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210 - 원효대사의 탄생지, 경산 제석사
徐白(서백) 2026. 9. 27. 13:17
제석사는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의 마을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은 예부터 불당골이라 불렀기에 제석사를 ‘불당절’이라고도 한다. 제석사는 원효대사가 태어난 곳을 절로 지었다는 옛 사라사(裟羅寺)가 계승된 절이다. 이같은 사실은 제석사의 원효성사 탄생 유허비를 통하여 알려진 사실이다.
원효대사는 617년(진평왕39) 불지촌(佛地村) 북쪽 율곡(栗谷)의 사라수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원효대사의 속성은 설씨이다. 어머니는 사라부인(裟羅夫人)의 꿈에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었다. 만삭이 된 사라부인이 마침 이 골짜기에 있는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였으므로, 몹시 급박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어 그 속에서 출산하였기 때문에, 이 나무를 ‘사라수’라 부르게 되었다.
옛날에 사라사(裟羅寺)의 일꾼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밤 두 알씩을 주었다. 일꾼이 적다고 관청에 호소하자 관리는 괴상히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았더니, 한 알이 바리 하나에 가득 차므로 도리어 한 알씩만 주라고 판결했다. 이런 이유로 율곡(栗谷)이라고 했다. 사라수 나무가 있던 율곡은 원효대사가 태어난 곳으로 사라사(裟羅寺)란 절이 되었으며, 율곡의 서남쪽에 있던 원효대사의 집은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란 절이 되었다.
불지촌은 ‘지혜가 발현된 마을’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터(佛址)’란 지명과 일맥상통한다. 석가세존은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고, 사라수 아래에서 입멸하였다. 또한 불지촌 북쪽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이란 함의가 있다. 그런데 원효대사는 그 사라수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즉, 원효대사의 탄생은 부처님이 입멸하신 곳으로부터 중생구제를 위해서 하화중생의 발원으로 다시금 사바세계로 되돌아와 나투는 보살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출처: 제석사)
제석사의 일주문 겸 금강문
도천산 제석사(到天山帝釋寺) 편액
좌우 판문에 그려진 금강역사 - 사찰에서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을 조성한 것은 궁극적으로 삿된 기운을 막고 신성감을 높이기 위한 벽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찰 규모가 작아서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을 조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법당 출입문 아래의 청판에 귀면상을 조각하거나 그림으로 그려 놓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후대로 오면서 더 발전되고 정제되어 금강역사로 표현되었고, 근육질의 금강역사에 무기가 더해지면서 사천왕으로 변모해 왔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느릎나무
벽화로 그려진 원효대사의 모습
2003년에 건립한 원효성사전 - 원효성사의 탄생일에 맞춰 매년 음력 5월 4일 '원효성사 탄신 다례재'를 봉행하고 있다. 다례재는 원효성사 탄생을 봉축하고,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가르침을 계승하기 위해 삼성현(원효ㆍ설총ㆍ일연)의 고장 경산시의 연례 행사로 정례화되었다. 2003년 제석사 경내에 원효 팔상탱화와 성상이 봉안된 원효성사전이 최초로 건립되었다. (사진 출처: 제석사)
2023년 재조성하여 봉안한 원효성상
제석사는 경산시 도천산 줄기에 자리했고 신라 때 원효스님이 창건한 사라사로 고려를 거쳐 융성하였다가 조선의 건국으로 폐찰 되었다. 그 후 밭으로 이용되어 묻혀있던 자리에 약 400여 년 전 농부가 밭을 갈다가 불상과 탑신 등을 발견하였다. 발견된 석불좌대와 석등연하대석, 부서진 탑신, 우물등 신라말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깊이가 16m 정도된다고 하며, 자연석을 사용하여 원형으로 쌓아 올린 우물.
2003년 중창한 삼성각
삼성각에 모셔진 칠성탱 - 불교에서 치성광여래는 별에 의한 근심과 재난을 물리치고,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는 위력을 주관하는 여래로 자리 잡으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점차 특정한 도상과 의식까지 갖추게 되면서 지물은 법륜, 좌우 협시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통해서 여래의 존명을 알 수 있게 된다. 밝기가 유별나 치성(熾盛)이라고 하는 치성광(熾盛光)여래는 바꾸어 말하면 북극성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독성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로 16나한 중의 한 분인 빈도라바라타자(賓度羅跋羅囉惰闍, Pindola-bharadvaja)가 이름만 바뀌어 신앙 대상으로 승격됐다. 중국에서는 나반존자, 우리나라에서는 홀로 깨달았다 해서 독성(獨聖), 독수성(獨修聖), 독각(獨覺), 연각(緣覺), 벽지불로도 부른다.
삼성각에 모셔진 산신탱 - 국토의 7할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산에 대한 숭배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산에는 산신(山神)이 있고, 이 산신은 산 아래의 인간을 보살펴 준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산신은 산악숭배 신앙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를 신격화하거나 산신을 봉안하고 산신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삼성각에 치성광여래와 독성, 산신이 함께 모셔질 때도 있다. 한편 산신각은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으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이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련없는 토착신인데,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에 의하여 먼저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고, 후대에 원래 성격을 불교 안에서 되찾게 된 것이다. 현재의 산신은 가람 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산사 생활의 평온을 비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어지고 있다.
1962년 건립된 대웅보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웅보전
대웅보전에 봉안된 삼존불좌상 -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아미타불을, 우측에는 약사불을 모셨다. 일반적으로 약사여래불은 동방 유리광세계를 다스리는 부처님이라 하여 본존불을 중심으로 왼쪽(東)에 봉안하고,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를 주제하는 부처님이라 하여 오른쪽(西)에 모시는데, 이곳에서는 서로 위치가 바뀌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26년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3층석탑도 조성되어 있다.