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속의 10월 24일
사건事件 |
1912년 |
은행령 공포 |
1929년 |
주가 대폭락 : 대공황 신호탄 |
1931년 |
국제연맹, 일본군의 만주 철병(哲兵)권고안 가결 |
1939년 |
나일론 스타킹 델라웨어 윌밍턴에서 발매 시작 |
1945년 |
군정청, 일본인 철퇴령 발표 |
1949년 |
유엔극동경제위원회 한국가입 결의 |
1951년 |
미국, 대(對)독일 전쟁상태 종결 선언 |
1962년 |
미국에 의한 쿠바봉쇄 시작 |
1962년 |
케네디, 흐루시초프로부터 세계평화보장에 관한 서한 접수 |
1962년 |
한국-과테말라, 국교 수립 |
1964년 |
잠비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
1966년 |
마닐라에서 월남참전7개국 정상회담 개막 |
1968년 |
서울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조세 저항 데모 |
1972년 |
남북적십자 3차 본회담 (~26일 평양) |
1973년 |
이집트-시리아와 이스라엘간의 10월 전쟁 종결 |
1974년 |
동아일보 기자 일동, 자유언론실천선언 |
1974년 |
미국 공군, 사상최초로 ICBM의 기상(機上)발사 성공 |
1977년 |
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 |
1979년 |
미국, 북한 여행제한 철폐 확인 |
1980년 |
공주사대, 백제토성 발굴 |
1994년 |
안기부 6.25 참전했다 포로로 납북된 조창호씨가 43년 만에 북한 탈출, 해상 표류중 수산청 의해 구출됐다고 발표 |
1999년 |
모로코의 할리드 하누치, 시카고 마라톤서 세계신기록(2시간5분42초)수립 |
2004년 |
교육인적자원부, ‘특목고 정상화 방안’ 발표 |
2005년 |
천재소년 송유근(8), 국내 최연소 대학생으로 인하대 2학기 수시모집에 합격 |
탄생誕生 |
1632년 |
세균과 원생동물을 최초로 관찰한 미생물학자 레벤후크 출생 |
1856년 |
한말의 개화사상가 유길준 출생 |
사망死亡 |
1957년 |
크리스찬 디오르 사망 |
1999년 |
전문경영인으로 재계 첫 그룹회장 역임한 정수창씨 별세 |
[1929년] |
대공황 신호탄, 미국 주가 대폭락 |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0년 동안 공업생산은 90%나 상승했고 자동차 보유자는 5명당 1명꼴로 늘어났다. 증권시장도 전례 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증권구좌는 155만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 개는 신용거래로 개설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췄다. 생산이 감소하고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었다. 끊임 없이 상승하던 주가가 9월 3일부터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여전히 낙관론이 팽배했다.
10월 24일, 주가가 갑자기 곤두박질치면서 주식 시장은 순식간에 주식을 팔아 치우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행히 오후 들어 은행가의 대형 투자자들이 방어에 나서 폐장 무렵에는 전날의 주가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그러나 닷새 뒤 10월 29일, 뉴욕 증권가는 다시 폭풍에 휩싸였다. ‘비극의 화요일’로 불리는 이날 하루 동안 100억 달러가 휴지조각이 됐다. 전 세계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23/2008102301058.html에서 가져옴. |
“주가는 영원히 높은 고원처럼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미국 예일대의 첫 번째 경제학 박사로 미국이 낳은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린 어빙 피셔. 1929년 미국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낙관한 그는 이렇게 공언했다.
그의 말에 대부분의 미국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1920년대 미국 경제는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1921년 이후 8년 동안 주가는 계속 올라갔다. 제너럴모터스의 주가는 치솟았고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신탁회사가 월스트리트에 앞 다퉈 등장했다.
1921년 8월 24일 63.9였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929년 3월 9일 6배 가까이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인 381.17에 올라섰다.
멈출 줄 모르는 주가 상승은 사람들을 주식시장으로 모여 들게 했고 수십만 명의 미국인은 재산의 대부분을 주저 없이 주식에 투자했다. 상당수 미국인은 주식을 사기 위해 은행과 증권회사로부터 돈을 빌렸다. 투기 광풍은 결국 경제 거품으로 이어졌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의 대폭락이 시작됐다. 다우존스지수는 이날 20% 이상 하락해 299.47까지 떨어졌다. 이날 하루 동안 거래된 주식은 종전 하루 최대 거래량인 400만 주의 3배가 넘는 1290만 주였다.
시카고와 버펄로주식거래소는 낮 12시 반에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오후 1시 월스트리트의 주식 중개인들이 여러 상장사의 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입하는 데 합의하면서 그나마 폭락세는 멈췄다.
하지만 이미 11명의 주식 투자자가 자살한 뒤였다. 피셔의 공언은 공언(空言)이 되어 버렸다. 피셔는 명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신도 사업을 통해 번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검은 목요일의 공포에도 주식을 팔지 않았던 그는 결국 며칠 뒤 계속 이어진 ‘검은 월요일’과 또 한 번의 ‘검은 목요일’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가 잃은 재산은 10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주가는 1930년 초 회복되는 듯했지만 1930년 말 다시 폭락세가 이어지며 결국 1932년 대공황으로 빠져 들어갔다.
당시 증권시장 붕괴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투기 만연, 부채를 창출할 수밖에 없는 지주회사와 투자신탁회사의 확신, 청산이 불가능한 대규모 은행대부의 증가 등을 꼽았다.
79년이 지난 요즘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말들이다.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30000000134/3/70030000000134/20081024/8648189/1에서 가져옴. |
[1945년] |
유엔 창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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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서 열린 제1회 유엔총회 |
제2차 대전후의 평화를 확보하고 전쟁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한 유엔이 1945년 10월 24일 정식 발족됐다. 1945년 6월 26일 50개 국가가 조인한 유엔헌장의 비준국이 이날을 기준으로 과반수가 넘는 26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26번째로 유엔헌장을 비준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유엔헌장은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어 2개월간의 심의끝에 미국-영국-중국-소련 등 4개국 대표들이 합의한 초안을 기초로 작성돼 6월 26일 50개국이 조인한 바 있다.
유엔창설은 1941년 8월 '대서양헌장'에서 처음 구상된 후 4년 만이었다. '유엔(united nations)'이라는 명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처음 고안했으며, 2차대전 중인 1942년 1월1일 26개국 대표가 모여 서약했던 '연합국 선언'에서 처음 사용했다. 유엔은 모든 가맹국에 의한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의 3개 이사회와 국제사법재판소, 사무국으로 구성되어있다. 국제연맹 실패를 교훈삼아 안전보장이사회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
http://srchdb2.chosun.com/history/를 기본으로 다듬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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