지만
제게는 숨이 차는 길이었어요.
‘이렇게 험한 곳에 왜 산성을 만들었을까?’
높은 곳에서는 남원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험한 지형이 훌륭한 방어시설이 되었던 거예요.
옛사람들은 성벽만 만든 것이 아니라 산 자체를 이용해 남원을 지켰던 것이죠.
그리고 ‘교룡’이라는 이름도 재미있어요.
교룡(蛟龍)은 용이 되기 전의 어린 용인데, 교룡산과 관련해서는 용과 여의주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교룡산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떠나면 남원의 기운이 쇠할까 염려해, 그 여의주를 쪼개어 마애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물론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남원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이겠죠.
그런데 그 이야기가 참 재밌었습니다.
옛사람들은 산과 바위, 용과 부처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지키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자연과 신앙에 담았낸 것라 생각되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만난 곳이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이었어요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부처.
천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견뎌낸 부처가 지금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모습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치 10여 년 전쯤 만들어 놓은 것처럼 선명하고 또릿했어요.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열굴의 표정과 몸의 모습, 바위에 새겨진 선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광배에는 불꽃모양과 함께 구슬을 하나씩 이어놓은 듯한 모양이 새겨져있는데
교룡산성의 용이 물고 있었다는 여의주와 연결된 이야기는 아닐까요?
천 년 전의 사람들은 이 바위에 무엇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요?
천 년 전의 부처를 만나고 난 후,
훨씬 더 먼 시간으로 거슬러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남긴 흔적을 만나러 갔어요.
"대곡리 암각화"
암각화에도 여러 형태와 계통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떤 암각화는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직접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어떤 암각화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양으로 표현된다고 합니다.
대곡리 암각화는 추상적인 기하문양이 새겨져 있었어요
이 문양이 검파형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보면 추상적 무늬일뿐인데
이걸 새긴 사람은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놀라웠던 것은 남원에 가야고분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야 하면 흔히 경남이나 대구·고령 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데 제가 사는 남원 운봉고원에도 가야와 관련된 고분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더라구요
이것은 단순히 ‘가야 사람들이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당시 남원 운봉 일대에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상당한 세력을 가진 정치집단이 존재했던거죠.
철을 생산하고 물자를 교류하며 사람과 문화가 오갔던 곳.
그러니 남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과 문화가 오가는 중요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가야고분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이고,
신계리 마애불은
‘이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기원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며,
교룡산성은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이렇게 연결하면,
남원이라는 도시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남원은 단순히 춘향과 광한루만 있는 도시가 아닌거죠.
선사시대의 흔적부터 가야, 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근현대까지
수많은 시대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제 ‘천년고도 남원’이라는 말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오래된 도시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문화를 만들고,
믿음을 키우고,
서로 오가고,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온 시간이 축적된 도시.
그곳이 남원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귀한 역사적 증거들이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남원에 살고 있는 저조차도 오늘에서야 이런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저의 바램은 남원이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옛 문화와 멋을 제대로 보여주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남원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야고분에서 시작해
‘1500년 전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신계리 마애불 앞에서는
‘천 년 전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며 이 부처를 새겼을까?’
교룡산성에서는
‘왜 이렇게 험한 산에 성을 쌓아야 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걷다 보면
남원의 역사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남원의 역사를 교과서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분을 보고, 바위를 보고, 산성을 걸으며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이 남원의 옛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고,
카페와 상점에서도 남원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여행객들이 남원에 와서 광한루만 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는 도시.
그런 남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원시가 이미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하나의 큰 이야기로 묶어내는 일이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남원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들이 아직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남원이 크게 개발된 도시가 되기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것의 아름다움’을 만나러 찾아오는 도시,
시간의 깊이를 느끼러 찾아오는 도시,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자신의 도시를 자랑스러워하는 도시
이제는 남원 어딘가를 걸을때
‘여기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년고도 남원.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남원에 켜켜이 쌓여 있는 천 년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고, 잘 들려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이렇게 멋진 후기는 처음봅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이렇게 멋진 유람반수업을 매번 참석하지 못해 슬프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